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부르신 예수님 마가복음2:13-1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자신은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각색 병든 자 간질 하는 자 문둥병자, 중풍병자를 고치신이유는 병 고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 고침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든 발자취는 영혼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세리 레위를 부르시어 제자를 삼는 과정도 사실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일꾼을 모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삼으시는 과정이 본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고 전도 여행을 하시는 중에 바닷가에 나가셔서 바람을 쏘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자 주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거리를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 사람 알패 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세관인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아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이 시간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세리 레위를 부르시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제자를 삼으신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어부란 지금이나 당시나 많이 배운 사람들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가난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주님은 하늘나라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선택을 받았지만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제자로서 부적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이 이들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허물과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 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실수가 많아서 그렇치 이런 사람은 순수하고 주님을 향한 충성심이 누구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로마에서 예수님처럼 똑 바로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고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뭐든지 제일 먼저 결정하는 스타일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성질이 급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별명은 우레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 듯 주님은 무식하고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지만 그들의 약점만을 보지 않으시고 하늘나라에 대한 그들의 충성도를 보시고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박근혜 당선인이 차기 정부의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각 부 장관및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의 인선을 마무리 하여 지금 청문회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당선인의 용인술은 한 번 일을 맡긴 후에 일을 능력 있게 감당하면 또 다시 그 사람을 재임용한다고 하는 것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언론에서는 친박 인사, 측근 인사라고 하여 인재풀이 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용인술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양친을 총탄에 쓰러지면서 개인적으로 엄청난 충격과 함께 본인이 그런 와중에서 사람들의 변심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신하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번에 정무수석으로 발탁된 이정현씨의 경우도 박근혜 당선인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밤새 자료를 수집하여 박근혜의 억울한 일들을 잘 처리하여 인정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권력 주변에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서 카멜론 처럼 자신의 입지나 출세여부에 따라 배신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았던 것도 아마도 주님을 향한 충성여부 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지식이나 부나 명예보다도 주님이 더욱 선택의 기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충성을 염두에 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세리 레위도 마찬 가지 였습니다. 세리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로마 권력에 붙어서 동족 유대인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무공무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세를 착취하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마차에게 세금을 물리고 여러 가지 모양의 세금을 거두어 들여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기에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세리는 민족 반역자요 자신 의 양심을 속인 합법적으로 남의 주머니를 털어 간 도둑 인 것입니다. 세리가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였는지 삭개 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삭개 오는 자신이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일반 사람들이 보는 시각하고는 달랐습니다. 세리 레위의 이런 부정적인 면만을 보았다면 주님은 세리 레위를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세리 레위로 기록되어 있지만 후에 그가 마태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복음서 가운데 첫 번 째 복음은 마태복음을 기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예수의 족보를 맨 앞에 기록하였으며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위선에 대해서 질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은 일반사람들 하고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편견과 선입관을 뛰어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충성에 대한 가능성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선택할 때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으로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할 일꾼을 찾으십니다.
2)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사람의 학식이나 재산유무를 보신 것이 아니고 내면을 보셨습니다. 현재만을 보지 않으시고 미래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사회적인 여론이나 평판보다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을 보셨습니다. 그 당시에 세리 레위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주님은 먼 훗날 그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사도가 될 것임을 내다보시고 그를 제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14절b에 따르면 “저희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쫓으니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이 부르실 때와 마찬가지로 세리 레위도 즉각적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이유를 대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들입니다. 그리고 많은 음식을 제공합니다. 잔치를 벌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자신의 친구들인 세리들을 초청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합니다.
