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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 마14:13-21

gkffpffndi 2012. 5. 26. 14:51

 

오병이어의 기적 마14:13-21

 

 

오늘 본문 말씀은 당시 유대의 분봉 왕 이었던 헤롯왕에 의해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세례요한이 목 베임을 당하고 대 다수의 민중들은 가난과 무지와 질병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주님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주님은 죄악과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 당시 기득권자인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혹은 바리새인들은 대 다수 민중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삶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신 주님이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날도 주님은 이 땅에서 가난과 질병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오늘 날 “답가”라고 하는 뱃세다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저녁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더 이상 주님이 말씀을 진행하시기 어려울 때 제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어서 가게에 가서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이 때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시고 난 이후에 주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을 먹이시고 12 바구니에 가득 차게 남기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저는 이 시간 “오병이어의 기적” 이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빈들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뱃세다 광야 즉 빈들에서 일어났습니다. 광야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생활하기에 불편합니다. 물론 광야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면 광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유목민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신선한 풀이 있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수 천 년 전의 생활양식이 거의 변화지 않고 우유와 고기를 양을 통해서 얻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뱃세다 광야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 천 명의 사람들에게 많은 양식을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 굶주려 있습니다. 빵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문제는 빵문제, 경제문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유럽에서 터진 그리스 국가부도 문제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전체를 위기로 빠뜨리고 있습니다. 1997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여파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전 세계를 고통에 몰아넣더니 이제 그 여파가 유럽에 이르러 아시아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살았던 유럽이나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유럽의 실업률이 20%이고 이런 실업률로 인해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생활이 막막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맨하턴에서부터 반 월가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1%의 극소수가 99%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불평등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쪽에 너무 부가 편중되어 있어서 오늘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1분에 24명씩 굶어 죽어가고 하루에도 35,000명이 굶어 죽으며 1년에 1,300만 명의 아사자들이 있으며 북한은 600 만 명이 기아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고 통계지표가 나왔습니다. 서민들의 삶이 그 만큼 팍팍하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고물가과 이자상환과 잇따른 공공요금의 인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도 작은 임금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고통과 함께 사람들이 낙심과 좌절과 절망을 가진 채 쾌락주의 한탕주의가 성행하고, 이혼과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심령이 황폐해지고 마음이 고갈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야말로 빈들입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약1000조-1500조라고 합니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재정위기에 처한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보다 높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가 나왔다. OECD는 24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2011년 3분기 154.9%로 미국 발 금융위기 전인 2007년 145.8%보다 9.1%포인트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우리나라 재벌들이 가지고 있는 현금규모는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10대 그룹 사내유보율이 이미 1200%를 넘어섰다. 쉽게 말해 자기 자본의 12배에 달하는 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한해 예산보다 많은 수백 조 원이 모여 있는 것이다.

 

오늘 날 모두가 다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공산주의는 그 이념이 종말을 선언하였음에도 여전히 마르크스 레닌주의 추종하는 세력들이 있는 것은 이 땅에 소득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현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고 동조하는 세력들이 많아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주님은 그 당시 권력층인 왕이나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민중들을 보살피지 않고 부패하고 부도덕한 채로 자신의 기득권만을 유지한 채로 있을 때, 주님의 관심은 가난과 질병 속에 허덕이는 민중들에게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심신이 고통 속에 있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이 가난 속에서 찌든 삶을 살고 있었음을 보시고 그로인해 그들의 심령이 피폐함을 아셨기에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으로 다가 가셨습니다. 14절에 보면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2000년 전에 주님의 말씀을 들은 대중들의 경제적인 고통과 정신적 영적인 황폐함을 오늘의 현대인 속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날 현대인들은 경제적 정신적 영적으로 빈들에 서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2. 한 아이의 나눔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해 저녁 늦게 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론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뱃세다 광야였습니다.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큰 무리를 보시고 빌립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구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말함은 빌립을 시험코자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때 제자들이 주님께 말하기를 이곳은 빈들이고 때가 저물었으니 사람들을 마을에 내려 보내서 그곳에서 먹을 것을 사먹게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면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조금씩 먹으려고 하여도 200데나리온이 필요하겠습니다.

