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첫 번째 이적 요2:1-10
오늘 본문 말씀은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예식이 있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참여 하였다. 이곳은 나사렛의 북쪽 13km 지점에 있는 고대 마을의 유적 길베드 가나를 가나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셨다. 또한 여기서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기도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인 나다나엘이 이 곳 출신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잔치가 한참 무르익고 흥이 돋아질 무렵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잔치에 있어서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그 당시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이건 보통 낭패가 아닌 것이다. 결혼 예식에 음식이 떨어졌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큰 낭패인가? 이렇듯 우리인생에게 있어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 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뿐 아니라 국가도 마차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결혼 예식은 약 한 주간에 걸쳐서 주변 사람들과 일가친지 들을 초청하여 진행된다. 중동지역에서는 낮이 뜨겁기 때문에 주로 밤에 결혼예식이 진행된다. 아마도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그의 모친 마리아가 참석한 것은 아마도 가까운 친척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이 가정은 충분한 음식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많은 손님들로 인하여 이런 당황스런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이 중요한 잔치에 2절에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그 당시 포도주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음료수임과 동시에 잔치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며. 기쁨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니까 잔치 집에 흥이 돋게 해 줄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주인의 입장에서는 보통 곤혹스런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인생의 기쁨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즉 예기치 못한 문제가 우리의 삶을 강타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건강의 문제일 수도 있고, 물질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자녀의 문제일 수도 있고, 부부간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가정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에 김동건씨 진행하는 가요무대를 우연히 DMB에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루르공업지대의 중심부에 있는 보쿰시 루르콩그레스보쿰에서 3000여명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파독수교 130주년과 파독 5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방송으로 독일에서 열렸다. 그런데 파독 간호사로 청춘의 꿈울 안고 어머니에게 집을 장만해 주겠다고 독일로 떠난 동생이 언니와 40년 만에 상봉하는 감격스런 시간을 가졌는데 사회자자 김동건 씨도 눈물을 흘렸다. 독일로 가고 난 이후 어머니는 그리움에 먼저 가셨고, 독일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던 이 동생은 병원에서 환자인 그리스인과 만나 살다가 현재는 암투병중에 있고 하버드 대학을 나온 수재인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가 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고 자신은 그리운 고국에 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 되어 객석을 눈 물 바다로 만들었다. 타국에서의 이 여인의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구,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 참석한 교포들인 즉석으로 기부하여 항공기 삯을 만들어 주어 고국을 40년 만에 방문하는 영상이 소개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인생의 기쁨의 포도주를 잊어버린 체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닥치면 극한 상황에 내물리면 죽음으로써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 한 것이 오늘 날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바울은 어떠한 상황에 있었습니까?
고린도후서 11장 23~33 “나는 여러 번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또 세 번이나 몽둥이로 맞았고 한번은 돌에 맞았으며 세 번이나 파선하였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헤 맨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신자들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또 수고하고 애쓰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여러 번있었고 주리고 목마르며 수없이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기도 하였습니다. ” 고후4:7-9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왜 그렇습니까? 사도바울은 인생의 기쁨을 세상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예기치 않은 환란이나 고통, 그리고 실패나 질병이나 어떤 한계상황에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힘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위로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모친이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 주인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이미 자신의 육신의 아들이지만 그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먼저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까? 기쁨이 사라졌습니까? 즐거움이 없습니까? 삶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문제만 가득합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 자 그 분께 나아가십시오. 예수님 그 분에게 기도하십시오.
2)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잔치 집에 포도주가 제일 먼저 떨어진 것을 안 사람은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마리아는 즉각 예수님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랬더니, 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기를 “여자여”라고 호칭하는 것을 봅니다. 번역 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정서상으로 자신의 모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말의 뜻은 영어로 'Lady'로 존칭어입니다. 그리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에서 “내 때”란 말의 뜻은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히 “내 때”를 해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때” 헬라어로 “카이로스”로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충만한 시간을 가리킨다고 할 때 어떤 결정적 사건을 유발 하는 결정적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모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5절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모친 마리아는 이미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예수를 잉태 했을 당시에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요셉과 정혼 한 시절에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1:35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자신이 낳은 아들이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그녀가 알았기에 하인들에게 지시하기를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예수님이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실 텐데 너희들의 생각과 맞지 않아도, 이성과 경험에 맞지 않아도, 납득 히 되지 않고 이해가 안 되어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의 최고봉은 순종의 삶입니다. 순종은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미덕이요, 신앙의 최고의 경지입니다. 순종은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신앙인은 모두가 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습니다. 삼상12:22에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본문에 돌아와서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말하기를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정결의식을 행하는 돌 항아리가 6개 있었는데 그 곳에 물을 아귀까지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물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헌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항아리 가득히 물을 채웠습니다. 6개의 항아리에 다 가득히 채웠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물이 변화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날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서 석유 없이도 도로를 달리는 전기자동차, 수소 자동차를 만들고, 자동차를 접이식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어도 맹물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현대과학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이나 진보주의 학자들은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성경의 기록을 허황된 이야기나 꾸며 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신자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이 가나의 첫 번 째 이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의심 없이 받아 들여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은 내 삶에 기적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순종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여기 물 떠온 하인들은 사람들이 포도주 맛이 좋더라고 말하면서 어디다 숨겨 두었다가 이제 나오냐고 말할 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돌 항아리에 힘들게 물을 채운 하인들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참 신앙인에게 있어서 순종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 경험과 이성과 지식에 있어서 납득이 되지 않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아지면 순종하십시오.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순종할 때 문제가 풀립니다.
3)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사도요한이 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하여 요20:31절에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힙 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밝힌 것처럼 이 첫 번 째 가나의 혼인잔치의 표적 사건을 통해서 나사렛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서 요한은 주님이 세례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받을 때 성령이 예수에게 비둘기 임하는 광경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과 나다나엘의 제자 삼는 모습을 통해서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과정과 함께 요한은 이 가나의 첫 번 째 표적인 물이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장면을 통해서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첫 번 째 가나표적은 나사렛 예수가 단순히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과는 확실히 구별된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첫 번 째 가나의 표적 사건을 통해서 예수는 자신이 확실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기 계시를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즉 이 첫 번 째 가나표적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0년 동안 인간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 왔던 이 예수가 이제 자신을 세상에 나타냈다고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이 예수를 믿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내가 있는 곳에서 드러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입니다. 혹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았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골로새서3:12-17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은 10가지의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긍휼의 옷입니다. 이것은 영어로 compassion 이라고 하는데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을 말합니다, 둘째, 자비의 옷입니다. 이것은 영어로 kindness 인데 이것은 타인을 향한 친절함입니다. 셋째 겸손의 옷입니다. 자신을 남보다 낮추는 것입니다. 넷째는 온유의 옷입니다. 영어로 gentleness 인데 부드럽고 상냥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오래 참음의 옷입니다. 여섯째는 용서의 옷입니다. 일곱째는 사랑의 옷입니다. 여덟째는 평강의 옷입니다. 아홉째는 찬송의 옷입니다. 마지막 열 번째는 감사의 옷입니다.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에게 한 청년이 질문했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고 선교사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하고 얼마나 오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테일러가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습니다.
“촛불은 언제부터 빛을 발합니까?”
이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테일러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양초는 불을 붙이는 순간 빛을 발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부터 빛을 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때부터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가 진정 이 시대에 메시야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내 이성과 경험에 맞지 않아도 성경이 말씀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해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2013년 8월 18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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