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로 올라가자. (창35:1-7)
야곱이 형 에서가 400명의 자객을 거느리고 자신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20년 동안 모아 온 재산의 상당 부분을 형에서 앞으로 떼어 놓고 자기의 처자와 가축을 먼저 보내고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고 하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였다 하여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였다. 야곱은 하나님과 형에서의 일로 하나님과 얍복강 가에서 대면하였고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는 축복을 얻었다.
그 이후 야곱은 형에서를 만나 포옹을 하고 서로 울음을 터뜨리고 지난 세월의 회포를 푸는 형제애를 나누었다. 야곱은 형에서를 만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창33:10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절에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이렇게 야곱은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고 난 이후에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나루에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난 이후에 그는 그가 추위와 더위와 싸우면서 밤잠을 설치면서 모은 재산을 그 형에서의 마음을 녹이는데 물질을 사용하여 형제의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후 야곱은 에서와 다투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에서는 세일로 돌아갔고 야곱은 숙곳과 세겜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세겜 성에 장막을 치고 그 땅의 주인인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땅을 벡 크시타에 사고 거기에서 제단을 쌓고 엘엘로해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 세겜 성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야곱의 가족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레아가 낳은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끌어들려 강간을 당하는 엄청난 사건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야곱은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말하지 않했습니다. 그런데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아들 세겜이 당신의 딸을 그리워 하니 우리가 서로 사돈을 맺읍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여기에 있는 땅에서 거주할 수 있고 그리고 얼마든지 여기에 있는 땅을 사서 너희들이 살 수 있으리라. 단 이 소녀, 즉 디나만 우리에게 주어 우리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면 내가 아무리 많은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다 너희에게 주리라. 하였습니다.
이 때 야곱의 아들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속였습니다. 단, 우리하고 사돈을 맺으려면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아야 한 민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몰의 아들 세겜도 좋게 여겨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3일후 가장 아파 할 그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차고 가서 성읍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이고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 양과 소와 가축을 빼앗고 재산과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의 물건들을 노략질 하여 빼앗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식을 들은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행한 이 악한 일로 인해 우리가 이 땅에서 더 이상 살 수도 없고 우리는 여기서 속히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치 않으면 우리 가족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 야곱은 이 일로 인하여 그 땅에서 살 수 없음을 알고 두려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벧엘에서 나타났던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르기를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시면서 그곳에서 너는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벧엘로 올라가라’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20 여년 전에 형 에서의 보복의 칼을 피해서 창세기28장에서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돌 베게를 베고 잠을 청하였는데 그 곳에서 하늘에 꼭대기 까지 사닥다리가 펼쳐지고 그 곳 정상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13절에 “떠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면서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시고 네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겠다고 하시고 그리고 땅에 편만할지며 니 자손으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곳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르고 그곳에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이 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나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나이다. 하고 하나님과 약속한 바로 그 장소인 ‘벧엘로 올라가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였습니까? 그곳은 야곱이 하나님과 제일 처음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약속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아, 너가 나하고 처음 약속한 것을 잊었니, 하면서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약속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살아가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 즉 십일조 생활을 하겠습니다.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두 가지를 하나님께 지키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하고 화해하고 하나님과 약속한 장소인 벧엘로 올라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했는데 그렇치를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야곱은 이방인의 땅인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땅을 사서 거기서 10년 동안을 지체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지역은 그 당시 가장 번화하고 살기 좋은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그곳에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이방문화와 세속화된 사회를 떠나지 못하고 그곳의 문화에 젖어 오랜 세월 동안 세겜에 머물로 있다가 자신의 딸 디나가 강간당하였습니다. 세겜의 문화는 우상문화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문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문화가 그 만큼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영화, 연극, 소설, 시, 음악, 미술, 드라마 등 이러한 문화가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주는 것입니다. 문화는 보고 듣고 숨 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속화된 오늘의 문화는 우리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건전하고 상식적이고 성경적인 문화가 아닌 세속화되고 타락한 문화는 우리의 영혼을 좀 먹는 기생충과 같으며 순식간에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놓은 우한폐렴과 같은 전염병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전염성이 강합니다.
