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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요1:19-28

gkffpffndi 2013. 7. 24. 14:22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요1:19-28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간을 암흑기, 혹은 신구약 중간사라고 한다. 이 신구약 중간사 기간에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라고 하는 왕이 애굽의 톨레미 왕조에게 패하고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는 길에 길목에 있는 이스라엘을 쳐서 수 백 만 명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자 여기에 대항하여 맛다디아 가문의 아들인 마카비를 중심으로 대항세력이 일어나 전쟁을 벌이는데 마카비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지지세력이었던 사람들은 사막의 쿰란 공동체인데 이들은 엄격한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금욕적인 신앙 공동체였는데 이 공동체를 이루었던 주류는 그 당시 에세네 파였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세례요한은 엣 세네파로 이 쿰란 공동체에서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세례요한이 지난 40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광야에 나타나서 그 당시 기득권층인 왕과 귀족,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을 향하여 일성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자 합니다.

 

1) ‘회개하라’ 는 소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400년 동안의 지루한 침묵을 깨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세례요한에게서 나온 소리는, 마태복음 3:2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리라” 는 책망의 소리입니다.

 

그것은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원어로 ‘메타노니아’인데 이 말의 뜻은 마음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심’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 광야에서 세례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면서 광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이러한 세례요한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만약에 세례요한이 좋은 집에서 살면서 기름진 음식만을 먹고,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생활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가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교회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지 못하고, 교회가 커지면 명예를 탐하고, 권력의 편에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대다수 힘없는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 편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민중들은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하는 그런 음식을 먹고, 생활하면서 사람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으려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나온다고 마3:5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타켓으로 삼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당시 종교지도자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7-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당시 정치, 종교적 지도자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들을 공격하였기에 대중들은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고 반면, 그 당시 기득권자들은 세례요한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고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400 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혜성같이 등장한 선지자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그 당시 종교기득권층이나 정치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저항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대부분의 마음이 가난한 민중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메시지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인 기득권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세례요한은 눈에 가시였습니다.

 

오늘 날에 한국교회에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전하신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마도 세례요한의 “회개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는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고백이 아니라 실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회개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왜 회개해야 합니까?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국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곧 오시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회개한자”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죄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회개할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새사람이 됩니다. 회개한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회개할 대 평안을 얻습니다.

 

2)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소리입니다.

 

세례요한 당시 수많은 민중들이 광야에 가서 세례요한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예루살렘에 있었던 헤롯 안티파스와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불안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요한의 정체성에 대하여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Who are you? 도대체 너는 어디서 온 사람이냐? 너가 그리스도냐? 난 아니다. 그럼 엘리야냐? 아니다. 그러면 선지자냐? 아니다. 요한은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하여 다 부정하면서 자신을 가리켜서 23절에 자신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소리” 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00년 전에 사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이 바로 세례요한을 가리킨다고 마태는 3: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한 마디로 구약에 예언 된 메시야는 절대 아니다. 엘리야도 아니다. 선지자도 아니다. 단지 자신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자일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영화산업이 발달하여서 외국 영화배우들이 우리나라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하는 것을 봅니다. 이 영화배우들은 명성 있는 국제영화제에 참여하여 자신의 모습을 알리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영화제에 참여하는 것을 다른 말로 ‘레드 카페트’를 밟는다고 합니다. 이 ‘레드 카페트’를 밟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그 뒤에 숨은 공로자들이 있습니다. 셋팅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무대장치를 준비하고 조명시설을 하고 카메라를 준비하고, 그리고 소품들을 준비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명 배우들이 밟을 ‘레드카페’를 깔아 놓습니다.

 

이런 것들이 준비되어야 행사가 진행됩니다. 말하자면 세례요한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고 유명배우들이 밟고 걸어가는 카페트를 까는 자와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고 자신은 주인공을 위해서 준비하는 자이다. 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 당시 예수님 보다 세례요한이 훨씬 명성이 있었고 그를 따르는 사람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는 많은 사람들을 로마권력에 대항하는 반란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세를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안 것입니다. 자신의 역할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써 주님의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고 준비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안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입에서 내가 '메시야' 다라고 하는 말이 나오기를 고대할 때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할 때, 자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 그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그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위대한 점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인기가 치솟을 때 돈과 명예와 영광을 다 차지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세례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주님께 돌렸습니다. 그가 뭐라고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3:11절에서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말한다. 이런 세례요한에 예수님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세례요한은 역할은 ‘메시야’ 아니라,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역할이었듯이 오늘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가 각자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 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로마가 예수님이 오실 때 헬라의 알렉산더가 헬라문화와 헬라어를 전파했고 그 뒤에 로마가 모든 길은 로마로 라는 말이 있듯이 군사목적으로 깔아논 도로가 후에 사도바울이 복음을 빠르게 전파할 수 있었듯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 주의 복음이 곧게 전파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마3:12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3) ‘사명’ 의 소리입니다.

 

세례요한의 사명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외치지 안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고 물도 구할 수 없는 메마른 곳에서 “회개하라”고 하나님의 메센저가 되어서 하나님의 소리를 전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요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 둘 씩 세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광야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40년 동안 광야생활하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옷이 헤어 지지 아니하고 배고프지 않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준 장소이다. 이 광야 생활이 끝난 이후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으로 광야를 가리켜서 이 세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광야처럼 메마르고 배고프고 힘든 장소이다. 하지만 광야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지치고 곤한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자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의 사명은 요1:7-8에서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사도바울은 포로로 로마에 가서도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6:27이하에서 아그립바왕 앞에서도 자신이 결박 다하는 것 말고는 모든 사람이 다 자기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은 로마로 압송하는 과정에서 큰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을 당하고 죽음을 넘기는 상황에서도 바울은 배안에 있는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배안에 있는 276명 가운데 한 사람도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마지막 28장에서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게 되는데 거기에서도 유대인들 가운데 높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죄인으로 온 것은 무슨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인해서라고 말한다. 그가 있는 많은 유대인이 오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를 전하였는데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에 관하여 담대하게 거침없이 전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무엇이 사도바울을 이렇게 변화 시켰습니까?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사람이 분명히 달라집니다. 새로워집니다. 하늘나라의 소망과 열정이 생깁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날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담과 압박으로 힘든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자살률이 세계 1위인데, 최근에 우리나라의 자살 율이 나왔는데 하루에 33명이 자살한 다고 합니다. 지난 23일 우리나라의 유명한 방송PD가 고시텔에서 쓸쓸히 자신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 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만한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태왕사신기를 연출했던 유명PD라고 합니다. 출연료를 주지 못해서 배우들이나 관계자들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검찰 조사를 앞두고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사명이었다고 사도요한은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운 이때에 저와 여러분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의 소식을 전할 때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 생명의 소식을 전할 때 사람들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의 소식이 전해지는 곳에는 문명이 깨어났습니다. 복음이 악한 자에게 전해지면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됩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새 바람이 일어납니다. 성령의 바람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마귀가 물러납니다. 마약중독자가 새사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리는 사람을 살립니다. 가정을 살립니다. 타락한 사회와 국가를 살립니다. 복음은 생명의 소리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요한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 몰려 온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들은 세례요한의 소리를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살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장소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습니까? 세상에는 잡다한 소리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잡다한 소리에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로부터 하나님의 소리, 복음의 소식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나 이론이나 학문이나 지식은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부패한 사회와 국가를 살릴 수 있습니다. 복음만이 이 세상을 부패와 타락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회개하라는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먼저 우리 마음에 와 닿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우리 모두가 이 마지막 때에 ‘광야의 외치는 소리’ 가 되어 이 시대를 깨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7월28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