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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21-35, 용서, 가장 위대한 선택

gkffpffndi 2014. 12. 30. 10:29

마태복음 18:21-35, 용서, 가장 위대한 선택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와 우리 가정과 자녀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지난 한 해동안도 지구촌 곳곳에는 전쟁과 분쟁의 소식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틴의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분쟁 은 말할 것이 없고, 이슬람 극우 단체인 I.S. 무장 단체가 기독교 마을을 습격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참혹하게 살해 할 뿐 아니라, 평화의 목적으로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 까지 사로잡아 서방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여 잔인무도하게 사람들을 도끼로 참수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이들은 서방국가들, 즉 기독교 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을 죽이는데 아무런 양심에 가책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러시아와 유럽 국가들과 미국과의 적대감정도 최고조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내년에는 남북한 국가수립 70주년을 맞이하여 북한은 긴장을 격화시키면서 남한에게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김정은을 희화한 한 미국의 소니 영화사에서 만든 더 인텨뷰가 상영하기 직전에 북한으로 추정하는 단체에서 해킹을 하여 상영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대하여 즉각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겠다고 공언하자마자 북한의 인터넷 서버가 마비가 된 상태입니다.

 

바야흐로 사이버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중요기관인 한전원자력 발전소의 중요자료들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버 상의 가상 전쟁이 감정적인 폭발로 실제적인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까 전문가들이 염려하고 있는 바입니다. 개인과 개인 간의 싸움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도 감정적인 결과에 기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에 있어서 다툼과 전쟁은 서로간의 적대감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대한민국을 가장 아프게 한 사건이 있다면 안산 단원 고 학생들의 세월 호 사건으로 인해 꽃다운 청춘들이 바다에 수장되어 영원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가슴앓이를 했고 집단 우울증 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큰 슬픔에 빠져서 그들을 내 자식처럼 내 형제처럼 온 국민이 애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유족들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사람들에 의해서 국민들은 실망하고 국론이 분열되고 서로를 손가락질 하는 상태에 이르러 유족들이나 정부, 일반 국민들 까지 큰 상처를 서로 입게 되었습니다.

 

유족이나 정부, 그리고 일반 국민들은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기 보다는 마주 달려오는 열차처럼 극단을 선택한 결과 서로간의 상처의 골을 깊어졌고 더 큰 상처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소득의 양극화와 지역 간 계층 간 세대간, 이념간의 갈등의 골이 너무 깊이 패어져 있어 국민적 화합과 통합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정부나 국민, 재벌과 중소기업, 부자와 가난한 자, 여와 야,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갈등이 너무 커서 서로에 대하여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 보다는 적대적인 감정의 칼을 서로 겨누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회적인 사건이나 사고 등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원한과 분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즉 국민 개개인이 국가나 개인, 혹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단체에 대해서 분노를 가지고 있을 때 그 나라와 사회는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사회는 불만이 가득 차 있어서 언제든지 시한폭탄처럼 터질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용서하지 못하고 적대감과 원한과 분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는 불안정한 사회로 국민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국가와 정부가 알고 이 사회를 화합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서로 적대감정과 불만과 분노를 가진 채로는 국가가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창조적 에너지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시대에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화두는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한 해가 넘어가기 전에 서로가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새 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웹스터 사전(Webster’s New International Dictionary)의 정의에 따르면, 용서란 다른 사람이 내게 저지른 잘못된 행동으로 느끼는 분노를 멈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서의 반대가 분노라고 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거나, 거절당했다고 생각이 될 때, 혹은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상대방에 대하여 분노의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앙 갚음 하기 위하여 복수의 칼을 가지고 다닙니다.

 

