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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복음 고전1:18-25

gkffpffndi 2014. 3. 10. 12:43

 

십자가의 복음 고전1:18-25

고린도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기원전 8세기에는 인구 25만정도의 거대한 상업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성경에는 고린도라고 나와 있지만 세계사에는 코린트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건축 양식 가운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그리고 코린트식이라고 하는 건축양식이 있음을 알 고 있습니다. 고린도는 고대에 국제적인 무역도시로 세계 각국의 상인과 선원들이 모여들어 늘 북적거리는 도시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고린도라고 하는 도시가 고대도시로서 상당히 번영하고 부유한 도시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대 고린도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당대의 퇴폐와 환락과 향락이 넘쳐나는 최대의 환락의 도시 매춘도시였습니다. 그 당시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명 이상의 무녀들이 있어 이들이 사실상 종교적인 행위로서 매춘이 이루어 졌고 음란한 일들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헬라철학이었습니다, 17,18에서 보듯이 고린도 에베소 아덴 같은 도시는 헬라문명과 철학이 꽃 피우던 곳입니다. 철학이 무엇입니까? 철학을 뜻하는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함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는 고대로부터 철학이 발전한 곳이었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을 배출해 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던 고린도 에베소 아덴 같은 도시들도 모두가 헬라의 유명한 도시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를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중에 에피쿠로스학파는 (BC342-BC270) 모든 존재가 원자로 되어 있으며 신들도 원자로 구성되어 물질적인 현상이 있다고 믿었으므로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는 견해였기 때문에 이들 학파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의지가 없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검소한 생활로 마음의 평화 아타락시아를 얻는 것이 진정한 쾌락이라고 주장 하였으므로 이들을 쾌락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한마디로 무신론자입니다. 종교로 말하면 불교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다른 하나는 제논이(BC335-263) 창설한 스토아학파인데 이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연이 부여한 자기 운명 속에서 순응하면서 살아가며,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이렇듯 바울이 고린도에 복음을 전할 당시에 고린도는 향락과 퇴폐가 만연한 도시인 반면에 헬라철학이 만발한 곳으로 사람들이 참된 지식과 지혜를 찾아서 아고라에서 거리에서 토론과 격론이 벌여졌고 지적인 욕구가 충천해서 철학과 예술 문화, 수학 등 그리스 헬라문화가 꽃 피웠던 시기 였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 참된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 교회도 그리스 헬라문화의 영향아래 있었습니다.

 

바로 그곳에 바울사도가 고린도에 기원후 51,2년 머물면서 이곳에서 16개월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온 글로에에 의해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 안에 분파가 있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누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이유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셨고 33년 동안 우리와 같이 사시다가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갈릴리 나사렛 출신 젊은 청년 예수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분이 메시야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이 고통스럽고 질병이 많고 죽음이 기다리는 이 세상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바울은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헬라철학으로 무장한 헬라의 소피스트들이 바울의 말에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헬라문화가 꽃핀 그 장소에서 바울은 그들의 철학적인 지식과 지혜로 무장한 그들과 변론하면서 아니 수많은 신들을 만들고 섬기는 그들에게 갈릴리 시골 목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바울사도에 대하여 그들이 어떤 시선과 태도를 취했을 것인지는 충분히 상상히 되어지는 것입니다.

 

헬라철학과 지식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있어서 바울의 소리는 공허한 소리였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식한 소리요 미련한 소리였을 것입니다. 헬라철학에 있어서 스토아 철학과 에비구로스 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바울의 메세시지는 그들에게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심오한 철학이나 새로운 학문이나 신지식에 관심이 있지 로마 권력에 의해서 힘없이 무릎 꿇고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 시대의 구원자라고 하는 말이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오늘의 시대에 있어서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십자가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어리석게 보입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2000년 전에 죽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세주라고 하는 메시지가 현대인들에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것입니다.

 

