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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만 섬기라 여호수아 24:14-21

gkffpffndi 2010. 9. 18. 19:03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여호수아24:14-21

오늘 본문 말씀은 세겜 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한번 언약을 상기 시키는 내용입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래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한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최초로 약속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던 중 잠시 머물다가 그곳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그곳에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꾼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 8장에서는 모세의 율법을 기록한 말씀을 낭독 한곳입니다. 이처럼 세겜은 언약의 장소요, 영적인 새 출발을 이룬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언약의 갱신의 장소로 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유훈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50년 동안 노예생활 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뿐 아니라, 광야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 하시고, 또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 주시고 반석에서 샘이 나게 하셔서 광야생활을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나안 땅은 그냥 주어지는 땅이 아니라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 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점령 했습니다. 그리고 토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볼 때 땅을 정복 했지만 가나안 문화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 했습니다. 가나안 종교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조금 지나면 이스라엘 야훼 신앙을 잊어버릴 뿐 아니라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감지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결단을 촉구 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든지 가나안 종교인 바알을 선택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애굽에서 섬기던 신이라고 말합니다. 애굽에서 섬기던 신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여러분! 기억 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아래에 있고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 가 있는 동안 그들은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여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말하기를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였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광야의 여정에서 기적을 체험 했음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신이라 하였습니다. 왜 이들이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을 까요? 애굽에서 섬기던 신이 송아지였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송아지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입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송아지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가나안의 땅의 신은 바알입니다. 바알 역시 풍요의 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는 야훼 하나님이 인도 하셨지만 농경사회인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야훼 하나님은 쓸모가 없고 농사를 잘되게 하는 가나안 농경의 신인 바알이나, 애굽의 신이 필요 하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신앙의 재무장, 세겜 언약을 다시 상기 시키고 그들의 다짐을 받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결단을 촉구 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교회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세상가운데 사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씁쓸한 것은 이 땅에 언제 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스포츠 신문이나, 일간지에서 볼 수 있었던 사주팔자나 오늘의 운세 등이 어느 덧 우리 생활 주변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주카페, 자동판매기로 일일 운세를 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점집의 고객의 30%가 교인이랍니다. 그리고 교인도 환영 한다고 써 붙였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문화가 야훼 하나님 신앙을 무력 하게 하듯이, 성도들의 신앙이 종교 혼합주의 내지는, 하나님 신앙이 세속화에 잠식 되어가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1-22절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 때 까지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쫓을지니라. 하였습니다. 신앙은 결단이며 선택입니다.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그리스도냐 세상이냐 빛이냐 어두움이냐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입니다.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결과를 오는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은 행복과 성공을 보장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은 실패와 불행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모세는 나이 40이 되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살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을 선택 할 것인가 모세는 잠시 세상의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는 자기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을 선택 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사자 굴에 들어가는 길을 선택 했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선악과 을 선택 하므로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 왔습니다. 신명기 30장15절에 보면 내가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일에 대하여 결단을 내릴 때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내가 기준입니까 하나님이 기준입니까 내 이익을 먼저 생각 합니까 하나님의 이익을 먼저 생각 합니까 내 뜻 입니까 주님의 뜻입니까 나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순간마다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2.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야훼 하나님 신앙이 가나안 농경문화의 신인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에 의해서 야훼 하나님 신앙이 힘을 잃고 퇴색 해 갈 때 영적 지도자 여호수아는 좌고우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단호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많은 백성들은 가나안 문화에 오염 되었습니다. 3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장로들 그 약속에 참여 했던 사람들까지만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러니까 그 이후에는  또다시 가나안의 신을 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므로 인해서 가나안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관계가 소원해 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농사 정보나 기술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 이어서 농사를 짓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유목 생활을 끝내고 정착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포기 할 때 야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광야에서 기적을 체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야훼 하나님 신앙을 포기하고 가나안 사람과 타협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편리함과 풍요를 선택하고대신 야훼 하나님 신앙을 포기 한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물질주의, 실용주의, 세속주의에 의해서 야훼 하나님신앙이 힘을 잃고 무기력 해 진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한 쪽을 선택 하려면 반드시 한 쪽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종교 대신 야훼 하나님 신앙을 선택 했습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금전적인 손실, 인간관계의 어려움보다, 하나님 쪽을 선택함으로써 어정쩡하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선택하는 결단을 요구 한 것입니다. 자신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가족까지 하나님을 섬기도록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만 나오지 않습니다. 가족의 영혼 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1-2절에 보면 로마의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여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더니 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신앙은 자녀들에게 전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한 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해외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영국의 경우 지난 30년간 문 닫은 교회가 9000곳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매주 평균 4개, 매년 220개 교회가 폐쇄된 것. 영국 교인의 29%가 65세다. 감리교회와 개혁주의교회의 고령화 비율은 38%로 더 높습니다. 40%의 교회가 아예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없다. 1975년 1만5900여명이던 성공회 성직자는 지난해 8400명으로 줄어들었다. 성공회는 2013년까지 7700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영국의 무슬림은 그러나 지난 4년간 50만명이 증가해 현재 24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교회 건물들이 술집으로 심지어는 모스코로 팔려 나갑니다. 왜 이리 되었습니까? 물질의 신인 맘몬에 의해 사람들이 편리함과 풍요를 쫓은 나머지, 가족과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 결과 오늘 날 영국은 하나님을 떠난 나머지 국가 경제가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작년에 지방 회장 시 유럽5개국을 여행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주일 저녁에 외곽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데 도로가 주차장을 이루어 교통체증이 심각했습니다. 가이들 말이 금요일부터 휴일을 즐기는데 지금 이시간은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돌아오는 인파 때문에 지체 된다는 것입니다. 유럽문명은 기독교 문명입니다. 하지만 바알문화에 밀려 신앙은 형식화 되고 박제화 된 죽은 신앙 이었습니다.  우리도 유럽처럼 국민소득이 3만불,4만불 시대가 오면, 세상적인 스포츠나,게임 오락에 밀려 유럽의 교회처럼 되지 않을 까 걱정이 됩니다 .세상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하나님을 섬기는 데 어떻게 섬기라고 말합니까? 적당히 섬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애굽 에서 섬기던 신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하나님을 섬길 때는 먼저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섬김의 대상인데 우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정성을 다해서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주간은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추석이 있습니다. 가족 간의 만남, 서로간의 덕담 등을 나눔으로써 고단한 직장생활에서 떠나 쉼을 가질 수 있어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명절이 좋지 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사는 원래 중국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게 아닙니다. 중국의 왕가에서 행해졌던 일이 민간에 퍼지고, 그리고 고려 말에 들어왔습니다. 왕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고, 모든 벼슬 줄에 있는 사람들은 "제어 삼묘 하고" 삼 대 제사를 지내고, "서민은 숙소어제어부모하라" 서민들은 자기 자는 방에서 단위 그 부모에게만 제사를 하라는 제도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사 제도가 조상숭배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죽은 조상이 복과 화를 준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즉 신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성을 다합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시골에 가면 시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빚내어서 지냅니다. 그래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명절날이 고통의 날입니다.

