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새믿음의 강단

살아 있는 동안에 딤후4:1-8

gkffpffndi 2022. 9. 24. 12:35

지난 98일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과 영연방 수장으로서 707개월 최장기 군주로서의 사명을 마치고 서거 하였다는 소식에 전 세계 외신을 타고 200여개국 나라에 빠르게 전파 되었다. 스코틀랜드 벨모럴 성에, 군용기로 이송된 유해는 웨스트 민스트 홀에 있다가 영국왕실의 전용교회이자 영국성공회인 베드로 성당인 웨스트 민스트 사원에서 2000여명의 각국정상과 왕족 귀족 유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장례식은 저스틴 웰비 켄터베리 대주교의 설교, 영국 총리의 성경봉독, 성가대의 찬송으로 약57분 동안 진행 되었다. 엘리자 베스 여왕이 서거하자 각국에서 애도하는 추모글들이 올라왔다. 그에 대한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사랑과 봉사와 헌신 겸손 온유 충성 이란 말들로 고인을 애도하며 추모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녀가 73때인 김대중 정부 시절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서울 인사동과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여 마침 73회 생일 상을 받은 영상이 유트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회마을을 방문할 시에 우리나라 고택에 올라 설 때는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여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는 맨발을 보였는데 여왕이 맨발을 보인 것은 이 때가 처음였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여왕은 남의 문화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겸손한 모습을 한국인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온화하고 겸손한 모습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타국에서도 보여 주었기에 엘리자베스 여왕을 존경할 뿐 아니라 왕실에 권위와 위엄을 보여 줌으로써 영국의 국격을 높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에 100만의 시민들이 도로에 나와서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보았습니다. 여왕은 살아 있는 동안에 영국 여왕으로서 만이 아니라 영국 국민으로서의 사명과 의무를 충실이 이행 하였습니다. 18세 때 세계2차 전쟁 때 공주의 신분으로써 운전병으로 참전하였으며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영국 국민들을 향하여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서 국민들을 위로하였습니다. 한 세기를 이 땅에서 군주로써 살다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는 여왕으로서의 생애를 마쳤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서의 생애를 마치고 그의 남편 이 묻혀 있는 윈저성 에 성조지 교회에 안장되었다. 이제 그녀는 96세간의 주님이 주신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제 마지막 인생의 끝을 예견하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절에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리

 

즉 모든 사람은 이 세상의 삶이 마치고 난 이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날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소풍이 끝나고 난 이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사람은 그가 이 땅에서 살아온 삶의 여정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3가지를 부탁 합니다.

 

첫째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주의 복음을 전하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서 지중해 변을 3번씩이나 배를 타고 다니면서 맨발로 죄수의 몸으로 대적자들의 박해를 받으면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인류를 구원해 줄 최고의 기쁜소식임을 알았기에 결혼도 하지 않고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감옥에 들어가서도 돌에 맞고 태장으로 맞고 강의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교사들의 위협 속에서도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순교하였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가장 기쁜소식은 복음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이길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음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끓었습니다. 어떤 왕이나 권력자자 위대한 스승이나 성자나 과학자 정치지도자나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2000천전에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영원한 하늘 나라가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삶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바울도 자신이 예수믿는 자들이 다메섹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잡으로 가다가 하늘에서 갑자기 강한 빛이 내려 비취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지기를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런 음성을 듣고 난 이후 사울은 변화 되어 바울이 되었고 아라비아에서3년 동안 수행하고 난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복음의 사신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4권을 집필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신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울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절에 보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 왔도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기에 더욱 믿음의 아들에게 복음의시급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라고 하는 것은 제사를 지낼 때 제물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이유는 이것이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내 이를 위하여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10절에 보니까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읽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성경을 연구해보고 얻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성경은 교양서적도 아니고, 철학서적도 아닙니다. 소설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는 전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이 전도라면 당연히 우리의 사명도 전도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2024절에 보니까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오늘 사도바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그는 자기의 생명도 언제든지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내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아니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십니까? 무엇 때문에 직장에 나가십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계획과 섭리가 우리의 사명인 전도입니다.

 

