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주변 사람들 /요6:66-71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사건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가버나움 지역까지 온 군중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그리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떡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하시며,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그리고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는 자신의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그 사람에게 생명이 없다고 합니다. 이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는 자만이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예수가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만이 내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한다고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던 제자 중 여럿이 이 말이 어렵도다 수군수군 거리고 많은 사람들
이 이 말에 걸려 예수님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 주변 사람들”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를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을 때 사람들은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 고침 받기 위해서 왔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자신도 한 자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가롯 유다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왕이 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많아서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독립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신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영생에 관한 문제, 살과 피에 관한 말을 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니 내가 예수님께 나온 것은 계속해서 병든 자를 고치고 현실적인 배고픔을 해결 받고 싶어서 나왔는데 언제 부터인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즉,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 하늘에 속한 말씀을 하니 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60절에,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능히 들을 수 있느냐”
그러면서 사람들이 수군수군 거리자 예수님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었느냐 내가 말하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은 아니다.
예수님은 지금 육이 아니라, 영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땅에 문제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이야기를 말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현세보다 내세에 관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실적인 문제의 해답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수님으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들은 과감히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자신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떠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케 자신을 따르고 자신에게 세례를 받고 자신을 환호했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돌변하여 자기 주변을 떠나갈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도바울과 끝까지 함께 한 디모데와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같은 사람이 있는 가하면 중간에 세상으로 간 데마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끝가지 참여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 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받는 다고 말씀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도 말씀합니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 본문에서 떠나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육신의 떡만이 필요한 것이지 하늘의 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하루하루의 의식주가 중요한 것이지 내세니 영생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 교회 나오다가 떠나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TV강사 목사님이 3년만 십일조 해보라고 그러면 부자가 된다고 하고, 만약 안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그렇게 해보았더니 부자 안 되었기에 교회를 떠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맺고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가 일류대학에 가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면 목적이 달성되면 그 때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들이 다 이유가 있지만 더러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출세하고, 뭔가 유익을 보고 덕을 보려고 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신앙의 목적이 되고 삶의 목적과 의미가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교회는 자신의 원하는 필요를 채워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생명을 주는 곳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육적이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주는 곳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예수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요6: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2) 예수를 배반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 떡으로서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주님은 자신이 이전에 있던 곳, 즉 하늘에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떡이 아닌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고 이때부터 가롯 유다도 예수를 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가 기적을 일으키고 오병이어 같은 표적을 보이어 사람들로 하여금 많이 따르게 하고 그래야 나라도 독립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신도 독립국가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과는 정 반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눈에 띠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줄어들자 가롯 유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를 팔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를 판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예수가 더 이상 자신의 목적, 즉 사람들이 예수를 떠나가자 자신도 떠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유대나라가 로마에서 독립하려면 사람들이 모여야 무장 봉기를 할 수 있는데 이제 그런 거사를 꾸밀 수 있는 힘이 예수에게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예수를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는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자 자신 스스로 예수에게 속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와 함깨 같이 밥 먹고 생활하고 수많은 시간을 같이 지냈던 시간들이 헛수고 하고 시간 낭비한 것으로 생각하자 가롯 유다는 예수를 돈을 받고 은 30에 팔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여러분! 은 30이 그렇게 큰 액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예수를 팔았을 까요? 자신을 속인 예수를 그냥 그렇게 놓아 둘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낸 수많은 주옥같은 시간들이 아깝기도 하고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에 분통이 터졌을 것입니다. 자신의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은 삼십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예수에게 투자한 시간이 보상받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 예수님이 가롯유다를 속였나요?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예수를 만날 때부터 인간의 욕망과 헛된 야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롯 유다는 처음 예수를 만날 때부터 이런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신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예수가 움직인다고 생각하자 가차 없이 예수를 버린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돈 궤를 맡고 있으면서 예수님의 신임을 받았지만 그의 관심은 가난한 자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돈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예수님이 아니고 자기 출세요, 자기 욕망이요, 자기 야망이었습니다.
