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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 나무 아래 엘리야 /왕상19:1-10

gkffpffndi 2012. 7. 27. 16:02

 

로뎀 나무 아래 엘리야 /왕상19:1-10

 

지난 시간에 우리는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들었던 땅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하게, 낙심치 않고, 확신과 믿음에 찬 기도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한 능력의 사람임 알았습니다. 그에 앞서 엘리야는 갈멜 산상 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싸워서 우상을 섬기던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가 다 잡아 죽였던 야훼 하나님 신앙에 투철한 사람임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그의 사자를 보내어 엘리야의 목숨을 찾겠다고 하는 말에 그 담대하고 위풍당당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두려움에 사로 잡혀 이세벨을 칼날을 피해서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때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하였던 엘리야도 우리와 같이 이세벨의 칼날 앞에 도망쳐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자 광야로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 숨어 있는 엘리야의 모습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나약한 인간 엘리야

 

엘리야란 이름의 뜻은 ‘야훼가 나의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 올라가셨을 때 모세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위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모세가 열 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바로 왕에서 구원하였다면 엘리야는 아합 왕과 이세벨의 잔학한 정권아래서 야훼 하나님이 참 신임을 증명한 자로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을 행할 뿐 아니라 죽은 아들을 살리고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은 땅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여 큰 비를 내린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그런 그에게 이세벨의 전갈이 왔습니다. 그 전갈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죽였던 것처럼 네 생명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받은 엘리야는 갈멜산 에서의 담대함은 사라지고 그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갈멜 산에서 승리 이후에 이제 자신이 승리 한 줄 알았고 아합과 이세벨이 이제 항복하고 물러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입니다. 갈멜산에서의 영적 에너지를 소진한 엘리야는 더 이상의 싸움은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지원해 주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갈멜 산은 북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내려갔습니까? 최남단인 브엘 세바에 이르렀습니다. 갈멜산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약 200K가까이 됩니다. 그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광야 깊숙이 하루 길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 로뎀 나무 아래서 이렇게 하나님께 말합니다.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 하옵소서” 그리고 거기서 지쳐서 로뎀 나무아래서 누워서 자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크게 영적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하나님의 종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나약한 한 사람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엘리야 역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우리 인생을 질그릇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 무엇입니까? 그릇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사기그릇도 있고 놋그릇도 있고 그리고 흙으로 빚은 토기그릇 질그릇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약하고 깨지기 쉬운 그릇이 질그릇입니다.

 

다른 그릇은 잘 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그릇은 쉽게 깨지고 부서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마음아파하면서 잠도 못자고 그러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엊그제께 이명박 대통령께서 친인척 비리와 참모들의 부정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꾸 사과 하는 장면이 마음이 좋지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주변사람들을 잘 단속하지 못해서 이나라 최고 지존인 대통령이 서민들에게 자주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결코 유쾌한 일만은 아닙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정치판이 너무 상대를 적대적으로 규정하고 사생결단식의 중상모략이나 침소봉대하여 나라를 혼란시켜 정치발전의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잘못은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해주고 덮어주는 넓은 아량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대통령들은 허물이 없어서 공항이나 도로 등 국가기간 산업에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당이 다르고 정책에 대한 뚜렷한 입장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국가 원수로서 예우는 국민들이나 국회의원들이 갖추어야 성숙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19대 국회개원 연설을 할 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회에서 연설할 때와 비교가 됩니다. 오바마가 미 의회에서 연설할 때 수 십 번의 박수 갈채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연설할 때는 한 번이나 있었나 모르겠습니다. 국회 입장할 때도 국회의원들이 기립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 익명으로 이 대통령을 얼마나 욕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내용을 대통령이 읽는다면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상처가 크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사과문을 발표할 때까지 그리고 자신의 친형이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감옥에 들어갈 때 어떠했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밤잠을 설치셨다는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너무 상처가 커서 쓰러지고 넘어지지 않을 까 걱정이 앞섭니다. 대통령도 우리와 똑 같이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연약한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엘리야도 전에 큰 기적과 능력을 보여 주었던 담대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은 분명 아닙니다. 이세벨의 칼날이 두려워 피신한 좌절과 절망에 처한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여 남에게 괜한 말을 하여 상처를 내고 아픔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힘을 북돋아 주고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2. 절망 속에 있는 엘리야

 

로뎀 나무 아래 엘리야는 그야말로 에너지가 다 소모가 된 상태입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밧데리가 방전된 상태입니다. 진이 다 빠지고 기력이 다 빠져 나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영어로는 burnout 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렇게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가 올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피곤하고 지쳐 있어 만사가 귀찮고 싫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에 우환질고가 연달아 찾아오죠, 부부간에도 권태기가 오죠, 아이들도 말들을 잘 안 듣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인 고통이 가중되기 시작하면 사람만나는 것도 싫어지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사회적인 피로감으로 인해 불안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오게 됩니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우울증으로 진료 받은 환자는 2010년 51만6000명으로 2006년 44만1000명보다 17%가량 늘었다. 그사이 한해 평균 4%씩 증가한 것이다. 특히 여성 환자의 경우 한해 평균 4.4%씩 늘어 남성(2.9%)보다 증가폭이 컸다.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는 주저앉아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옵소서.”

