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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규례에 관하여/막2:23-28

gkffpffndi 2013. 3. 6. 18:41

안식일 규례에 관하여/막2:23-28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금식에 관한 논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들은 유대인으로서 금식 규례를 지키는 반면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혼인집 식구들은 신랑이 있는 동안은 금식할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신앙의 형식에 치우친 바리새인의 외식을 지적하시면서 지금은 새로운 시대에 왔기에 새로운 가치관인 새 포도주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3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결법, 할례 그리고 안식일에 관한 규례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가장 많이 부딪친 안식일 규례에 관한 논쟁의 부분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에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시장기가 발동 되었는지 이삭을 자르고 비비어 입에 털어 넣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지켜보다가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하면서 안식일 규례에 어긋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안식일 규례에 관하여” 이런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오늘 이 바리새인의 질문은 안식일 규례에 관한 질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 왔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기원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은 만드시고 칠일 째 되는 날은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안식일에 관한 규례가 성문화 된 것은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시내 산 에서 십계명을 전수 하였는데 그 중에 4번 째 계명에 나와 있습니다. 8-11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시내 산 언약아래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 왔습니다. 특히 바벨론 침공으로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생활을 할 때 그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안식일을 지켜 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안식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를 잃어버렸을 때 그들의 민족을 지켜 주었던 것은 안식일이었습니다.

 

2000여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전 세계 유대인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회당이 있고 그곳에서 안식일이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이 없었다면 2000여년의 유랑 생활 속에서 유대민족은 벌써 없어 졌을 것입니다. 이렇듯 안식일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절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에 관한 율법에 아주 세세한 항목을 두어서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관한 규례가 있는데 39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규례 아래 또 다른 부칙이 234 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본문에 밀 이삭을 잘라서 비벼 먹는 행위 자체가 노동을 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왜 당신의 제자들은 이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 않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들의 규례에 의하면 이삭을 자른 행위 자체가 노동입니다. 그리고 잘라서 손으로 비볐으니 탈곡한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훅하고 불 은 것은 키질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먹었으니 음식을 만든 행위로 노동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자신들이 여러 가지 세세한 부칙을 붙여서 만든 책이 “미슈나” 라고 하는 책인데 성경책보다도 더 두껍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이러한 규례로 인해 무거운 짐이 되었겠습니까? 종교가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이 되어 그 속박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농경사회에서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동안 고된 노동에서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체적, 정신적 쉼을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주시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규례를 제도화하여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고 지키지 않으면 정죄하고 심판함으로 원래의 안식일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왜곡하였기 때문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안식일에 즐거워야 하는데 즐겁지가 않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출20장의 말씀처럼 남종이나 여종이나 심지어 말 못하는 짐승까지고 쉼이 필요한 줄 아시고 쉬도록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땅에도 안식년을 주셔서 6년 까지는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7년 째 되는 날은 1년 동안 안식년을 두어서 땅에 지력을 붇 돋어 주어 다음해에 많은 결실을 맺도록 해줍니다. 이렇듯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땅에도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있어서 중요한 정신은 쉼입니다. 휴식입니다. 그런데 이 원래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형식이나 제도만이 남아서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 규례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따라서 예수님은 잘못된 제도나 형식에 대하여 지적하시고 본래 안식일에 취지와 목적에 맞게 고쳐 주시고 깨우치신 것입니다.

 

