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막3:1-5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다시 회당( synagogue,會堂 )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에 생긴 유대인들이 모여서 율법을 낭독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주후 70년 성전 파괴 당시 예루살렘에는 회당이 394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1세기 이후 유대인은 회당 중심으로 모였는데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 까지 유대인 공동체는 하루 세 번 예배를 드렸고 주1회 안식일 예배, 종교적 절기마다 특별한 의식을 행하여 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회당은 유대인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율법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회당 안에 있는 손 마른 자를 고치셨습니다.
저는 이 시간 “네 손을 내밀라”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엿보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게 되면 주님을 고발하고자 회당 안에 까지 따라왔습니다.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수많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손이 마른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손 마른 사람만 있었겠습니까? 그렇치 않습니다. 많은 병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이 손마른 자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은 예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손이 말랐다고 하는 것은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경에 의하면 이 사람은 원래 석공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그 손이 왼손인지 오른 손인지 나와 있지 않지만 누가복음에는 오른 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오른 손은 성경에서 능력을 상징하는 손입니다. 대게는 오른 손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석공이었기에 오른 손으로 망치와 정을 가지고 돌을 깨고 다듬으면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언제부터 인가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 채워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갔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주어진 삶의 고통이 그를 힘들게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삶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 메마른 사람을 고치시려고 마음을 먹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한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조상들의 유전과 전통에 충실한 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회당에 까지 따라와 예수님의 행위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6장 7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이들은 그 당시 율법학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날로 보면 신학대학교수요, 목회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의 행위와 말을 감시하였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의가 예수님 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만 옳고 남의 이야기는 틀렸다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독선이요, 자기의 로 뭉쳐진 아집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기 의로 충만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잘못입니다. 자기가 체험 한 것이 절대적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했습니다.
“엿보니” 라고 하는 말의 뜻은 "a reason accuse" 고발할 근거를 찾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문화도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증 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신문 보도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한 작은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사장이 자신의 일거 수 일 투족을 감시하면서 왜 근무시간에 어디 갔었냐고 하는데 두려움마저 느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초소형 몰래 카메라가 중국에서 들어와서 남의 이웃집의 사생활을 녹화하고 감시하는 사례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신의 배우자를 믿지 못해서 심부름센터에 고용을 주어서 미행하게 하고 추적하여 고발하기 까지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항상 예수님의 행동과 말을 감시해서 고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로 인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미움을 받아 예수님께서 고발당하셨고 결국 십자가를 지시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고발 자가 있습니다. 그게 누군 줄 아십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이라는 뜻은 계시록 12:10장에 보면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여기서 “참소한다” 라는 뜻은 “고발한다”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엿보는 자가 있습니다.
욥기 1장 1절 이하에 보면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 당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 앞에서 악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욥은 아들이 일곱, 딸이 셋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유물이 양이 칠천이요, 낙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겨리요, 암나귀도 오백 마리요 종도 많이 있었고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자라고 성경이 말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는지 자신의 자녀들이 잔치를 하고 난 이후에는 반드시 번제를 드려서 그들의 죄악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잔치로 인해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묻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예 제가 온 땅을 두루 돌아서 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는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그러자 사탄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당신이 그의 소유물을 지키시고 그를 복되게 하여 그의 소유물이 넘치게 하였으니 그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를 치시면 그가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할 것입니다. 하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그의 몸에는 손대지 말고 나머지는 네 손에 맡기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감시 카메라를 가지고 사람들의 사생활을 감시하듯이 사탄은 오늘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하나 말 한마디 감시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고발한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몰래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항상 기도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벧전 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2) 손 마른 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 안에 들어갔을 때 한 쪽 손이 마른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6장6절에 “거기 오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랐다고 하는 것은 사용할 수 없는 손을 가진 장애인을 말합니다. 여러분! 신체의 일부가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른 손을 사용할 수 없으면 밥을 먹을 있나요? 집안일을 할 수 있나요? 글씨를 쓸 수 없습니다. 농부들은 손으로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를 합니다. 의사들은 손으로 환자를 수술합니다. 음악가도 손이 없으면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없습니다. 야구선수나 배구선수나 농구선수 손이 없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른 손을 사용하였을 시는 돈을 벌어서 자녀를 양육하고 즐겁게 살았을 것인데, 손이 없으니 불편한 것이 한 두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삶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고 형제애를 나누고 보살핌을 받기 위해서 회당에 나왔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손 마른 사람만 나와 있지만, 왜 그 사람뿐이었겠습니까? 그 당시 많은 장애인들이 회당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손 마른 자를 고친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였을 것입니다. 잠언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람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간절히 사모하고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환자를 고치실 때 반드시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태복음15:21-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나아와 소리 지르기를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으니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지나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여자가 소리 지르는 것 모르십니까?