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16 영원한 사랑
프랑스의 세느 강에는 36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그중에 유명한 다리로는
퐁데자르(Pont des Arts)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기 때문에 바닥이 시멘트가 아니라. 널빤지로 되어 있어서 젊은이들의 낭만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양하지만, 봄에서 가을 까지 젊은 연인들이 저녁에 나와서 와인을 마시면서 주변이야기와 함께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예술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기 때문에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 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퐁테자르 다리가 유명해진 것은 그 다리 철망에 수많은 자물쇠들이 석양에 반짝 반짝 빛나며 빛을 발하며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물쇠 표면에 여러 가지 사연이 적어져 있습니다. “사랑은 영원히” 라는 글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물쇠를 잠근 열쇠는 세느 강에 던져 버리고 떠난다고 합니다. 이 자물쇠는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무수한 사랑이야기가 자물쇠에 잠겨 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사랑이 자물쇠에 잠긴 것처럼 변화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자신들의 마음을 간절히 담은 것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물쇠로 잠겨 놓아도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 ‘영원한 사랑’이 나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이 시간 요3:16절을 중심으로 해서 '영원한사랑' 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본문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한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죄악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폭력과 거짓이 난무한 부도덕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입니다.
얼마 전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서 자식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이런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아들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홀아버지 손에서 양육되었습니다. 장성한 이아들은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살았습니다. 별 직업 없이 지내던 아들은 카드빚을 갚을 길이 없자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돈을 달라고 요구하자 아버지가 “너는 아쉬울 때만 아버지를 찾느냐”고 꾸지람을 하자 자신의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가 같이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친구에게 죽이도록 하고, 이 패륜아들은 아버지의 카드로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다가 붙잡혔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지난 1월 13일 새벽에 서울 중랑구 연립주택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아내 김씨가 저지른 보험금을 노린 방화사건으로 판명이 났다. 당초 쇼파에서 담뱃불로 화재가 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검찰은 건설 입찰업을 하는 김씨가 3억원 가량의 빛이 있었고, 남편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고, 병원에서 처방 받은 사실이 들어났다. 자신이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이런 죄악을 저질렀지만 자신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불에 타 죽은 것이다.
보험금을 노리고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우리사회에 비일비재합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어린아이 안구 적출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어린이의 큰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집안일로 인해 이런 끔직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이 세상이 슬프고도 끔찍하고 무서운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절에도 그 당시 사람의 심성에 대하여 이사야30:9절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23:10절에 “이 땅에 간음한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호세아 선지자는 4:1-3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 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몸을 주신 사랑입니다. 물과 피를 다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신의 아들을 주신 사랑입니다. 이것은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당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자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찬양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 지면 자신이 죄인 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찬송가 3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죄 가운데서 멸망 받을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과 함께 멸망당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멀어져 가고 있지 않습니까?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이 사랑하셨으니, 이런 나를 하나님이 구원하셨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큰가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04장 가사처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3절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이런 세상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 밖에 없으신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2)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이 아닙니다. 죄 많은 세상입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간음과 폭력이 상존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대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이후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처음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이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악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나무는 먹어도 좋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달콤한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불순종의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사탄의 말과는 다르게 인간에게 영생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영원한 형벌인 죽음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지은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고통이 따르고 수고와 슬픔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이 땅에 독생자 이신 어린양 예수를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악한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고통과 죽음 가운데 사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으신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분이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독생자입니다. ‘독생자’ 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모노게네스” 라고 하는 말인데 이 뜻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 즉 ‘유일한’ 분이라는 것이다.
즉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요한사도는 요1:1-3에서 예수는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 만물이 생성되기 전에 선재하신 분으로 그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2:6-8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나타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15절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독생자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인간으로써 구원자로써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기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1861-1930, Fridtjof Nansen)이 북극 근방 바다의 깊이를 재려고 동아줄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해저에 닿지 않아서 "이 동아줄보다 더 깊음"이라고 기록하고는 다음날 더 긴 줄을 썼지만 역시 해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같은 작업을 며칠 계속하던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근방의 바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같다. 끝없이 깊은 바다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어느 누가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죽음에 내 몰 수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본문 말씀에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즉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와 나의 죄,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죄 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는 죄로 인해서 저주가 없고 사망이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단, 예수를 믿을 때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창세기15장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상속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상속자가 자신의 종 엘리에셀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아브람을 이끌고 밤하늘의 별들을 셀 수 있나 생각해보라 하시면서 미래에 대한 환상과 꿈을 주셨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라 셀수 있느냐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 때 아브람은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를 의로 여기시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5:24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마9:27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 따라 다니던 두 맹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맹인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예수를 따라오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행할 줄을 믿느냐” 하고 물으니 소경이 대답하기를 “주여 그러하외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의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국민일보에 서울 사랑의 교회 집사님이시며 새 누리당 최고위원이신 이 혜훈 집사님의 간증이 나와 있습니다. 이 분은 어렸을 때 얼마나 엄마가 철저히 신앙교육을 하였는지 주일날에는 절대 돈을 사용할 수 없어서 교회도 두 정거장 되는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고 합니다. 옛날 에는 비포장 도로 여서 차들이 다니면 먼지가 앞을 가려서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교회 까지 가는 거리를 찬송가를 부르면서 다녔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그것은 작은 교회에 가면 봉사해야 하는데 교회는 설교하는 목사님과 반주자는 꼭 필요하니 작은 교회에 가서 봉사할 기회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진학할 무렵 마산에도 추첨제가 도입되어 자신이 도저히 가고 싶지 않은 학교에 배정되었다고 합니다. 학교 선생님도 형편없고, 4년제 대학 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학교에 배정되어 하나님께 원망하기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들어주기 않느냐고 원망했더니 어머니는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마6:33) 그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믿어라, 그러면 반드시 얻을 것이다” 말씀하셨다. 그 당시 서울 대도시 학생들은 족집게 과외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지방소도시의 이름 없는 학교에서 다니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의 명령으로 과외를 전면금지하고 본고사도 폐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자신은 선천적으로 수확을 못했고 본고사에는 0점을 맞았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 과외를 금지하는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 결국 모교 개교 이래 최초로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이 되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 역사하십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불 뱀에 물린 자들은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다 구원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기만 구원받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은 인생에 대하여 뭐라고 하십니까?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모세는 시90:4절에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집 나간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집 나간 아들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죄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와 아버지 나라에서 안식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영생복락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 채 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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