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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 (remnant):(왕상19:1-18)

gkffpffndi 2020. 9. 18. 22:46

남은 자 (remnant):(왕상19:1-18)

 

오늘 본문 말씀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선지자 450명과의 영적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고 난 이후 바알선지자들을 기손 시냇가에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다 죽이고 난 이후 엘리야의 기도로 3년 동안 비오지 않은 북 왕국 이스라엘 땅에 큰 비가 내려 가뭄이 종결되었지만 엘리야는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광야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두었다는 말씀을 듣게 되어진다.

 

엘리야가 바알선지자와의 갈멜산 에서의 큰 싸움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 아합 왕은 이 소식을 자신의 부인 이세벨에게 전하였을 때 오히려 이세벨은 독기가 발하여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쯤 되면 네가 죽인 바알선지자들처럼 네 생명도 죽어 있을 것이다, 라는 최후 통첩장을 듣고 엘리야는 그 즉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직선거리로 약250키로 정도 되는 남 왕국 유다에 있는 브엘 세바로 몸을 피하고 그것도 불안해서 자신은 광야로 더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에 머물러 낙담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러한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하늘에서 불을 내린 하나님의 종 엘리야인 가 싶을 정도이다. 바알선지자450명과 아합 왕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 싸운 기세는 온데 간데 없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엘리야는 자신이 아합 왕과 이세벨의 싸움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바알제단을 헐고 참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자신의 체면이 꺽인 이세벨은 오히려 마음이 더욱 악하여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목숨을 찾았기에 엘리야는 불안하고 두려워 북 왕국 이스라엘에 있지도 못하고 남 왕국의 가장 남쪽인 브엘세바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사의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흘러가자 엘리야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도망쳐 나온 것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였다. 엘리야도 갈멜 산에서 대승하였지만 자신의 목숨을 찾는 이세벨 앞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자신의 목숨을 찾는 이세벨 앞에서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의 고모부가 몇 해 전에 인민대회당에서 군인 두 사람에 의해서 끌러가는 모습이 기억나십니까? 김일성의 사위이고 권력서열 2위인 그도 죽음 앞에서는 쥐새끼처럼 끽소리도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 끌려갔습니다. 김정은은 미국 스텔스 비행기가 뜨면 자하에 숨어 있는 다고 하지 않습니까? 누구든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죽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앞에 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쾌락 앞에 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에 약합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남 왕국 브엘 세바의 광야 로뎀 나무에서 좌절과 절망 속에서 그가 죽기를 하나님께 구하다가 잠이 들었을 때 꿈에 천사가 나타났다. 5절에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한지라여기서 어루만지며라는 표현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엘리야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의미한다. 복음성가 부르신 곳에서가사를 보면 따스한 성령님 마음으로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만족함을 느끼네

 