 

그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게 영적 깊은 슬럼프가 온 것입니다. 로뎀 나무 아래 기도는 영적 거인인 엘리야의 기도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좌절과 절망과 탄식에 가까운 실패자요 영적 패잔병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엘리야의 절망에 찬 모습에서 오늘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은혜가 충만하여 기도도 응답이 빠르고 가정이 평안하고 직장생활이 형통하고 사업이 잘되고 그럴 때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다가고 갑자기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때부터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의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망과 좌절 속에 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로뎀 나무아래 지쳐 있는 엘리야에게 주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누워 자고 있을 때 엘리야를 ‘어루만졌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엘리야에게 스킨 쉽을 통해서 그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 준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스킨십을 자주하는 사람이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복음성가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 하네 고통 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 밖에 없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주님은 우리 인간이 무엇이 필요하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머리맡에 보니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이 물이 있어 그것을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하므로 이에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루만졌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인간은 그 어떤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심한 좌절과 절망과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치료됩니다. 또한 여기서 떡과 물은 물질적 인 것입니다. 지쳐 있는 엘리야에게 떡과 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떡과 물을 먹고 마시므로 엘리야는 육체적으로 쉼을 얻었습니다. 영적, 정신적으로 위로 받고 육체적으로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지, 어떤 상태에 있는 지 아십니다. 엘리야에게 찾아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절망의 시간에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사명을 찾은 엘리야

 

요즈음 휴가철이 되어서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산이나 바다로 며칠 동안 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그동안 쉬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가정도 소홀하게 되고 심신이 많이 지쳐 있어 이러한 휴가를 통해서 활력을 찾고 재충전의 시간을 통해서 안식과 쉼을 갖기 위함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힘들고 지치고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우리에게는 영적 정신적 육체적 안식과 쉼을 가질 수 있는 로뎀 나무 아래가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크게 출세한 사람도 로뎀 나무 아래서의 떡과 물을 먹고 마시면서 깊은 수면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과 고통과 질병과 외로움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로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영적 정신적 육체적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그런 사람들에게 영적 정신적 육체적 휴식과 필요를 제공하는 로뎀 나무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로뎀 나무 아래에서 천사의 어루만짐과 떡과 물을 마신 엘리야에게 천사가 말하기를 호렙산에 가도록 지시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40주야를 지나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엘리야야 어찌하여 네가 여기 있느냐”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가 말합니다. 다들 도망가고 오직 저 혼자만 남았는데 이세벨이 제 목숨을 찾아 저가 이렇게 도망 다니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모르는 소리를 하는 구나 이 땅에는 너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이 아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가 7000명이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네가 지금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이렇게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가 아니니라. 하시면서 엘리야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첫째는,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약성경시대에는 왕을 세울 때 반드시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그래야 왕으로서의 직능을 수행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아합왕이 있는데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은 아합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야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즉시 산에서 내려와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지난 7월 20일자 국민일보에 배우 신현준의 신앙 고백 “지구촌 오지 ‘교회 개척’ 사명 카자흐서 첫 열매 맺었습니다” 기사가 실렸습니다. 영화배우 신현준(여의도침례교회 집사)씨는 최근 “교회 선교위원으로 카자흐스탄에 갔다가 해외 선교사와 선교지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현지에 교회를 세웠고 2008년엔 신앙 에세이집 ‘고백’을 출간, 수익금으로 선교지를 돕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말하기를 “어린 시절부터 ‘세계 곳곳의 오지에 교회를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기도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늘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첫 열매로 카자흐스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22세 때 “온 세계가 무너진다 해도 내가 꽉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이념,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명을 나는 찾아야 한다” 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이 사명 없이 산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서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필요를 공급받고 새 힘을 얻어 호렙 산에 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바쁘고 분주한 생활 가운데 살면서 세상이 더 커 보이고 주님은 작게 여겨진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시편23:2-3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 하 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시는 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로뎀 나무 그늘아래 낙심과 좌절과 절망에서 주저앉지 말고 천사가 전해주는 ‘어루만짐’과 ‘떡과 물’을 먹고 마시므로 다시 일어나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남은 인생 힘 있고 멋있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2 년 7월 29일 청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