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 요1:1-10
요한복음은 AD 80-90년경 헬라사상과 철학에 익숙해 있었던 초기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배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 요한서신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이 요한복음의 저자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있으나 전통적으로 요한사도를 저자로 보고 있다. 이 요한복음은 그 당시 헬라사상과 문화에 습득되어진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물의 근원이요, 그리고 이 세상의 구원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에 대하여 사도요한은 요20:31절에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요한사도가 가까이 서 본 나사렛 예수, 그는 진실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며, 그가 이 세상을 존재케 하신 말씀이며, 생명의 근원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이 시간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요한사도가 말한 것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빛이시다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로고스)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에서 “태초에” 라는 말은 희랍어로 “엔 아르케” 인데 이 말은 그리스 헬라문화권에서는 이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의 하나이다. 이 “아르케”란, 물질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근원’ 이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시작.” “ 그 무엇이 시작하는 최초의 단초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태초’란 이 우주가 시작되는 시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시적인 우주가 생성될 때, 즉 최초의 시간에 “말씀” 즉 “로고스”가 계셨다는 것이다. 이 “로고스”는 이 우주를 움직이는 초월적 이성 즉 절대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씀(로고스)이 곧 하나님이시며, 그가 하나님과 태초부터 있었는데 바로 그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만물이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가 곧 이 세상을 존재케 한 존재의 근원인 “아르케‘라는 것이다. 바로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빛은 어둠과는 반대 개념이다. 사도요한은 이 세상이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어둠이 지배하기 때문에 질병과 고통, 불평등, 가난, 죄악이 만연한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 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은 살아있고 자라나고 숨 쉬고 활동합니다. 하지만 빛이 없으면 어둠이 지배합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곳에는 생물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이 이산화탄소 동화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있는 동안에는 모든 동식물은 활동하고 자라고 성장하게 되고 열매를 맺고 우리 인간에게 풍성한 자연의 혜택을 가져 다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은 모두가 태양으로부터 빛의 에너지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합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고 영접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예수님을 모실 때 그 영혼은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생수입니다.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셔야 그 영혼이 생기를 얻고 활기차며 영혼이 자라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 여러분의 심령이 깨끗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그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빛되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면 내 마음 속에 어두움이 물러나게 됩니다. 말씀
의 빛을 내 영혼에 받으면 내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더러운 생각이 물러갑니다. 악한 생각이 물러갑니다. 온갖 잡스러운 생각들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는 더러운 벌레들이 항상 있습니다. 옛날에 보면 시궁창 밑에 바위를 들추면 그 바닥에 온갖 더러운 벌레들이 자리 고 있다가 강력한 햇빛이 비추면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을 봅니다. 바퀴 벌레 같은 것도 어둠 속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환해지면 도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듯 어둠은 빛을 싫어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빛되신 예수님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3:19에서 “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 까 함이요”
빛 되신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절대로 악이 함께 거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생명이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빛이 비추이면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의 빛을 마음에 받으면 그 마음이 순결해 집니다.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은혜가 임합니다. 질병이 치유됩니다. 가난이 물러갑니다. 고통이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빛 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영혼은 맑아지고 어둠이 물러갑니다. 가난과 질병이 물러갑니다. 고통이 물러갑니다. 우리 영혼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2) 그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다.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슴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런데 이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는데 이 말씀은 지금 내 앞에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14절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말씀” 즉 우주의 이성인 로고스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신학적으로 Incarnation,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혹은 도성인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리스- 헬라 사상에서는 거룩하고 비가시적인 신이 더럽고 추한 인간의 몸속에 들어 올 수 없다고 하는 사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사상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상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그리스-헬라사상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독론 적인 논쟁이 교회사의 주류를 이루었고 여기서부터 이단논쟁의 발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사에 보면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이 있습니다. 이 논쟁에서 교회는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아타나시우스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 아리우스는 예수는 피조되었고 유한한 본성을 지녔다고 하여 기독교 정통교리에 도전함으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사상을 가진 이단은 여호와의 증인이다. 이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제일 처음 피조물로 말한다. 즉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신조를 따라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지금 요한사도가 고백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신이 인간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참 빛이 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모르는 것입니까? 그들이 어둠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엄청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자신은 이 빛에 대한 증언자로 나서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빛이 아니고 이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 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자신 앞에 계신 나사렛 예수가 이 우주의 이성인 로고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시며,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충격 앞에 요한은 담대하게 그리스- 헬라철학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첫 번 째 사역인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12에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입니다. 잔치가 무르익을 때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하기를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명하신다. 이 때 예수님은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 채우라 하신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가득 채우니 예수님이 떠다가 갖다 주라 하십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물을 채운 항아리에서 물을 떠다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현대과학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해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기록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물질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증명한 기적임을 요한이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요한복음에 나타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네가 물을 달라고 하는 자가 누구 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목마르지 아니한 영원한 생수를 달라고 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여인은 자신의 속의 마음을 꿰뚫고 인간의 근본적인 영생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 자신의 동네에 들어가서 메시야를 만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서2: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울은 골로새서1:15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라고 말합니다.