성령님의 따듯함과 평안함이 그를 감싸 안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말하기를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보니 머리맡에 떡과 물이 있어 그것을 먹고 다시 누워 잤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났을 때 천사가 또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지금 네가 여기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음식물을 섭취하고 네가 갈 길을 가도록 하여라 하였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엘리야는 사십 주 사십 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 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은 모세가 사십일 금식을 두 번 이나 하고 난 이후에 그곳에서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을 받은 산이며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대화하였던 거룩한 산입니다. 브엘세바에서 호렙 산까지는 약350키로 정도 되는 먼 거리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천사가 건네준 떡과 물을 마시고 힘을 내어서 호렙 산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믿은 하나님은 우리인간의 육체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몸 상태를 아시고 떡과 물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기도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육체에 필요한 음식이 필요한 것을 아시고 엘리야를 위해 친히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주님도 육체를 가지고 계셨기에 우리의 고난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고후1:3-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이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얼마쯤 지나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의 어느 굴에서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기를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예, 제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남보다 더하다 보니 제가 이세벨의 칼날을 피하여 이곳에 피신해 있습니다. 이세벨이라고 하는 왕비가 바알 신을 들여와 하나님의 제단이 파괴되고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니 하나님의 백성들을 흩어지고 하나님의 대한 신앙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앙을 일으키고자 갈멜 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 싸움을 걸어 대승하였는데 이세벨이라고 하는 왕비가 오히려 저의 목숨을 찾겠다고 하여 제가 지금 이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 목숨만 간신히 부지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당장 하나님의 산 호렙앞에 서 있으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하고 큰 회리바람이 지나가는데 나무를 뽑고 바위를 부수고 지나가는데 거기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또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갑자기 땅이 쪼개지고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지진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이번에는 지진이 일어난 후에 불이 온 산을 태우면서 하늘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이 지나고 난 이후에 세미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엘리야야, 엘리야, 아주 작은 세미한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이 음성이 산 바깥쪽에서 나는 소리인 것을 직감하고 자신의 겉옷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나가 굴어귀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요란한 가운데서 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용한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상3장에 보면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 옆에서 누워 자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을 모르고 엘리 선지자에게 찾아가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고 달려가니 부르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3번까지 불렀는데 깨닫지 못하자 엘리제사장이 깨닫고 그가 부르시거든 이렇게 대답하여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듣기위해서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질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실 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 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거듭해서 물어 보시는 이유는 네가 지금 왜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이곳까지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그것에서 엘리야는 아합 왕과 이세벨과의 영적 싸움에 최전선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세벨의 칼날을 피하여 남 왕국 유다지역인 브엘 세바에서도 한참 떨어진 호렙 산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아합 왕과 이세벨에 의해서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지고 야웨 신앙이 백성들의 마음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이 때 더욱 엘리야의 사명이 필요한데 이세벨의 칼날이 무서워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남 왕국 유다의 브엘 세바에서도 한 참 떨어진 호렙산 굴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의 사명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너는 네 길을 돌이켜 왔던 광야를 지나 다메섹에의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의 되게 하고 또 님시의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소명의식을 잃어버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다시금 소명의식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 할지라도 소명의식을 잃어버리면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절망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되찾아 주셔서 낙심과 절망 속에서 일어나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엘리야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너 혼자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땅에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 7000명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생각할 때는 자신혼자 만이 이 영적 싸움의 선봉에 서 있고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끓지 아니한 7000명이 있다고 하는 사실은 엘리야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Remnant)사상은 이곳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전체에서 흐르는 중요한 사상입니다. 최초의 남은 자는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한 노아 홍수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노아 가족 8명만 구원 받았고 나머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때도 다 심판을 받았지만 롯의 가족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임하여 장자가 죽는 심판이 임했지만 양의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만 구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 전체가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남은 자는 이방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인간이 불순종과 범죄로 하나님의 구원이 단절될 때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보호하여 남겨두신 소수의 의인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사야 선지자는 사6:1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 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바로 거룩한 씨 소수의 의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롬9:27에서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가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리11: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예수님도 마22:14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하심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택하신 자 소수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 남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거룩한 씨인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은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남은 자들이란 계시록에 144천으로 나와 있으며 어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입니다. 이세벨의 칼날에 다 숨어 있었지만 그 시절에도 끝내 바알신앙을 거부하고 야훼 하나님 신앙을 지킨 자들이 7000명이 숨어 믿음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도 하루에 세 번 씩 기도한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남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외롭고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와 멸시를 받는 다 해도 반 기독교적 정서가 온 세상을 휩쓸고 교회를 탄압하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옛적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처럼 사자 앞에서도 바알에 무릎 꿇지 않았던 엘리야 시대 남은 자 7000명처럼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거룩한 씨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복음성가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이세벨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바알이라는 이 세상 풍요의 신에게 무릎을 꿇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앙을 지키는 마지막 남은 자’, ‘거룩한 씨’,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수의 남은 자를 환난의 때에 보호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지금 아합 왕 시대처럼 환난의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바알신앙에 굴복하여 살아가던지 아니면 마지막 때 거룩한 씨, 남은자로 맞서 싸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던지 우리는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새 믿음교우들은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씨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이 시대에 남은 자로 살아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920일 새 믿음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