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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5:5

gkffpffndi 2015. 4. 22. 10:47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5:5

 

우리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와 국가의 악에 대해서 침묵하지 말고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도덕적 타락과 방탕과 술취함,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울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히, 겁 잡을 수 없이 타락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도덕적 폐혜가 심각하고 탈선하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울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고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의 에 대해서 회개하고 울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자신의 완악함과 황폐함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울을 때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우리의 질병도 치료해 주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세 번 째 복으로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산상수훈 가운데 팔복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이 예수님의 팔복은 그 당시 사회 통념상 배치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 째 복인 온유한 자의 복역시 역설적인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는 그 당시 세계 강대국인 로마가 자신의 영토를 힘으로 확장하면서 로마제국을 이루었던 시대로 유대나라도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각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팍스 로마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뜻은 힘으로, 무력으로 각 나라를 지배하여 다스렸기에 사용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힘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유대백성들에게 있어서 로마는 거대한 나라입니다. 로마는 로마제국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나라를 통합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아프리카의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유럽과 이집트, 팔레스틴 지역이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기에 유대백성들은 로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민족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에게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되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제자들이 따랐는데 그 중에는 제롯 당이 있었습니다. 제롯 당은 로마로부터 유대나라를 해방시키지 위해서 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을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실 때 가롯 유다가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예수님의 옆에 있던 제자가 대제사장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자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말고의 귀를 자른 제자가 제롯 당입니다. 일 제 시대 우리나라에 대비해서 말하면 항일 무장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젤롯 당이 칼을 몸에 지니고 다닌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유대나라가 강대국인 로마를 상대해서 해방하기 위해서는 을 모으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들이 투쟁하는 것은 여전히 이 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정치적인 힘이든지 경제적인 힘이든지 문화의 힘이든지 사상과 자유의 힘이든지 약자는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강대국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국이 되려고 하는 나라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민족이 중국내 소수민족인 신장내 위구르 민족입니다. 이들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테러를 일으키고 최근에는 국제 테러단체인 IS (이슬람제국)에 가입하는 위구르 인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작년에 영국 영연방에서 독립하겠다고 투표를 실시한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강대국에 의해서 자신들의 자유와 경제적인 것들을 수탈당하고 불이익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소수민족들이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독립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는 여전히 이 지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 있는 집단이나 개인에게 소속되어 자신을 보호받기 원하고 또한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애석하게도 경남기업 모 회장이 현 정부의 소위 실세들에 의해서 자신이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방으로 자신과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구명을 위해서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자신의 수고가 헛됨을 알고 자신의 목숨을 던짐으로서 지금 대한민국이 쑥대밭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분이 정치권 로비를 한 것을 정당화 할 수 없으나, 또한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정치권의 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기업하는 사람들로서는 기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에 있는 사람과의 친분을 쌓으려 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 대하여 있는 자가 복있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지극히 역설적이며 세상적인 가치관과 반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온유라고 하는 뜻은 프라이에스인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 아나윔에서 번역한 헬라어로 가난한’ ‘온유한’ ‘부드러운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은 사나운 동물을 길들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면 사나운 동물인 사자나 호랑이를 서커스 단원들이 잘 길들여서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주인의 통제를 받는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화난 감정이나 마비된 이성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카이오이’ ‘행복하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온유한 사람에 대해서 몇 사람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로 모세입니다. 민수기1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 말씀을 읽을 때 모세의 삶을 아는 독자들로서는 고개가 약간 갸우뚱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세의 생애의 전반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에 의해서 갈대상자에 나일 강에 띄워져서 그 당시 최고의 강대국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서, 즉 왕자로서 애굽의 학문과 지식과 문화와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왕자로서 왕궁에서 최고의 엘리트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 의해서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낼 때, 하루는 히브리인과 애굽 사람이 다투는 것을 참지 못하여 민족적이 감정이 일어나서 애굽 사람을 순간적으로 돌로 쳐 죽이고 몰래 숨겨 두었다고 이 일이 들통나 광야로 도망하여 광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목자로서 야인으로 생활하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모세를 부르십니다. 사명을 부여 받은 모세는 바로의 학정 밑에서 신음하는 동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을 향해서 광야로 가던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0년이 되던 때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하면서 왜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해서 우리와 자신의 짐승까지 죽이려 하는 가? 하며 대항합니다. 백성들의 원망이 더 커지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팡이를 잡고 회중을 모으라. 그리고 회중 앞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다 모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잘 들어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겠다고 하고 반석을 힘 있게 두 번 치자 반석에서 물이 콸콸콸 솟아올랐습니다. 이 반석에서 난 물로 백성과 짐승을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반석을 치라 했더니 나를 믿지 아니하고 반석을 홧김에 두 번 씩이나 쳐서 나의 거룩함을 손상시켰느니라. 그러므로 너희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약속의 땅 가나안 이 눈앞에 있는데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고 분노하였기에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이런 모세를 보면서 온유하다는 말하고 배치되는 생각을 갖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분노하는 일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 이후에 모세는 점점 연단의 시간을 지난 뒤, 하나님이 보실 때 분명히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흑인 여자 에디오피아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을 때,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엄청나게 비난했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 하지도 않고 잘 참아 낸 것을 봅니다. 얼마든지 아론과 미리암의 허물을 말할 수 있었는데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하신 것을 다 준행하였더라라고 하는 말이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여기저기에서 쓰여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세는 원래 성격이 온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백성들을 이끌면서 모세의 성격이 잘 참고 견디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유라고 하는 성퓸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22-23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온유는 성령에 의해서 길들여진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삭을 들 수 있습니다. 이삭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제물을 바칠 때도 이삭은 저항하지도 않았고 도망치지도 안했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맡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이 불레셋 지역에 갔을 때 거기서 우물을 파지 않았습니까? 요즘도 물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생활할 수 없습니다. 수천 년 전에 유대나라는 광야에서 목축을 해야 하기에 반드시 우물이 있어야 합니다. 우물 파는 기계가 없던 시절에 이삭은 우물을 힘들게 파 놓으면 그랄사람들이 와서 자기의 것이라고 하며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서 또 팝니다. 그러면 파 놓은 우물을 또 강탈해 갑니다. 그때마다 그들과 다투지 않고 이삭은 양보합니다. 다투지 안했습니다. 이삭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 번 째 우물을 파고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뜻은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넓게 하였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양보하고 양보 했더니 하나님께서 브엘세바에서 이삭에게 그 밤에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26:24절에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이 있은 이후에 이삭을 괴롭혔던 불레셋 왕 아비멜렉이 그의 친구 아훗삿과 장군 비골과 함께 그랄에서부터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26,28-29절에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이니라

