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밧과부와 엘리야 왕상17:17-24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사르밧 과부와 엘리야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합 왕 시대에 이세벨 왕비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한 땅에 바알과 아세라 신을 들여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그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되자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으라 하였고 그곳에 얼마간 있었으나 가뭄이 계속되자 하나님께서는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 과부에 찾아가서 머물러 있으라 하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사르밧 과부가 나와서 나뭇가지를 주우면서 마지막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자신의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하였을 때 엘리야는 그 떡이 너와 네 아들의 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선지자에게 주고 그 다음에 너 입에 넣으라, 그리하면 지면에 비가 내리는 그 날 까지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그녀가 믿음으로 주의 종 엘리야에게 먼저 드림으로 그 가정에 통에 가루가 마르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기적이 일어난 이후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일이 있은 후에 사탄이 틈을 타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머무는 동안 사탄은 사르밧 과부에게 시험거리를 준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엘리야의 하나님은 인간의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만을 해결하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죽는 사건, 그리고 살아나는 사건을 통해서 그녀는 엘리야의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아 알게 된 사건입니다.
본문17절에 “이일 후에”라고 시작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사르밧 과부의집에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때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사르밧 과부의 가정에 일어난 것입니다. 평온한 가정에 큰 어둠의 먹구름이 드리워지더니 급기야는 시름시름 앓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건강한 아들이 상태가 악화되어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는 엄청난 충격입니다. 아들을 의지하고 살았던 사르밧 과부에게는 감당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그 과부에게 있어서는 기둥이요. 소망인데 그 아들이 죽었으니 얼마나 절망하고 슬픔이 하늘에 닿아서 통곡하고 울어도 몇날 며칠을 주저 않고 울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갑자기 화살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돌리면서 주의 종과 하나님을 원망하기를 시작하는 겁니다.18절에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부르면서 당신은 왜 남의 집에 와서 평안한 가정에 풍파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사르밧 과부는 자신의 집에 머무는 엘리야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 먼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기 보다는 그 원인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희생양을 찾아 원망을 돌리기 쉽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이런 충격을 받을 때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분노가 폭발합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 상황을 인정하고 그러다가 수용하고 인정하는 단계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르밧 여인도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그렇죠. 모두가 힘들어 하는 극심한 가뭄의 때에 자신의 가족의 짐도 힘들어서 먹고 살기 힘든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언쳐 살면서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았는데 자신의 아들이 죽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으니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원망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자신이 머무는 동안 그 가정에 좋은 일이 일어나고 축복의 사건만 일어나야 하는데 이런 충격적인 일이 벌어 졌으니 참으로 입장이 난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르밧과부가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18절 하반절에 “내 죄를 생각나게 하려고” 그러니까 이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낸 이유 중 하나는 이 사르밧 여인에게 남이 알지 못하는 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이 사르밧 과부의 은밀한 죄를 생각나게 하시어 회개하고 천국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크고 당면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영혼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은 목적은 내 삶이 축복받고 잘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내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육신은 이 세상에 있을 때 까지만 필요한 것입니다. 육신이 전부가 아닙니다. 육신을 감싸고 있는 내 영혼이 진짜 나 자신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면 이 육신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을 변화되어 내 영혼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육을 멸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과 함께 육을 멸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시험을 주신 것은 바로 사르밧 과부의 영혼이 준비되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은 이 충격을 통해서 자신의 죄가 생각나고 회개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목회를 30여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다는 것입니다. 저가 전에 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분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50대에 암이 걸려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부인은 신실한 권사님이셨습니다. 제가 병원에 거의 한 달 동안 심방 가서 위로해 드리고 기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아들 청년하나가 아버지 암 투병자리를 뜨지 않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해드리고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하였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한 번은 갔더니 자신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서 만든 참고서라고 하면서 저한테 주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잘 만든 학습교재였습니다. 교육자로서 책임감 강하시고 최선을 다하셔서 사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교장이시니까 굉장히 완고하십니다. 부인이 아들이 간호하고 기도해도 꿈적도 안했는데 어느 날 제가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이 분의 양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룩 흐르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돌아가셨는데 그게 거의 한 달 정도 이상 였던 것 같습니다. 완악하던 그의 마음이 열리니 천국문도 열리고 그는 회개하고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죄가 하나도 없어야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인을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게 죄요, 생각하는 게 죄요, 말하는 것이 죄인데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가 있어요. 이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만큼 천국에 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첫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리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이나 시험이 닥칠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아버지께 혹 회개해야 할 일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저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족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오늘날 국가가 혼란스럽고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유행하는 이즈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아버지께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요즈음 앉으나 서나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라가 매우 엄중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 세운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대한민국 애국가를 없애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애국가 가사에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가사가 들어 있습니다. 교회를 싫어하고 대한민국 보다는 북한을 좋아하는 자들은 이 애국가를 없애려는 작업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나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의 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였지만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다고 풍랑을 만났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사흘 길을 걸어 하루 종일 다니면서 사십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진다고 선포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베옷을 입고 짐승에 이르기 까지 금식하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할 것 없이 베옷을 입히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므로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12만의 사람들과 가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대한민국이 다시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일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회개하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에게 성령의 감동이 왔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말합니다. 나에게 네 아들을 달라, 하여 그 죽은 아들을 안고 자신이 거하는 다락방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아버지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내가 거주하는 이 가정에 이런 저주를 내리시어 이 아들이 죽게 하여 나로 곤란하게 하시나이까, 하면서 그 죽은 아이의 몸에 세 번 펴서 엎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아버지 이 죽은 아이의 혼이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고 부르짖으니 그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을 통해서 사르밧 과부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일어난 통에 가루가 마르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한 사건을 통해서는 이 여인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도 다른 신과 똑같은 신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알처럼 엘리야의 하나님도 인간의 일용할 양식을 해결할 수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내 필요를 채워주는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도 주지 않고 환난도 주지 않고 우리의 필요한 먹거리, 직장이나 인간의 삶에 필요를 채워주는 신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정도 하나님을 믿는 얕은 신앙으로는 그의 영혼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르밧 과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에 큰 환난을 주어 그의 믿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필요가 있기에 그 가정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실 필요가 있었기에 이 가정에 고통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육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인 문제, 즉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종 엘리야를 그 가정에 보내 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그 가정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구원받고 그 아들도 구원받는 은혜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사르밧 과부는 그 이전까지는 하나님을 단순히 삶에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만 알았지만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이 여인은 엘리야의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24절에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신앙이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떡과 기름만을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여인은 아들이 죽을 때는 엄청난 고통과 슬픔 속에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고난이 그에게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엡3:20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시 잠깐 시련을 주시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가운데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여러분에게 엄청난 축복이 예비 되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는 과연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고 살고 있습니까 일용할 양식만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으로만 알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시고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아 갈 수 있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8월23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은 자 (remnant):(왕상19:1-18) (0) | 2020.09.18 |
---|---|
좁은 문, 좁은 길 마7:13-14 (0) | 2020.09.05 |
에베소교회(계2:1-7) (1) | 2020.05.23 |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 (마13,44-46) (0) | 2020.05.17 |
에베소서 6장 1-3 네 부모를 공경하라 (0) | 2020.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