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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장 11-25 아버지의 마음

gkffpffndi 2010. 9. 11. 16:42

누가복음15장 11-25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실 때 그 당시 종교 지도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다고 수군거립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3가지 비유로 주님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말씀 하십니다.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마지막에 잃은 아들을 되찾는 비유인데, 탕자의 비유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집 나간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 지 비유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우리 모두가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기다리시는 아버지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나도 이만큼 장성 했으니 아버지를 떠나 독립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재산의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보기에는 아직 아버지 곁에서 배울 것이 많은 데 아들이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이 나눠 주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재산 분배는 아버지가 사망 시에는 장남에게 3/2 그리고 남은 자녀들에게 3/1이 상속 되게 되었습니다.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생존 했음에도 재산을 요구 한 행위는 아버지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잘되기만을 바랬습니다. 며칠 후 둘째 아들은 재산을 정리해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아들이 떠나고 난 이후 아버지는 한 시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땅 설고 낯 설은 이국땅에서 고생 할 것 생각하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아들 생각에 먹지 못합니다. 밥을 먹어도 모래알 씹는 듯 합니다. 오늘 밤에는 어느 집에서 편안히 잠을 자는 지 걱정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100만 명이 넘는 다고 합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온 사연을 보면,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일이나 중동지역에 나가 가족과 국가를 위해 달라를 벌여 들였던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고학력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희생한 젊은이,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부당한 대우나 예상치 못한 불의의 재난이나 사고로 생을 마칠 때 그 소식을 들은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나라에 시집와서 잘 사는 동남아시아 여성들도 있지만 그렇치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베트남 여성이 정신질환자인 한국남성인 배우자에게 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지 않습니까? 이 일로 인해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합니다. 이렇게 자식을 먼 나라로 보낸 부모의 심정은 동병상린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무사히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바랄 것입니다. 언제가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있었습니다. 대구 성서 초등학고 학생들이 개구리 알을 잡으로 나갔다가 실종된 사건입니다. 전국적으로 방송되어 찾아 나섰지만 결국 죽음으로 발견 됬습니다. 부모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털어 찾아 나선 것을 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본문 말씀은 하나님 품을 떠난 인간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 한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하나님 없이 과학과 이성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는 온통 하나님 없는 문화와 문명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송된 ‘인생은 아름다워’ 는 동성애를 미화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동성애에 대하여 금기 할 뿐 아니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입니다. 또한 sbs가 특집으로 ‘신의 길, 인간의 길’ 방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2009년 지난 1월에 영국과 스페인에서는 무신론주의자들이 시내버스에 이런 광고를 냈다.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아마도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 염려하고 그대의 삶을 즐겨라.") 이 운동은 다른 나라로도 뻗어나갔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렐리아, 카나다, 스위스 우리나라에도 시내버스에 광고를 냈다가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하나님을 부정 하고 싶어 합니다. 최근에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미국 물리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쓴 새 책 <위대한 설계(Grand Design)> 출간에 맞춰서 우주 창조에 대하여, 하나는 우주를 낳은 태초의 빅뱅(Big Bang)이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의문에 대해 '중력의 법칙과 같은 물리학 법칙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7일 미국 abc 뉴스에 직접 나와 밝힌 것으로, "인간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지만, 과학은 신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무신론적 뉘앙스를 짙게 풍긴다. 오늘날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집 나간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듯이 하나님 아버지는 오늘도 인류가, 인생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는 한 곳에 모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 합니다. 그 곳에서 인류는 하나가 되어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하면서 높이 높이 탑을 쌓아 갑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 후로는 그들이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하여 그 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계획을 무산 시키십니다. 왜 그랬을 까요. 그들이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제외시키는 겁니다. 왜요? 자신들의 이름을 빛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뭔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문명과 문화는 하나님을 떠난 탕자의 문화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다 가지고 나갔지만 변함없이 아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다리듯이 오늘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 헛된 것을 섬기는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2. 용서하시는 아버지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날 때의 모습을 상상 해 보셨습니까? 아버지가 아직은 때가 안 되었다고, 아직은 재물을 관리 할 수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허랑 방탕 하였다는 말은 헛되이 낭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돈으로 사업을 한 게 아닙니다. 공장을 차린게 아니었습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도박이나 마약 유흥비로 낭비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맏아들이 돌아왔을 때 둘째 아들이 돌아와 너무 기쁜 나머지 집안에서 풍악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들려 왔을 때 3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렸다고 말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 귀한 재산을 자신의 향락을 위해서 헛되이 탕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의 마음이 좋았을 리 없습니다. 하물며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 했겠습니까? 세상의 인심은 돈 있고 명예 있고 재물 있을 때 뿐 입니다. 탕자도 재물이 있는 동안에는 친구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 떨어지니 친구 떨어지고 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언제 부터인가 하나 둘 씩 떠나기 시작하더니 아무도 없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왔습니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남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들에서 돼지를 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자신의 배를 채우면서 고달픈 삶을 하루하루 연명했습니다. 인생이 최후 밑 마닥에 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노숙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인생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겠지요.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하면서 말입니다. 17절에 보면 이에 ‘스스로 돌이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제 정신이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제 정신으로 산 게 아니었습니다. 뭔가 홀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떠난 인생들은 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작년에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입니다. 하루 평균 46명이 자살 합니다. 며칠 전 직장생활 하던 평범한 가정이 도박 빚 때문에 자기 부인과 아들을 죽이고 자살 했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집도 저당 잡혔는데 친구들이 들이 닥치자 무려 빚이 4억 이라는 사실이 부인에게 알려지자 말다툼 끝에 한 순간에 가정을 파탄 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현대인의 모습의 결국을 보는 듯 합니다. 그래도 이 탕자는 늦게나마 제 정신이 돌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 집의 풍요로움을 생각해 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얼마나 양식이 풍족한 데 내가 여기서 주려 죽는 구나. 하지만 아버지 앞에 무슨 면목으로 가겠습니까? 아버지가 나를 환영하시지 않할 뿐 아니라, 문전박대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과거의 내 잘못을, 내 실수를 용서 하실 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 써 달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달게 받으리라 생각을 하고 드디어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랜 시간 후에 아버지 집에 가까울수록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과연 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대할지, 걱정 이 앞섭니다. 아버지 집이 가까울수록 다리에 힘이 빠지고 어깨는 축 쳐져 있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예전의 둘째 아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수척 해졌습니다. 알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들을 발견 한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멀리서도 아들을 알아봅니다. 아무리 수척해도 누추한 옷을 입고 있어도 한 눈에 아들인 것을 알아 본 것입니다. 그리고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측은히 여깁니다. 내 아들아 잘 왔다. 왜 이제 오니, 진작에 오지 내가 얼마나 널 기다렸는데 흑 흑, 뜻밖의 환대에 아들은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구나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 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비로소 탕자는 자신이 아버지 품을 떠난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전에는 아버지 품을 떠난 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과 고통과 시련이 필요 했습니다. 이것을 고백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것이 죄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죄 중에서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를 떠난 죄가 큰 죄죠. 이 세상에서 부모를 모르는 죄가 불효 아닙니까?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화는 죄의 문화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탕자는 깨닫는데 머물지 않고 결단하고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나아갔습니다. 세상을 가까이 하던 발걸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적인 쾌락과 재미, 즐거움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위버(Richard Weaver)목사가 스코틀랜드에서 청중을 향해 열정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위버 목사를 향해 말합니다. "저는 어머니와 살다가 9년 전에 가출했습니다. 설교를 듣고 새 생명을 찾았습니다. 이제 고향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용서를 빌겠습니다." 여인은 9년 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밤은 깊었습니다. 대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습니다. 대문을 밀자 문이 열렸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자 어머니의 방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어머니는 대문과 방문을 모두 열어놓은 채 침대 위에 힘없이 누워 계셨습니다.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딸을 끌어안으며 흐느꼈습니다. "네가 집을 나간 그 날부터 9년 동안 단 한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밤에 돌아와도 쉽게 집에 들어오도록 불을 밝혀 놓았단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회복하여 주십니다. 예수의 보혈로 죄를 씻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만들어 주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탕자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주님 앞에 돌아와 무릎꿇고 우리의 잘못된 삶을 정리하고 청산 할 때 주님은 우리를 품어주시고 용서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축복 하십니다.

