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숨겨진 보물 마13:44-46
오늘 본문 말씀은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국이란 단어는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마태가 많이 사용하는 언어인 반면에 마가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 (바실레이아 투 데우)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장소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반면에 후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통치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천국” 에 비유함으로써 천국의 무한한 가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이어서 진주에 대한 비유 역시 천국의 가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우선 적인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진주의 비유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천국은 자신의 그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보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가치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또한 깨닫게 해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시간 밭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함께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값진 보물은 숨겨져 있습니다.
진귀한 보물은 밭에 숨겨진 보물처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관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은밀한 곳에 숨겨 놓습니다. 그래서 천장이나 앞마당에 땅을 파고 숨겨 놓습니다. 특별히 전쟁이 나는 경우에는 금은 보화를 항아리 속에 숨기고 그것을 땅속 깊은 곳에 숨겨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찾아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전쟁에 패하고 난 이후 자국으로 돌아갈 때 진귀한 보물들을 가지고 갈 수 없어서 땅속에 숨겨 두고 떠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유대나라도 전쟁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또한 도적이나 강도를 피하기 위해서 보물을 감추기 위해 가장 적합한 장소가 땅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하여 이를 남긴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속에 숨겨 묻어 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속은 보물을 숨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오자 주인은 전쟁 통에 죽거나 이방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땅속에 묻어둔 보물은 먼저 발견된 자에게 돌아가게 되는 데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땅속에 오랜 동안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보물을 발견할 경우 보물은 발견한 자의 것이 되고 그 사람은 요즈음 말로 하면 천문학적인 복권에 당첨된 거와 같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팔자가 고쳐지는 것입니다. 대박 난 것입니다. 그런 보물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1947년 금세기 최고의 보물인 사해에서 약 1.6㎞ 떨어진 곳에 있는 키르베트 쿰란(아랍어로 '쿰란 유적지'라는 뜻)에서 BC 3세기에서 AD1세기 사이에 기록된 고대 히브리 성서 필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에스더 이외의 모든 경전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이사야 사본은 구약성경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런데 이 사본은 1947년 양치기 소년들에 의해서 발견 되었다. 그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인 것입니다. 이 사본은 양을 잃은 양치기가 길을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이 동굴 저동굴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동굴 앞에서 안으로 돌을 던져 보았더니 항아리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서 안에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오래된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혹시나 그 안에 보물이 있지는 않나 하고 보니 기대했던 보물은 없고 그 안에 성경 사본이 가득 하였습니다. 그 소년은 그것의 몇 개를 베들레헴의 골동품상에 팔았고 일부는 예루살렘 시리아 교구장이었던 <마르 아타나시우스 사무엘> 에게 갔습니다. 사무엘은 그 사본을 예루살렘에 있는 <미주 학파 동양연구소> 에 보냈고, 이 연구소는 미국의 올 브라이트 교수에게 보내졌습니다. 그 결과 그 사해 사본은 전 세계 성경학자들의 놀라움을 가져왔고 지금은 <사해 사본 박물관>을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양치기 소년이 이 성경사본이 그렇게 귀중한 것임을 알아 잘 보관했다면 그는 세계적인 인물이 됨과 동시에 거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도 그 사해 사본이 나온 광야 지역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해 사본을 보관한 <사해 사본 박물관>도 가보았습니다. 사본이 나온 그곳은 사람이 왕래가 드문 광야입니다. 그곳에는 그런 동굴이 광야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인류의 자산인 성경사본이 2000 년 동안 부패하지도 않은 채 숨겨져 있다가 발견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북미대륙의 서북쪽에 붙어 있는 넓은 알라스카 주는 원래 소련의 땅이었습니다. 소련은 이 알라스카를 별로 가치가 없는 땅으로 인정하여 지금부터 145년 전인 1867년에 미국에다 720만 달라를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720만 달라를 주고 알라스카를 산지 13년 만에 알라스카에서는 무려 3억 달라 상당의 금이 발견되었습니다. 소련이 알라스카의 가치를 모르고 720 만 불에 팔아넘기는 순간에도 그 땅 밑에는 곧 발견될 3억불 황금이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금 못지않게 귀중한 석유가 그 땅 밑에 아주 많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알라스카는 여러 면에서 아주 귀한 가치가 있는 보물 같은 땅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땅속에 숨겨진 미래의 자산을 보지 못한 채 헐값에 팔고 난 이후 두고두고 후회했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엄청난 보물을 보지 못하고 얼어붙어서 쓸모없는 땅이라 생각하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보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천국의 가치는 성경의 사해사본이나 북미 대륙의 서북쪽에 붙어있는 알라스카 땅하고는 비교할 수없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밭에 숨겨진 보물처럼 그냥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찮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 11장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여기서 밭에 감추인 보물을 어떻게 발견하였는지는 분명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귀중한 물건을 숨겨 놓는다고 생각할 때 땅속 깊숙이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보물은 밭에서 열심히 쟁기나 소를 가지고 땅을 파고 있던 농부에 의해서 발견되었으리라고 상상이 됩니다. 농부가 쟁기로 여기 저기 밭 전체를 땀 흘리면서 열심히 갈다가 어느 한 곳에서 쟁기에 뭔가 이상한 것이 걸려 파 보니 땅 속 깊은 곳에 항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항아리 속에는 그야 말로 값비싼 보석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소작인이었기 때문에 그 보물을 소유하기 위해서 얼른 다시 그것을 땅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잘 표시 해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문 말씀에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이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집에 와서 들어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보물은 평생 벌어도 가질 수 없는 천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보물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천국을 말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최고의 보물을 가진 자입니다. 최고의 보물을 소유한 자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발견 한 사람은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특징은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서신에서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 믿는 성도에 있어서 그 나타남은 삶에 기쁨과 감사와 웃음과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보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신앙생활이 다릅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채 교회생활을 하면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고역입니다. 교회봉사나 헌신이 짐으로 생각되고 부담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 보세요. 교회생활이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예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거움이 됩니다.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구역예배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봉사나 헌금 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봉사하지 못할 때 죄송하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자신의 일 때문에 주님의 일을 미루지 않습니다.