온 동네에 소문이 크게 났습니다. 사람들이 비난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그런 것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오랜 만에 세리들과 예수님이 어울려서 마음껏 웃고 즐겼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즐거운 것입니다. 가나안 혼인잔치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면 그 인생이 즐겁고 기쁩니다. 교회생활이 활기가 재미가 있습니다. 말씀이 꿀 송이 달게 느껴지고 주일날이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를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생활은 기쁘고 즐겁고 은혜가 넘칩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찬송가 430장 1절에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 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세리 레위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때 그의 인생에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얻지 못했던 기쁨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기로 결심하는 순간 위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15일자 국민일보 미션 난에 샘 복지재단의 박세록 원장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그는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지만 사채로 겨우 등록을 했지만 아버지는 그 후유증으로 대학 1학년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오남매 중 맏이인 그는 가장의 책임을 안고 믿을 건 실력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미국의사자격시험에 도전 합격하여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악바리처럼 공부하여 72년 그는 볼티모어 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등 2개의 자격증을 따서 미국 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 그가 결정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교회에서 인도한 성경공부와 인도에 다녀온 선교 여행 이었다고 합니다. 말씀공부를 하다 보니 취미였던 골프와 여행의 재미도 사라지고 오직 말씀만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그는 인도 선교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가치 있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마침 88년 북한 정부의 초청으로 북한 땅 평양에 평양 제3병원을 최초로 세워 최초 개복수술을 집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병원도 자신의 부동산과 건물 100만 달러 상당의 재산을 처분하여 설립, 후에 북한이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떠나라고 하여 지금은 2000년 중국 북한 접경지역에 단둥 복지 병원을 세우고 의료품 지원과 구호물자 전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의료봉사와 제자양육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전역 5000개 진료소에 1만개의 의약품이 들어있는 왕진 가방을 2004년부터 전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사상범 남한에서는 빨갱이라는 갖은 비방과 모욕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가능합니다. 보낸 자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사명자의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멋진 삶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75세의 노구의 얼굴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가장 좋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복음성가 가사에도 있지 않습니까?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 찾아 오셨네 주안에 생명이 있네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 찾아 왔으나 사람들 영접 안 했네 예수 안에 생명 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 예수 안에 생명 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님은 빛이십니다. 구원자이시며 메시야 이십니다. 하지만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오른 편 강도가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오른 편 강도와 왼편강도가 있었습니다.
그 때 왼편 강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증명을 해 보이라. 이 순간 네가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그리고 나도 구원하라 하면서 비아냥 거렸습니다. 하지만 오른 편 강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죄 때문에 보응을 받는 것 당연하지만 당신은 내가 보기에 죄가 없나이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좀 해 주소 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오늘 밤 네 영혼이 낙원에 있으리라. 자신의 죄를 인정한 오른 편 강도는 구원의 은총을 입었지만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한 왼편 강도는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8장 1-11절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데려 와서 예수를 시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에 세우고 말하기를 이 여자가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돌로 쳐 죽여야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함은 예수에게 무슨 꼬뚜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주님은 몸을 굽히사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뭐라고 쓰시고 일어나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니 사람들이 양심에 찔려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청년까지 다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간음한 여인만 남게 되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절여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어디 있느냐 11절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이 내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은 자신이 죄가 눈앞에 드러나지 않을 때 까지는 자신을 위장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대단히 선하고 깨끗하고 의롭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나 허물에 대하여는 용서치 않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기 까지는 빛 되신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 나오는 순간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고 거짓과 위선과 도덕적 흠결이 드러나게 되고 그 순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 까지는 자신이 가장 의롭고 경건하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다메섹 사건 이후에 자신을 가리켜서 ‘죄인주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누가복음 18장9-14절에 보면 성전에 올라가 바리새인은 서서 기도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 같지 아니하나이다.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에 대하여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고 겉은 번지르하고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찼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죄는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구원의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들 가운데도 바리새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은 늘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자신은 대단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 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리처럼 날마다 아니 교회 안에 들어설 때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러한 고백을 드려 주님의 은총과 구원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지금도 그 옛날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부르셨던 것처럼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충성된 마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너는 나를 따르라 부르십니다. 또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구원과 은총이 필요한 죄인임을 기억하고 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3 년 2월 24일 청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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