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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낮아지심(케노시스) 빌2:1-11

gkffpffndi 2022. 10. 1. 11:39

초기1세기의 로마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막 태어난 갓난아기와도 같았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시대는 옥타비아누수,후에 가이사 아우구스투스(BC27-AD14)와 불리는 로마초대황제와 2대 티베리우스(BC42-AD37)황제 그리고 3대 황제인 가이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폭군칼리굴라(AD12-41) 시기와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AD10-54) 5대 황제인 네로(재위54-68)가 다스린 기간이다.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대는 티베리우스와 폭군 칼리굴라가 통치하던 시대 였을 것이다. 이 때 유대는 로마의 총독들이 부임하여 유대인들을 지배하던 시대에 유대인들은 피지배민족으로 가난과 배고픔 질병에 시달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던 때 예수는 나사렛과 갈릴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나사렛 예수가 언제부터인가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서 그 당시 로마총독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은 아마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면서 일 것이다. 이 일로 인해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대중들은 쫓아 다녔고 이 소문은 갈릴리와 유대광야 사마리아에 급속하게 퍼져 예수는 수천 명을 몰고 다니는 영웅이 된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로마제국의 총독들과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예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몰고 다니면서 빵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빵 문제였던 것이다. 로마제국 하에 로마는 빵이나 식료품들이 풍족하여 불만이 없었다. 왜냐하면 황제들은 거대한 로마제국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가장 절실한 빵문제나 세금감면, 부채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황제의 자리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황제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는 빵문제였다. 그래서 로마시대를 묘사하는 책들에는 반드시 빵과 서커스라는 말이 등장한다. 빵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경제적인 문제로, 풍요의 문제이고 서커스는 오락이다.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전차경기나 검투사로 불리는 글래디에이터들이 콜로세움 같은 원형 경기장에서 살벌한 전투를 벌였다. 검투사들은 대부분은 노예나 사형수, 외국인 포로들을 교외의 전문양성소에서 검투사 훈련을 시켰으며 뛰어난 검투사에게는 명예와 보수, 그리고 자유가 부여되자 많은 시민들도 지원하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경기를 개최 할 때만다 수 백 명의 검투사들이 콜로세움에 모였다. 그들은 지하에 설계된 장소에서 기다렸다가 맹수와 맹수, 맹수와 사람, 사람과 사람의 경기가 시작 되었고 여기서 수 백 명의 투사들이 죽고 죽이는 게임으로 아레나의 모레를 피로 물들였다고 한다. 어느 해의 대회에서는 1만 명의 검투사가 출연하여 8일 내내 시합을 하고 최후의 몇 명만이 남을 때 까지 죽고 죽이는 살상 행위가 계속되었고 승리한 검투사는 시민들의 영웅이 되었고 이 영웅에게 시인은 송가를 조각가는 초상을 귀빈석의 귀부인은 사랑을 바쳤으며 호사스러운 연회에 초대되기도 했다. 설령 패색이 짙다 해도 용감성과 기술이 인정되면 모든 관중들이 칭송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이런 경우에는 경기를 중단시키고 패배 했다 할지라도 승자와 같은 똑같은 명예가 주어졌다. 로마제국에서 이러한 인간 살육의 향락은 빠뜨릴 수 없는 국가적 행사였던 것이다. 잔혹한 것을 즐기는 인간의 악한 심성을 엿 볼 수 있다.

 

오늘날도 사람들을 정치로부터 무관심하게 하고 국민의 정신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도록 통치자들은 우민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3S라는 말이 있었는데 Screen, Sex, Sport 에 빠지게 해서 정치에 무관심하도고 하여 자신들이 마음껏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대로 로마의 황제들은 빵 문제 만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래 전에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자스민 혁명 이란 것도 빵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고 물가가 폭등하게 되자 통치자를 권자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로마에는 오래 전부터 서민들의 빵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복지 정책인 소맥 법이 있었다. 소맥 법은 매년 수확되는 일정량의 밀을 국가가 사들여 시가의 절반 가격으로 도시 노동자들에게 팔도록 규정한 일종의 빈민 구제책이었다. 가이사르가 무료 배포 대상을 15만 명으로 상정 한 이후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20 만 명으로 늘렸고 제정시대에는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로마 인구가 당시 약100만에서 160만 정도였는데 무료 식량 수령자는 17살 정도 수도로마 거주자 로마 시민권 자였기 때문에 1가구당 5,6명 정도로 계산하면 로마 시민 모두가 국가로부터 밀 수급 증명서를 받았기 때문에 로마 시민은 일하지 않고도 누구나 매일 빵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인 1인당32.5키로 그램을 지급 받았고 또한 곤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1년에 5개월간 베이컨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흉작이 된 해에도 로마시민 가운데 굶어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에 로마황제는 로마시민에게 있어서는 빵문제를 해결해 주는 전능하신 신과 같은 존재 였던 것이다. 반면에 로마 속주에서는 전혀 그러한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로마 속주였던 유대 나라는 로마 총독이 와서 수확물을 로마로 가져갔기에 유대나라는 피폐하고 걸인들과 노예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군중들은 폭동을 자주 일으키고 로마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사회를 혼란 스럽게 하였기에 총독으로 부임한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서 평안한 가운데 임기를 마치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 배고프고 가난한 피지배민족인 유대인에게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그가 바로 갈릴리 나사렛 예수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였기에 성경에 약속된 메시야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메시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가장 영적으로 캄캄하고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예수가 나타 난 것이다.

