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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엡 5: 22-33

gkffpffndi 2012. 5. 19. 11:23

 

행복한 가정 엡 5: 22-33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 소재를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요? 그 목사님은 “ 믿음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지나가는 숙녀를 붙잡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 숙녀는 “사랑이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평화” 라고 대답했습니다.

 

화가는 생각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든 것이 함께 있는 장면이 무엇일까? 어디에 ‘믿음’과 ‘사랑’과 ‘평화’ 과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초인종 누르자 아이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아빠” 하면서 팔에 매달리기도 하고 품에 안기면서 자신을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따라오는 아내가 반기면서 “어서 오세요” 사랑 가득한 얼굴의 미소 속에서 그는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정임을 깨닫고 후에 자신의 가족을 그린 후 제목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이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가정 안에 믿음과 사랑과 평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5월 21일은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여 부부의 날이라고 합니다. 가정의 기초는 부부인데 요즈음 우리나라가 이혼율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저는 이 시간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행복한 가정”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기 훨씬 이전에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니 아담 혼자 있으니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장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이후에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채우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담에게 하와를 배필로 주셨는데 그 이유는 혼자 사는 것이 좋아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을 돕는 자로서 하와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자는 여자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남자가 제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해도 여자 없으면 기를 피지 못합니다. 반드시 여자가 있어야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한국의 여인들은 남자가 전쟁터에 나가서 총 맞아 죽어 청산과부가 되어도 수절을 하면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주부에게서 옛날의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쉽게 가정을 버리는 젊은 주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녀나 가정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에 두고 쉽게 이혼하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2010년도 통계청의 혼인과 이혼 관련 자료를 보면 매일 893쌍이 혼인하고 320쌍이 이혼한다. 이러한 이혼 건수는 일본이나 대만보다 높다. 2009년도에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1위라는 통계는 우리나라의 이혼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직면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높은 이혼율은 1970년대 보다 약 10배 이상 증가 하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유명 연예인이나 배우나 가수 등 심지어는 국가의 수반인 사람들이 자신의 부인을 버리고 동거녀를 동부인하고 취임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 사람들은 이제 이혼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혼은 불명예이며 수치임에 틀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인생에서 실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자신의 가족과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우리나라가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개방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보다 자신의 일이나 자아실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인 현상에 기인합니다. 요즈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 소재가 건전한 가정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가정주부의 탈선이나 불륜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도 이혼율을 부추기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유행어 중에 젊은 주부들 사이에 애인이 없는 사람을 뭐라고 하죠? 그런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와 사귀면 금메달이라고 하고, 나이가 동갑이면 은메달이라고 한답니다. 타락한 세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탄은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결혼생활을 부정하고 비정상적이고 부도덕한 결혼제도인 동성 간의 동거를 합당한 결혼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는 욕구가 분출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여 미국 대통령으로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나 의심스런 면이 있습니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그들의 표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난 이후에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동성 간에 결혼한다고 하여서 그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나 집단들이 많아지면 인류는 얼마 못가서 종족을 보존하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행위는 죄악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파괴하는 일이며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가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이끼고, 가정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머리로 남편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하와가 후에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자신의 남편을 주라고 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인 줄 아십니까?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입니다. 사라는 자신의 남편인 아브라함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 18장 1-15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에 않아 있을 때에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쯤 기쁨소식이 있을 것임을 고지 해 줍니다. 이 소식을 장막 뒤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말하기를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여기에서 사라는 자신의 남편을 향하여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NIV에는 'MASTER'로 나와 있고 KJV에는 'LORD'로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당신의 나의 주인이요, 소유자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뜻입니다. 아내의 머리됨이 남편이라고 하는 뜻의 의미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저한테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남성 우월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권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21세기에도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느 한쪽만을 지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여성이나 어린아이의 인권이나 자유에 대해서 훨씬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이 행복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가장의 권위가 세워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그 권위가 가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억압하고 가정의 행복을 망가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 권위는 타당성을 인정받는 것이겠죠?