이런 분노에서 사람을 용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에 따라 용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야 다르겠지만, 그 과정은 비슷하다. 분노와 두려움이 마음에 가득차면 결국 황폐한 삶을 살게 된다. 마음에 모래와 돌이 가득 차 있는데 금은보화가 많다고 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음에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면 신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에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있는 한 그의 마음에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관용은 가질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만, “용서는 사람사이의 물길을 튼다라는 책을 보면 거기에 한 신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분은 군종신부로써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에서 근무했는데 교회가 없어서 그곳에 여러 사람들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교회 공사를 1년 이상 진행했는데, 민간인 신자로 시몬이라는 부부가 열심히 도와주고 해서 그 사람들에게 총무 일을 맡기면서 공사 대금을 맡겼는데 공사가 70% 정도 진척되었을 때 은행에 알아보니 잔금이 제로 상태였습니다. 알아보니 시몬 부부가 신자들이 피같이 한푼 두 푼 모은 돈을 가지고 도망간 것입니다. 공사대금을 갚지 못하자 업자들이 와서 멱살과 허리춤을 잡고 집 밖으로 끌어내어 발로 밟고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주먹과 발길질이 사정없이 날라 와 이가 두 개나 빠지고 오른 쪽 귀의 고막이 터졌습니다. 날마다 돈 달라고 행패를 부리는 업자들로 고통을 당하면서 시몬을 향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신부는 불쑥불쑥 솟구쳐 오르는 미움과 분노를 삭이려고 연신 술을 마셨다. 가슴이 불덩이 끓어올라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24시간 술을 마셨다고 한다. “시몬, 네 이놈 너 잡으면 내 찢어 죽이고 말거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미사를 들일 수 없고 분노에 휩싸인 마음으로 성찬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슴에 쌓인 울화로 화병이 생기고 온 몸으로 퍼지면서 곳곳에 질병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심장병이 생겼다. 또 뭘 먹어도 위장이 소화를 시키지 못해 자꾸 체했다. 이 신부는 사제복을 벗고 세상 어디든지 찾아가서 그놈 죽이고 나도 죽어야지...,“ 그는 군복을 벗고 음성 꽃동네에 있다가 미움과 원망에 그의 방에는 온갖 약이 가득했다. 소화를 돕는 각종 위장약에 우울증, 변비약에 관장약까지 배속에 가스가 가득 차 부글거렸다. 어느 날 서울에 올라 온 그는 청계천에 들러 스위스 제 나이프 전문점을 찾아가 뽀쪽 날이 있는 칼을 사 주머니에 넣고 언제든지 시몬을 만나면 죽일 작정이었다. 꽃동네에서 요양을 마친 그는 청원군 미원에 있는 주임신부로 가게 되었다. 그는 미원 주임신부로 있으면서도 주머니에 3년 동안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사제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떳는 데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술에 취한 자 인줄 알고 복도를 지나 커튼을 젖히던 순간, 3년 동안 자나 깨나 찾았던 시몬이 거기 서 있는 것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때리는 순간 방망이를 내 던졌다. 시몬은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못 열어! 이놈의 새끼, ,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와? 내가 문 열고 나가면 너 내손에 죽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그리고 부리나케 방에 들어와서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자신의 마음속에 네가 신부냐, 아니면 조폭이냐?“ ”잘못했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야구 방망이를 들어?“ 제 입장이 되어 보세요. ”난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사람, 내 손에 못 박은 사람까지 다 용서했다.“ 나랑 인연을 이어가고 싶으면 그 사람 찾아가서 끌어안고 용서해 주렴 이 사건으로 그는 증평에 있는 저수지 허름한 주택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니, 거기서 농약병을 옆에 두고 죽기를 기다리는 그를 만나 서로 끌어안고 화해하고 용서를 하였다. 시몬아! 3년 동안 너 죽이는 생각만 하고 살았어, 난 지난 3년 동안 마귀처럼 살았어, 난 그냥 신부 옷만 입었지 신부가 아니었어! 화해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창을 여니 심장 폐부 깊숙한 곳에 맑은 공기가 들어와 세포하나 하나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좋은 곳에 가도 좋은지를 몰랐던 그가 마음의 미움과 우울증이 사라지자 눈에 들어오지 않던 하늘에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하늘도 예쁘고 날씨도 참 좋네요? “드디어 해방되었어요! 나는 이제 자유를 얻었어요. 지독하게 나를 물고 늘어지던 미움이란 놈이 온데 간데 사라졌어요.

