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란 무엇인가? 롬12:1-2
오늘 본문 로마서12:1-2절에 말씀은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1-11장은 기독교교리인 ‘이신 칭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고 12-16장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받은 기독교신자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로 ‘예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배’가 생활의 가장 첫머리에 나오는 이유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삶은 참된 변화와 기적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파죽지세로 공격해오는 나치독일군대로 영락없이 점령당할 것을 안 영국 국민들은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성공회 대주교에게 윈스턴 처칠이 대 국민연설을 부탁했을 때 그는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대영제국 국민여러분!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입니다. 전쟁은 큰일입니다. 하지만 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 국민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믿는 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함으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 할 것입니다.” 그 주일부터 영국의 모든 교회는 종을 울렸고 교회마다 예배하는 국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까? 독일이 유럽을 점령하고 영국까지 위협했지만 하나님께서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영국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예배가 무엇이기에 그렇습니까? ‘예배’란 영어로 ‘worship'은 'worth'와 ‘ship'의 합성어로 그 의미는 ’가치 있는 것‘으로 '가치를 인정하다’ 또는 ‘가치를 돌려드리다’라는 뜻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돌려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 존경을 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의미로 ‘예배’는 ‘service'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섬긴다‘ 혹은 ’봉사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의 의미를 종합해보면 ‘예배’란 인간의 행위 가운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며, 봉사며,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예배를 하나의 종교적인 형식이나 의례로 여기는 것입니다. 예배에 담겨진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예배를 어제나 오늘이나 무의식적으로 드리기에 삶속에 변화나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12장 1-2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강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이 권면하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여기서 우리는 구약의 제사제도를 연상케 하게 됩니다. 죄 인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길은 소나 양, 그리고 염소를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그것들의 목을 치고 내장을 꺼내어서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동물을 죽여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방법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속죄양이 되어 영원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구약의 제사제도는 폐기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히12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4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따라서 더 이상 구약의 제사제도에 따라 짐승을 잡아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죽은 제사’라고 합니다. 왜냐 구요? 동물을 죽여서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고 산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산제사’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너희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몸’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정신, 마음까지 말하는 것으로 ‘전인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몸만 와 있어서는 ‘산제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일 이니까 어쩔 수 없어서, 마지못해서, 할 수 없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나와서 예배드린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인격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4장20-24절에서 수가 성 여인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수가 성 여인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이나, 북쪽 사마리아에서만 거룩하게 구별하였지만, 하나님은 장소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순절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엘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서에 말씀하신 하신 것인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뤄졌습니다. 사도행전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가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예루살렘 성전이나 사마리아 산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의 전’은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이제는 각 사람 속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분쟁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6장1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성령은 이제 각 사람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니 성전이 내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단순히 주일날 만 거룩하고 나머지 세상에서 살아가는 6일은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 6일 동안도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시므로 성령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매일 매일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께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시대에 우상숭배자들은 신전이나 우상 앞에서 외에 다른 어떤 곳에서 자신의 신을 예배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예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살아계시고 자신의 삶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63:6-8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자리에 누울 때 주를 기억하며 밤새도록 주를 생각합니다. 주께서 항상 나의 도움이 되셨으므로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기뻐 노래합니다. 내가 주를 가까이 따르므로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십니다. 다윗은 자기 집에서, 전쟁터에서, 보좌에서, 성막에서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시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시139:7-10에서 ”내가 주를 떠나 어디로 갈 수 있으며 주 앞에서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주는 거기 계시며 내가 하계에 가서 누워도 주는 거기 계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타고 바다 저편 가장 먼 곳에 가서 살지라도 주는 거기서도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오른 손으로 나를 붙드실 것입니다. 바로 매일 매일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적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영적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과거 죄악 된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했던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마귀가 좋아하던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즉, 죄악된 본성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수 있습니다. 과거 죄에 종노릇하던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악합니다. 우리는 마귀에서 나서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에 마귀가 좋아하는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 산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완악한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성령이 우리마음에 오시면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 진다고 했습니다. 겔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그렇습니다. 성령만이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오늘의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정신이 무엇입니까? 포스트모던 시대입니다. 이 사상은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시킵니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란이 오고 무질서 해 집니다. 폭력이 난무합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합니다. 선한 것을 악한 것이라 하고 악한 것을 선이라고 하는 가치관이 전도된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의 조류나 흐름에 편승하지 말고 세상을 따라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따라가던 삶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세상의 유행이나 세상 사람들이 쫓는 쾌락과 방탕에서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나 자신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을 위해서 살아갈 때만이 참된 예배,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마26장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진정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성령에 거주하신다면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찾고 그것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10:3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배는 재앙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중국의 우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 전 세계가 비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런 전염병이 발병하였습니까? 바로 중국 사람들의 기이한 식습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박쥐를 식용으로 먹는다고 하는데 바로 이 박쥐에서 그리고 천갑산이라고 하는 도마뱀 종류로 인해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입니다. 레위기11장에 보면 정한 것과 부정한 동물들이 나오는데 부정한 것중에 19절에 “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다새와 박쥐니라”29절에 “29절에 ”땅에 길 짐승중에 네게 부정한 것은 이러하니 곧 두더지와 쥐와 큰 도마뱀 종류와“ 코로 바이러스의 제2숙주로 의심되는 천갑산이 바로 도마뱀 종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한 것은 먹지만 부정한 것은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인간에게 해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전염병이 유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우한시에 이러한 전염병이 발생한 것은 시진핑이 집권하고 난 이후에 교회를 핍박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우한시가 자치적으로 가장 먼저 조례를 통과시키고 십자가를 불태우고, 성경책 불태우고 교회에 시진핑 사진 안 걸어 놓는다고 해서 강제 철거한 것만 48개라고 합니다. 어느 동영상 보니 철거하는 경찰과 성도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하다가 결국 교회가 철거 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고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국가나 개인은 다 멸망을 당합니다. 삼상2:10절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깨어 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삼하24장에 보면 다윗왕이 노년에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싶어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군대장관 요압을 시켜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인국조사를 시키는데 이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3일동안 전염병이 펴져서 무려 7만명이 죽었습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으로 멸망시키려 할 때에 하나님이 그만 하라 하십니다.이 사건을 보고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기를 내가 범죄하고 악을 행한 것이니 나에게 벌을 내리시지 백성에게는 내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갓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8절에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아라우나가 다 제물과 땔감을 다 준비하였으니 그냥 제사 지내면 된다고 하였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은 오십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비로서 이스라엘의 재앙을 그쳤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때 재앙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산제사 드리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때 마지막 때 질병과 재앙과 환난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알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0년 2월16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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