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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의 교훈 마13:33, 고전 5:6

gkffpffndi 2012. 3. 24. 14:28

 

누룩의 교훈 마13:33, 고전 5:6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킬 때에 대대적인 청소를 하는 데 그것은 집안 곳곳에 있는 누룩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이 누룩은 죄악을 상징합니다. 누룩을 제거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애굽을 떠나기 전에 우상숭배와 죄악 된 삶을 철저히 청산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면서 누룩이란 이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한다든지 잘못된 가르침, 그리고 부정한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원어에 보면 ‘주메’ (zume) 라고 했는데 여기서 사용한 누룩은 가루 서 말 속에 넣어진 누룩으로서 이것은 세상 속에 던져진 ‘복음’ 을 의미합니다.

 

겨자씨 비유와 다른 점은 겨자씨 비유는 외형적 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누룩 비유는 복음의 확산이 내적인 성숙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누룩의 교훈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누룩은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가루 서 말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거둘 때 한 사람이 거두는 양이 한 오 멜 이었습니다. 한 오 멜은 2.2 L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6장 36절에 보면 십분의 일 에바이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 에바는 22L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L 이란 보통 사람들이 빵을 만들 때 쓴 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때 상당한 양이 되는 것입니다. 빵이나 혹은 술을 만들 때 누룩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누룩은 효모로써 발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빵을 제과점에서나 마트에서 사 먹지만 제가 어렸을 적에는 가정에서 빵을 직접 발효시켜 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어머니께서 밀가루 반죽을 해가지고 밤새 따뜻한 아랫목에 갖다 놓으면 아침에 상당히 부풀어 올라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요즈음 맛있는 빵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그 때에는 상당히 맛있게 먹었습니다.

 

빵이나 술을 만들려면 반드시 발효제인 효모인 이스트가 들어가야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으며 술을 만들 수 있습니다. 누룩은 반드시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야 맛을 낼 수 있으며 이것은 자신의 사명입니다. 만약에 누룩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면 누룩으로서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가루서 말이 ‘세상’ 이라고 하고 누룩을 ‘복음’이라고 할 때 마치 등경아래에 등불을 두지 않는 다는 ‘예수님의 교훈’ 처럼 복음은 세상 속으로 침투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이 세상 권세를 쥐고 있는 사탄의 영향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세상에 파송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로마에 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4절 이하에 보면 구브로에서 온 섬을 지나서 바보에 이르게 되는데 거기서 바 예수라고 유대인 마술사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전하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이 박수 엘루마가 총독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므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꾸짖으니 그가 즉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시다아 안디옥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가루 서말 속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패한 세상 속에 들어가서 이 세상의 악과 부정과 불법과 부도덕한 윤리에 맞서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악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복음의 권세와 능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요즈음 대학가에는 3월이 되면 대단히 분주합니다. 그중에서도 신입생들의 환영회와 오리엔테이션이 여기저기서 진행됩니다. 해마다 신입생 환영회서 만취한 학생들의 추태와 함께, 술 강요로 인해 귀한 생명이 사망하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이 대학의 현실입니다. 사실 이러한 대학문화는 기성세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술'이 한 방울도 없는 3년째 '무알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을 진행해 온 학교가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의 이야기다.

 

이 학교는 지난 2009년부터 2박 3일간 이루어지는 신입생 오리엔테니션을 '술 없이'진행해 왔다. 2010년부터는 축제 기간도 학내에서 술을 추방해 학생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이번에 연세대 원주대 17대 총장이신 정갑영 교수이십니다. 이 분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지만 잘 따라주어 좋은 문화가 정착되고 술에 찌든 대학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세상을 어둠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지 안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누룩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이 사명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요17:18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 잘못된 세상문화를 그리스도의 문화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2. 누룩은 조용하지만 변화를 가져옵니다.

 

가루 서 말에 비하면 누룩은 아주 미미합니다. 하지만 작은 누룩이 가루서 말 전체를 부풀려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일단 가루 서 말 속에 있는 누룩은 밀가루 반죽과 함께 잘 반죽이 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간 누룩이 어떤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지 눈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룩이 들어간 빵과 들어가지 않은 빵의 확연한 차이는 있습니다.

