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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요1:29-34

gkffpffndi 2013. 7. 31. 15:16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요1:29-34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친척으로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나신자로 그 당시 제사장 신분인 아버지 사가랴와 모친 엘리사벳 사이에서 천사 가브리엘의 고지로 이 땅에 태어났다. 성경은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약대털옷을 입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생활하며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써 사람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이 메시지를 전해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 선지자인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수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시지만 내 뒤에 오시는 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은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서 자신은 그 분의 신발 끈을 풀 수 도 없는 미천한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나타나자 갑자기 큰 소리로 그를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저는 이 시간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유월절 어린양이십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방법으로 죄 없는 양을 제물로 희생시킴으로서 인간의 죄가 용서 해지는 방법을 사용하셨는데 그 이유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죄로 인해서 무수히 많은 짐승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희생 제사라고 합니다.

 

이러한 희생제사는 창세기 3:21에서 보듯이 인간이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로 죽음의 선고를 받고 자신의 죄로 인해 두려워서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여기서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고 하는 것은 곧 양을 잡아야 가죽이 나오기 때문에 양의 희생을 통해서 그의 죄를 덮어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 없는 짐승인 양이 희생하므로 그의 죄가 속죄 되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죄 방법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아! 하시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그 곳에서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에 아브라함은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갑니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산 아래 있게 하고 이삭에게 불과 나무를 지게하고, 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다가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알려주신 곳에 이르러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의 아들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위에 놓고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 할 때 다급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사자가 이르기를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이제야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알리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숲을 보니 숫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데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대신하여 그 숫양을 가져다가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신하여 숫양을 대신 죽게 함으로써 아브라함의 번제를 받으시고 그 아들이삭을 살리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성부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독자 이삭은 성자 예수님으로서 장차 인간의 모든 죄 짐을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한 해석을 히브리서 기자는 11:17-19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으며, 이것이 하나님께 의가 되어 자신의 아들이 살아나고 숫양이 대신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자손을 많게 하고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러한 어린양에 대한 희생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에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풀어주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재앙은 사람이나 짐승의 첫 것을 죽이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면 그 재앙의 날에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고 재앙을 비켜 가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애굽의 전역에서 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짐승이나 사람의 첫 것은 다 시체가 되어 죽어갔습니다. 그야 말로 하루아침에 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왕의 장자에게도 임했습니다. 그 밤에 애굽 전역은 통곡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이 재앙을 피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양을 잡아 그 피를 자신의 집의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사람은 그 밤에 재앙이 지나가 간 것입니다.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pass over" 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해방 절입니다. 430년 동안의 애굽의 지배에서 벗어 난 날입니다.

 

바로 이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피가 재앙을 지나가게 한 것입니다.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이 보혈은 십자가 위해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말합니다. 그 날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심판이 지나갔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났습니다. 저주가 넘어갔습니다.

 

2) 세상 죄를 지신 아사셀 양입니다.

 

레위기는 인간이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 범죄 했을 경우 속죄하는 속죄 제사에 대한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주로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방법으로는 양이나 염소를 속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9: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기에 거기에는 반드시 동물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받지 않으셨습니까? 가인의 자신의 농산물로 드렸는데 농산물은 피 가 있지 않습니다. 즉 희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거기에는 동물의 피, 즉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에도 똑 같이 요구하십니다. 희생이 없는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제사에 반드시 희생제물인 양이 필요 하듯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면 반드시 여러분이 생명같이 귀하게 여기는 재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가 없듯이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와서는 안됩니다. 헛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열납 하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희생이 필요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토요일 저녁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예배시간에 졸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헌금도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주일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그리고 지난 한주 동안에 지켜 주심에 감사를 담은 감사헌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다 주님을 위한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요구하십니다. 이사야43:22-23절에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재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리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속죄방법을 정하셨는데 양이나 염소를 죽임으로써 그 피로 속죄하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레위기 16장은 대 속죄일에 관한 내용으로 대 제사장인 아론이 먼저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송아지로 드려 자기와 자기 집안을 위하여 드린 후에 두 염소를 위하여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아 속죄제를 드리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는 의식을 행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사셀양이다. 아사셀은 히브리어 단어의 음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염소’라는 말의 ‘에즈’와 ‘멀리 떠나가다’ 라는 말의 ‘아잘’이 합성된 ‘에즈아잘’ 즉 ‘ 아사셀’이 되어, ‘멀리 떠나가는 염소 라는 뜻인데 ’속죄염소‘라고 말한다. 이 아사셀 염소는 백성의 모든 죄를 속죄는 의식으로 광야에 내몰아 거기에서 죽게 하는 의식이다. 즉 광야는 사자와 이리가 우굴 거리는 지역이다. 거기에 가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광야는 이 세상을 가리키는 데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이며 사탄이다. 그러므로 아사셀 양은 사탄에게 던져진 양이다. 이런 의식을 통해서 백성들의 죄가 용서되었고 죄가 처리되었음을 상징하는 의식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사탄에게 값을 치루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른 인류가 죽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방법인 속죄방법에 어긋나서는 안된다. 양이 희생됨으로써 속죄된 것처럼 아사셀 양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희생 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여 주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란 ‘테테레스타이’ 란 뜻은 값을 ‘치루었다’는 뜻이다. 주님이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사탄에게 자신의 몸을 내 준 ‘아사셀’ 양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아사셀 양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양이나 염소가 죽음으로써 사람이 사는 것처럼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진 아사셀 양이 죽음으로써 백성의 죄가 처리되어 듯이 오늘 우리의 죄가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신 아사셀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았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유일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희생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죄 때문 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죄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는 자리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노아시대처럼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렇습니다. 인간이 천국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고통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왜 병듭니까? 죄 때문입니다. 이 땅에 평화가 없고 전쟁이 왜 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왜 죽음이 옵니까? 죄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1절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 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3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이 하지 못하나니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 까지 기다리시나니14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그것은 황소나 염소의 피가 우리를 영원히 깨끗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첫째 죄가 없으십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둘째, 양처럼 온유하십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도 로마병정의 가혹함과, 십자가 위의 고통 속에서도 주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셋째, 주님은 흠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벧전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한 것이니라" 그 분은 흠이 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이유는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영원한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하늘 높은 보좌와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인간을 구원하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오셨고 33년동안 인간의 슬픔과 고통과 질병과 희로애락을 다 겪으시면서 완전한 인간으로 사시다고 마침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인간의 죄 짐을 대신 지신 아사셀 양으로 죄와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유월절 양으로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인류대속과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고 피와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습니다.(히11:8)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죄 때문에 엄청난 고난을 당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진리를 안 이후에 죄를 짓게 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으며 무서운 심판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태울 맹렬한 불만 있을 것입니다. 히11:29절에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천년 전에 유대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실 유월절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희생하신 속죄제물로서 아사셀 양이셨습니다. 다른 방법이나 훌륭한 성인들을 통한 구원의 길을 하나님이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속죄함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년 8월 4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