 

감리교의 목사 존 플러머는 현재 버지니아 주의 작은 도시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이런 평화로운 삶을 누렸던 것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 때 헬기 조종사였던 존은 1972년 트랑방이라는 마을에 네이팜탄 폭격을 하는데 일조했던 장본인이다. 이 폭격 사건은 당시 현장에서 찍힌 킴 푹이라는 베트남 소녀의 사진이 플리처 상을 받게 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늘로 소용돌이쳐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뒤로하고 화상당한 몸으로 벌거벗은 채 겁에 질려 절규하며 손을 벌리고 카메라를 향해 달려오던 소녀의 모습은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전 세계에 고발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존을 따라 다니면서 24년간 괴롭힌 것이다. 존은 24년 동안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했다. 그 소녀를 찾아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으로 민간인이 죽고 마을이 초토화 됬다는 사실에 결혼에 실패하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1996년 재향 군인의 날 존은 우연히 베트남 전 참전 용사 기념식에서 킴 푹을 만나게 된다. 킴 푹은 이제 자신의 마음속에 분노나 고통이 없다고 말했다. 그 때의 화상 때문에 통증이 심하지만, 킼푹은 자기 마을 공격한 사람들을 용서하며 이제는 평화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갑자기 존은 군중을 헤치고 단상으로 올라왔고 자신이 바로 24년 전에 그녀의 마을을 폭격한 조종사라고 밝혔고, 그곳에서 킴푹은 당신을 용서합니다.”그 이후 계속해서 절친한 친구로 사귀면서 존은 그렇게 찾아 헤메던 평안을 찾았다고 한다. 과거 전쟁의 기억이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자신을 용서하고 그 사건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어디 이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이 뿐이겠습니까? 시아버지가 자신들에게 재산을 준다고 해 놓고 시동생에게 집문서를 내주고 자신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아서 배신을 당한 며느리, 자신의 남편에게 버림받은 부인, 삼촌에게 성적으로 학대받은 조카, 가스실에서 600만 명을 어린아이 까지 무참히 죽인 히틀러의 만행 등입니다. 개인이나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적대감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이런 상처와 고통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비유하면 일백데나리온의 빚에 불과 합니다. 그 당시 하루 일당이 한 데나리온이니까? 일백데나리온이란 하루에 노동자 임금을 10만원으로 잡아도 1000만원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값을 수 있는 부채입니다. 하지만 임금에게 빚진 자는 일만 달란트입니다. 한 달란트가 금 34키로니까 이것을 오늘날 환율로 계산하니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인 이건희씨의 재산이 13조 정도 되는데, 이보다 더 많은 금액 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평생을 벌어도 값을 수 없는 없는 엄청난 부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임금이 탕감해준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헌데, 이 사람은 이런 엄청난 부채를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일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자 그것을 갚으라고 빚 진자의 멱살을 잡고 빚을 갚을라고 종용할 때 그 빚진 자가 조그만 참으면 자신이 갚겠다고 했음에도 그 빚진 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보던 그 동료들이 이 사실을 임금에게 알리자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5절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엄청난 빚을 진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십자가위에서 무어라 말씀 하셨습까? 다 이루었다. 저들이 자신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눈 감아 줄 수 없는 엄청난 그야말로 일만 달란트나 되는 죄를 다 용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는 그 어떤 것으로 배상해도 갚을 수 없는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 이 은혜를 아는 자는 자신에게 아픔과 상처, 그리고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고통과 아픔을 준 사람에 대하여 마음을 풀지 않고 그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세월을 보낸다면 그것은 자산에게도 고통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불완전하고 실수 많고 죄 많은 사람임을 시인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에 대하여 관용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지나 오면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가족, 즉 남편과 아내, 자녀, 그리고 부모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혔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곧 그것은 자신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분노의 감정과 원한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여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있으면 화병에 걸리고 우울증과 함께 위장병, 그리고 심장병에 걸려 갑자기 죽을 수 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살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안에 미움을 털어내고 예수님의 용서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용서는 상대방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행한 죄로 인해서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겠습니까? 우리가 나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하여 미움과 분노대신에 예수님의 긍휼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긍휼이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군중들을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연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픔의 시기에 그 사람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고통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위안이 필요한 시기에 그 친구 옆에 머무르면서 손을 잡아주고 계속 그 친구를 안심시킨다는 것은 대단한 인격의 힘을 요구한다.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그것이 날개를 달고 다시 내게로 되돌아온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에 대하여 1%씩 연민과 사랑을 준다고 가정할 때 65%에 이르면 그 사람은 과거 사건을 과거 사건을 계속 떠올리는 습관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상처가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느낌들은 이전만큼 그렇게 강렬하지 않고 아주 작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2014년도를 영원한 시간 속에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나에게 말과 행동으로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준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로 그들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야 말로 구원받은 자로써 가장 위대한 선택입니다. 이 용서는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고 이 사회와 국가를 살리는 길임을 깨닫고 2015년에 밝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20141231일 벧엘성결교회 송구영신 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