그래서 어느 권사님은 명절 때만 되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음식을 준비한 답니다. 떡을 하는 시루에다 크게 십자가를 그어 가면서 명절을 보내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이런 고민과 갈등을 겪습니까?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와 복은 조상이 주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배가 고픈 까마귀가 비둘기장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비둘기장 에는 먹을 것이 풍성했습니다.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비둘기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때 번뜩 스쳐가는 생각. 옳지 내 몸에 밀가루를 칠한다면 비둘기들이 눈치 채지 못하겠지? 까마귀는 온 몸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비둘기장으로 슬그머니 들어갔습니다. 비둘기들은 하얀 까마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모이를 실컷 먹고 난 까마귀는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까악! 까악!」 깜짝 놀란 비둘기들이 달려들어 까마귀를 쪼아댔습니다. 결국 까마귀는 비둘기장에서 쫓겨나 까마귀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까마귀들이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아니 하얀 까마귀도 있나? 재수 없게 스리 하얀 까마귀라니. 쫓아 버리자! 결국 밀가루를 뒤집어 쓴 까마귀는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변화됨이 없이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하면 교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세상도 그를 반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바알의 문화와 종교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로 위장하여 오늘 날 여러분의 야훼 하나님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고 우상을 섬기는 한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을 과감히 버리고 포기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라는 여호수아의 결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년 9월19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