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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35-39/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gkffpffndi 2013. 2. 14. 11:39

마가복음1:35-39/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께서 유대인 회당에서 ‘권세 있는 새 교훈’으로 더러운 귀신을 내 쫓으신 이후에 예수의 소문이 갈릴리 지역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오신 이후 야고보 요한과 함께 시몬과 그의 형제인 안드레와 함께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계신 집에 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누워계신 베드로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자가 일어나 수종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해질 무렵에 각색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렇게 병 고침의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침을 받고자 예수님이 계신 곳에 쫓아 왔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하루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루의 삶의 시작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셨습니다. 바로 주님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바로 사명 따라 사는 자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 사명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상종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조용한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아신 주님은 사람들과의 만남 이전에 하나님과의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새벽에 일어나셨습니다. 35절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어떤 분은 새벽기도를 누가 만들었냐고 말합니다.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님이 만드셨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직장생활하시는 분은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하나님께서 광야에 만나를 내려 주셨듯이 하나님이 새벽에 주시는 은혜가 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주님과의 만남, 즉 기도시간으로써 가장 적합한 시간은 아마도 새벽시간일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시간을 놓치면 하루 종일 기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도 아마도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새벽시간은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새벽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림으로써 우리영혼이 깨끗해지고 맑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 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면 기도생활은 내 자신의 영적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는 것 처럼 기도생활을 쉬고 있다면 내 영혼이 지금 죽어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죽어있는 생물하고 살아있는 생물하고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다르겠지만 감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죽어있는 생물은 감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물은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살아있는 성도입니다. 기도생활을 쉬고 있습니까? 죽어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생활을 쉬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그 분주함 속에서도 시간을 따로 내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연약한 저와 여러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기도하신 이유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위로와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운동이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음식물을 섭취하므로 에너지가 나오듯이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도하지 안하고서는 하나님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중직을 맡으신 기관장이나 직분 자들은 기도생활에 앞장서야 합니다. 기도하는 중직 자가 많을수록 교회가 건강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힘차게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기도생활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이천에 어느 순복음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교회 정문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도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 두 명과 함께 버스 뒷 자석에 타게 되었다. 왼쪽에는 얼굴이 좀 안생긴 여자가 있었고 오른 쪽에는 미스코리아는 안 돼도 잘생긴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우연찮게 두 여자 사이에 앉았습니다. 버스가 시골길을 가는데 갑자기 왼쪽으로 차가 쏠리면서 이 남자가 기울어지자 이 남자는 순간적으로 기도하기를 주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번에는 차가 오른 쪽 예쁜 여자 쪽으로 기울자 ““주여!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한국기독교 목회자 협의회의에서 ‘2012년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서 전국의 목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목회자들 가운데 모태신앙의 비율이 51.2%였으며 1주일 성경은 8시간 51분, 하루 평균 개인기도시간은 2시간41분이었다.

 

제가 알고 있던 교회집사님 가운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작은 월세 집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사무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면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번은 이분이 하는 사업체에 심방을 갔더니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면서 상당히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에게 앞으로 이곳 사무실에서 모든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사업을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자신의 직원 가운데는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교회집사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잘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큰 사업장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연히 그 이전한 사업장에 들렀더니 한 100평 되는 큰 사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사무실 한 쪽 구석에 기도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두 부부는 출근해서 먼저 이 기도실에 들어가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사업이 한참 때는 영업사원이 3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너무 사업이 잘되어 자신들이 선교도 하면서 시내에 큰 빌딩을 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바쁘고 분주한 가운데서도 항상 먼저 기도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자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을 먹이려면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의 돈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주님은 이 아이가 먹을 한 끼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사람들을 다 앉히고 이것을 나누어 주었을 때 오천 명을 먹이고 12 광주리 가득히 남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더욱 따라다녔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붙잡아 임금 삼으려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들의 뜻을 뒤로 하고 자신은 한적한 곳에 가셔셔 기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일상을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피곤한 함을 잊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영적 재충전을 기도로 보충하신 것입니다.