 

이 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빌립은 계산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믿음이 없는 말을 하였지만 안드레는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군중들 사이를 다니면서 한 아이가 먹으려고 했던 도시락인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내어 놓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6장 9절에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안드레보다 빌립이 훨씬 지혜롭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불신앙의 대표인 반면 안드레는 믿음의 표본입니다. 빌립은 그렇게 주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숫한 기적을 체험했으면서도 아직도 주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며 가난한 자를 부유케 하시며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시며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안드레가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린아이가 한 끼 먹을 식사에 불과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먹지 않고 예수님의 손안에 올려 드렸습니다. 주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시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기적이란 나눔과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교육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놓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소외된 사람들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이나 물질을 내 놓은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수 중에서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기부천사 김장훈씨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100억 정도 기부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분은 기부를 너무하다 보니 현재 빚이 7억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5월 25일 “8·15 독도 횡단에 드는 비용 마련과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의 120 만 명 무료배식을 하고 중증장애 아동병원 건립을 위한 꽃 배달 사업, 위안부 광고 등에도 투자하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는 목사님이시고 그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기적이란 나눔과 희생을 통해서 가능함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바비 힐(Bobby Hill)이라는 이름을 가진 13세의 소년이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 공군 상사로서 유럽에 파견되어 근무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비 힐은 독일의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의약품이 부족하여 곤란을 겪고 있다는 글을 잡지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그 글을 읽고 유럽 지역의 미 공군 사령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산 아스피린 한 병을 보냅니다. 이 약을 아프리카에 계신 슈바이처 박사의 병원에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한 생각이었지만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생각이었습니다. 사령관은 이 소년의 이야기를 유럽의 각 방송국에 전해 주었고 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후에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의약품을 모으는 운동이 시작되어 무려 40만 달러어치의 의약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바비 힐이라는 소년은 40만 달러 어치의 의약품을 가지고 비행기로 슈바이처 박사에게 의약품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슈바이처 박사는 이 일을 기억하며 "어린아이가 이런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작은 어린아이의 헌신이었지만 이 일이 아프리카 선교의 가장 큰 일을 이루게 했다"며 그 감격을 술회하였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Toynbee ; 1852-1883)도 ?역사는 평범한 대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헌신된 소수(committed minority)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아이가 어떤 대단하거나 큰 것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주님을 위해서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재능이든 지식이든 물질이든 주님께 드려보세요? 삶속에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3. 기적의 현장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안드레가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에게 전달되어지자 주님은 사람들을 잔디위에 50명 100명씩 질서대로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축사” 라고 하는 말의 뜻은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 적어도 1000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식에 비하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사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은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주변을 살펴보면 원망과 불평하기 딱 좋은 환경입니다. 제자들의 보고대로 때는 저물었지요,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적어도 200데니리온 그러니까 노동자 한 사람이 200일을 벌어야 얻을 수 있는 큰돈이 필요한데 돈은 없지요?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오갈 데 없는 노숙자 같은 사람이지요? 이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와서 귀찮게 구는 겁니다. 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빈들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텅 빈 빈들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이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고 제자들은 무리에게 나누어 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분명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인데 거기 않아 있는 수천 명을 다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가득하게 남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사실을 이성적으로나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진보신학자들은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거기 온 사람들이 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먹고 남은 것이 12 광주리가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닫는 것은 감사는 기적을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린 여인을 고쳐준 사건으로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에 의해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발을 착고에 채워 꼼짝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원망과 불평되신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였더니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 1900-1980)은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원망·불평하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이고, 생산적이고 감사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 것이라고 고집하고 소유하고 있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 보세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매일의 삶속에서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1장 17절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디모데전서 4장 4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오늘 우리들의 삶이 황량하고 거칠고 힘들어도, 내가 서 있는 환경이 뱃세다 광야처럼 빈들이어도, 가진 것이 없고, 되는 일이 없어도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실수 했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 삶속에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사업장에 내 심령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메마른 황야에 주님이 계셨기에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풍족하게 먹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도 12 광주리가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자람이 없습니다. 가난이 없습니다. 부요함만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정신적 영적인 빈들에 놓여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작은 것을 나누고 드릴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감사가 기적을 창출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 삶속에 예수님을 모시므로 인생의 빈들에서 오병이어의 풍성한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5월 27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