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자는 /요7:37-44
오늘 읽은 말씀은 유대인의 절기인 장막절 끝 날 곧 큰 날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장막절은 유대인들인 광야 40년 생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절기 인데 장막을 치고 8일 동안 야외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은 자신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지내던 때를 기억하고 조상들의 고난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광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었습니다. 르비딤이란 곳에서 물을 찾아보았지만 물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원망 소리를 듣던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반석을 치자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거기 광야에 있던 수십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장막절은 이러한 광야 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였습니다. 저는 이 시간 “ 나를 믿는 자는 ”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명절, 즉 장막절 끝 날에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기념하여 장막절 행사를 8일 동안 기념하게 되는데 이때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흰옷을 입고 긴 행렬을 지어 성전 뜰을 떠나서 길거리 가운데를 행진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문을 지나 실로암 못에 도착하게 되면 제사장들이 준비한 물병에 물을 담아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실로암 연못에서 떠온 물을 제단에 부으면서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종려나무를 흔드는 종교적인 ‘세레모니’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장막절은 8일 동안 진행 되는데 보통은 매일 한 번씩 물을 길러 제단에 붓는 의식을 행하다가 마지막 날에는 일곱 번 물을 길러 와 제단에 물을 긷는 의식을 행하므로 이 날을 마지막 날 곧 큰 날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종교 ‘퍼퍼먼스’ 즉, 실로암 연못가에서 물을 길어다 제단에 붓는 의식은 광야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 일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자손들에게 알리고 그 자손들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명절 끝 날에는 실로암 연못가에서 7번을 물을 길러 와서 제단에 물을 붓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첫 번째 도성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하나님께서 하루에 한 번 씩 돌되 맨 마지막 날에는 일곱 번을 돌므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의식을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거룩한 의식을 행하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쳤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외침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아마도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인 대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 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군중을 선동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율법을 파괴하는 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가는 곳에 집중하고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명절 중간 쯤 되어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 주변에 모여들기를 시작했고 예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가 배우지 아니한 사람인데 어떻게 저런 교훈을 할 수 있는지 놀란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6:15절에,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이러한 예수의 말씀을 듣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자 유대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이고자 사람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군중들의 시선 때문에 어떻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는 군중 사이를 비집고 바리새인들의 시선을 피해서 명절 곧 큰 날에 제단에 물을 일곱 번 붓는 의식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아셨기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질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쾌락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약이나 아편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이나 도박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마름으로는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외침입니다.
2.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장막절 마지막 날에 제단에 일곱 번 물을 붓는 의식이 끝났을 때 그 의식을 보고 계시던 주님은 화가 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을 하는 목적은 광야에서 반석을 쳐서 생수를 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간과 한 채 유대인들은 하나의 명절로서 종교적인 하나의 퍼퍼먼스로 전락한 이 모습에 주님은 분노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종교행사로 교회가 나간다면 그 종교는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즉 이제 까지 유대인들은 눈으로 보이는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중요시 했습니다. 어느 덧 유대인들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세워진 성전이 자신들의 우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보이는 성전의 시대는 끝이 나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려 있다.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가 왔는데도 여전히 보이는 성전에 얽매어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것입니다.
요한복음2:13-21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이 가까워오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화가 나시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 쫒으시면서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사람들을 내 쫒으셨습니다. 이 때 유대인들이 네가 뭔대 이렇게 난리를 피우느냐, 무슨 표적을 보일 수 있느냐? 이렇게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9-21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보이는 성전에서 종교의식이 인간에게 참 행복과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인생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주실 것이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물이 없는 곳에 물을 내게 하셔서 광야 생활에서 목마름을 해결하시고 광야에 생수를 흐르게 하신 하나님께서 인생의 갈증과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인들이 우상처럼 섬기는 성전제사를 통해서 인생의 목마름과 영생을 해결할 수 없고, 새로운 성전인 예수를 통해서 인생의 근원적인 목마름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까? 주님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주님에게 오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생수를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생수이신 성령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인생의 근원적인 목마름에 애타하는 인생이 있으면 자신에게로 나아와서 마시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예수님은 돈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 가진 자만이 오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박사 학위 가진 자만 오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가난한 자나, 부자나, 배운 자나 무식한자나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주님께로 나아와서 생수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격이나 신분을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생수는 모두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선물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눅14:15-24에 보면, 예수님의 큰 잔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어놓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습니다. 잔치할 즈음에 종을 보내어 우리 잔치에 참여 하소서, 아주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져 오실 것 없고 몸만 오시면 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지만 사람들이 다 사양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밭을 사서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한사람은 소 다섯 마리를 사서 그 소로 밭을 한 번 일구어 보아야 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은 장가 들어서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종이 돌아와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다 사정이 있어서 오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하죠? 그 말을 듣던 주인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여 다 데려 왔으나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하자 주인은 강권하여 내 집에 채우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큰 잔치는 천국 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서 목말라 하고 영적으로 굶주려 있는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근원적인 목마름, 즉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여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다 할지라도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는 그 인생은 행복하지 않고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복한 인생이 되고 인생의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서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생수의 강은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47:1-12절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전의 문지방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데 그 물이 점점 흘러 넘쳐 사람들이 건널 수 없을 만큼 강을 이루게 됩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고 이 물이 흘러가는 곳에 바닷물이 살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가 다 살고 과일나무와 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데 그 물이 성소를 통해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도 22:1-2에,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와서 강 좌우의 나무가 열매가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이천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역사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역사할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낙심 중에 있는 자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배에서부터 성령이 흘러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배”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또한 “배” 인간의 탐욕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깊은 곳에 탐욕과 명예로 채우지 말고 성령으로 가득 채워 성령이 역사하는 마음의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보이는 성전”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 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보이는 성전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고 보이지 않는 성전, 즉 마음속에 성전이 있고 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생수의 강”인 “성령”이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영혼은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마음속에 기쁨의 강물이 흘러넘쳐 그 영혼이 만족을 얻고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유대인은 보이는 성전만을 중요시하였습니다. 종교적인 퍼퍼먼스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물인 성령이 흘러넘쳐서 예수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4년 2월 9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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