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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오신 목적 요3:17-21

gkffpffndi 2013. 9. 12. 08:00

예수가 오신 목적 요3:17-21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장으로 조각가요 화가를 뽑으라면 교황 율리오 2세의 명을 받아 1508-1512년에 걸쳐 시스틴 성당의 천장에 천지 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조각가 임에도 불구하고 4년 여 동안 천장에 매달려서 인류역사상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이 천장 벽화에는 빛을 창조하는 하나님과 하늘과 해와 달 바다와 육지,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는 모습과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모습, 그리고 노아 방주와 홍수, 그리고 술에 취한 노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천장벽화는 높이20여 미터, 길이 40.5 미터 폭13.2미터로 솔로몬 성전의 크기(160여평) 에 등장하는 인물이 200여명이 된다 .

 

그런데 이 시스틴 성당의 천장 벽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벽화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에 아담을 창조하신 장면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아담이 창조주 하나님과 비스듬이 위치하면서 손끝을 터 치 하기 직전의 마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담이 생기를 부여 받는 장면입니다. 즉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행복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사람들이 어둠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사탄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므로 스스로 범죄와 타락의 길로 불순종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결과 인간의 삶에는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라는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역하는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반역의 죄는 아담의 죄의 유전자에 새겨져 아담의 후손이 인간들은 하나님보다 죄악을 가까이 하고 스스로 어둠에 함몰되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동성애자의 날을 정하고 거리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히며 자신들이 성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성적취향을 국가가 법적으로 인정 해달는 시위와 함께 법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매번 다루고 보도되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무감각 해져서 사람들이 소수 인권을 보호하다는 차원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지난주에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들의 결혼을 축하해달라는 김조광수 공개 결혼식이 지난 7일 청계천 광통교에서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결혼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사회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남녀가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정상적인 일이며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성적 취향이 다수의 정상인들의 성적취향과 다른 것에 대하여 비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의 성적취향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 있어서 혐오감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정체성을 싹트게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대다수의 사람들과 비정상적인 취향인 것을 인정함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을 관용하지 못하는 사람, 편견을 가진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결혼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명 인사들이 그런 결혼식에 참여하거나 지지 발언을 함으로써 자신들은 대단한 이해심이 많고 관용의 사람으로 부각,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무책임한 행동이 우리 사회를 부도덕한 사회로 전락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동성 간 의 결혼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성적인 관계로 인해 에이즈 환자가 증가 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 이유 중의 하나가 도덕적 타락인데 그 중에서 성적인 타락을 꼽을 수 있다. 창세기 19장에 소돔이 죄악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성에 거할 때 그곳에 천사가 이르렀습니다. 천사는 성경에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롯에 집에 들어오자 소돔성의 사람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게 됩니다. 그리고 롯에게 말하기를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그 사람을 내 놓으라고 합니다. 소돔성에 살았던 롯은 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알기에 8절에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일고 저지르지 말라” 이 말이 끝나자 그들은 롯에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롯의 집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의 소돔 성 이었습니다. 이러한 소돔 성을 하나님께서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멸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외국의 유명한 가수가 무대 위에서 성적인 퍼포먼스를 노골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 가수는 이 일로 자신의 약혼자와 이별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부도덕하고 타락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2:2-3에서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고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이었더니”

 

그래서 말세 마지막의 현상에 대하여 성경은 시 53: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롬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악한 세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이 어둠의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 이 땅에 오신 것은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말을 들으면 그럴싸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너무 광신적으로 믿기 때문에... 교회 다니면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교회에 가면 헌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교회가 배타적이어서...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지만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사실은 오늘 말씀처럼 자신의 행위가 악해서입니다

요3:19-20에 “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 까 함이요”

 