 

이삭의 온유한 성품이 마침내 그곳 불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과 화친을 맺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의 삶을 다 들여다 본 것입니다. 여느 사람 같으면 자신이 힘들게 골짜기 에다 판 우물을 그렇게 쉽게 양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인간의 생각과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행동하였습니다. 자신의 힘들게 우물을 파서 거기서 평안히 안주 할 수 있고 더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음에도 그곳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잘 참아내고 인내 하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품인 온유함을 잃지 안했기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부드럽습니다. 너그럽습니다. 관용의 사람입니다. 모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합니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이 부드러우나 약하지 않습니다.

 

노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것도 없지만, 또 한편 물처럼 강하고 큰 힘을 지닌 것도 없다실제로 그렇습니다. 물은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큰 강이나 계곡에 가면 무수히 많은 돌이나 바위를 볼 수 있는데 계곡이나 강가의 바위나 돌은 모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두루뭉술합니다. 직선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곡선으로 되어있습니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물이 흐르는 동안 모난 곳을 여린 물로 깍아 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조개가 돌을 자신의 몸 안에 받아들여 여린 살로 액을 내놓아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값진 진주를 내놓는 거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온유라고 하는 성품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온유가 때로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강한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경은 늦잠 자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밤늦게 까지 일하다 보니 늦잠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이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당신은 일국의 수상으로서 나라의 중대사를 하시는 분이 이렇게 늦게 일어나 국사에 지장이 초래하시면 되겠습니까? 했더니 처칠 수상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 의원님도 나처럼 미인하고 살면 반드시 늦잠자게 될 걸요!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고도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화를 폭발하지 않고 유머로서 분위기를 반전시킨 처칠의 재치는 바로 그가 넓은 마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는 자신의 내면의 를 급하게 나타내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조절하고 통제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온유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타락한 본성은 내 본성대로 내 감정을 표출하고 분출합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를 험악하게 하고 위태롭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고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마지막 시대의 사람에 대하여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3,2-3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세처럼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잘 길들여지는 사람이 됩시다. 이삭처럼 다투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온유는 하나님이 주신 성품이며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온유는 부드럽습니다. 온유는 자신을 잘 절제하고 통제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4월 26일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