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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2) 마5:5

gkffpffndi 2015. 5. 4. 10:27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2) 5:5

 

우리는 지난 시간에 팔복 가운데 세 번 째 복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온유한 자의 성품은 마음이 가난한’ ‘부드러운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유라고 하는 성품은 원래부터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통제되고 다스려지는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품입니다. 타인에 대해서 부드러운 말이나 마음을 갖습니다. 마음이 넓습니다. 포용력과 수용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찾는다면 첫째, 모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세는 원래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적인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연단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잘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이삭입니다. 이삭은 예수님의 표상으로 온유한 사람의 대표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제물로 올려놓을 때에도 저항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이삭이 불레셋 그랄 지역에서 우물을 파고, 그랄 지역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빼앗아 갔을 때도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양보하여, 블레셋 왕 아비멜렉으로부터 너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로다라는 칭찬을 받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세 번 째 생각할 사람은 꿈의 사람 요셉입니다. 요셉은 우리가 아는 대로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11번 째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인지라, 더욱 사랑했을 뿐 아니라, 요셉은 어렸을 적부터 영특하고 아버지 말씀에 잘 순종하고 심부름을 잘 하였기에 요셉을 특히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다른 형제들과 구별하여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 옛날 옷이 귀하던 시절에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이 컷 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로 인해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요셉은 노예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왕의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집에 기거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요셉은 보디발 장군에게 인정받아 그 가정의 총무로 집안 살림을 관할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디발 장군이 출장 간 사이에 그 아내 가 요셉이 외모가 출중하고 준수함을 보고 요셉을 유혹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요셉을 노골적으로 유혹하기를 시작하자 요셉은 뿌리치고 도망을 갔습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모함하여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적으로 시위대장의 감옥에서 나와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여 나이 30에 애굽의 총리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한편, 요셉의 형들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오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였으나 요셉은 자기의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 동생 베냐민을 만나보고 싶어서 베냐민을 데려오게 하고, 후에는 아버지 야곱과 함께 모든 형제가 애굽에 살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가족들은 애굽에서 가장 기름진 땅 고센 지역을 차지하고 거기서 목축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죽고 장례를 마치자 요셉의 형들이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아버지 야곱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동생 요셉이 자신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아버지 야곱이 죽었으니 동생 요셉이 지난 날 요셉을 노예에 판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자신들을 보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논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요셉에게 가서 이제 우리를 종들로 있게 해 달라 하자, 그래서 형들이 요셉에게 이 말을 전하자 요셉은

 

50,20-21절에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의 이러한 태도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믿은 하나님이 자신을 절대로 그냥 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지금의 악한 상황에서 반드시 반전시키실 것을 믿었고, 또 그 믿음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형들은 자신을 죽이려 하였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요셉은 깨달았기에 자신의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관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었기에 요셉은 13년 동안의 억울함을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자신의 형제들에게 팔린 억울함만을 생각하고 분노와 원망으로살아 왔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잘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겼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하셨고 위대하게 하셨습니다.

 

섭리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고난과 억울함과 원통함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성경에 보면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다 그렇치 않습니까? 욥은 자신에게 고난과 불행이 닥쳐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섭리를 수용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에 즉각 순종하였고,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뒤에도 사울에게 쫓김을 당했지만, 자신의 본분에 충성하였고, 사도바울은 죄인의 몸으로 로마에 가면서까지 끝까지 죽기까지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온유한 자입니다.

 

둘째는, 우리 주 예수 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온유한자의 대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니예수님의 성품은 온유하십니다. 여기서 온유하고 겸손하니라는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비둘기파는 사람과 성전에서 환전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강도의 소굴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셨고, 외식하는 자라 하셨고 천국에 자신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청년 예수의 모습은 결코 온유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불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나와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하니, 옆에 있던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당신의 제자들을 좀 조용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이 소리치지 아니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고 말합니다.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결코 부드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에 대하여 항거하셨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에 대하여 결코 침묵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란 인간적인 성품에서 말하는 온순이 아니라, 원래 기질적으로나 성품 적으로 절대 온유한 성품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다스림을 통해서 절제되고 통제되어진 변화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셨고 사회 불의와 부정의에 대하여 결코 침묵하지 않으셨지만, 마지막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고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에는 성경의 예언대로 한 말씀도 말하지 아니하시고 묵묵히 자신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일주일의 행적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시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대제자장이 보낸 군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예수님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베드로가 대제사장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시면서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당신이 지금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다면 12군단도 더 되는 하늘의 군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군사들에 의해서 끌려가서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도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의회가 불법으로 재판을 진행하였고 그것도 새벽에 진행한 것은 그들의 재판이 불법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유월절 명절 때에는 특사가 있음에도 죄 없는 예수님은 풀어주지 않고 죄 있는 바라바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형에 의하여 집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불의한 재판에 대하여 한 마디도 항거하지 않으셨습니다. 억울하게 죽으시면서도 저항하거나 항변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심지어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찢어서 서로 나누어 가졌고, 채찍질을 당하시면서도 한 마다도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는 과정이었기에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벧전2,22-24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바울사도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은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고 복종하셨습니다.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하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자신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으로 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온유한 자의 삶입니다. 어떻게 내 뜻과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온유한 자의 마음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면 거칠고 강팍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온유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야생마 같은 나를 통제하시고 조절하시어 부드럽게 하시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온유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렇게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라고 하는 것은 기업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땅의 개념일 수도 있고, 영적인 의미로 하늘나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알렉산더나 애굽의 바로 왕이나 로마의 가이사, 나폴레옹, 징키스칸 이런 사람들은 온유함으로 땅을 차지하지 안했습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수많은 희생과 수고로 얻은 땅은 지금 어디로 가 있습니까? 그들이 힘으로 정복한 땅은 다 없어지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온유와 겸손함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복종시켜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전 세계에 영향력과 감동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전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25억이 기독교 신자임을 생각하면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닌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물질적인 개념의 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땅을 지배력으로 보면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까? 소크라테스, 나폴레옹, 로마의 가이사나, 이집트의 파라오, 징키스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전쟁의 영웅 나폴레옹은 수많은 땅을 차지하였지만, 그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은 승리자요 나는 패배자입니다. 나는 무력으로 유럽대륙을 정복하려다가 실패하고 이렇게 좁은 곳에 유배되는 신세가 되었으나 예수님 당신은 십자가의 사랑으로서 온 세계를 지배하는 만왕의 왕이 되셨나이다."

 

37: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여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 하리로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올바른 의 개념은 그것은 지상의 이 아니라 장차 우리 성도들이 영원토록 살아야 할 하늘나라 도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8-10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 땅에 나그네로 살면서 장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성을 바라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장차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자가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땅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쇠하지 않고 영원무궁토록 존재하는 하는 땅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장차 성도가 들어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천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누가 이 땅에서 땅을 차지하고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온유한 자입니다. 누가 장차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까? 온유한 자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자신의 기질을 통제하고 조절하여 온유한 성품을 소유한 자가 되어 천국을 소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