오늘의 세상문화가 그 끝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동성애’ 하나님과 부모가 주신 천부적인 생물학적인 ‘성’을 거부하고 성전환 수술을 하여 얼마 전에는 군대의 하사관이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여 계속해서 군대에서 복무하려다가 군대에서 거절당하였습니다. 또한 숙명여대 합격자 가운데 여성으로 성전환 사람이 합격하였다고 하여 학교가 발칵 뒤집혀 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본인이 취소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통적가치관이 도전받고 가치관이 뒤바뀌는, 전통적인 윤리나 도덕을 무너뜨리는 일, ‘동성애 축제’ 오늘의 문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이 타락한 세겜의 문화입니다. 이러한 문화에 노출되다 보면 무감각해지고 죄의식이 없어지게 되고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오게 되고 어느 것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어떤 것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어떤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나 건전한 상식이 무너지게 되는 도덕적 붕괴를 가져오는 ‘아노미 사회’는 노아시대처럼 폭력적인 사회가 될 것입니다. 즉 이러한 사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입니다.
세겜의 문화가 이런 문화였다고 생각합니다. 34장1절이 그러한 문화가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아니 처녀가 남자를 보러 나가지 않고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축제에 나갔다가 강간당했다고 하는 것은 그 시대의 문화가 음란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문화였다고 하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음란한 문화가 일상화된 사회문화에서 거의10년을 살았으니 도덕적으로 불감증에 걸려 있고 이방문화에 동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는 ‘피어싱’이라든지 ‘타투’ 문신을 자신의 몸에 새기는 이런 사람들을 연예인, 운동선수 들 가운데서 볼 수 있고 이러한 문화가 일반인들에게도 확산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문화는 공기나 물을 마시는 것과 같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의 이러한 이방문화, 우상문화에 물들여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그곳에 머물게 할 수 없어서 이러한 디나의 강간사건과 살육사건을 통해서 야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도록 그곳에서 탈출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탈출시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로 멸망할 때에도 롯과 그의 가족들을 유황으로 멸망하는 장소에서 피신시키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계시록18장에 보면 바벨론 나라가 멸망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이란 세상나라를 가리키는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힘찬 음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2-3절에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왕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하더라”
마지막 때의 이 세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5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러므로 이러한 세속문화, 방탕한 문화에 있는 야곱과 그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디나의 강건사건과 살육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거기에 머룰러 있지 말고 벧엘로 올라가서 너가 제일 처음 나하고 약속한 것을 지켜라. 너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배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파죽지세로 공격해오는 나치독일군대로 영락없이 점령당할 것을 안 영국 국민들은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성공회 대주교에게 윈스턴 처칠이 대 국민연설을 부탁했을 때 그는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대영제국 국민여러분!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입니다. 전쟁은 큰일입니다. 하지만 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 국민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믿는 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함으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 할 것입니다.” 그 주일부터 영국의 모든 교회는 종을 울렸고 교회마다 예배하는 국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까? 독일이 유럽을 점령하고 영국까지 위협했지만 하나님께서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영국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예배가 무엇이기에 그렇습니까? ‘예배’란 영어로 ‘worship'은 'worth'와 ‘ship'의 합성어로 그 의미는 ’가치 있는 것‘으로 '가치를 인정하다’ 또는 ‘가치를 돌려드리다’라는 뜻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돌려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 존경을 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의미로 ‘예배’는 ‘service'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섬긴다‘ 혹은 ’봉사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의 의미를 종합해보면 ‘예배’란 인간의 행위 가운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며, 봉사며,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벧엘에 올라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에 올라가 예배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이방신상을 버려라. 우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상입니다. 그걸 벌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한 주간 사는 동안 경건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셋째, 의복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세상문화의 옷이 아닌 그리스도의 문화의 옷을 입고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자녀들이 4절에 보니 “자기 손에 있는 이방신상들과 자기 귀에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어 세겜 상수리 나무아래 묻고“떠났는데 아무도 그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디나 사건과 시므온과 레위의 대량살상을 통해서 가나안 족속들에게 추격당하여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할 것을 염려 하였지만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이방신상을 버리고 이방문화의 옷을 벗고 하나님과 처음 약속한 ‘벧엘’에 올라가서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자로 살아가겠다고 약속하고, 십의일조를 바치겠다고 다시 약속하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7절에 ”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곳에서 나타나셨음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으며 영적인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심은 예배자로 부르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언제 어느 곳에든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려움과 우리를 추격하는 자로부터 구원해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2020년 2월9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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