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 4:7-18)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옷속을 파고 듭니다. 가을을 건너뛰고 금방이라고 추운 겨울이 올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에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종로서적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곳에서 한 책을 구입했습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인 폴투르니에가 쓴 인생의 사계절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 의하면, 자연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4계절이 있다고 했습니다. 청소년기는 인생의 봄, 청년기는 여름, 장년기는 가을, 노년기는 겨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순환은 순차적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어느 순간 질병이나 사고로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서 자연의 계절인 겨울을 맞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지난날을 회고 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1.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사도인 바울은 마지막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차디찬 로마 감옥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겨울이 마지막이 될 것을 예측한 바울은 지나온 삶에 대한 회고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지난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 하고 협력 했던 사람들 뿐 아니라, 자신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라고 기록 합니다.골로새서 4장14절과 빌레몬서 24절에 보면 데마가 다른 협력자와 함께 그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그 당시 최고로 화려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 곁에는 자신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판단해서 인지 그는 죽음을 앞둔 자신의 스승 곁을 떠나 세상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바울이 매우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어서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했습니다. 언제 자신의 운명이 다할지 모르는 차디찬 로마 감옥에서 한 사람이라도 자신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 일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에게 은혜를 받아 1차 전도여행 때부터 마지막 순교 할 때 까지 바울 곁에 있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 이었습니다. 그는 수리아 안디옥 출신, 의사로서 자신의 윤택한 삶이 보장받을 수 있었음에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끝까지 도왔던 사람입니다. 때로는 바울의 주치의로써, 때로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의술로 전하면서 바울에게 힘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선교지에서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바울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맡아서 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이 두 권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누가의 섬세한 관찰과 기록이 없었다면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하심을 우리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바울 곁을 떠날 때 누가는 평생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노 사도의 곁에 끝까지 남아 인간적으로 연약해진 바울 곁에 남아 위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반면에 14절에 보면,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더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바울은 그가 자신에게 해를 많이 입혔고, 그가 말로써 대적했다고 하면서, 디모데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말하면서 주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한 마디로 바울의 사역을 방해 했던 인물입니다. 바울에게 유익을 주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을 힘들게 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 하였느니라. 고 말한 것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따지고, 반박하고, 대적했던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벤자민 프랭크린에 의하면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개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남에게 유익도 해도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옆집에 무슨일을 당하든지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일에 충실합니다. 둘째는, 거미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입니다. 올무를 놓고 모함을 하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 질 때 사회는 아름답고 밝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록페러는 43세에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희귀한 질병에 걸려 눈썹이 다 빠지고, 비스켓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검진을 위해 병원 로비에 들어섰을 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나니” 글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한 평생 돈 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자신의 삶이 생각나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병원 측과 환자가 입원비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된다 하고, 환자 측은 울면서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록페러는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 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나눔의 삶을 실천했는데, 그 이후로 신기하게 그의 병도 호전되고 치유되었습니다. 그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사회에 많은 기부를 했습니다. 그는 회고하기를 “인생 전반기는 쫓기면서 살았지만, 후반기는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습니다.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변사람들에게, 이웃에게, 이 가정과직장 사회, 교회와 국가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사랑하고 ,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버클리 대학 에서 쥐를 가지고 실험 했습니다. 첫 번째 쥐는 혼자 살게 하면서 먹이를 주었습니다. 두 번 째 쥐는 5마리가 같이 살게 했습니다. 세 번째 쥐는 사람이 애정을 쏟으면서 먹이를 주었더니, 첫 번째 쥐는 600일을 살았고, 두 번 째 쥐는 700일을 살았고, 세 번 째 쥐는 950일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두 개의 화분에다 실험을 했습니다. 한 화분에다가는 아침 저녁 정성으로 물을 주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축복한다. 등 좋은 말을 해 주었더니 그 화분의 꽃이 잘 자란 반면, 한 화분에는 욕하고, 저주하는 말을 했더니 얼마 후 시들해지더니 죽더라는 것입니다. 식물이나 동물도 애정을 가지고 키우면 생명력이 왕성해집니다.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 사도는 차디찬 로마감옥에서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지난날을 회고하다가 문뜩 마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로써 한때 복음사역을 함께했던 동역자 였습니다. 1차 선교여행시 함께 동행 했지만,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2차 선교여행시 바나바가 마가를 데려 왔을 때 바울은 1차 때 그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한 사람을 같이 데려 갈 수 없다고 반대 합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 가겠다고 고집함으로 인해 바나바와 바울은 각기 다른 길로 가게 되는 데 그 분쟁의 씨앗이 바로 마가였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때 일로 인해 마가가 상처를 받았을 것 같아, 마가를 부르고 서로 화해하고, 자신의 완고함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자신이 마음을 조금만 더 넓혔으면 이해될 수 있고, 마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고 말합니다. 사랑하면 만나고 싶고,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면 용서합니다. 누구든지 한 번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허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나 잘못, 허물을 용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런 실수나 잘못, 허물을 저지를 수 있고,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 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 까지 하리 이까 물을 때 주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말씀하시면서, 어떤 사람이 한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 였는데 주인이 갚으라 했지만 워낙 많은 빚을 지어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갚을 길 없는 빚이었습니다. 