 

음악가 하이든은 그가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고통이 올 때나 마음이 외로울 때, 낙심과 절망에 빠질 때면 바로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구합니다. 그 골방에서 기도하고 나올 때면 나는 마음에 평화를 얻고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찬송364장에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

 

주님도 바쁘고 분주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세속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므로 자신의 본분과 사명을 감당했다면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기도하심으로 교회의 직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2)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시몬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따라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지금 사람들이 주를 만나기 위해서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시몬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하니 소문이 갈릴리 사방에 다 퍼져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인기 있는 연예인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 한번 보기를 원하고 자기 앞에 나타나면 싸인 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인기가 절정에 달해 몸값이 천정부지로 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명은 그게 아니었기에 주님은 이들의 낯을 피하여 발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38절에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러한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기도하러 가신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속 에서 새 힘과 쉼을 얻고 주님의 지상명령인 전도를 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지역에서 충분히 복음을 전했다고 했기에 그는 복음을 듣지 못한 다른 마을에 가서 전도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9:1-10에 보면 세리 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고 세리 장으로서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서 삭개오 에게도 들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시내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삭개오는 그 주변의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뽕나무에 올라 간 삭개오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삭개 오야 내려 오너라 오늘 밤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가 얼른 내려와서 주님을 영접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제가 만약에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고,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내 놓겠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수가 라 하는 동네에서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우물에서 전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원래 우리가 아는 대로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은 상종치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그에게 전도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고 요구하니 그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어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하시면서 네가 주는 이 물은 목마르려니와 내가 너에게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영생하도록 샘솟는 샘물이 되리라. 이 말을 듣던 이 여인은 그런 샘물이 있으면 나에게 주어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라고 말할 대 주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말한다. 주님은 이어 지금 있는 네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말함으로 그 여인의 심장을 꿰 뚫으로 이 여인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깨닫고 자신의 동네에 들어가서 자신이 메시야를 만났다고 고백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나오기를 시작하자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34-3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이 보실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가 바로 말세에 종말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지가 벌써 200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소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미국에 건너가서 그리고 한국과 중국을 거쳐서 지금은 다시 Back to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전 세계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인 기상이변과 경기침체, 그리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핵개발로 심상찮은 조짐이 주님의 오심을 경고해주는 Sign 임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에 다니엘 김 선교사의 간증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우리의 무딘 감각을 깨우고 있습니다. 이 분은 젊은 사람으로 한국에서 10년 살았고 제일교포 2세 아버지를 따라서 일본에서 17개국 학생들이 모여 영어로 수업하는 후쿠오카 국제학교를 다녔고 이후 도미에 찰스턴에 위치한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미국육군사관학교 4학년 때 종교대장이 되어 전교생을 신앙지도 하였다. 다니엘 김 선교사는 십대시절 일본에서 매주 5년동안 길러리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후 트리리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6년 선교사 파송을 받았으며, 2007년 미국 남 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전 세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한 곳에 10일 이상 머물지 않고 1년 365일 끊임없이 움직이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유튜뷰 동영상이 수십 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분의 메시지는 내일은 평안이 아니고 환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막연히 내일이 되면 나아지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심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점 세상은 어둠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 어떤 고난에도 무릎 꿇지 않는 사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갈망하며 마지막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그는 철인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님을 위한 철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 철인은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자이며,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멸하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예배자이며 그 어떤 성취보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는 자이다.

 

계시록14: 6-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 천사를 보내어 마지막 이 세상을 심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7절에 보면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8절에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점점 멸망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알곡과 쭉정이를 고르는 시대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갈수록 고통속에서 탄식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세 마지막에 세대에 사는 자들로서 니느웨 성에 가서 구원의 소식을 전했던 요나처럼 멸망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 영원한 지옥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 내 가족 이웃 친구들에게 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바쁘고 분주한 가운데서도 한적한 곳에서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기도는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이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2월17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