2000년 전에 이 땅 베들레헴에 오신 나사렛 예수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성육신 하신 분이시며 도성인신 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 그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2000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나사렛 예수는 고통과 질병과 가난과 억압과 불평등 속에 신음하는 인생들에게 참 빛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행위가 악하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둠속에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을 고통과 저주와 질병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세계는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참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로마제국아래 있었던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퇴폐적인 사회였습니다. 그 당시 동성연애가 횡행하고, 독신자들이 늘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그야 말로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소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낙심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로마의 왕족과 귀족들을 위한 사회였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로마의 왕족과 귀족들은 사치와 방탕과 방종이 극에 달해 있어서, 그야말로 극과 극의 삶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두움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혜성같이 등장하셔서 그 당시 기득권자인 헤롯왕과 제사장,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서 질책하시고 억압받는 민중에 서서 그들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자 사람들은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자신들을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을 시켜 줄 메시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가는 곳에서는 수많은 민중들이 같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바람과는 달리 예수는 로마제국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지도 못하였고, 자신의 제자인 가롯유다에게 은 30에 팔려지고, 결국은 로마권력과 결탁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미움을 받아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힘없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선택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예수가 끈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인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증명하셨다.
그리고 예수가 죽은 지 2000년의 세월이 흘러 인류는 괄목할 만한 과학문명과 거대한 문명을 이루어 과학의 최첨단의 시대에 이르렀다. 인류는과거 2000년 전의 시대보다는 훨씬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사회는 21C 과학문명이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엄청난 인구폭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앙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이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 처처에 일어나는 홍수와 지진, 전쟁과 폭풍과 살인적인 폭염을 비롯하여 심각한 물 부족 및 식량난 및 치솟는 실업 율 온난화로 인한 남극얼음의 해빙으로 이한 해수면 상승, 국제적인 분쟁문제 등은 어느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지구촌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전 방위적인 지구촌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이 땅에 전지구촌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 메시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이러한 재난에서 구원할 구세주 즉 슈퍼맨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여러 상황들이 결국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에 예언된 이 적그리스도는 정치, 경제 종교적인 힘을 다가지고 마지막 때에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기전 적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미혹하면서 자신의 과시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 인류최악 가상 시나리오인 지구 자전 정지의 재앙이란 EBS의 다큐룰 보았습니다. 지구가 지금은 자전에 의해서 현재의 사계절과 바다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항법 장치를 이용해서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하여 해외를 드나들고 무역을 하지만, 지구자전이 정지하게 되면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되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시간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자전에 의해서 밤과 낮의 길이가 정해지고 우리가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잠을 자게 되지만, 지구자전 속도가 느려지게 되면 하루 길이가 길어지면서 인공위성에 이상이 생겨, 항공기나, 선박이 추락하거나 길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느려지면 지구적도의 물이 북극으로 이동하면서 북쪽에 있는 영국 같은 섬이나 유럽도시나 나라들은 물속에 수장되게 됩니다. 공기도 희박해지면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지금은 지구가 자전하면서 지구중심의 핵, 중간의 맨틀, 그리고 지각으로 지구가 구성되어 있어서 자전과 함께 도는데 자전이 느려지면 이것들이 각각 돌아 지각 판들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지진이 바다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진으로 인하여 바다 속의 물고기들이 뜨거운 물에 의해 떼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다큐를 보면서 계시록16:3절,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17-20 일곱 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나매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 갈라지고 만국의 섬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이렇듯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며, 초인적인 사람이 나타나야만 해결할 수 있다. 바로 이 인생의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분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2000년 전에 오시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초림의 예수는 말구유의 낮은 곳에 오셨지만 재림의 예수는 천군과 천사들과 함께 당신의 백성들을 이 멸망 속에 두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노아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은 홍수로 쓸려 갔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한 노아가족은 구원 받았다. 이것은 바로 이 마지막 불 심판 에서도 똑 같이 적용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오직 신랑 되신 예수님만을 기다리는 신부된 교회를 영원히 쇠하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인류의 재앙 속에서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이시며, 메시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3년 7월 21일 청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요1:29-34 (0) | 2013.07.31 |
---|---|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요1:19-28 (0) | 2013.07.24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약4: 1-10 (0) | 2013.07.11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시편 50:7-23 (0) | 2013.07.04 |
우리를 부르신 목적 엡4:11-16 (0) | 2013.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