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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2장 7절 끝나지 않은 전쟁, 6.25

gkffpffndi 2012. 6. 23. 11:25

 

신명기 32장 7절 끝나지 않은 전쟁, 6.25

 

최근에 한 대기업에서 자기회사의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5명을 앉혀 놓고 면접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6.25가 뭔지 아십니까? 5명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2명은 모르겠다고 말하더랍니다. 나머지 3명은 조심스럽게 혹시 전쟁 아닙니까? 그러더랍니다. 맞다고 그러면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의 전쟁인 줄 아냐고 물었더니 1명은 모르겠다고 하고 1명은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전쟁 아닙니까? 그러더랍니다. 또 한 사람은 경상도하고 전라도 하고 전쟁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어려서 그런가하고 식당에 갔는데 나이든 젊은이가 있어서 물어봤습니다. 6.25가 뭔지 아십니까. 그거 광주 사 태 아니냐고 그러더랍니다. 어떤 분은 임진왜란 아니냐고 이순신 장군이야기 아니냐고 그러더랍니다. 우리는 웃고 지내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북한은 아직 까지 남침 야욕에 대한 본성을 감추지 않고 1983년 아웅산테러 사건을 비롯하여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남한을 위협하면서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그 호전성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최근 종북주의 자들이 부정으로 버젓이 국회에 진출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의식이 약화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다.

 

저는 이 시간 6.25 62년 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6.25가 왜 일어났고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나? 그리고 역사가 주는 교훈을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6.25전쟁의 원인과 배경입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6. 25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태반이 모르거니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는 왜곡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육군사관 학교 입학생 중 20-30%가 6.25는 북침이라고 생각한다” 고 답해 충격을 주고 있다. 공군 사관학교 학생 중 일부는 “우리와 같은 형제인 북한을 어떻게 F16전투기로 공격할 수 있느냐” 전투기 조종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북한의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이 전 국민의 32.5%에 달하는 조사가 있습니다. 또한 입대 장병 중 70%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 되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육으로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지식을 어디서 배웠을 까요. 우리나라에는 전교조라고 하는 교사 단체가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탈퇴하였습니다. 아직도 상당수가 이 단체에 속해 있어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순진한 학생들을 선동하여 촛불시위에 나가게 하고 시험을 거부하고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반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단체에서 공산당을 찬양하는 글도 홈페이지에 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물론 전체가 그런 사상을 다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 가운데 참교육의 실현을 위해서 애쓰는 교사도 있을 것입니다만 문제는 핵심멤버들인 것입니다. 이런 교사들로부터 배운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사상이나 지식을 학습하여 이런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6.25 전쟁의 배경은 세계 제 2 차 대전이 종결되어 질 즈음에 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중국등 3개국 정상이 참석한 카이로 회담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 무장해제 등 전후 처리를 명목으로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분할 주둔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38선을 일본군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를 위한 잠정적 경계로 생각했지만 소련의 속내는 38선을 영구적 경계로 만들어 공산화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소련은 자신의 계획대로 남북한 왕래와 통신두절을 시키고 통일정부 수립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의 영구적 분단을 획책했습니다. 한반도 통일을 시도했던 미국은 소련과의 협상에 실패하자 단일정부 수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결국 1948년 5월 10일 38선 이남 지역에서는 UN 감시 하에 자유 총선거가 실시 돼 제헌국회가 구성됐으며 북한 지역에서는 1948년 9월 9일 이른 바 흑백선거가 찬성은 백색 반대는 흑색 투표함에 기표하도록 해 사실상 반대 투표가 어렵게 해 공산정권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이 들어서게 됩니다. 북한은 소련의 군사력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강화하여 남한보다 월등하게 우위에 있었습니다. 특히 정부가 수립되기 전 무정부 상태에 빠진 틈을 타 박헌영은 1945년 9월 6일 전국에 147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선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무정부 상태에서 정부행세를 하였습니다. 박헌영은 일본인 명의의 적산과 토지를 강제 몰수 하여 무상분배 토지개혁을 시행한다고 국민을 선동하자 남한국민의 78%가 이를 지지하여 대한민국은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 전에 공산화 될 뻔 했습니다. 북한에 들어가 박헌영은 지금 남침 하면 100% 공산화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박헌영이 조직한 남로당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박헌영이 제공한 정보를 믿고 김일성을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1950년 6월 24일 북한의 대규모 병력에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서가 있었음에도 군 수뇌부는 비상경계를 해제했고 마침 주말을 맞아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외출했습니다. 전방부대 사단장을 포함한 장교들도 이날 저녁파티에 취해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11만 명의 병력과 240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북한은 38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하여 불과 3일 만에 수도 서울은 인민군에게 넘어갔고 국군 4만 4천명을 살해했다. 정부는 UN군의 파병의 요청으로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 회원국이 전쟁에 참여 하였습니다. 유엔군 참전 초반에는 밀리는 형국이었지만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한국국은 서울을 빼앗긴지 3개월 만인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고 계속 북진해서 10월 26일 압록강, 11월 두만강 일대까지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1.4 후퇴 하게 되었습니다. 밀고 밀치는 가운데 3.8선을 휴전선으로 결정하고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에 조인함으로써 3년간의 전쟁은 휴전으로 매듭지어졌으나 아직 까지 평화체제로 전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6.25전쟁의 결과