아주 돈 많은 백만장자 사업가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여자선교사를 한 사람 만났습니다. 아주 호리호리한 선교사님이 어딘가를 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디를 가고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는 말합니다. “, 이 아프리카 나환자촌에 복음을 증거 하러 가고 있습니다.” 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나 같으면 백만 불을 준다고 해도 그런 곳에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여자 선교사가 또 말합니다. “저 역시 그 정도의 돈을 받고는 가지 않습니다.” 이 부자가 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래요? 그럼 선교사님은 얼마나 많이 받고 나환자촌에 가시는 거예요?” 선교사님이 십자가 목걸이를 보여주면서 돈을 받고 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 분이 제게 가라고 명령을 해서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나환자촌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에 나는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여자선교사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있어야할 이유는 바로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성도됨은 복음 증거에 있는 것입니다. 불은 타야 불인 것입니다. 타지 않는 불이 뭐에 쓰겠습니까? 교회는 복음을 증거 할 때 교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상대성의 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도 받았습니다만 그는 원래 유태인입니다. 1952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놀라운 제의를 받았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국회는 만장일치로 당신을 이스라엘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오셔서 우리의 대통령이 되어 주십시오. 과학자 아인슈타인에게 이런 공문을 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세상에 많지만, 물리학을 가리킬 사람은 적습니다. 그는 그것을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떤 제물이나 명예나 어떤 가치 있는 것들로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전도의 사명이 주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5절 말씀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6: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권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우리는 싸움의 대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성경이 쓰여질 당시는 로마시대입니다. 이 당시 로마사회는 로마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할 때입니다. 네로황제는 로마시내가 화재가 나자 자신에게 돌아올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이 로마시내에 불을 질렀다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황제숭배 사상이 있었다. 황제숭배 사상은 1세기 로마시대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왕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신으로 추앙되기를 바랬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후에 아구스도명명 되었는데 이는 숭고한, 경외할만한 라는 뜻이다. 아구스도는 재임기간 동안 뛰어난 업적을 쌓아 황제숭배의 기초를 쌓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축제와 경기를 주관했다. AD14년에 그가 죽자 원로원은 그를 신으로 명명했다. 신격화 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신전을 만들고 제단과 신전건립을 허가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서머나에 자신과 리비아와 로마 원로원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도록 AD26년에 허락했다. 클라우디스 황제는 새롭게 정복한 영국에서 자신을 숭배하도록 했다. 특별히 아시아 주들이 황제숭배에 강했다. 계시록에 언급된 7교회중 세도시 (버가모,에베소, 서머나)에 황제숭배신전이 있었다. 도미티안 황제시절에 강 첨예한 이슈였다.베스파시안 황제는 자기 왕조를 견고히 하고 각주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황제숭배를 적극 장려했다. 도미티안은 15년간 왕위에 있었는데 자기를 이자 신“(Lord and god)으로 불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의 통치기간 내내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가해졌다. 도미티안은 에베소에 거대한 신전을 지어놓고 도미티안 상이 설치 되었다. 신전비명에는 신들의 성 전(Temple of the Sebastos)이라고 새겨져 있다. 로마제국에 충성했던 아시아가 1세기 말에는 전적으로 황제에게 경배를 드리게 되었고 제국의 머리인 황제는 로마 전체를 대표했고 또 모든 물질적 영적 축복의 근원이 되었다. 황제숭배를 하지 않는 것은 최고 권력자를 거역하는 근본적인 죄가 되어 용납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스도외에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게 경배할 수 없었다. 자연히 그들에게는 황제숭배를 거절 하는 경우 엄청난 핍박과 박해가 주어졌다.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기독교인들이 강요된 황제숭배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1세기의 로마제국 하에서 선한 싸움이 황제숭배였다면 오늘날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네오 막시즘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국회에서 민주장 국회의원 79명이 교회를 없애야 한다는 황당한 법을 발의 한 것을 아십니까? 네오 막시즘으로 공부한 이들은 기독교 정신을 말살하고 교회를 없애기 위해서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등을 만들어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 전통적인 도덕과 윤리를 무너뜨리고 성적 타락을 조장하는 교육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제약 없이 자신들의 종교를 믿도록 하면서 기독교 예배는 기독교 학교에서 조차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법을 만들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법을 만들고 건설적이고 하나님이 세운 남자와 여자라고 성별을 무너뜨리고 젠더 교육을 시켜서 성은 태어나면서 구별이 되는 되도 이것을 선택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부패하고 타락한 동성애 축제인 퀴어를 옹호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 기독교적이고 적그리스도 적인 이 세상의 문화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전통을 무너뜨리고 부패하고 타락한 문화와 세상으로 이끄는 악한 자들과 권세자들과 영적 싸움에서 무관심하지 말고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 

 

셋째는 믿음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로마제국시대에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분만이 우리의 ’(Lord)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황제숭배를 강요하고 황제신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에게 핍박을 가해 왔을 때도 기독교인은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 들어가서 일생을 그곳에서 마치면서 믿음을 지켜 왔습니다. 이집트에 가면 기독교의 한 분파인 콥트교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에서 소수 기독교인으로서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초상화를 모자이크 해서 만들고 즉 성인들의 모습들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 가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의 혜택의 유혹을 뿌리치고 말입니다. 저는 그곳에 가보지 않았는데 그곳에 다녀 온 분들에 의하면 외곽에서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돗물이나 전기의 혜택, 교육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신앙을 지켜 가면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그들은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은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 가고 있는데 돌이켜 보면 나의 생애는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달려 갈 길을 다 달려 왔고 환난과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말입니다.

 

우리는 신앙, 믿음을 끝까지 잘 견디고 지켜야 하나님 나라 갈 수 있으며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간에 데마처럼 힘들다고 포기하고 세상으로 다시 가면 안 됩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부지기수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단에 빠진 사람들도 있고 교회나 사람들을 보고 실족한 사람도 있고 있습니다. 왜 이 믿음을 지켜야 합니까? 이 믿음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으로도 천국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를 믿어도 이슬람을 믿어도 신천지나 안상홍을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하 어떤 사람에게도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후5:8-9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8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 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입니다. 계시록 14장에는 마지막 때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은 자는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고 고난의 연기가세세토록 올라가지만 끝까지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에게 영생이 주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복음 524절에 보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입니다.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가장 귀한 일이 무엇입니까? 한 생명을 구하는 일.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조지 w . 트루엣은 예수께 한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복음을 전하십니다. 선한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 영생을 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925일 청주 새 믿음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