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 막1:1-11
그리스의 한 병사는 그리스가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와 싸워 승리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승전 소식을 고국에 전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후에 그 병사가 뛴 거리를 재어보니 42.195km 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라톤 경기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마가가 전하는 소식은 바로 이러한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이란 영어로 Good News 인데 이 뜻은 “ 좋은 소식” “기쁜 소식”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 복음이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절망과 고통과 가난과 박해 속에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 어둠의 세상에 복음의 새 소식이 전해 졌음을 긴급히 알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400여 년 동안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있을 때 세례요한이 나타나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자인 세례요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세례요한은 광야의 소리였습니다.
세례요한이 나타났을 당시의 시대상황은 조국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 날 수 없어서 대부분의 ‘오클로스’ (민중) 는 가난과 질병과 억압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하루하루 마지못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소수의 지배계층인 왕족이나 귀족 층 혹은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로마 권력에 아부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동시대인이었던 로마의 유명한 철학자요, 정치가 세네카는 로마를 보면서 "모든 불의로 더러워지고 썩어버린 수채 물과 같다"고 한탄한 바 있고, 주후 60년대의 로마의 시인이었던 주 베날은 "모든 더러운 오물들이 가득히 내려 흐르는 하수도와 같다"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사회가 속국으로부터 부를 축적하면서 얼마나 타락하고 방탕하고 무질서한 사회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대에 편승하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부를 쌓고 쾌락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광야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사이에 서 있었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입니다. 이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요한의 외모를 한번 보세요? 어떻습니까? 6절에 보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여러분! 이러한 사람이 오늘 날 도심 한 가운데 나타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당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온전한 사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부유층 들은 자색 옷을 입고 다니고 좋은 옷들을 입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세례요한의 모습은 그야말로 남루하기 그지없는 거의 부랑자 수준이 아닌 가 생각이 듭니다. 먹는 음식도 양고기나 소고기 가 아닌 메뚜기와 들에 있는 석청 이었으니 그 몰골을 안 봐도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왜 세례요한이 광야에 들어갔을 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곳은 도심에서 지치고 따돌림 당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 베고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이 불쌍한 민중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마가는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그 드넓은 광야에서 아무리 큰소리로 외쳐봐야 사람들의 귀에 들리겠습니까? 광야에 누가 얼마나 있습니까? 하지만 세례요한은 그 곳에서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호응하든 하지 않든 간에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상당한 무리들이 세례요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무리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소문을 듣고 세례요한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면 과연 세례요한이 전한 소리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을 까요? 그 당시 가난과 질병,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것이 마 3:2 절에 나와 있습니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즉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가난과 질병과 고통과 저주가 없는 영원히 행복한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눈을 고착하고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눈을 들어서 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에게 희망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찬바람만 쌩쌩 부는 광야 같은 세상에 서 있습니다. 광야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 할 수 있습니까? 땅에 것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고후4: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오늘 날 광야 같은 세상에서 홀로 고통 속에서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광야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고 말과 생활을 통해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2)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전파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자신이 유명한 선지자가 될 수 도 있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은 거기까지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무대 위의 주연이 아니고 조연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자신을 주목하던 그 때 자신의 시선을 돌려서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비교합니다. 7절에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이 말의 뜻은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사막이고 날씨가 더웁기 때문에 샌들을 신고 다닙니다. 샌들을 신고 이곳저것을 다니다가 남의 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주인의 종이 손님의 발을 깨끗하게 씻겨 준다고 합니다. 즉 신발 끈을 푼다고 하는 것은 자신은 “ 종” 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역할은 종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의 역할은 주인이 오시는 길을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종의 역할은 주인이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그 분이 자신의 사명을 잘 수행하도록 종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들은 많은 군중들이 마음에 감동을 바고 은혜를 받고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물세례는 과거의 죄를 깨끗이 씻고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사람이 되었다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요한은 이 회개의 메시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준비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대로를 평탄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사람들의 마음을 하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께 향하도록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 우리에게도 세례요한과 같은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파루시아’ 즉 종말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실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사람들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케 해야 합니다.
지난 1월 11일자 국민일보에 우리에게는 세시봉 가수로 알려진 윤형주 가수아니 장로의 간증이 실렸습니다. 이 분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 학교인 연세대 의과대학에 들어갔으나 노래 하는 것이 너무 좋아 가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소위 7080세대의 영웅이랄 까 그 시대의 아이콘인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조영남인데 그 당시 이 분들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수 천 명의 소녀들이 따라왔다고 합니다. 헌데 이 분이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생일날 받은 편지 속에 발견됨으로써 자신은 피워 보지도 않았는데 그 해 75년 12월 2일 이장희 이종용 동료 가수 들과 함께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살인범 강간범등 각종 잡범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서 동맥을 끊을려고 했는데 어머님니 감옥에 넣준 성경책을 잃으면서 감동을 받고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 물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그 선교하고 봉사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로부터 시작해서 현재 한국해비타트, 홀트 아동복지등, 23개 단체에서 시간이 없지만 자신이 몸이 부서져도 가서 봉사하면 하나님이 기쁨을 주시다고 하고 1년에 10 번쯤 해외에서 간증이나 선교 봉사활동에 참여 한다고 합니다. 그의 꿈은 중앙아시아에 학교를 세우고 교회나 선교사를 재능과 물질로 돕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류는 우리 민족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실크로드를 타고 무슬림에 갈 수 있는 길은 한류 밖에 없다고 하면서 우리 크리스챤 가수들이 복음을 전할 날이 올 거라고 말하면서 그일을 세시봉 컴페니가 감당할 거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케 하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세례요한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케하는 이 시대에 세례요한, 윤형주 장로님 같은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정치적으로는 유대 민족이 로마의 식민지에 있어서 대부분의 민중들은 가난과 질병과 고통과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소수 지배계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민중들은 희망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시대 였습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로마권력에 아부하여 종교의 예언자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지도층들이 부패하였습니다. 이 때 혜성같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요한은 자신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고 자기 뒤에 오시는 이가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는 마3:12절에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 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절망의 시대에 예수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종에게 세례를 받으러 올 대 세례요한은 마3:14절에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8절에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요한은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위대하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1절의 시작에서 알 수 있듯이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이라”에서 보듯이 세례요한에게 물세례 받으시는 분은 그 당시 사고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충격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이 땅에 태어난 그 어떤 성인이나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가 피조물인 인간에 불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세례요한 앞에 나와 요단강에 물세례를 받으신 예수는 단순히 나사렛 예수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 “예수”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라고 하는 뜻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라는 뜻으로 이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천사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예수라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 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말이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한 말인데 비해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은 자” 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라는 말의 뜻은 완전한 인간임과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신학적인 용어입니다. 이 말은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 위대한 선지자나 성인이나 영웅들이 있지만 인간을 죄와 사망과 저주와 질병에서 자유케 하고 해방시킬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엄청난 은혜요 축복이요 복음 즉 Good News입니다. 바로 마가는이 땅에 복음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요단강에서 올라 올 때 11절에 “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인증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마가는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세례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세례요한의 시선과 행동의 집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여 있듯이 오늘 우리의 시선과 행동과 생각과 삶이 항상 예수 그리스도을 가리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C는 예수님 초림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한 세례요한처럼 이 시대에 광야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라는 말을 주님께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바랍니다.2013년 1월27일 청주벧엘성결교회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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