 

탈무드에 나오는 글입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네가 계집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루고,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하여 몸치장을 잘 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에는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

 

철의 제상, 영국의 대처수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론들이 그에게 세 가지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영국병을 고친 것이고, 또 하나는 영국국위가 세계에 높아져서 영국국민의 자존심을 살려준 것, 세 번째는 포틀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 이라 합니다. 대처 부인이 이 포틀랜드 승전 2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가 예의 바르게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남편을 보살피는 일이 거기에 참여하는 일보다 귀해서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철의 수상’이라 ‘철의 여인’이라는 말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건강은 넉넉한데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자기 혼자 가는 것이, 이제 나이 많고 약해진 남편에게 누가 될까봐 자기가 사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해 주는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부부가 모처럼 해외여행을 갔습니다. 절벽 아래 평평한 바위에 동전을 던져서 바위 위에 떨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부인이 던졌는데 바위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남편에 덜질 차례인데 남편은 좀 더 가까이 가서 던지려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아내가 말하기를 “소원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다니”라고 했답니다. 이러면 안되겠죠?

 

물론 존경이나 사랑은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남자들은 가정을 책임져야 중압감과 함께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가정에서 해소되기를 원합니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존중해주고 자녀들이 인정해주면 세상에서의 힘든 일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족의 격려 속에서 에너지가 충전되어 가족을 위해서 수고해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존경하라.

 

3.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28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 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라는 복음성가 가사처럼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사실 가정의 모든 문제도 깊숙이 들여다보면 사랑의 결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는 가정은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사랑이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조그만 한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고 상처를 받기고 합니다. 남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곳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벧전 3:7절에서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25절에서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남편의 관심과 사랑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말을 지혜롭게 하십시오. 여자들은 남편 말 한마디에 그 마음이 천국이 되었다가 지옥이 되었다가 합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가 중요한 것입니다. 남편들은 될 수 있는 한 아내를 칭찬해주고 위로해주는 좋은 말만 골라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하는 고백을 자주 해야 합니다. 이때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반찬도 좋아지고 집안이 화기애애합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오래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 싸움 할 때 이기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고 합니다. 쥐는 평균 600일 사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그 쥐를 매일 하루에 한두 번씩 꼭 끼어 안아 주면서 사랑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900일을 살았습니다. 사랑을 하면 오래 삽니다. 반대로 미워하면 핏속에 아드레날린이라는 독소가 서로 생깁니다. 독기를 품고 있을 때 숨을 조사하면 독이 들어 있고, 사랑할 때 숨을 조사하면 맑다고 합니다.

 

어느 보험회사에서 조사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할 때 “잘 다녀오세요”라고 사랑스럽게 인사하며 키스를 하면 그렇게 하지 않은 남편보다 5년을 더 산다고 합니다. 교통사고율이 훨씬 감소한다고 합니다. 연봉이 두 배로 많아진다고 합니다.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부자는 없습니다. 누구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이 피어나는 가정입니다.

 

둘째는 귀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벧 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아내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남편이 자기의 존재감을 존중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당신의 몸을 희생한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60이 넘은 한 노인이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서 누워있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서 시장을 가고, 쇼핑도 가고 산책도 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어느 한 분이 그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을 24시간 옆에 두고 보살펴야 하니, 얼마나 힘드세요! ?” 그러자 이 남편은 “아니에요. 내 평생에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라는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직장 생활하느라, 사업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하고 아내와 얘기할 시간도 없었는데, 이젠 제가 은퇴해서 내 사랑하는 아내와 항상 함께 다니며 늘 이야기 하면서 지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하고 말했습니다. 겨우 말만 할 수 있었지, 밥숟가락 하나 제 손으로 쥘 수 없는 아내를 바라보며, 아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고 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이 내게 맺어주신 부부임을 알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2년 5월20일 청주벧엘성결교회정영진목사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