얼마 전 저희 아들이 학교에서 신입생 학생들에게 기독교 동아리인 CCC에서 나와서 학생들에게 동아리를 소개하고 마지막에 예수라고 하는 말을 했더니 거기 않아 있던 학생들이 예수쟁이하고 비아냥거리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아냥과 조롱이 이 시대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가 막 전파되고 꽃피려고 하는 그 때에도, 고린도에서도 일어났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스 헬라사상과 철학이 사람들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는 것같이 보였던 것처럼 오늘 날 현대과학과 물질문명과 최첨단 기술과 신지식이 사람들에게 매력 있게 보이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이고 시대에 뒤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참된 종교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처럼 사람들은 참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현재의 삶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불교의 유명한 스님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또한 달라이라마나 탓닛한과 같은 사람의 글과 강연에 매료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직장인들이 절을 찾아서 템플 스테이를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일상에서 지치고 피곤한 생활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휴식과 여유로움을 찾고자 하기 위함 일 것입니다. 템플 스테이에 참석한 사람들은 힘들지도 않고 평안을 찾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물질문명과 살벌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영적인 그 무엇을 찾고자 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현대인들은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마치 헬라철학의 에비쿠로스 학파처럼 마음의 평안 즉 아타락시아를 찾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처럼 종교다원주의 내지는 포용주의를 주장하는 이 시대에 기독교는 배타적인 종교로 낙인찍히고 편협하고 옹졸한 종교로 비춰진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는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종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즈음처럼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의 세습과 배타주의.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교회재정의 불투명, 교회안의 분열 등으로 사회적 신뢰도가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때는 한국사회의 등불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3.1절이 지나갔습니다만. 3.1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사람들 33인 가운데 개신교인이 16명으로 우리 민족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개신교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지식인이나 젊은이들이 서울의 정동 교회 등에서 모여서 3.1운동을 준비했었습니다. 그 당시 민족의 지도자인 이승만 김구 안창호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인 이었습니다. 또한 개신교는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YMCA, YWCA 등을 중심으로 시민운동과 함께 민족의 계몽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국민들이 부지런하고 산업화의 토대를 이루었는데, 이 새마을 운동의 시초는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님의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역사상 지원받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나라로 유일하게 바뀐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여전히 국가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훨씬 더 앞서고 뜨겁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박수와 갈채, 그리고 환호를 보냅니다. 위대한 정치가나 과학자 예술가, 그리고 김연아나 추신수 류현진등 세계적인 인물들에게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이고 후레쉬 포탄을 맞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팬 카페가 만들어지고 열광적인 광신자 이상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룹이 형성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유명인들에게 소속되어 있거나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유명 배우 가운데 배용준이라고 하는 배우가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는 욘사마로 통하는데 이 배용준이 일본 공황에 도착하면 일본의 수많은 가정주부들이 공황에 나와서 욘사마 얼굴을 보고 싸인 받기 위해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현재 일본 아베 총리의 부인이 배용준의 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유명인들에게 자신의 혼과 마음을 다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삶들이 그들에게는 지혜롭게 보이고 멋있게 보이고 삶의 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들의 시간과 물질과 열정을 그런 곳에 투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삶을 즐기는 것이고 지혜롭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에 대하여 성경은 어리석은 것이요 지혜롭지 못하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0절에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 21a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바울사도가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22절에 나와 있습니다.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그 당시 헬라철학자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도서관에서 지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적인 지혜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참 평안도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은 흉악범이 매달리는 곳, 로마의 반역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의 상징이요. 곧 죄인들의 형틀이기에 결코 그것이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바로 그 십자가에서 죽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원자요 메시야라고 전파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25절에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헬라의 지식과 지혜와 철학으로 무장한 그 당시 사람들에게 바울은 사람의 지혜, 즉 헬라철학을 가지고 설득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 즉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셔서 그 당시 로마권력과 종교지도자들의 모함과 고소에 의해서 십자가위에서 희생당하신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 라고 외쳤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증거 하였을 때 사람들이 믿었겠습니까? 이미 로마 군사들에 의해서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 해갔다는 말이 시중에 나돌았을 것이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기절했을 것이라는 이런 낭설들이 생생하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시절에 나사렛 예수가 삼일 만에 부활 했다고 하는 이러한 사도들의 메시지가 얼마나 어리석고 황당하게 들렸을 것임만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자신들의 보고 들은 것은 것을 전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은 담대하게 십자가의 복음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어 예수를 핍박하던 자리에서 예수를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회당에서 거리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지중해 변을 중심으로 해서 1,2,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위험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고후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이런 위험 가운데 있으면서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복음에 대한 긴박감 내지는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 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긴박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준 사람은 영국의 로버트 저매인 토마스 선교사입니다. 그는 184097일 웨일즈의 라야더의 회중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59년 런던대학교 뉴 칼리지를 졸업하고 186364일 목사안수를 받고 721일 부인과 함께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고 중국을 떠났다. 하지만 중국에서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을 잃었다 아내를 슬픔에 잠시 세관에 있었으나 사명감을 회복하였다. 당시 천주교 박해에 대한 소식을 천주교 박해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65913일 황해도 연안 창린도에 도착한 토마스는 12월까 약 2개월 반 동안 성경을 나누어 주면서 조선에 대한 탐색을 하였다. 그리고 태풍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채 북경으로 되돌아 갔다. 북경에 있는 동안 미국 상선 제너널 셔먼호가 한국으로 떠난 다는 소식을 듣고 통역요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조선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외국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때였는데 외국함대 들이 조선을 드나든다는 소문에 민감했던 시절에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 밀물 때 들어왔다가 썰물이 되어 물이 나가므로 배가 모래에 걸려 꼼짝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고 기다리던 조선의 병사들이 배에다 불을 놓음으로써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뭍에 내리자 기다렸던 조선 병사들이 하나씩 죽이기를 시작했는데 토마스 선교사도 성경책을 쥐고 뭍에 내려오자 조선병사 박춘권이 칼로 쳐 죽임으로써 한국 최초 개신교 선교사 순교자가 된 것이다. 토마스는 자기를 죽이는 박춘권에게 성경을 내밀었는데 후에 그가 예수 믿어 안주교회의 영수가 되었고 성경을 찢어서 자신의 집의 벽지로 썼던 영문주사 박영식은 자신의 집을 평양 최초의 교회 널다리 교회가 되었다 토머스 선교사가 칼을 맞고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된 것은 186692일로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는 이렇게 숨져 갔지만 그가 전해 준 복음은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어 평양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었고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어 오늘 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복음의 나라가 되어 전 세계에서 두 번 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지혜나 지식, 그리고 경험이나 학문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 즉 부활만이 인간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 날 교회가 소망 없는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기독교 역사 이천년 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였겠습니까? 돈이나 명예를 준다하여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능력을 보았고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로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구원합니다. 그것은 21b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하는 것이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후4,1-2절에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5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눈을 들어 밭을 보시기 바랍니다. 희어져 추수 때가 다 되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습니다. 내 주변의 믿지 않는 이웃과 친족들에게 이 십자가의 복음, 즉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므로 저들을 지옥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4년 3월 16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