요한사도는 요1:7-9에 자신은 참 빛이 아니고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참 빛이시며 이 빛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빛이라고 하는 말씀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먼저는 이 빛은 만물을 약동케 하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의 근원인 태양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는 사람이나 생물이나 식물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동네에 산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등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번은 산을 돌아다녀보았는데요, 그 산에 양지 바른 곳에는 밭처럼 일구어서 옥수수며 파, 고구마, 토란, 호박 고구마 등 다양한 식물을 심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자세히 보니 햇볕이 드는 곳에는 다 심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태양빛이 비추지 않으면 식물이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없으니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탄수화물을 맺을려면 이산화탄소, 물, 빛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햇볕은 녹색식물을 성장하게 하고 열매를 맺고, 그리고 그 열매를 동물이나 사람이 에너지로 섭취하므로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생명의 원천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빛의 속성은 어둠이 드러나도록 합니다. 밟은 빛이 비추이면 더럽고 추한 것들이 드러납니다. 빛 속에 비추이면 미세한 먼지나 작은 얼룩이 다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더러운 마음속에 비추이면 자신들의 작은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기가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자꾸 속에서 거부감이 생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셋째, 빛은 멸균 작용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 우리는 따뜻한 햇볕에 이불을 소득하기도 하고. 요즈음 자외선 소득기에 여러 가지 수저나 그릇 등을 데워서 멸균을 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암도 열이 가해지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더러운 죄와 추한 마음, 그리고 온갖 부정한 것들을 어떻게 멸균시킬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의 빛. 성령의 빛에 의해서 만이 죽일 수 있고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말씀의 빛이 비추면, 하나님 말씀이 이해가 되고 깨달아 집니다.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원래 계시라고 하는 ‘Revelation’ 은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연극장에서 무대가 열리기전에는 무대 뒤의 상황을 알 수 없지만, 무대가 열리면 무대 위에 무엇이 놓여 있는 지 다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빛이 비추이면 하나님 말씀이 깨달아 집니다. 천국이 믿어지고 지옥이 믿어집니다. 그리고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이러한 축복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주님께로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오늘 요3:19절 말씀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사탄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보다 이 세상의 쾌락과 부정과 인기와 물질과 명예와 그리고 죄를 더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천국보다 이 세상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소속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4:4-6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

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천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췰 때 이 세상은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것 물리쳐 주의 사랑 비췰 때 기쁨 오네 그 큰사랑 내 맘속에 명랑하게 비췰 때에 찬송 하네 그 큰사랑 내 맘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사랑”

 

주님이 내안에 오시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근심이 물러갑니다. 걱정이 물러갑니다. 질병이 물러갑니다. 죄악이 물러갑니다. 고통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내안에 주님의 기쁨과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넘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상을 구원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1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서 전체를 통해서 보아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나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큰 성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적국인 니느웨에 가기를 싫어하여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고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하나님께 구원이 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물고기가 육지에 그를 토해 내어 구사일생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요나에게 두 번 째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큰 성 니느웨에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명을 선포하기를 하루 종일 다니면서 니느웨가 앞으로 40일 후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때 니느웨 백성들이 왕과 함께 온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을 선포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먹지 못하게 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심판을 면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요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깨닫게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뜨거운 햇볕에 박 넝쿨로 요나를 보호하시다가 후에 벌레를 예비하사 박넝쿨을 갈가 먹게 하시어 해가 요나의 머리에 쪼이자 불평을 하는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나4:10 ... “네가 수고도 아니 하고 재배도 아니 하였고, 하루 밤에 났다가 하루 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시스틴 성당에 천장에는 ‘천지창조’ 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제대 뒤쪽 벽면에는 ‘최후의 심판’ 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천지창조의 그림을 그린 20년 후에 나이 60에 이르렀을 때 교황 파울로 3세에 의해 시스틴 소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된다. 이 작품은 약 70평에 1년 반 만에 완성을 했는데 이 최후의 심판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사람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인데 지옥에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탄이 데려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한가지로 인상을 찡그리며 가지 않을려고 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천국과 지옥 사이에 걸려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그림이 바로 자신인 미켈란젤로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가장 큰 축복은 무엇입니까? 장사가 잘되어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사는 것입니까? 그러면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영혼이 구원 받는 것입니다. 심판 받지 아니하고 영원히 행복한 나라인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딤전 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 받고 그 영혼이 지옥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둠속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어둠에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분 안에 영생이 있고 행복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구원이 있습니다.2013년 9월 15일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