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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 삼상17:31-47

gkffpffndi 2022. 10. 15. 13:52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이다.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여름성경학교에서 동화 구연을 잘 하는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재미있게 들었던 무용담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어린 작은 다윗이 블레셋 장수 자그만치 3미터 되는 골리앗 장신을 넘어뜨렸을 때 그 통쾌함은 말할 수 없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말을 호사가들이 떠벌일 때는 도저히 싸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에서 예상을 뒤엎는 승 패가 갈리는 경우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스라엘과 불레셋은 엘라 골짜기에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 하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성경에서 보면 블레셋이라고 하는 나라는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세력이다. 이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그들이 팔레스틴에 정착 한 것으로 보아 BC2000년경에 이미 정착하였다. 블레셋 족속의 땅은 가나안의 해안지역으로 욥바 로부터 남쪽의 가사에 이르는 지역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 보다는 높은 수준의 문명을 가지고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이다. 사사 시대에 와서는 이들의 끊임없는 침공으로 언약궤와당시 예배의 중심지였던 실로 성읍까지 빼앗겼다. 현재 이스라엘 가나안 지역을 팔레스틴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불레셋에 유래된 말인 것으로 보아 블레셋이 끊임없이 영토 확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영토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러시아가 214일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유도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평야와 전략적 요충지인 항구를 빼앗고 영토를 넓히기 위한 침략 전쟁인 것이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공격해 왔던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던 지역이 기름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었기 때문 일 것이다. 블레셋과의 최초의 언급은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21:34;26:1에 보면 이삭은 블레셋 땅에서 15년 동안 거주하였고 화친 조약도 맺었다. 그러나 블레셋은 후일에 애굽에서 나올 때 진로를 방해하여 멀리 돌아가게 하였으며 이들은 이스라엘과 대적 관계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블레셋 세력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지만 다윗이 왕위에 올라 그들을 침으로써 완전히 이스라엘에 예속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괴롭힌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쳐서 쓰러뜨리고 승기를 잡아 그 여세를 몰아 다윗은 완전히 블레셋을 쫒아 내는 결정적인 전투의 분수령이 되는 한 장면이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지금부터 3000년경의 전투의 모습을 우리가 알 수 있다. 그것은 가장 힘센 장수들이 대표로 나와서 힘겨루기를 하다가 한 사람이 패하면 패한 자의 군대는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레셋의 장수는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수인데 그이 키가 여섯 규빗 한뼘이라고 나와 있는데 1규빗은 45센티라고 했을 때 45곱하기 6하면 270에 한 뼘 정도 하면 적어도 3미터가 되는 장신입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바늘 갑옷을 입고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찼으며 어깨에는 놋 단창을 매고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를 든 골리앗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서 밤낮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놋 오천 세겔을 계산 해보니 65키로인데 골리앗이 입은 놋 옷과 무기를 계산해 보니 적어도 100키로입니다. 그러니까 100키로 무장한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17:8-9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 이니라이렇게 큰 소리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기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하고 크게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우리의 영웅 다윗이 등장 합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써 8번 째 자식으로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의 형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징집에 되어 전장에 나가 있었습니다. 장자는 엘리압이요 둘째는 아비나답 셋째는 삼마였습니다. 세 아들을 전장에 내 보낸 늙은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막내아들 다윗을 시켜서 전황을 듣고 싶어서 다윗을 전장 터에 보냈습니다. 이새는 다윗에게 음식을 볶은 곡식 한 에바와 떡 열 덩이는 네 형들에게 주고 치즈 열 덩이는 천부장에게 주면서 네 형들의 안부를 묻고 생사 여부를 알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전장에 가니 블레셋의 군대는 소고아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 밈에 진치고 있었고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 진치고 있을 때 블레셋과 이스라엘 군대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침에 이르러서 양을 지키는 자에게 양을 맡기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위해서 준비해 주신 것을 가지고 전장에 달려갔습니다. 다윗이 와보니 전쟁이 한 창 이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형들이 있는 곳을 찾아 돌아 다녔습니다.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 형님이 어디 게십니까. 돌아다니다가 형들이 전장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형님들. 무사하시군요. 다행입니다. 배고프시죠 하면서 아버지 이새가 싸준 음식을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때 마침 골리앗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전쟁을 벌였느냐 너희가 한 사람을 택하여 나와 싸워서 내가 지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내가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골리앗이 이 말을 하자 이스라엘 군대는 한 사람도 나오지를 않고 쥐 죽은 듯이 고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두려운 나머지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 말합니다. 누구든지 저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왕은 포상을 준비해 두었다 하는데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왕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겠다 하고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무도 골리앗 앞에서 주눅이 들어 가지고 아무도 목숨을 걸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려 40일 동안을 이렇게 하나님의 군대를 조롱하고 모욕을 하는데도

