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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척결의 사건 요2:13-2

gkffpffndi 2013. 8. 22. 09:59

성전척결의 사건 요2:13-2

 

오늘 본문 말씀은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유대인의 신앙중심이었던 성전에 대하여 예수님의 시각을 반영한 사건으로 그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자신의 부와 이익을 탐했던 기득권자인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위협적인 행동이었으며 이 일로 인하여 예수께서 그 당시 힘 있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대교의 중심은 성전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제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탐욕을 꾸짖으시고, 성전제사의 진정한 목적을 회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저는 이 시간 “성전 척결의 사건” 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전의 기원과 발전

 

성전의 기원은 원래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모세에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인 ‘성막’을 짓도록 친히 명령하셨습니다. 성막은 출애굽기에13장, 민수기에 13장, 신명기에 2장, 히브리서에 4장 등 모두 50장에 걸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설계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명령하셔서 성막을 짓도록 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성막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대화하셨다. 이 성막이 발전하여 솔로몬 시대에 와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를 모시는 곳을 천막이 아닌 건물을 지어서 그곳에 보관하고 그곳을 ‘성전’이라고 하였다.

 

솔로몬은 이 성전을 7년에 걸쳐서 완성하였고,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난 이후에 성전봉헌식을 거행하였는데, 솔로몬 왕이 드린 희생제물이 소가 이만이천마리, 양이 십이만 마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왕이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며, 솔로몬이 십사일동안을 절기로 지키고 백성들과 함께 다윗 왕에게 베프신 은혜를 생각하고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자 여호와께서 성전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상9: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네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 즉 나는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니리”

 

이렇듯 성전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BC 586년에 무너지면서 법궤가 사라졌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 스룹 바벨에 의해서 침공으로 인해서 무너진 성전이 스루바벨에 의해서 제 2 성전이 재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3성전인 헤롯성전이 이방인 이두매(Idumea) 출신인 헤롯이 유대인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옛 성전 터전위에 B.C.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 만에 완성되었으나 세부공사는 A.D.63년경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아무튼 80년에 걸쳐 지어진 이 건물은 지어진지 얼마 안 되어 AD70년에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 로마 군인에 의해 성전을 불탔고 다 무너져 내렸는데 이 화재로 인해 녹아내린 금이 돌 위에 스며들자 이것을 캐기 위해서 로마 군인들이 돌을 헤쳐 버렸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져 내린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 헤롯성전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성전이 무너지기 전의 일로써 보이는 성전을 중요시 하는 그 당시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그리고 바리새인들에게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시고 그림자인 성전만을 섬기고 그 안에서 탐욕의 화신이 된 종교지도자들을 질타하신 것이다.

 

이러한 성막을 시작으로 발전한 성전은 오늘 날 교회가 그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으며, 유대교에서는 성전이 무너지고 난 이후 세계 곳곳에서 회당이 설립되어 그곳에서 말씀을 낭독하고 율법을 연구하고 성도간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당의 역할을 오늘날 기독교는 교회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2)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유대인들은 3대 절기 가 있는 유월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이다. 이 절기가 되면 유대인들은 1년에 3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자신의 죄를 속죄함으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이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유월절이야기입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으로 해방된 날로서 자유를 얻은 날입니다. 이들은 유월절이 되면 전 세계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되는데 예수님 당시에도 200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거기에서 주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보아서는 안 되는 일들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14-15절에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 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자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기에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을 까요?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는데 그 제물은 흠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부터 짐승을 가지고 오면 아무래도 흠이 생길 뿐 아니라, 성전 안에 제물을 검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합격여부를 결정할 때 불합격 처리 하면, 괜히 수고만 하고 제물로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성전 안에서 제물을 살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이 제물 값은 보통 값의 몇 배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허가 해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성전을 관리하는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꾸준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여간 힘이 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제사 들이러 와서 봉 씌우고 돌아가니 그 제사가 편할 일이 없고 제사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유대인 남자들은 성전 세를 내야 하는데 그 당시 통용화폐인 로마 화폐는 사용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화폐인 마르크에는 황제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기에 이를 우상으로 여긴 유대인들은 이 로마화폐를 성전세로 드릴 수 없었다. 따라서 성전 안에서 환전상들이 이 돈을 유대인의 화폐인 세겔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2000년 전에 환전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말입니다. 환전에서 생긴 수수료를 챙겨서 자신의 부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전상도 성전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대제사장이 허가 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환전사업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도 대제사장에게 가서 임대료를 하고 환전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채워 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최고의 부자는 대제사장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그들이 돈에 눈이 어두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인 제사제도에 충실했을 뿐이지 그들의 관심은 제사보다 물질인 제사 밥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신 주님께서 그들의 상을 엎으시면서 채찍을 만들고 16절에 분노하시면서 “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분노하신 것은 성전의 정신을 왜곡하고 성전의 의미를 퇴색시켜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를 사적인 욕망을 채우는 세속적인 장소로 추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성 전되게 해야 합니다. 성전을 가리켜 주님은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합 2:20절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지만, 보이는 건물이 성전은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곳이 성전입니다. 아무리 크고 웅장한 건물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거룩한 사업보다 세속적인 욕심과 인간의 온갖 탐욕과 이기심만이 가득하다면 그곳을 성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전에 나오는 목적에 다른 것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드신 것은 성전을 성전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이 거룩한 장소를 짐승들을 사고파는 세속적인 장소로 타락시켰기에 주님은 돈 바꾸는 자들과 장사꾼들을 호되게 책망하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11:17절에서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주의 전에 나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적인 생각을 접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며 온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이 성전을 헐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이 사람들을 향하여 분노의 채찍을 드신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하나님의 성전이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분노하신 것은 청년 예수로서는 자연스런 일인 것입니다.