2)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장하여서 이삭을 털어 입에다 넣은 사건에 대하여 시비를 걸자, 예수님은 삼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놉이라는 곳에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배가 고파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떡이 있으면 달라고 요구합니다. 아히멜렉은 본문에 나와 있는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버지입니다. 이 때 제사장 아히멜렉은 보통 떡은 있지 아니하고 떡 상에 차려졌다가 물려진 거룩한 떡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거룩한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과 그의 병사들이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과 병사들은 성결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아히멜렉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 즉 진설병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시장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다윗의 예를 말씀하신 것은 율법이나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법에 의하면 다윗에게 제사장 떡을 준 것은 분명히 법을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법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을 위해서 인 것입니다.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유익하고 편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 오히려 사람을 구속하고 억압하는데 이른다면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멍에나 짐을 지우는 이러한 규례나 부칙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시장하여 밀 이삭을 비벼서 먹은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군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최전방에서 근무했습니다. 소위 철책선이라고 하는 GOP에서 6개월 동안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철책선 근무에서 훼바에 내려오면 훈련이 많습니다. 대대에서 하는 동계훈련이나, 연대에서 RCT 훈련이 있습니다. 이런 훈련에는 밤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밤에 이동하다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상당히 고프게 됩니다. 그러면 훈련 중에 강원도에는 그 당시만 해도 옥수수를 따서 바깥에 큰 대로 만든 자루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면 밤에 옥수수가 그렇게 딱딱 한데도 배고파서 그것을 군인들이 하나씩 가져가면서 허기를 채우게 됩니다. 어느 때는 가을에 훈련 중에 무 우 밭에 지나가게 되는데 군인들이 무우 밭을 지나가면서 하나씩 무우를 가지고 허기를 채우기도 하고 깻잎 밭에 지나가면 깻잎을 생으로 먹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굳이 말하면 죄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늘 농사 지어가지고 창고에 있는 것을 훔쳐 간다든지 고추를 말리려고 널어놓은 것을 트럭에 실어가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25절에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따라서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행동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율법에 세부항목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여러 가지 로 옳아 매어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안식일을 본래의 취지인 안식과 휴식이 아닌 사람들에게 고통의 날로 만들었기에 예수님께서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리새인들에게 마15:6절에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이 대대로 지켜온 율법의 해석인 전통을 중요시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어떤 전통이나 유전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우위에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전통이나 유전을 고집하였지만 주님은 그 보다도 사람이 먼저 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제도나 전통이나 법은 사람을 옭아매고 구속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자유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불편하게 하는 잘못된 제도나 법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규정한 안식일 규례가 사람에게 쉼과 안식을 주지 못하고 규제하고 오히려 고통을 주는 것이었기에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3)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 는 말은 예수 안에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그 개념이 주일로 바꾸어 졌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안식일의 정신을 주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잘못된 생각을 가진 종교에서는 안식일을 오늘 날에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안식일, 즉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유대교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주일에 부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도 한동안은 유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안식일을 지졌지만 그 이후에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 것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행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 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따라서 우리가 지금 구약시대처럼 안식일을 지키라 했으니 유대교나 안식교처럼 안식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기나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14장5-6절에서.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 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즉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날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의 정신은 이 땅에서 지치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치 뜨거운 여름날에 시원한 냉수를 제공하듯 그들에게 쉼과 안식을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쉼을 얻을 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내안에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할 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일은 결코 우리를 속박하는 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영혼이 쉼을 얻고 참자유과 행복을 누리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배를 통해서 자유와 기쁨과 안식을 얻는 것이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주대준 장로님의 “바라봄의 기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분은 경상도 시골에서 태어나셨는데 부자 집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사업이 무너져서 빚쟁이를 피해서 거제도로 아버지와 함께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교회에 간판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성구를 보고 자신의 성이 같은 예수라는 분이 친근감이 느껴져 그 때부터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고아원에서 맡겨져 어려운 가운데 초등학교와 검정고시와 야간고등학교를 거쳐 육군 삼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거기서 인정받아 IT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미국에 유학을 갔다 와서 군에 IT분야에서 인정받던 중 우연히 청와대 앞에서 근무하였는데 마음에 청와대 근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하나님께 청와대에 근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기적같이 청와대에 근무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청와대 직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교인들이 있지만 청와대 내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곳 청와대에서 신우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결과 청와대에서 최초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 신우회장으로 주보를 돌리고 외부에서 목사님을 모셔다가 예배를 드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예수 꼴통”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충성한 결과 경호처장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들은 다들 이번에는 어려울 거라고 할 때마다 기적적으로 역사하셔서 자신하고 상관없는 경호실의 2인자의 자리까지 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퇴직 후에 대전 카이스트 교수로 7개월만에 부총장의 자리에 올라 캠퍼스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예배를 생명같이 지켜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예배를 통해서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고 참된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안에서 안식일은 주일로 바꾸어졌습니다. 주일 성수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주일의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지치고 힘든 삶이 회복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3월10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