 

크게 놀라고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못합니다. 사울 왕이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을 상급으로 주고 딸을 주어 왕의 사위로 삼겠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목숨을 걸고 나서는 용사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사울의 군대가 감당 할 수 없는 두렵고 큰 용사였습니다. 아말렉 전쟁에서 승승 장구한 사울왕도 그 아들 요나단도 대장군 아브넬도 너무나 두렵고 큰 골리앗의 위세에 눌려 찍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있을 때 그야 말로 백척간두의 위급한 때에 우리의 영웅 다윗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이방인인 골리앗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의분이 일어 난 것이다.

 

아무도 골리앗 앞에서 사기가 꺽이고 겁에 질려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하는 거룩한 분노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았던 것은 '불의에 대한 항거'하는 거룩한 분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불의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 할례 받지 못하는 이방인인 골리앗이 40일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모욕할 때 아무도 거기에 대항하지 못하고 치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우상에게 돌리는 것을 노여워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네 자신의 안위와 영광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영광을 얻기를 구해야 합니다.

 

21세기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법과 질서와 도덕과 윤리를 망가뜨리고 이를 위해 법제와 해서 비정상을 정상화 하고 정상을 비정상이라고 하고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고 가르치는 성경적 가치관을 무너뜨려 비도덕적 사회와 부도덕한 사회로 향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하여 교회는 분노하며 분연히 일어나 대항하여 성경적인 윤리와 도덕 양심에 기인한 세상을 만드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윗처럼 죄악 된 세상에 대하여 단호히 거부하고 저항하며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2022년 교육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학부모 단체들의 거센 저항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항이 있었던 이유는 현재 2022년 개정안이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지탱해온 양심을 무너뜨리는 부도덕한 사회로 가는 내용들을 학생들에게 교육하기 위하여 교과내용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개정안이 통과 되어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게 될 때 그 사회적 폐혜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부모들이 학교에 내 자녀들을 보내는 목적은 올바른 도덕과 윤리, 양심교육을 통해 선악을 구분하고 정상적인 삶과 비정상적인 삶을 구분하는 판단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2022년 개정안은 아이들에게 소아, 유아, 미성년자들에게 성교육을 시켜서 마음 껏 성을 즐기도록 가르키는 내용을 닮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성행위나 동성애나 트랜스 젠더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정상적인 가정을 신화적인 가정이라 하며 오히려 동성 간의 결혼도 가족 개념에 두어 다양한 가족 개념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성별도 태어 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신체적인 특성으로 결정 되는 데도 불구하고 성인지라는 개념으로 자신이 남성인데도 여성이라고 생각되면 남성이어서 여자 화장실이나 대중목욕탕에 들어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도록 법제화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우리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가 되고 성적인 문란 행위로 인해 성병과 낙태. 조기 임신, 에이즈 확산 등으로 인해 부도덕한 사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혐오표현 금지라는 언어를 사용하여 비정상적이고 부도덕한 것에 대하여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성 독재 사회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소위 성혁명은 하나님이 세우신 성경적 가치관과 윤리관, 도덕 율과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사탄의 교묘한 책략인 것이다.

