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1:13-25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당시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네로 황제에게 박해를 받는 시기로써 사람들이 낙심과 좌절 속에 있을 때 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진 자로써 잠깐 고난을 받지만, 그것이 영원히 오래 가지 못하고 오히려 이러한 박해가 신자들의 믿음의 실체를 보여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산 소망을 가진 자라서 거듭난 신자들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는 첫째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3-15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하신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 하셨느리라.
아마도 베드로가 이러한 말을 한 배경에는 당시에 로마 사회가 퇴폐하고 방탕한 사회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1000년 로마가 멸망한 것은 외부로부터 침략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내부로부터 붕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로마에 관한 영화를 보아서 알고 있지만, 로마 사회는 성적으로 문란하여 독신주의가 유행하였고, 동성연애가 빈번하고 부도덕하고 퇴폐한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로마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사도 베드로는 로마의 멸망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세속화된 사회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하지 않은 것을 알면 우리가 쉽게 거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삶에 대하여 2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바울은 로마서 1:18-32에서, 정욕대로 사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다 우상을 더 섬기는 삶이요, 비정상적인 행태의 성적죄악, 그리고 29-30절에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입니다. 인간은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타락한 이후 이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범죄 하여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자는 거듭난 순간에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이식되기 때문에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거룩한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성도는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거룩을 열망하는 것입니다. 거룩을 다른 말로 말하면 “성결”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웨슬리는 이것을 온전한 성화라고 말했습니다. 거듭난 신자는 그 이후에 계속해서 성결한 삶을 추구합니다. 성결한 삶을 깨끗한 삶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사는 자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마22장에 혼인 잔치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 비유에서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하면서, 종들을 시켜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으니까 사람을 만나는 대로 데리고 옵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옵니다. 그런데 임금이 와서 보니 자신의 혼인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 사람을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곳에 내던지면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 나라에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예복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계22:14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는 복이 있으니,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세마포, 혹은 두루마리, 예복은 성도들의 올바른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1:27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오늘 우리가 세속사회에서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삶을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18-19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어 없어질 것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 째, 구원 받은 신자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세상을 나그네 생활로 비유하고 하고 있습니다. 최희준의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이랑 두지 말자. 이 분은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성경은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깐 있다고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4) 시편102:2은 인생을 연기라고 했습니다. 욥기7:7에서 인생은 호흡이라고 했습니다. 시편78:39에서는 인생을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이 그렇다는 거지요. 대상 29:15에서 다윗도 인생을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인생은 풀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풀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항상 나하고 같이 있을 것 같았던 부모님들이 이 세상을 떠나나고 형제가 떠나가고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잘 아는 이 시대에 스크린 배우로써 오랫동안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톱스타 였던 김자옥 권사님이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작년 인가요 올해인가 꽃보다 누나 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해외여행을 여러 배우들과 해외로케로 찍은 것을 본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만 해도 그렇게 해외를 여행할 정도로 건강하셨던 분인데, 갑자기 지난주에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분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푼 것 같아서인지 많은 연예인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지인들이 갑자기 떠나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고통 없는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혹은 하늘나라에서 이제는 편히 쉬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곁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 특별히 낙엽이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스치는 늦가을이나 추운 겨울이 되면 나이 드신 분들은 자신의 축처진 어깨나,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쇠하고 육신이 연약해지는 모습 속에서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언제나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건강도 젊음도 청춘도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우리의 생명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베드로 사도는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 이후에 이 세상에서 나그네 삶에 대하여 결산하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2:16절 이하에 보면, 한 부자가 나옵니다. 이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소출이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창고를 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출을 그곳에 저장하여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에게 말하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잘못인가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사람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물질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성경에 양 아흔 아홉 마리 가진 자가 한 마리 양을 탐내는 자처럼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는 아까운 줄 모르고 낭비하고 사치합니다. 얼마 전에 나라와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사이비 교주의 죽음을 보세요. 그가 어떻게 살다 갔습니까?
성경은 이 세상의 나그네 삶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육신은 죽으면 땅속에 묻히지만, 우리 영혼은 죽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 대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20:11-13절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그러므로 거듭난 신자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벧전4:2에서 “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나그네를 있을 때 내 자신의 정욕을 위해서 살지 말고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세 번 째로 거듭난 신자는 진리에 순종하고 우리 영혼을 깨끗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우리 인생은 풀과 같습니다. 본문 24-25절을 현대어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포기처럼 허무하고 인간의 모든 영화와 권세도 들에 핀 꽃들과 다를 것이 없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부와 명예와 권세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처럼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인생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하고 했습니다.
성결교의 유명한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 성가 중에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인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상 고난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참으로 인생은 풀과 같고 그 모든 권세와 영광도 풀의 꽃처럼 떨어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프랑스의 위대한 영웅 황제 나폴레옹의 모자가 경매로 나왔는데 우리나라 닭고기로 유명한 하림 회장이 25억 8천만원에 낙찰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신사옥 회사를 건립해서 전시장에 놓아서 사람들을 모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마지막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죽으면 관에다가 구멍을 뚫고서 자신의 양 팔을 내어 보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 같은 황제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손에 가진 것이 없다고 간다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이 땅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베드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순전한 마음으로 믿음의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계명은 새 계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새 계명입니까? 사람들이 이 계명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요13:34-35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일서4:7-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왜냐한면,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모든 인류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체험한 우리들이 멸망으로 달려가는 저들에게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게도 일어납니다. 내 주변의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일서3:16-18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에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서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잠깐 있다가 가는 나그네입니다. 우리 인생의 영화와 영광과 부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거듭난 신자처럼 거룩을 추구하여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4년 11월 23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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