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 정체성 확인 요7:25-36
요한복음 7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하여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초막절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예루살렘을 하여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비밀리에 올라가셨다고 하는 것은 메시야 비밀의 동기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초막절에 은밀하게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서 성전 뜰 가운데 서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였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일명 장막절이라고 하는데 올리브와 포도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로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바뀌었다.
이 초막절에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만들기 위하여 갈릴리 시골에 있는 것 보다, 좀 더 큰 도시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했지만 예수는 그들을 먼저 보내고 그 후에 은밀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초막절 행사에 참석하였다.
이미 예루살렘에는 예수의 소문이 퍼져 사람들은 수군수군 거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사람을 미혹한다고 하였다.
드디어 예수가 명절 중간에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기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은 다른 선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으로 인해 예루살렘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질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 한 것이다. 이미 예루살렘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25절에 “ 예루살렘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은 그들의 율법인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쳤다고 하는 일입니다. 안식일에 행한 이 사건은 분명히 선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의 행위가 자신의 율법에 어긋난다고 하여 예수를 미워하고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보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요 자비요 긍휼의마음 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입니다. 바로 율법 아래 종노릇 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26절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여기서 예루살렘에 사는 주민들은 생각했습니다. 아니, 저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데도 왜? 잡아가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국자들, 즉 유대 지도자들은 이 예수를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로 인정하는 것인가? 입니다.
아닙니다. 만약에 이 예수를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로 생각했다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자 사람들인 솔로몬 행각에 모여 들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사람을 고친 것을 내 개인의 능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나를 쳐다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을 일으킨 것은 절대고 내 능력이 아닙니다. 그럼, 뭐냐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의 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하였느니라. 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이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로 여겼다면 절대로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라고 인식했다면 절대로 예수님이 하는 일에 대하여 트집 잡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7절에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여기서 그들이 예수를 알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한 목수의 아들로 알고 있는 것이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여기서 예루살렘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은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이야기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도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오시는지 알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보더라도 그들은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 떡집에서 나신다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장에 보면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 땅에 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즈음에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 까지 아이가 나신 곳을 찾으러 왔었습니다. 이 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하늘에 떠 있는 큰 별을 찾아 왔지만, 성서학자들은 이들은 페르시아에서 별을 연구하였고, 그리고 그곳에서 유대인들에게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별을 연구하다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유대 땅에 도착해서 헤롯왕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2:2절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이 말을 들은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렇치않겠습니까? 멀쩡한 왕 헤롯이 있는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로마압제 아래 있는 유대인들은 귀가 번쩍이는 소식이었을 것이고 헤롯왕은 초긴장 상태였을 것입니다. 누가 혹시 이 소식을 듣고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 까 노심초사 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대로 후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해서 두 살 아래에 사내아이를 다 죽였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계획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어 메시야를 죽이기 위해서 헤롯을 동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탄의 계획은 천사들의 지시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묻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다고 하는데 그곳이 어디 입니까? 라고 말할 때 동방박사들은 5,6절에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라”
이에 헤롯이 말하기를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듣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기를 자신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자세히 알아보고 자신에게 고하라 하였으나 천사가 나타나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고 지시하므로 다른 길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방에서 온 박사들도 예수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타나신다고 하는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들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자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계시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성경은 이미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인 창세기 49장 24절에 보면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목자가 태어 날 것이라고 했는데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요셉이 이스라엘의 목자를 낳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요셉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그런데 이 에브라임과 므나세를 야곱은 자신의 아들로 양자 삼았습니다.
창세기 48장 5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즉 그 이후에 태어난 자가 요셉의 자식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식이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경에는 그 이후에 요셉이 어떤 자식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창세기 49장1절에 보면 야곱이 열 두 아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라고 한 예언은 놀랍게도 그 당시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먼 미래에 일이었습니다. 야곱이 눈을 지그시 감고 아주 오랜 후에 일에 대하여 예언합니다.
49장24절에 “요셉에게서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이고 그 이후에 요셉은 아이를 가지 아니했으나 1500년 후에 이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6절에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오래전 창세기 때의 야곱이 예언한 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미 야곱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성령을 통하여 알게 되고 야곱의 손자를 아들로 삼는 사건을 통해서 이 예언을 성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야 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메시야, 즉 이 세상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성경 곳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7:28-29절에 “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니”
이들은 아마도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인지 모릅니다.
이들이 종교적인 생활에 젖어 있으면서도 사실은 가장 중요한 메시야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오해하고 곡해하고 시기하고 질투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잘 알지 못한 채, 즉 확실한 지식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오인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지식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그냥 대충 예수 믿지 말고 기왕 믿기로 했으면 열심을 다해서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기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7:30절에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요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때”란 예수가 메시야로서 자신을 좀 더 확실히 나타내시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위한 시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계획이 완성 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 정점을 향하여 예수는 점점 더 가까지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예수는 자신의 메시야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가 자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 임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체포하기 위하여 반격을 시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야 인줄 알았다면 아랫사람들을 보내서 잡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가 메시야 라고 하는 Sign 은 이미 많은 무리 들 가운데서 나타났습니다. 31절에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무리 가운데는 이미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를 남기는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이 예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눈이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두워진 것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예수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이 이미 굳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교만의 비늘을 벗어야 합니다. 겸손해야 메시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3-34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체포하려는 계획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조금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 즉 너희들이 하나님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분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 때는 너희가 찾아도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니” 라는 말씀은 이제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될 것이고 그 때는 나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다시는 메시야를 만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해를 못했습니까? 관심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하늘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유대인들은 땅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관심을 가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 처럼 달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대인의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에 유대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hwp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대강절을 맞이해서 유대인들은 이천년 전에 오신 예수를 “메시야” 인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수없이 나타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 한 것은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 “메시야” 임을 확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12월 8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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