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3) 마5:6
우리가 두 시간 동안 ‘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4번 째 말씀으로‘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는 자며 그는 반드시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나 오늘이나 많은 사람들이 ‘의’에 목말라 있지 않고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더욱 관심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주님은 이러한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것보다 더 높은 가치에 두고 살아갈 때 그의 인생은 행복하고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돈이나 명예나 쾌락 인기나 권력에 몰두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게 풍요롭고 안락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나서지만 사막의 신기루처럼 행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할리우드의 최고 미인 중의 한 명이었던 라켈 웰치(Raquel Welch)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부와 명예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영혼은 너무 불행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고도 어떻게 여전히 그렇게 불행할 수 있는지 놀라워요.” 그녀는 자신이 추구한 모든 것을 얻었지만 만족은 얻지 못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이 세상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 라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인기 연예인이나 가수, 유명인들이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추락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성공이나 명예나 부, 그리고 세상적인 쾌락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영혼의 만족을 얻어야 하는데,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나의 삶에 참 안식이 없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여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의 ‘수가’라고 하는 동네에 들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얼마되지 않은 곳에 ‘야곱의 우물’이라고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 피곤하여 우물곁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정오 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마리아 여인이 그곳에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물을 달라”하시니 그 사마리아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사마리아 인으로서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사람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말합니다.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자기와 자기 아들들이 여기서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때 예수님께서 인간의 목마름에 대한 근원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요4:13-14에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때 사마리아 여인은 “그런 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물이 있다면 내가 여기 왜 물을 길으러 왔겠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주님은 돌발적인 발언을 하십니다. 16절에 “가서 내 남편을 데려오라” 이 여자가 대답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맞다. 네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현재 있는 네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이 자신의 속을 훤하게 알게 계시는 주님에 대하여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합니다. 후에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인 줄을 알고 자신의 동네에 가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증거합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쾌락을 추구한 여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남자를 무려 다섯 명이나 바꾼 전형적인 화냥하는 여자입니다. 이 여자는 다섯 명의 남자를 바꾸었어도 자신이 만족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마르려니와” 여기서 이 물은 세상적인 쾌락, 인기, 명예, 권력, 학문, 부를 얻는 다 할지라도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그 어떤 것을 가지고 누린다 할지라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주는 이 물은 목마르지 않는 ‘생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면 절대로 목마르지 않습니다. 목마른 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목마름과 주림은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근원적인 갈증은 해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것이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정치에 뛰어들어서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된다 할지라도 인간은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늦게 공부를 하기도 하고 취미 활동도 합니다. 서예를 한다든지, 골프를 치기도 하고 여행을 다니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인간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영혼’이 만족을 얻어야 행복합니다. 동물은 먹을 것을 주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 혼, 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몸과 혼이 만족을 해도 하나님과의 신적인 관계가 헝클어지면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영혼’의 만족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인간이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어린아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엄마가 함께 있을 때 어린아이는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의 극치를 맛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추구해도 인간은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을 느끼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로 “의”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신적관계를 바로 맺을 때 인간의 영혼은 배부르며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애타게 목말라 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구세주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대속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자에게는 결코 주림이 없으며 목마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을 향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하지만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요6,26,27)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으로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6,35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51에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자신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마시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자신의 살과 피를 마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주님이 마지막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만찬 예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죽으신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 분이 무슨 죄를 저질러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벧전2,22-23에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은 인간적으로 한 번도 그릇된 행위나 잘못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는 조금도 잘못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자신의 고개를 떨어뜨리기 까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벧전 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000년 전에 갈보리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죄가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성만찬은 이러한 의미를 알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아가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순간에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의’를 힙 입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자신의 선행이나 공로나 노력이나 종교적인 행위에 의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2,12-13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댓가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길이며 또 그 은총 안에 머무르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의롭다 하시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의 의로써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를 입혀 주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우리의 의와 성결,,”이신 것입니다. 고전1,30에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구원받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본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도스의 의로 구원받아 살았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최근에도 그리스도인이면서 사회 지도층에 있는 인사들 가운데 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온당한 성품과 또는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가지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의 의로 자신의 불의를 방패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국무총리 내정자로 황교안 법무장관을 임명했습니다. 법무장관에 임명될 때에도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가지고 ‘종교편향’딱지를 붙여서 낙마시키려고 하더니 이번에도 타종교나 안티기독교들이 벌 떼처럼 일어나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기고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자신이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10살 때일이라고 합니다. 자신보다 9살 많은 누님이 몇 번 교회 데려다가 실패하자 교회가면 10환 준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10환이면 그 당시 왕 눈깔사탕 두 개 여서 제법 큰돈이었다고 합니다. 누나 뒤를 따라 처음 교회 가서 부른 노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영생을 얻으리로다." 그는 거기서 ‘죽음’과 ‘영생’ ‘멸망’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니? 영생이 무엇일까? 그리고 또 멸망이라니?" 그 예배시간 내내 어린 나의 머릿속에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이런 낯선 이야기들 때문에 여러 가지 의문들이 떠오르며 매우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교회에서 첫 예배 시간에 보고 들은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음에도 또 교회에 나가보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난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일들이 있었고 방언과 마음이 뜨거워지는 은혜를 체험이 있었고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검사로 제직하면서 ‘신우회’를 조직하였고 또 참여하여 직장복음화 활동에 열심을 내어 지금은 57개 검찰청에 대부분 신우회가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법무부 신우회에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예배를 드리고 직장복음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주님을 드러내며 사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주님은 나의 인생에 있어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이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목말라 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이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그리스도의 ‘의’가 충만 해지기위해서 노력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목말라 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며 이 땅에서 결코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자는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자에게 만족을 주십니다. 영생을 주시며 영원한 기쁨을 주십니다.
시편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주시리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대속자이시며 하나님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015년6월14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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