그 종이 사정사정을 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했습니다. 그런데 탕감 받은 종이 나가더니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둡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동료들이 이 사실을 주인에게 고합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네 빚을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 하냐, 하고 주인이 그 빚을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5절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일만 달란트란, 우리가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받게 없었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위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시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예수의 피 공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 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라면, 나에게 조그만 고통이나 아픔, 상처를 준 사람들은, 주님께 받은 용서에 비하면, 일백 데나리온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로 그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32 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말했습니다. 또 평신도 신학자 C. S. 루이스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뉴욕 출장 중에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사망소식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상급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복수심에 이를 갈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탄식하며 기도할 때 심령 깊은 곳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용서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분은 15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마음속으로 원수를 수없이 살리고 죽였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분은 부드러운 말로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들을 데려가셨습니다. 처음엔 저도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인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관계자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검사에게 아들을 죽인 피의자를 관대하게 처리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잊는 차원이 아니라 지워버리시는 것입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 완전한 속죄를 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죄 없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이웃의 허물과 실수 잘못, 나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을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 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사회는 서로간의 원망과 불신으로 인해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 하지 못한 결과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불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사랑하면서, 용서하면서 산다면 남은 생애가 행복 할 것입니다.
3. 후회없는, 즉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하나님의 종 사도바울은 마지막 인생의 끝에서 후회함이 없습니다. 위대한 승리의 함성만 들립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자신이 자랑하던 세상적인 것들을 다 포기하고 오직 한 가지 사명 영혼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생애 였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20장24절에서 자신의 사명, 즉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조차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의 연약해 진 육신을 따뜻하게 보호해 줄 겉옷과 함께 가죽종이에 쓴 책, 즉 성경을 가져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로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마지막 까지 인도해 줄 것은 성경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겨울이 다가올수록,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경험해야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을 때가옵니다. 이 세상의 삶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가는 날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마치 늦가을에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듯이 인생의 겨울이 차가운 모습으로 문뜩 내 앞에 서 있게 될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 때 나와 함께 동행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이 겨울이 얼마 남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날이 옵니다. 그리고 인생은 연장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회 없는 삶,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살아온 인생을 회고 하면서 대체로 3가지를 후회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내가 좀더 나누지 못하고 살았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 참았을 것을,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 없는 행동을 했나, 한답니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살았을까? 왜 그렇게 짜증내고, 힘들게 살았을까 하는 후회라고 합니다. 여러분! 남은 생애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행복하고 즐겁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남은 생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남다른 명성이나 사업에 성공한 스포츠 스타나 기업의 CEO들을 보면 남다른 면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역도선수 장미란은 바벨을 수없이 들었다 올렸으며, 세계적인 축구 명문 맨체스터 소속인 박지성 선수는 평발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었고, 이번 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준 김연아 선수는 한번 완벽한 점프를 위해서 천 번의 엉덩방아를 쩧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음악가 바하는 무명시절에 조그마한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봉사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남이야 알아주든 말든 매일같이 새로운 곡을 작곡해서 연주했습니다. 그 곡이 출판된 일도 없고, 발표회를 가진 적도 없었지만 매일같이 성실하게 새로운 곡을 작곡해서 연주해 나갔더니, 그 결과 265개의 오르간 곡과 263개 합창곡, 162개 피아노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그 후에 그는 유명 해졌습니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 옛날에 작곡해 놓은 곡들이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되었고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명해져서 작곡한 게 아닙니다. 오로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무명의 오르가니스트가 그저 성실했던 이것이 마침내 음악의 아버지 ‘바하’ 를 만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건강의 겨울이 오기 전에 일해야 합니다. 늙었다고 다 겨울을 맞이 한 것은 아닙니다.
피카소는 90세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천재 지휘자 루빈스타인은 89세 때에도 카네기홀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아데나워는 88세에도 독일 수상을 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0세가 넘어서 대작들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시어,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도, 사도바울도, 예수님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계속 되는 게 아닙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남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며, 용서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후회 없는 최선의 삶을 살아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0 10월3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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