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새믿음의 강단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나니 마5:6

gkffpffndi 2015. 5. 18. 16:0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나니 마5:6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놀란 나머지 도망하다가 큰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등나무 줄기가 있어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이 등나무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니 아래는 독사들이 득실거리고 있어서 내려 갈 수 도 없고 위를 보니 호랑이가 지키고 있어서 올라갈 수도 없어서 등나무 줄기에 자신의 생명을 기대고 있는데, 이 때 흰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더니 등나무 줄기를 갈아 먹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바로 그 머리 위에 꿀벌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더니 그 벌통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등나무 줄기를 잡고 있던 이 사람은 위에서 떨어지는 꿀이 자신의 입에 들어왔다. 단 맛에 취한 이 사람은 이 모든 위험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흰쥐와 검은 쥐는 인생의 날을 가리키고 구덩이 아래는 죽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꿀은 인생의 향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앞의 예화는 인생이 얼마나 미련한 존재이고 죽음 앞에서도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죽음을 향해서 가까이 가고 있는데도 죽음 이후에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내 입에 들어오는 꿀, 향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인 향락과 돈과 명예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흰쥐와 검은 쥐가 인생의 날을 쉬지 않고 갉아먹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유한한 인생 속에서 영원하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헛된 일에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헤롯은 권력에 목말라서 자신의 이복동생의 아내를 빼앗고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로마에 충성을 해야 했기에 로마황제의 이름으로 많은 도로와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갈릴리 서쪽 해안에 황제이름을 따서 티베리우스를 건설한 것이다. 그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도 역시 그들도 권력과 돈에 눈에 어두워서 자리를 이용해서 성전 세를 횡령하고 성전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제물에 몇 배의 이익을 붙여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여 자신의 배를 채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중들은 가난과 배고픔에 굶주리고 목말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예수님은 알고 있었기에 가난하고 배고픈 민중들을 향해서 역설적인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당시처럼 권력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성완종 게이트 사건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정치권의 추악함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성완종 메모지에 기록된 사람들은 자신들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국민들 대부분이 이 부분에 대해서 정치권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소위 선거철만 되면 소위 유력한 사람들에게 돈을 싸들고 찾아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모 의원은 돌려보냈다고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 가운데는 국무총리도 연루되어 있고. 경북도지사인 홍준표씨도 연루되어서 검찰에 가서 소명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권력지향을 하다보지 이런 올무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권력만을 지향하다 보니 이런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누가 이런 사태가 발생하리라고 생각 했습니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의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권력의 나무에 오르려고 합니까? 거기에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사업하다가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고, 교수하다가도 정당에 몸을 담고, 종교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다못해 지방의 시, 도의원에 까지 출마해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없는 직업중 하나가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 되려고 하고 정치권에 몸담으려고 하는 정치지망생이 많습니다. 정치권력만 권력이 아닙니다. 종교권력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단정치에 맛이 들려 가지고 자신의 일들은 부업이고 교단정치에 뛰어 드는 목사나 평신도 지도자인 장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단 정치에 뛰어 드는 목사나 장로들이 하나님나라와 교단과 작은 교회를 위해서 일하면 좋은데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쇠퇴하는 이유는 교회가 목사 평신도 지도자인 장로들이 자신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고 교단 정치에 눈이 멀어, 교회를 분열시키고 부패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세상을 따르다 못해 더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헤롯과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처럼 권력만을 쫒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도박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박이 눈이 멀면 자기 마누라 까지 팔아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김대중 정부 때 강원도 정선에다가 빠징코를 만들어 개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요. 이 빠징코에 빠져가지고 충북제천에서도 이름난 부자인데, 이 분이 강원도에 계속 다니면서 자신의 그 많던 전 재산을 다 날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분이 전 재산을 다 날리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서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개평을 뜯어가지고 거기서 생활한다고 하는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패가망신해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한 때 연예계에서 잘 나가다가 미끄러진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개그맨인 이씨, 운동선수출신으로 한 때 방송인으로 잘나가던 강씨 등도 도박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하지 않았습니까? 최근에는 교회에서 간증도 하면서 자신이 은퇴이후에는 복음전도사가 되겠다고 간증한 트롯트의 황제라고 알려진 태진아씨가 미국에서 카지노에 가족과 함께 들렸다고 도박 스캔들에 휘말려 한 동안 홍역을 치렀습니다. 자신은 도박을 끊었다고 말하지만, 도박을 끊고 간증까지 한 사람이 왜 또 다시 도박장에 들어갔냐고 말할 때 할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번 일로 다시는 도박장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하면서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한 번 도박에 빠진 사람은 중독이 되면 쉽게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교회, 소위 이단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만, 오래 전에 교회 부채를 갚기 위해서 미국 라스베가스에 가서 빠징코에서 도박한 것이 방송을 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목사님이 어떻게 도박을 할 수 있느냐고 하자. 그는 말하기를 교회 빛을 갚기 위해서 도박을 하게 되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목사님이 도박에 빠져서 교인들에게 돈을 빌려가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 교회 있지를 못하고 나오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도박은 중독이라고 그러더라구요. 오래 전에 저희 교회에 나온 여성도가 있었습니다. 심방을 갔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어머니가 옥천에 사시는데, 시댁에 가면, 어머니가 도박을 해가지고 수 천 만원을 빚을 졌는데 자신들한테 빚을 갚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몇 번은 갚아 줬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자신의 남편과 결국 이혼을 하였습니다. 시어머니 도박 때문에 자식의 가정이 파탄이 난 것입니다.