예수의 주변에는 주님을 떠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롯 유다처럼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기회만 있으면 예수님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를 신뢰하여 돈 궤를 맡기셨습니다. 그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과 신뢰를 배반하고 그는 배반자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승을 파는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여야 함에도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지옥을 선택했습니다
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이 말씀은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자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갈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예수와 함께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의 말씀이 영적인 것을 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사람들은 여지없이 주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과 함께 먹고 마시고 생활했던 사람들, 예수님에게 여러 가지 병을 고침 받았던 사람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떠나기를 시작했을때 예수님은 심한 상실감과 함께 자괴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을 배반한 일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고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과 함께 여러 해 동안 먹고 생활하던 강아지가 떠나가도 어떤 사람은 큰 슬픔에 빠진 사람도 보았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제자들이 하나 둘 자신의 주변에서 멀어질 때 심적 고통은 상당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7절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중 많은사람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버린 후, 예수님은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말씀 속에서 아수운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슬픔이 담겨져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좀 더 멀리 바라다보지 못하고 현실적인 것에 눈이 어두어 좀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떠났던 사람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을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이나 이적보다 그 이적의 배후에 계신 주님을 바라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적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공보다 물질보다 명예나 권세보다 더 위대하고 크신 예수님을 바라다 볼 수 있어야 주님을 떠나지 못합니다. 주님보다 세상이 더 커 보이고,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 그리고 물질이 더 커 보이면 주님을 떠 날 수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일 것입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즉각 대답했습니다. 68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까?”
베드로는 예수님께 영생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야’ 임을 알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에게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고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쉽게 예수를 떠날 수 없고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의 성령 사건을 통해 교회를 탄생시키신 이후에 수십억의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워 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기적을 이루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서 위로 받고 힘을 얻고 치료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2007년 7월 19일 전 세계를 뒤엎은 사건이 있었는데 샘물교회 아프카니스탄의 봉사단이 20명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고 고 배형규목사, 고 심성민 형제가 희생당하고 극적으로 42일 만에 풀려 나게 되었다. 이 와중에서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 뿌린 거짓정보와 악성루머로 인해 샘물교회를 향해서 비난이 쏟아졌고 심지어 교회마저도 공격적 선교에 대해서 비난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 중에 정부가 가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가서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다고 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그런 경고를 한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터진 후에 교회에 반기독교와 반샘물교회를 표방한 사람들이 진을 치고 수십명이 목사면담을 요구하고 시위를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터진 이후에 담임목사인 박은조 목사님은 금식을 선포하고 하루 네 번의 기도회를 가졌는데 놀라운 것은 저녁 8시 기도회에 1000명 이상의 성도들이 모여서 마지막 까지 기도하였고, 기도회가 끝난 후에는 성도들이 모여서 대책회의를 하고 꼬박 밤을 새워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고 합니다. 항간에는 샘물교회가 이 사건으로 인해서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이 사건으로 교회를 떠난 가정은 서너 가정 밖에 되지 않고 오히려 성도들이 배형규목사와 심성민 형제가 희생되었을 때 유가족과 긴밀히 연락하고 접촉하며 위로하였고 혼란한 상황에서 오히려 똘똘 뭉쳐 교회를 안정시켰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 기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위로하고 방문하여 예배에 참석자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박은조 목사는 이피랍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숨겨 주셔서 그 분들이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심성민 형제는 종가집의 장남으로서 전혀 믿지 않은 집안이어서 그 충격은 말할 수 없었지만 그의 모친이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된 후 2010년 샘물교회 낮 예배에 와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저와 같은 죄인의 몸에서 순교자가 태어나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이상은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다”라고 하는 최근에 나온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떠나지 말기를 바랍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이 있어도 구원의 방주인 교회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마지막 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찾고 있습니까? 주님을 찾았던 무리들처럼 육신의 떡만을 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떡이 아닌 생명의 떡인 영생의 말씀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표적과 기사만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1월 24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시야 정체성 확인 요7:25-36 (0) | 2013.12.06 |
---|---|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 /요7:1-24 (0) | 2013.11.29 |
행복한 가정 시128:1-6 (0) | 2013.11.16 |
생명의 떡이신 예수 요6:22-51 (0) | 2013.11.08 |
오병이어 기적 요6:1-15 (0) | 2013.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