하니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냉정하게 지나가시자 이 여자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면서 애원하였지만, 주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냉정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고 이 여인은 이방인이기 때문에 ‘개’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나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말입니까? 그런데, 이 여인은 옳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말합니다. 자신을 ‘개’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하고 자신을 낮추자. 그제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28절에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낳으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자신의 자존심까지 라도 주님께 내 놓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딸이 귀신에게서 해방된다고 생각하면 무슨 체면이나 자존심이 중요합니까? 예수님께 특별한 은총을 받으려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아픔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만큰 간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이방여인의 딸이 고침을 받을 때도 주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27-30절에서도 소경 두 사람이 따라 오면서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부르짖었을 때도 주님은 맹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일 할 줄을 믿느냐 물으니 맹인 예,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의 눈들을 만지면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의 눈이 밝아 졌습니다. 이렇듯 주님은 우리의 간절한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먼저 요구하십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주님께 바라지도 헌신하지도 않으면서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체적 불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 불구자입니다. 메마른 심령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의 메마른 손과 마음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손으로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직 까지 이 손이 마른 분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 손이 펴지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내 마른 손이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주여! 이 손을 고쳐 주옵소서, 메마른 심령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가진 손으로 주님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으로 주보를 나눠 주고, 손으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내 집처럼 청소도 하고, 손으로 주변인에게 전도지를 전달하고, 이 손으로 귀한 예물을 드릴 수 있고, 또한 무엇보다도 두 손 모아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손으로 박수를 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회복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곳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내 곁에 계십니다.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주님을 부르세요. 주님을 간절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회당 안에 손 마른 사람처럼 아직도 교회 안에서 있으면서 마른 손과 마음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이 시간 여러분이 마른 손이 회복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손바닥을 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 47: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3) “네 손을 내밀라”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아시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손 마른 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 한 가운데 일어서라” 손 마른 사람이 한 가운데 회중 가운데 일어섰습니다. 그에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었을 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은 잠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심령을 꿰뚫는 이 한마디 말씀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관심은 자신들이 지켜온 유전과 전통에 충실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형식에 충실하였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인 인간 사랑에 충실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오래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회의 전통이나 관습, 혹은 오래 믿은 사람이 말을 더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의 말이나 교회의 전통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시되어야 하고 우리 신앙의 표준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이 나침반입니다. 삶의 안내서입니다. 성도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해서 막 다투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스마트 폰을 켰는데 이런 말씀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잠 20: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그래서 이 말씀을 보는 순간 아!내가 다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그리고 참고 지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잡다한 지식이 많은 세상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유명인사들의 말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지난날에 오른 손이 마름으로써 그가 겪었던 고통과 아픔이 어떠한지를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치료하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이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내 밀라” 하시니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이 사람이 손을 내밀고 안 내 밀고 자신의 자유의지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이 싫어서 내 밀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어떻게 마른 손이 회복되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렸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의 빛이 내 마음에 비추일 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재주가 많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메마른 우리의 손과 마음을 이 시간 주님께 내 놓읍시다. 오그라진 손과 마음을 주님께 내 놓읍시다. 감추고 싶고 보여 주기 싫은 손과 마음을 주님께 내 놓읍시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메마른 손과 마음을 이 시간 주님께 내어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마른 손만이 아니라 메마른 심령을 주님께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회복” 이란 말이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 앞에 우리의 메마른 손을 내놓아 이 여름날의 장마비처럼 회복의 은총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마을에 대리석으로 만든 예수님상이 있었습니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폭탄이 떨어져 그 예수님상이 그만 조각나 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아끼던 예수님 상을 다시 세우기로 했습니다. 흩어진 부분들을 모아서 만들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없었던 것입니다. ‘내게로 오라’ 하며 내뻗은 예수님의 손이 없기에 조각상이 우습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의논을 하다가 손을 만들어 붙이는 것을 포기하고 그 밑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써 붙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손이 없지만 그대들에게는 손이 있다” 이 글귀는 아빌라의 성인 테레사의 기도문 중 일부였습니다. “주님, 당신은 이 땅에 몸이 없지만 우리는 있습니다. 당신은 손이 없지만 우리는 있습니다. 당신은 발이 없지만 우리는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손 내 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마른 손을 예수님께 내밀어 그의 손이 혈액이 공급되고 피가 순환되어 고침을 받았듯이 이 시간 주님께 손을 내밀라는 주의 음성에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우리의 마음이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나의 심령이 황폐화 되어 있지 않습니까? 메마른 대지위에 폭우가 내리 듯 내 심령에 은혜의 소낙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리고 주님! 내 마른 손 고쳐 주세요.! 메마른 심령을 회복시켜주세요. 이 손을 지금 고쳐 주세요! 주님께 고침받기를 원합니다. 메마른 심령에 은혜의소낙비를 내려 주세요. 주님께 고침 받은 손과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뜨겁게 찬양하게 해주세요. 모세와 아론처럼 기도의 손을 높이 들기를 원하십니다. 봉사와 헌신의 손을 높이 들기를 원하십니다. 충성의 손을 높이 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수고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높이 증거 하는 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엿보는 자가 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네 마른 손을 내밀라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가물어 메마른 대지위에 복된 장마비가 내려 대지를 촉촉이 하듯이 메마른 심령과 손이 회복되어 주님의 일에 충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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