 

세 번 째는 술과 마약입니다. 우리나라 문화는 술에 대해서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과는 달리 식당에서도 술을 판매합니다. 우리나라는 한해에 우리나라 성인 1인당 평균 98병의 소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출시 한 달 만에 150만 병이 팔린 이 소주, '처음처럼 순하리'입니다. 요즈음 대학생들과 여성들을 겨냥해서 순한 소주를 만들어서 호응이 좋다고 합니다. 술에 대해서 관대한 사회다 보니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취급하기도 합니다만,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술 소비가 적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여성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추수 때 아낙네들이 추수하고 힘들 때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요즘처럼 젊은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술잔을 권하고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히 남성문화인 술 문화에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술은 절대로 이롭지 않습니다. 담배 피우고, 거기에다가 술을 먹게 되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말을 방송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 에리사 국회의원이 소주 광고를 어린 소녀들이 하는 것을 법으로 규정했는데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술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술로 인한 범죄가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마약은 어떻습니까? 우리사회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지면서 마약하는 청소년들과 가정주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약을 하게 되면 신경계통에 이상이 와서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어서 결국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대하여 목말라 하고 갈증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삶에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권력욕, 도박, 술과 마약, 향락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적인 욕구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비정상적이고 부도덕적인 삶을 마다하지 않고 비윤리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것들이 절대로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가 복이 있고 배부를 것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란 무엇인가? 이다. 이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란 헬라어로 디카이오쉬넨이다. 이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째, 윤리적인 의이다. 둘째로 종교적인 의인 것이다.

 

먼저는 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권력을 추구할 때 편법이나 부정이 아닌 정상적인 올바른 방법으로 취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고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이나 마약, 술 취함이 왜 문제가 되는 가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행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당성과 적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술을 먹을 수 있지만, 그게 지나치게 되면 사람에게 실수 하게 되고 술로 인한 폐혜가 많고 건강에도 좋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종교적 의를 추구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고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교적인 의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때에 멸망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 받기 위해서는 심판의 기준인 공의에 합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기준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란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나 선행이 하나님 앞에서 가 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롬3,21-22에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의입니다.

 

따라서, “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기준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말씀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장차올 하나님의 정하신 심판해서 제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이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그 분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합니까? 목마른 사슴이 시내 물을 찾듯이 배고픈 자가 양식을 구하듯이 간절하게 자신의 영생과구원을 찾으면 그는 배부를 것이고 만족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않고 세상의 향락과 쾌락과 오락과 마약, , 도박 그리고 세상의 명예와 권세만을 쫒아가는 오늘 현대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 지어다”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오늘 날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세상의 유명한 사람들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따라 갑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배부름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소득 3만 불 시대에도 한국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들을 보십시오. 흉악범들이 설치고 있지 않습니까, 각종사회 범죄, 가정파괴, 예비군 훈련장에서 무차별 살인사건, 각종 성폭력 및 범죄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각종 대학가에서 교수들이 자신의 제자들을 성추행내지는 성 폭력 하는 사회입니다. 최근에는 천재교수라고 하는 서울 대 모교수가 1심에서 형량을 구형받았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부에 걸쳐서 정치계, 경제계, 종교계, 학계, 연예계, 스포츠 계 할 것 없이 곪지 않은 곳이 없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지 않고 목마르게 찾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만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 다른 의인 잎사귀로 만든 옷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양의 가죽으로 입은 가죽 옷만이 우리의 죄를 가리울 수 있고, 의로워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 마음과 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아버지와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만이 그 인생은 행복하고 만족하며,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의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영혼이 만족하고 행복하고 배부르시기를 축원합니다. 2014년 5월24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