 

6·25 당시 군사적 비교만으로 생각하면 6·25 전쟁은 남한이 참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우선 전투 병사가 북한군이 54,000명이 많았습니다. 전쟁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전차 부대인데 그 당시 북한은 242대의 전차를 가졌었고 남한은 그런 전차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장갑차는 북한이 208대가 있었는데 남한은 27대였습니다. 대포가 북한이 2,540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한은 840개 있었습니다. 전투 비행 공군기 북한이 230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한은 10대였습니다.

 

3년 1개월간의 계속된 전쟁은 남북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인명피해는 약 400만명, (남한 200만, 북한 150만) 으로 추산되며, 30만 명의 전쟁미망인과 10만 여명의 전쟁고아 1천여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행방불명된 자가 30만 명, 북한으로 납치되어 끌려간 사람이 8만 명이 있습니다. 535명의 목사들이 학살당했고, 2,122개 교회가 불타버렸습니다.

 

군인 전사자는 한국군 22만 8천여명, 미군 5만 4천여명, 기타 UN군 3천여명 등입니다. 전쟁기간 동안 한국은 산업시설과 공공시설, 교통시설의 80%, 가옥의 절반이 완파나 손상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북한은 1968년 김신조를 내세워 청와대 침투 사건 외 수차례의 잠수함 및 무장공비침투를 통해 불안을 조성하여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1999년 제 1연평해전 2002년 제 2연평해전,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사건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등 계속해서 남침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62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하여 G20정상회담을 개최 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반면, 공산화된 북한은 죽도 못 먹는 비참한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3.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왜 일어납니까?

 

성경을 보면 전쟁은 죄 값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사무엘상 17:47을 보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 하 28:5~8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중에서 그 아내와 자녀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외적의 침략을 받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동족상쟁은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같은 피를 나눈 형제끼리 죽고 죽이고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6.25 전쟁도 역사적 정치적 국가 간의 경제적 이익에 의해 일어났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큼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1907년 1월 16일 이 땅에 최초로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이 바로 평양의 장대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정했습니다. 총회에 모인 목사, 장로들이 우상숭배를 결의한 것입니다. 교회마다 신사를 만들어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신사참배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종을 떼어 일본의 전쟁무기를 만드는데 쓰도록 헌납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한국교회는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교회는 우상숭배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운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기에만 바빴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 여러 개의 교파로 분열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충격을 받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이들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이 복을 받고 이들과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복을 받게 됩니다.

