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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출애굽기 3장 1-14

gkffpffndi 2010. 9. 25. 16:55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출애굽기 3장 1-14

 

오늘 본문 말씀은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가시떨기 나무는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마르고 작은 나무입니다. 가시떨기 나무는 모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과거 모세의 삶은 나일강 에서 건짐을 받아 바로의 공주 아들로 들어가게 됩니다. 왕궁에서 생활하던 자신의 유모인 어머니에게서 민족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자신이 히브리 인이란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노예생활 하는 자신의 동족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 40이 되어 자신의 동족끼리 다투는 것을 말리던 모세는 자신이 애굽 사람을 쳐 죽인 사실이 알려지자,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게 됩니다.

거기서 미디안 사람인 장인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만나 양치기로 살아온 지 40년, 그의 나이 80살에 우연히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어 있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 하게 됩니다. 가까이 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신,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분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1.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애굽의 문화와 학술, 기술과 지식을 공부하고 왕자 수업을 쌓아가던 모세는 동족의 고발로 미디안 광야로 피신한 지 40년, 혈기 왕성하고 지적인 모세의 모습은 어느 한 곳에서 찾아 볼 수 없고 그저 무기력 하고 볼품없는 한 낮 양치는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애굽의 바로의 칼을 피해 꿈도 비젼도 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하나님의 산이라 불리는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1시간 2시간 타면, 없어져야 하는 데 없어지지 않고 계속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떨기나무 가까이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재차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실 호렙산 이란 뜻은 황량한, 메마른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성지 순례시 호렙산에 올랐는데 나무 한포기 없는 붉은 바위로 덮여진 산입니다. 오르는 도중에 한 그루 나무가 있었는데 신기했습니다. 우리나라 산처럼 숲이 우거진 산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양을 치고 먹이고 보살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불타고 있는 가시떨기 나무도 보았을 것이고, 늘 지나다니던 길이고 휴식을 취했던 장소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장소를 하나님은 거룩한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곳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분은 한 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6장 1-3절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게 되는 데 스랍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기록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특별한 장소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머물러 계시는 곳,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이 거룩한 장소 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속된 장소 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클래식이 있고 재쯔의 경계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 와서 이러한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도 퓨전 음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종교도 경계를 허물고 혼합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가 같이 합창단을 구성하여, 노래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과 그들이 믿는 대상과는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이사야 42장8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건물이지만, 교회건물은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건물 안에서 사용하는 물건, 즉 예배를 위해 사용되어지는 물건은 성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어 질 때는 거룩한 물건이 됩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뭐라 합니까? 성직자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된 사람을 무엇이라 합니까? 성도라고 합니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렇듯 하나님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합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민족이 유태인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야훼, 혹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약6800번 나오는데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건너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민족을 특별히 선택했다는 선민의식이 있습니다.

지난 주 ebs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힘, 미국유태인의 교육을 방송했습니다. 미국에 유태인이 640만명 정도 사는 데 그 중에서도 세계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 200만명이 산다고 합니다. 미국이민 역사 100년 만에 가난한 노동자로 와서 미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록펠러 천재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로스차일드 조지소로스 영화감독 우뒤엘 낙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세계인구의 0.2%에 불과 하지만, 역대 노벨상의 22%, 아이비리그의 23% 미국 억만장자의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통파 유대인 복장은 독특 합니다.미국 뉴욕한복판에서 검은양복에 검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당 (예배당)은 1000미터 안에 세웁니다. 유대인은 개혁파, 보수파, 정통파로 나누는 데 정통파 유대인들은 잠을 잘 때조차 키파 라고 부리는 모자를 쓰고 잔다고 합니다. 키파 라고 하는 모자를 쓰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라고 하는 표시라고 합니다.

