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산 요셉 (창39:1-10)
요셉은 꿈꾸는 자 였으나 그 꿈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그냥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빠뜨림을 당하는 절망의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절망 속에서 건져 주시고 그 꿈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그의 생애를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요셉의 꿈을 짓밟으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구덩이에서 건져 내시어 미디안의 상인에게 은20에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 당시 노예는 부자 집이나 힘 있는 권력자의 집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는데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바로왕의 경호실장 보디발의 집안에 들어가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신임을 얻어 가정총무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부자로 알려진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나는 사람들을 쓸 때 세 가지를 본다. 첫째 성실성이다. 둘째는 지능, 분별력, 지혜이며, 셋째는 열정이다. 하지만 성실성이 없으면 나머지 두 가지가 당신을 망칠 것이다.” 성실성이 없으면 내게 있는 지능과 열심도 다 무의미 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그 중요한 덕목인 성실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이 요셉의 형통함을 여는 키(key)였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났습니다.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보디발은 알게 되었을 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하루에 세 번 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활에서 요셉은 보디발에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생활을 통해서 분명히 전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결코 감추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에게 무엇을 맡기든지 성실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하는 일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셉의 성품은 ‘성실’이었습니다. 요셉이 성실하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 야곱이 세겜의 형들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을 마다하지 않고 무려 도단까지 130키로를 걸어서 아버지 야곱의 말씀에 순종한 모습에서 요셉의 성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주의 깊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성실함을 통해서 보디발은 요셉이 믿은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그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성실하고 형통하는 것을 보고 요셉의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3절에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현대어 성경에는 “형통”을 “행운”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요셉이 하는 일마다 늘 행운이 따랐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보디발의 집에서 농사를 짓는 일을 맡기든, 가축을 돌보는 일을 맡기든, 장사를 하는 것이든, 가정의 대소사를 맡기든 무슨 일을 맡기든지 다 요셉이 손대는 모든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디발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5절에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언제부터 그랬냐 하면 보디발이 요셉에게 모든 소유물과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한 때 부터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가정총무라고 하는 것은 집안일 만 아니라 보디발의 재산까지도 관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셉이 재산관리 까지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읽기 위해서 글을 배우고 성경에 나와 있는 산수, 길이, 무게 이런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정에 총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회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은 성경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 일찍부터 글과 수와 식을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역사가 서양에서 이슬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면 항상 나라마다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부에 유대인들이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글도 모르고 계산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배웠기에 각국의 재무담당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요셉이 가정총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요셉은 후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7년 풍년의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를 지어서 7년 기근의 때에 장사하여 국고를 튼튼히 하지 않습니까?
보디발이 요셉에게 자기의 재산을 맡겼다고 하는 것은 보디발이 그만큼 요셉의 성실함과 진실함을 보았고 그가 믿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였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으로 인해서 보디발의 재산이 늘어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5절에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요셉을 통하여 이루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같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30장27절에 보면 야곱의 외삼촌 라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라반도 야곱이 자기 집에 온 이후로 자기 재산이 불어 난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이 잘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보면 요셉은 보디발의 완전한 신임을 얻어 보디발은 모든 재산을 다 요셉에게 맡겨서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요셉은 노예였지만 노예가 아니라 주인의 신임을 바탕으로 외국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출세한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번창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요셉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도 많아져서 소위 성공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요셉에게 유혹이 찾아 왔습니다.
그 유혹은 보디발이 출장하고 집에 없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을 유혹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평소에 청년 요셉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을 볼 때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답지요. 키도 크지요. 똑똑 하지요. 성실하지요. 집안도 잘 관리해서 재산도 늘어 가지요.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노예출신이라는 것 빼고요. 보디발이 집에 없을 때 마다 눈짓으로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래도 요셉은 자신의 일만 보고 바로 자기의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출근해서 사모님하고 만나는데 그 때마다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노골적으로 말을 합니다. 이 때 요셉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9절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우리는 여기서 요셉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신앙입니다. 요셉은 사람이 보든 안보든 사람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즉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그는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 하실까,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말이나 행동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요”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자신의 명예보다 하나님의 명예를 더 귀하게 여기고 살아 온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죄를 지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더럽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고 땅에 떨어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나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보다 하나님의 명예나 이익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 이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인 것입니다.따라서 성도는 자신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 학생은 학교, 친구들과의 모임, 아파트 등 그 어느 곳을 막론하고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보디발이 성실하고 진실하고 정직한 요셉의 모습을 통해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삶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진실 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할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가 진실 되고 정직하게 살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 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을 멸시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도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사탄의 시험이었습니다. 요셉을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떨어뜨리려는 것입니다. 렘5장25절에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죄는 요셉의 축복을 가로 막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한 번의 유혹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요셉을 유혹을 하는 것을 봅니다. 죄는 끈질기게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10절에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 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사탄의 유혹이 언제 왔습니까? 요셉이 가정총무로 인정받고 잘 나갈 때 출세할 때 형통할 때 찾아 온 것입니다. 사람은 잘 나갈 때 조심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넘어집니다. 다윗이 언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언제 범했습니까? 다윗이 승승장구하고 백전백승하면서 다른 군사들은 전장에 나가서 싸우는데 자신은 나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집 옥상에 올라가서 한가하게 거닐다가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은 성도가 주로 형통할 때 찾아와 성도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형통하게 될 때 자고해서는 안되며 더욱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 사단의 유혹이 찾아와 신앙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앗아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도는 그 모든 유혹을 이기고 더 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확고한 믿음과 깨끗한 양심을 항상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요셉의 유혹이 한 번으로 끝 난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유혹하였습니다. 죄는 참으로 끈질깁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제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죄의 장소를 떠났습니다. 아마도 일만 보고 바로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오늘 날 성도들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죄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유혹이 있는 사람과의 교제를 피하고 죄의 유혹이 있는 장소에는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사회 곳곳에 죄의 유혹이 가득 찬 시대에 성도들이 자신을 죄로 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접하거나 죄의 장소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날은 아무도 그 집에 없었고 보디발의 아내만 있었습니다. 어쩌면 요셉을 유혹하기 위해서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내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더욱 노골적으로 요셉의 옷을 잡고 침상으로 끌며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20세 청년으로 정욕이 불같이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주인이 없는 사이에 보디발의 아내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요즘 타락한 시대의 청년들은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청년입니다. 절대로 이런 죄를 하나님 앞에서 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잡아당기는 옷을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그 자리를 빠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이 보디발의 아내가 사람들에게 역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청년이 자신을 유혹하여 자신을 범하려 하였다고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 순간에 요셉은 죄를 뒤집어씌우고 위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남편에게 당신이 데려온 저 히브리 청년 요셉이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를 겁탈 하려고 하였다고 하면서 요셉을 모함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요셉의 일생을 보면 요셉은 참으로 억울하고 절망의 순간입니다. 형들의 미움으로 멀고 먼 타향에서 이제 출세의 길을 달려가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런 억울하고 분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요셉의 일생이 여기서 끝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할 수밖에 없고 그 하나님을 신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셉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다시 한번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반전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셉의 반전은 누가 일으키는 겁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십니다. 요셉은 감옥에 억울하게 갇혔지만 그것으로 그의 인생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였기에 감옥 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옥중 죄수를 다 맡아서 관리하고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아 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요셉처럼 형통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실시간 다가오는 죄와 싸우고 이기십시오. 죄를 멀리하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20년 3월1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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