 

마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타락하게 되면 이들만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비롯하여 이들과 함께 사는 백성들까지도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것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죄 때문입니다. 특별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주의 종들을 파면시키고 핍박한 죄가 큽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주의 종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타락한 유대인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심판하셨습니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서 유랑하며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4. 역사가 주는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사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습니다. 전쟁도 평화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인 것입니다. 사실 역사에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과 UN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하였습니다.

 

1. 먼저는 그 당시 유엔에서 연합군이 파견 되려면 만장일치의 합의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소련 대표가 참석하면 절대로 통과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회의 시간이 되었는데 참석하지 않아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소련이 빠졌기 때문에 회의는 일사천리로 회의는 진행되었고 만장일치로 한국의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서야 소련 대표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초지정을 들으니 기가 막힙니다. 아침에 차를 몰고 오다가 이유 없이 자동차가 고장이 난 것입니다. 자동차를 고치고 도착했는데 이미 회의는 끝난 것입니다. 만약 소련 대표가 시간 안에 도착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공산화 되었고 비참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2. 인천 상륙작전입니다. 원래 상륙작전이라고 하는 것이 확률이 500/1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려고 했을 때 반대에 많이 부디쳤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단순에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과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밀고 갈 수 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상륙작전을 감행할 때 부산의 초량교회와 광복교회에서는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확률이 거의 없는 상륙 작전이 하나님의 개입과 하나님의 놀라우신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지고 성공하게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낙동강 전투입니다.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순식간에 남한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고 부산, 대구 포항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공산군은 남진을 계속하여 7월 말에 이르러 낙동강을 도하하여 대구와 부산을 잇는 아군의 대동맥을 끊으려고 압박을 가하여 왔다. 이에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으로서, 낙동강과 그 상류 동북부의 산악지대를 잇는 천연장애물을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이를 사수하기로 하였다. 이 방어선을 워커라인이라고도 부른다. 인민군이 빠른 시일 안에 공산화 하려는 다급한 마음에 병력을 총집결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뚫으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막아주셨습니다. 그 당시 장마철이어서 비가 오면 폭격기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었지만 때 부산에 피난을 가있었던 이승만 대 통령이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 앞 에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낙동강 상공은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날이 되어서 UN군의 폭격기가 방어선을 넘어오려는 공산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습니다. 방어선 을 지키고 있는 동안 인천 상륙 작 전이 성공을 해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고 북한군은 도망가기 시작 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힘 입니다.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6.25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하지만 6.25전쟁이 끝 난지 62주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먼저는 북한이 적화야욕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한의 김일성 수령을 추종하는 소위 종북주의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통합진보당이라는 합법적 정당으로 등록하여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는 운동을 하는 가하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애국가를 공식행사에서 부르지 않고, 대신 임의행진곡이라는 운동권노래로 대치하면서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새마을 운동으로 국가경제를 재건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을 무위로 돌리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종북 세력들이 부정으로 이번 19 국회에 국회의원으로 버젓이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국회에서 노골적으로 국회의원의 특별 신분을 이용하여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남남 갈등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다시금 이념의 전쟁터로 몰아 대한민국을 분열책동하여 공산화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톤D.C에 링컨기념관 옆에 있는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 있습니다. 6.25 전쟁 때 참전한 미국군 한소대가 비를 맞으며 전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19인의 용사 상’과 참전비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되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오늘 대한미국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대국과 번영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의 귀한 생명을 전장 터에서 작렬한 고귀한 조상들의 희생과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 지조차 모르는 시절에 유엔군의 희생과 피의댓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자손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가르쳐야 합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04년만의 가뭄과 이상기온으로 곡물생산량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누가 일어나기를 원하겠습니까? 전쟁을 막는 길, 그리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정신적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6월호국의 달을 맞이하여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친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향한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와 번영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 모세처럼 기도의 손을 높이 올리고 6.25가 주는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6월 24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