 

21세기 우리 사회에 이러한 성혁명, 소위 젠더 교육이 광풍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학교 교육에서 시키고 법제화 하게 되면 우리의 아이들의 영혼과 육체는 파멸 하게 될 것이고 교회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서구의 교회들이 이러한 젠더 교육 성혁명을 통해서 붕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시도하는 세력들이 유엔과 우리나라에 국가 인권위원회에 자리 잡고 있고 문재인 정권에서 더욱 노골화 되고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전쟁에 진입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과 교육에 대하여 저항하고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일찌기 엡6:12절에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력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이러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삼성17:26절에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다윗은 거룩한 분노가 타올라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쳐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전해들은 형들은 오히려 다윗에 대하여 염려하고 걱정해주기 보다는 객기를 부리는 것으로 치부하고 다윗을 나무랍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이 사울 왕에게 전달되자 사울 왕은 다윗을 한 번 데려 오라고 합니다.

 

사울 왕 앞에 선 다윗은 사울에게 골리앗 때문에 낙담하지 말 것을 말하면서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 앞에 선 다윗은 너무나 어린,  큰 용사 골리앗과 싸울만한 상대가 되지 못한 것을 즉각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설득합니다. 너는 골리앗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어리지 않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내 양을 물어 끌고 가면 제가 쫓아가서 그 사자의 입을 찢고 사자의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쳐서 죽였듯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이 할례받지 못한 이 골리앗도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자의 이와 곰의 발톱에서 구원해 주셨듯이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아 이렇게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해서 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수만 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겁먹은 10명의 정탐 군은 필요 없습니다. 여호수아 갈렙처럼 이 사람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는 호기 어린 담대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겁 많고 비겁한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담대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무모하리 만큼 담대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용기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닙니다. 다윗은 그가 고백한 것처럼 평소에 양을 치는 목자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 하였고 양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양을 사자나 곰의 발톱에서 지키려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생명을 걸고 양을 지키고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다윗의 이 담대함과 양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않은 사명감이 결국 이스라엘을 구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담대함에 결국 사울은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 원한다그리고 사울은 자신의 무기와 옷을 입혀 주었지만 몸에 맞지 않자 다윗은 양을 칠 때 사자가 공격하면 막대기로 양을 보호하는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 5개만 골라서 물매를 가지고 불레셋 장수 골리앗 앞에 서게 됩니다.

 

블레셋이 보니까 웬 꼬마 하나가 자기 앞에 가까이 오는데 웬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오는 것을 보니 코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저놈이 나를 개로 여기나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43절에 불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하면서 네 살을 독수리 밥이 되게 하고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겠노라이렇게 말하면서 겁을 잔뜩 주자 다윗은 오히려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45-47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러한 담대함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야웨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이미 그가 양을 지키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 온 것입니다. 그는 삶에 현장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이방인 블레셋을 반드시 이겨 하나님의 이름을 만 천하에 드러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물매 돌 5개와 양을 치은 막대가로 나가서 평소에 물매를 닦은 실력으로 온 몸을 갑옷으로 자신의 신체를 가리고 나온 골리앗을 향하여 정확하게 미간을 정통으로 맞춰서 그 거인을 쓰러 뜨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의 목을 베고 칼끝에 들고 흔들었을 때 두려워서 떨고 있던 이스라엘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도망가는 블레셋 군대를 쫓아가서 전멸시켜 그 날에 전투는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는 전쟁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도 훌륭한 군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장군들과 장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 까요? 그것은 골리앗의 거대한 모습에 기가 죽어 싸울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간 12명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나머지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자신들은 메뚜기 갔다고 비하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예 싸울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담대하지를 못했습니다. 요한일서5:4절에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골리앗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는 거룩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께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실한 믿음, 담대함 이것이 다윗을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한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 들은 악한 세상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 세례요한도 거룩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가로채어 부인으로 삼은 헤롯에 대하여 옳은 말을 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그들의 가식을 지적하시면서 분노 하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날 이 악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를 쏟아내야 합니다.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진리를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의를 말해야 합니다. 때로는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서 목소리를 높이고 비 진리와 싸워야 합니다. 침묵이 금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진리를 비 진리로 바꾸고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말하고 비도덕을 도덕이라고 하고 선을 악으로 바꾸고 악을 선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담대함으로 나가 싸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다윗처럼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담대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으로 세상과 싸워 이겨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0221016일 청주 새믿음 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