기도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습니다. 자신의 기도시간을 축복의 시간으로 여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시간이 길어지고 기도의 즐거움을 만끽 합니다. 기도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갈급함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13장 44절 이하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모인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자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고 온 시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바울이 말한 것에 대하여 반박하고 마침내 이들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여 그 지역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을 가면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박해받으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어떤 고난도 역경도 슬픔도 이기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내 안에 주시는 평안함과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주님을 만나고 나면 이 세상의 것은 귀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농부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오늘 여러분에게 이러한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까? 깨지고 쉽고 부서지기 쉬운 하찮은 질그릇 같은 내 인생에 예수라고 하는 보물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습니까?
3.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야 합니다.
이 농부가 집에 돌아와서 밤새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하늘이 주신 천재일우의 기회가 자기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보물을 발견한 밭은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자신은 그곳에서 소작인으로 단지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랍비의 율법에 의하면 길에서 가다가 보물을 발견하면 발견한 자의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정당하게 이 밭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 보물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다른 방법은 없고 그 밭을 주인에게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여유롭지가 못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산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밭에 있는 보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여기 진주의 비유에서도 진주 장사가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값진 진주를 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밭에 숨겨진 보물이나 값진 진주의 비유는 최고의 가치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보다 덜 귀중한 것들은 과감히 내려놓는 결단과 희생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붙잡고 있고 저것도 놓치지 않고 싶은 이중적 삶의 태도로는 가장 귀한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삶의 최고 우선의 가치를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3장7-8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주님을 만나고 나니 다른 것은 무가치 한 것입니다. 세상 것은 배설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그리스도를 만난 자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0장 37절에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희생과 헌신하지 않으면서 그 나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14장 22절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서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영생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 질문에 먼저 계명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 청년은 그런 계명들은 다 지켰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으면 말씀 해달라고 합니다. 이 때 주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니 이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였다고 했습니다.
구원과 영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사닥다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이 사닥다리를 잡고 올라가는 희생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자기희생을 통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포기할 때 비로소 천상의 은혜와 기쁨을 소유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버렸고 희생하였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보물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늘에서 내려 온 자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삽니다. 그 분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고 성령이 계십니다. 각양 좋은 은사가 그 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그냥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밭에 숨겨진 농부처럼 값진 진주를 찾는 장사처럼 땀 흘리고 노력하고 수고하고 찾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수고와 헌신의 땀을 흘려 보았습니까? 주님을 감동시킬만한 물질과 시간을 드려 보았습니까? 이 보물을 질그릇에 담기 위하여 세상적인 명예나 권력이나 재물을 포기한 적은 있습니까? 예수를 보물로 여겨 세상이 주는 쾌락이나 오락, 편리함을 포기한 적은 있으십니까? 이제 세상적인 가치를 모두 팔아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손에 넣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요,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분이십니다.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팔아서 주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농부처럼, 진주를 구하는 장사처럼 천국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2년 4월 15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시록 14:6-12, 눅 21:26-28 신세계 질서와 (NWO) 세계정부 (0) | 2012.04.28 |
---|---|
대 환난과 짐승의 표 666 계13: 11-18 (0) | 2012.04.21 |
예수 부활의 교훈 (마 28:1-10) (0) | 2012.04.07 |
나귀를 타신 예수 마 21:1-11 (0) | 2012.03.31 |
누룩의 교훈 마13:33, 고전 5:6 (0) | 2012.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