 

3.사랑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들이 이국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 지 짐작이 됩니다.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삶을 살았으니 그 몰골이 어떠 했겠습니까? 술 취해서 낯선 골목길을 헤메이는 아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겠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몰매도 맞았을 것입니다. 굶주린 배를 붙잡고 이거리 저거리를 해매었을 자식을 생각하니 가슴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종들을 부릅니다. 이제 내 아들이 왔다. 좋은 옷을 가져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동네 사람들을 다 초청하고 우리가 먹고 즐기자 했습니다. 탕자는 감격했습니다. 자신은 종으로 대해 줄줄 알았는데 종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을 회복 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다는 것은 아들의 신분으로 회복 시켰다는 것입니다. 큰 잔치를 배설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24절에 이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 하더라 했습니다. 눅 15장7절에 보면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 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 큰 잔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구령과 사회사업의 사역이 점차 확장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름을 받고 궁궐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구세군 참모들은 여왕의 도움을 받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모두 기뻐했습니다. 궁궐에 들어가자 여왕은 부스의 업적을 치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대를 도와줄 일이 무엇이 있는가?" 이때 부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전도자입니다. 야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저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부탁은 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참모들은 말했습니다. "왜 여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 라며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부스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하나님이 맡기신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입니다. 하나의 영혼을 찾는 일에 헌신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코카콜라 소유주는 약제사인 에이서 캔들러라는 약제 도매상이었다.

에이서 캔들러는 1919년 현재의 회사조직을 설립하고 청량음료로서 판매를 개시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세계음료 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에이서 캔들러는 술주정뱅이요. 알콜 중독자 였습니다. 그날도 술에 취해서 가는 데 청천 벽력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제어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였습니다. 너무 충격저이라 집에 와서 부인에게 얘기 했더니, 하나님께 기도 하자고 했습니다. 아내의 간절한 기도가 알콜 중독자를 변화시켜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변화 되었습니다.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 생활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 때부터 회사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소중한 일은 영혼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영혼 구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명입니다. 그러기에 영혼 구원을 외면하는 성도는 건강한 성도가 아닙니다. 영혼 세우는 일에 힘쓰지 않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영혼 구원에 힘쓰지 않는다면 이미 잘못된 신앙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옴을 기뻐하는 아버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탕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 때문에 우리에게도 구원이 임한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주여, 나에게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주옵소서!" "주여, 한 영혼이 돌아올 때 느끼는 아버지의 감격과 기쁨을 주시옵소서" 영혼 구원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한 영혼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한 영혼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힘을 다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년 9월12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