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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8:12-30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gkffpffndi 2014. 2. 20. 20:27

 

요한복음8:12-30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지난 시간에 우리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데리고 온 간음한 여인에 대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달리 주님은 위대한 용서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죄하고 심판하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일침을 가하시면서 너희 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말씀하시며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자신들을 돌아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어 예수님의 위대한 용서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계속해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예수와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1.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자신을 가리켜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둠에 지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어둠의 주인인 사탄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 세상은 어둠의 괴수인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속에서 악한 자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자 어둠의 지배를 받은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올무를 씌워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22:39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에 감람산에 올라가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6절에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하실 때에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유다가 군인들을 이끌고 와서 예수님의 입에 입 맞추고 예수를 팔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하시니 그 중 한 사람이 대제사장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하여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것 까지 참으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처럼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있어 성전에 있을 때에는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하지만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22:53절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 이니라 요 3:19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볼 때 이 세상은 확실히 악이 지배하는 세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진천 중앙교회에서 교회 설립 60주년을 맞이해서 몇 년 씩 계를 부어서 성지순례를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알 카에다의 조직원으로 이슬람의 과격분자에 의해서 현지가이드와 동행한 가이드 그리고 성도 1명이 사망을 당하고 십여명의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폭탄테러에 의한 것에 비하여 그나마 많은 사상자들이 나지 않은 것은 살인 성인한 현지가이드와 동행한 가이드가 자신의 온몸으로 막아서 피해가 적었다고 합니다. 현지 가이드인 제씨도 교인으로 성실한 사람으로서 그 전 주에서 교회에서 떡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국민으로서 안타까워해야 할 때에 오히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슬픔 당한 국민들을 위로하기 보다는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007년도 샘물교회 봉사단 아프카니스탄 봉사단 때에도 온갖 모략과 중상으로 인터넷을 달구어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관한 일이면 맹목적으로 공격하고 온갖 욕설을 퍼붓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어둠의 자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이 어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요일 2:11

 

그러기에 주님은 당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에 속해 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악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어둠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38년 동안 몸져 누워있던 사람들을 일으켰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수많은 질병 속에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예수만이 이 세상의 빛임을 확실하게 증명하셨습니다.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선생은 만약 등대가 될 수 없다면 양초라도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빛 되신 주님을 믿어 생명의 빛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결코 어둠 속에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해가 있는 곳에는 어둠이 존재할 수 없듯이 생명의 빛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둠이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아침이 오면 어둠이 자연적으로 물러가듯이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어둠이 지배할 수 없습니다. 악이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악한 행위나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지금 즉시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를 뿐 아니라, 생명의 빛을 비추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내 판단이 옳은 것은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서 자기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하자 바리새인들은 즉각 반격에 나섭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너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유대 율법에 의하면 자기 자신의 증언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치않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다고 스스로 말한다면 누가 그 말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적어도 제 3자가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법정에서의 증인의 증거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바리새인의 반론에 대하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해도 내 증언은 참되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증언은 예수 자신만의 증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증거는 성부 하나님, 성자 자신,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인 신비스런 삼위일체이십니다. 그렇다고 삼신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지금 자신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자신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육체에 속한 바리새인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성부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육체를 가진 예수님만을 알고 있지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 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온 자임을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5절에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바리새인들은 육체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만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는 명성 있는 가문 출신도 아니고 부유하고 넉넉한 집안의 자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모도 그저 노동자 출신의 목수였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53:2절에"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판단은 바리새인들의 판단하고는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절대로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육체를 따라판단한 것은 그들이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5: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아니한다. 혹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옳은 것은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이가 자신과 함께 계심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자신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늘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판단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 아버지의 뜻을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항상 올바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내가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는 것을 어떻게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반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혼자 증거자가 아니라, 자신을 증거 하는 자가 계시는데 그 분은 너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확실히 증거 하는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증거는 참되며 자신을 증거 하는 성부 하나님 아버지는 항상 자신과 함께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을 판단할 때 육체를 따라 판단합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판단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판단은 자신만의 판단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완전하십니다.

 

3.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시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대하여 증언하신다고 말하자, 바리새인들은 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예수가 자신이 아버지와 자신은 하나이다. 라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더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예수는 바리새인들과의 이런 논쟁을 통해서 자신과 성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서 온 자요, 하늘에 속한 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곧 가게 된다고 말하면서 너희는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수가 자신이 가게 된다고 하는 것은 이제 곧 있을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는 곳에 바리새인들은 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바리새인의 의를 가지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규범이나 규율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아주 철저하고 엄격하였습니다. 그들은 정한 절기를 지키고 금식을 하고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하였지만, 율법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자리에 올라 있었기에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습니까? 예수처럼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에 대하여 용서하고 관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외모를 자랑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것으로 천국백성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예수와 엄격히 구별하고 예수 보다는 종교적,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여 예수를 판단하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예수는 이런 바리새인들의 행위에 대하여 판단할 것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시면서 자신은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달리 피조된 세상에서 온 자가 아니고 위에서부터 온 자로서 하늘에 속한 자임을 나타내십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하여 드러내자 유대인들은 그러면 네가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자신에 대하여 분명히 드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 것은 그들이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28a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 승천을 통해서 비로소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예수님과 많은 대화를 하였음에도 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들어도, 아니 교회에 나와 있어도 즉 종교적인 생활을 한다 할지라고 예수님을 체험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 분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 안에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고 행복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어둠속에 있지 말고 빛 되신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서 다른 사람에 대하여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4년 2월 23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