 

거룩한 장소를 자신의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킨 불의에 대하여 의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 청년들은 불의나 거짓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더럽혀지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아버지의 집에서 왠 낯선 사람들이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아버지의 이름이나 얼굴에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자식이 아닙니다.

 

17절에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와 모습 속에서 주님이 얼마나 하나님의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사모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과연 여러분에게는 주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의 전을 사랑함이 없이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는 형식적인 신앙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성전 문지방만 왔다 갔다 하는 나태한 신앙을 꾸짖는 것입니다.

 

이사야 1:12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열매 없는 신앙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격한 행동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권한으로 하느냐? 여기에 합당한 무슨 표적을 네가 우리에게 보일 수 있느냐?

그 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헐라” 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세우리라“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동안 일으키겠느냐?

 

여기에 대하여, 요한사도는 21절에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말하면서 이 말씀은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 한 사건을 예표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께서 왜 성전을 헐라고 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예견한 말씀이라고 요한사도가 말하고 있지만, 본문이 주는 뉘앙스는 이것일 것입니다. 아마도 성전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성전이야 말로 성전으로서의 가치와 목적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까지도 자신의 이익과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에 대한 분노일 것입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까지도 세속화 시키는 이 시대의 타락함에 경고일 것입니다. 거룩함을 유지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없애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민족정신이 깃든 마사다 항전이 있습니다. AD70년 로마의 티토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그것에서 살아난 열심당원 960명은 유대광야에 있는 ‘마사다’에 피신하였다. 이곳은 천혜의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로마 군인들과 맞서 싸우기 딱 좋은 곳이었다. 로마티토 장군은 로마실바 장군으로 하여금 10군단으로 그 성채를 포위하였다.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점령하기가 어렵게 되자 로마의 실바장군은 마사다와 똑같은 성을 쌓아 마침내 점령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자신의 죽음이 눈앞에 이른 것을 안 유대인들의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남자들을 모두 한 군데 불러 모았다. 날이 밝으면 ‘마사다’는 무너질 것이다. 그는 비장하게 마지막 연설을 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로마와 맞서 싸운 마지막 용사들이다. 어둠이 물러가면 우리는 저들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자유로우므로 부끄럽지 않게 죽을 기회가 있다. 그것은,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치욕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가기 전에 그들을 우리 손으로 죽이고, 우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다. 자! 노예가 되기보다 자유란 이름의 수의(壽衣)를 입자“

 

그리고 남자들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드러운 입맞춤을 하고 자기의 손으로 가족들을 죽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남자 열 명을 제비뽑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그들을 가족의 옆에 누이고 죽인다. 그리고 마지막 한사람은 자결한다. 그리고 로마 군인이 그 성을 점령 했을 때 자결한 960명의 시신을 보게 된다. 이 사실은 숨어 있던 여자 둘, 아이들 다섯에 의해서 이 역사적 사실이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 그의 저서 "유대 전쟁사" (The Jewish War)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 날 유대인은 이 마사다 항전의 장소를 민족혼의 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유대인의 정신이요, 그들의 혼입니다.

 

이와 같이 성전이 성전의 정신을 상실하고 세속화의 길을 걷는다면 차라리 그것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거짓되고 세속화 된다 할지라도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 즉 거룩 성을 가지고 있을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게 되고 그것이 존재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성전이나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성전을 헐라” 고 말씀하신 배경에는 성전으로의 모습이 상실되었기에 이제 더 이상의 성전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성전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고 이제는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고전3:16-17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즉 우리가 거하는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보이는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전 6:19 말씀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이제 건물이 성전은 아닙니다. 내안에 성령님을 모시고 거룩한 성전이 되고, 주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8월 25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