 

그 예수는 나사렛 이라는 하찮은 동네 출신으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인물이 출중하거나 학식이 많거나 재산이 많은 것이 없는,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흠모할 만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사야52:3절에 그는 주안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언제가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켬퓨터로 조합해서 가장 근접한 예수님의 사진이 실린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사야의 말씀처럼 흠모 할 만 것이 없는, 어떻게 보면 노동자나 농민과 같은 모습이었음을 보고 정말 이런 모습 이었나 라고 생각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하면 별 볼일 없는 시골뜨기 출신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권세와 능력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권세와 능력은 하나님께로 주어 진 것입니다. 언제 주어 졌습니까?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야의 자기인식이 언제 주어 졌느냐가 신학적인 논쟁입니다. 대게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라고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신성은 동정녀 탄생으로부터 시작 되었지만 세상으로부터, 아니 하나님으로부터 공적으로 인정받아 메시야로 나타난 시기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때이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그에게 나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도 거기에 끼여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 줄에 서 있는 예수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3:8-10절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그러면서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 즉 예수는 나하고는 비교 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 분은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심판자 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 순서가 되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려고 오실 때 세례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나에게 오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니라. 주님이 허락하시자 요한이 예수님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 올 때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세례 받고 물에서 올라 올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임하시고 난 이후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지기를 마3:17절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사건은 공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 후에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야 성을 증명하는 사건들을 터트리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이적사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사건, 앉은뱅이와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 주신 것, 12해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한 여인을 치료한 사건, 실로 암 못가에 38년 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사건, 심지어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썩은 시체 냄새가 난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 등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증명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보다도 더 중요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주님께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부활 이후 40일 동안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500여명의 사람들에게 보이시면서 자신이 승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이 복음이 제자들을 통해서 전 세계에 퍼져 나갔고 그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까지 주님의제자인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서 전해 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거기 로마에서 베드로와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지중해 주변의 나라에 배를 타고 다니면서 도보로 3번에 걸쳐서 로마에 까지 전파 되었습니다. 본문 빌립보서는 바울이 죽음 직전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을 때는 로마의 폭군 네로가 통치 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의 선교 사역에 물질 적으로 후원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물질로 후원해 준 것을 감사하면서 선한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한 열매가 가득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바울이 예수에 대하여 뭐라고 하는 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바울은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란? 자기보다 남을 더 훌륭하게 여기는, 낫게 여기는 남을 높여주고 깍아 내리지 않는 마음,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 신 것입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는 죄가 없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정욕에 의해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 남자 없이 태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도 보면 여자의 후손이 뱀을 밟을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여자의 후손이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성품은 겸손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높아지려고 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땅에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이 되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20:20절 이하에 보면 세베대의 어머니가 자기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할 때 다른 열 제자들은 분이 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 제자들도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자신들도 한 자리씩 하리라고 생각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 안철수와 공동정권 내지는 자리를 약속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입각 할 때 안철수 측이 장관 자리에 갈 줄 알았는데 지분이 없다고 생각하니 인수위원회 참여 한 사람이 사표를 내고 나왔지 않습니까? 국민의 힘 이준석 사태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준석이가 공천권을 가지려고 미리부터 자기 사람들로 왁꾸를 짜려 했기 때문에 거기에 중견정치지도자들이 반발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차기 권력구도를 자신들의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를 하려다가 권력 싸움이 벌어 진 것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려고 하는 게 정상입니다. 이준석이도 젊은 나이에 대표되고 나니 어디 가든지 서열 몇 번 째로 대접하고 높여주고 자기 아버지 삼촌 벌 되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굽신굽신 하고 그러니까 이 권력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것을 놓치 않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목적은 높아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까지 섬기셨나요? 죽기까지입니다. 십자가에! 그 당시 십자가는 가장 흉악범이나, 반란죄를 저지른 사람, 그리고 노예들, 외국인 포로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십자가에 형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시민은 십자가 형틀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시 십자가는 수치와 모욕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이 수치와 모욕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6절에 그는 하나님과 본체이십니다. 여기서 본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똑 같은 분'이라는 말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모네게네유일무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신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신 사건이 성육신 사건이요 성탄절인 것입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도 엄청난 사건인데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 이르기 가지 복종하시고 더 나아가 십자가에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희생 제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자기 낮추심, 자기 비하인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케노시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유래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엄청난 자기 비하 낮추심 (케노시스)이야 말로 위대한 겸손인 것입니다.

 

자기비하라고 하는 케노시스는 하나님으로서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고 잠시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뚯 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모든 인류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 까지 자기 자신을 낮추심, 자기비하(케노시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복종 하셨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높이셨습니까? 9-10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다시 말하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 우주를 통치하시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올리셨습니다. 전 세계에는 4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카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는데 전 세계인구가 80억이라고 가정 했을 때 아마도 20억명 이상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단연히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모든 입으로 예수를 ’(Lord)라고 하는 말은 1세기 로마 시대에 있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로마 황제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원로원에 의해서 을 추앙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황제의 신전들이 즐비하게 로마제국 곳곳에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3대 카리쿨라 황제 같은 경우는 자신을 라고 부르도록 하였고 혹은 ’(god)이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카리쿨라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황제동상을 세우도록 했으며 그 황제 동상에게 경배하도록 하였고 만약 어길 시는 무참하게 죽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박해 상황 속에서도 1세기 기독교인들은 황제는 도 아니고 도 아니라고 하면서 경배하기를 거부 하였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만이 ’(Lord)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그 분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기 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비하(케노시스) 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예수 앞에 무릎을꿇게 하셨고 모든 사람들이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Lord)가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이 땅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예수가 라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하지 마세요, 낮아지세요. 겸손하세요.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면 사람들이 다 좋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분은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가 되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가 되심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을 낮추면서 예수님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2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

 

8: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2:36"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