그들의 그들은 5-6세가 되면 세데르 라고 하는 기도문을 갖게 됩니다. 아침과 저녁에 반드시 기도를 합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전에 물을 떠와서 손을 씻고 자는 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 일어나자 마자 깨끗한 손으로 기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외출하고 돌아올 때 문설주에 붙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드시 텃치하고, 입맞추하는 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쩨데카 라고 하는 자선 저금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거나 자선단체에 기부 합니다. 그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다. 라고 생각하며, 선행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자녀교육에 있어서 필수요소라고 여깁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명예롭게 하고, 친절을 행하라. 예배당에 가라. 신부에게 예물을 주고, 죽은 자를 인도하라. 남편과 아내는 평화를 유지하라. 그리고 매일 하루에 4번씩 기도를 하고, 자신의 수입의 3/1은 은행에 저축하고 3/1은 자선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도3700 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유지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지켜 행할 때 가능 한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나 자신의 정체성, 즉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다니는 직장 일터 가정을 거룩한 곳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선 곳을 거룩한 장소로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2.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십니다. 똑같은 건물이라도 교회가 성전으로 구별 하였듯이 지금 서있는 장소는 모세가 늘 지나다니던 장소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하나님이 임재한 장소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분이 임재 하신 곳입니다. 따라서 인간 모세는 더러운 신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남의 집에 들어 갈 때는 조심스런 것이 있습니다. 발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땀 냄새, 발 냄새가 나지 않도록 발을 깨끗이 씻고, 새 양말을 갈아 신습니다. 신었던 낡은 양말을 갈아 신는 것이 예의입니다.

마호메트를 신봉하는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사원인 모스크에 들어갈 때 어떻게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지하에는 목욕탕이 있어서 거기서 몸을 씻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원에 들어 갈 때는 반드시 신을 벗습니다. 우리도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마루바닥이라 반드시 신을 벗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신발은 더러움의 상징입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더러운 마음, 더러운 생각, 더러운 습관, 더러운 가치관, 더러운 말, 더러운 행동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3-4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깨끗한 마음으로,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씀합니다.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 물두멍 이라는 그릇이 있습니다.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위치에 있습니다. 물두멍은 일종의 놋대야 인데 대제사장과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손과 발을 반드시 씻어서 죽음을 면하라고 출애굽기 30장 19-2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어떤 모양으로 나가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오면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 하는 일입니다.

신을 벗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정결하게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고대 사회에서 신을 벗는 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주권을 포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는 신을 신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발을 신으면 자기가 가고 싶은데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데로 살 수 있습니다. 즉 모세가 지금까지는 자신의 의지와 주권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터는 그렇게 사는 것을 포기 할 것을 의미 합니다. 이제는 자신의 의지와 지식과 자신의 본능으로 살아왔던 삶을 포기하고 이제는 너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 갈 것을 요구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 살아왔지만 혈기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자신의 꿈과 비젼은 다 깨지고 한낱 양을 지키는 힘없는 노인으로 전락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너의 주권을 나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 ? 그런 의미로 신발을 벗으라고 요구 하십니다. 나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섬길 수 있느냐? 그러면 너의 이 가난하고 비참한 누더기 인생을 역전 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를 위대하게 하고, 크게 하여 하나님이 지도자로 사용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전에 너 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네 육체와 마음의 온갖 더러운 신발, 고집스러운 자기중심의 신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신발, 하나님 말씀에 굴복하기 싫어하는 불순종의 신발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여전히 교회는 나오지만 내 인생의 주인이 나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주님임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신발을 과감히 벗어 드려야 합니다.

 

3.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은 한번 도 자신을 계시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에 개입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6-8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고,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동으로 보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8절에 내가 내려가서, 건져내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모세가 묻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모세는 40년 전의 모세가 아닙니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낱 힘없는 노인에 불과 합니다. 자신도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압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사하고 자신의 몸 하나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란 내가 돈이 있든, 권력이 있든, 지식이 있든 힘이 있어야 남을 이끌고 도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힘이 없는 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노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이 힘을 실어 줍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또 묻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하면, 그들이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라 말하리이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란 자존자란 말입니다.

어떤 원인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말하면 제 1원인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모든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나 철학의 산물이 아니라, 우주를 만드시고, 역사를 주장하시는 살아계신 신이십니다.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이 아닙니다.

일본에는 800만의 신이 존재 한다고 합니다. 모세 당시 애굽 에도 신이라고 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신으로 추앙해 온 태양신 라, 나일의 수호신인 크눔, 자연신들, 황소신인 므네비스와 같은 수많은 동물 신들, 오시리스와 같은 어둠의 신들, 심지어 애굽왕인 바로까지 신으로 섬겨왔습니다. 이 모든 신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 마디로 만들어진 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들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차별화됩니다.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창조되기도 전, 온 세상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 그분은 먼저 계셨습니다. 그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추앙된 신이 아닙니다. 스스로 계시고 다른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입니다.

이사야43장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우상은 무익한 것이니라. 이사야 44장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 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이사야45장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여러분을 통해 거룩한 땅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마음이 청결하고, 우리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증거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0년 9월26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