 

첫째는, 밀가루 반죽에 누룩이 들어가면 반죽이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워야 반죽이 되지 않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누룩이 들어가기 전에는 밀가루가 굳어 있습니다. 하지만 밀가루에 누룩이 들어가면 아주 부드럽습니다. 부드럽기 때문에 빵도 만들고 여러 가지 모양의 과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겨울에 김장하기 위해서 소금에다가 배추를 절이지 않습니까? 소금에 배추를 왜 절이는 것입니까?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사납고 무서운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의 누룩이 그의 심령 속에 부딪치면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그 심령 속에 복음의 누룩이 펴지면 유들유들 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딛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그리스도인은 온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드러워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맛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음식점을 찾습니까? 맛있는 음식점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권사님들이 심방 끝나고 목사님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면서 신탄진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밥 한 끼 먹는데 거기 까지 갈 필요가 뭐 있느냐고 했더니 그분들이 말씀하기를 안 먹으면 후회 한다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다른 것은 생각이 안 나고 음식점이긴 한데 허름한 가정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묵 집이었습니다.

 

같은 묵 집인데도 사람이 많은 것은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 믿은 사람들은 맛 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뭐라 말할까 인간미가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보다 남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삶의 진솔함이 묻어있는 사람, 교양이 있고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소통이 되는 사람 말입니다. 한 마디로 멋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지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 한가-차인표 편’(‘힐링캠프’)이 방송된 다음 날 21일 이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감동을 받았다는 시청자들의 감상평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프로에서 연예인인 차인표씨는 지난 18년 동안 묵묵히 사회적 약자를 돕고 해외봉사와 함께 지난 2005년과 2007년에 두 딸을 입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울고 웃고 하면서 진솔하고도 훈훈한 인간애에 감동을 받았다는 댓글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 컴 패션에는 한국 컴 패션 측은 “차인표씨가 ‘힐링 캠프’에서 후원을 당부한 덕분에 21일 하루 동안 후원 신청이 6500여명에 달했다”고 22일 밝혔다.

 

우리사회에는 자신의 지명도를 활용해 인기 연예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폴리테이너(politainer) 들이 있는 가하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차인표는 특정한 정치색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휴머니즘으로 대중을 움직이는 진정한 소셜테이너 (socialtainer·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라고 말하면서 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외 아동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 고 있다는 점을 환한 얼굴로 소개해 우리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차인표씨가 관계하는 “컴패션‘ 단체는 기독교 단체에서 주관하는 곳입니다. 그 뜻은 긍휼, 자비입니다. 물론 차인표씨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차인표씨 처럼 이 시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므로 세상에 감동을 주는 맛나고, 멋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3. 마침내 누룩은 가루 서 말 전체를 부풀렸습니다.

 

조용하지만 서서히 누룩은 가루 서말 전체를 부풀렸습니다. 이 말은 복음이 세상을 바꾸어 놓는 다는 것입니다. 죄악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복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없이는 세상은 변화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 있어서 1919년 기미년 3.1운동당시 우리나라의 인구는 2000 만 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기독교 인구는 전체 1.5%인 고작 20-30 만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민족 지도자 33인 가운데 불교 2명, 그 당시 주류종교였던 천도교 15명, 기독교 16 명은 11명의 목사님과 장로님 평신도들이 기독교인 이었습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3. 1 운동을 일으켜 전국으로 확산 시켰습니다. 전국 9개 지역에서 일어났는데 서울을 제외하고 나머지 8 개 지역은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3.1운동 직후 감옥에 투옥된 9,458명 중 22%가 넘는 2,087명이 기독교인이었는데 대표적인 기독교인으로는 남강 이승훈 선생님을 비롯해서 유관순 조만식 김구 월남 이상재 등이 기독교 정신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거나 기독교인이었습니다.

 

3.1운동의 실질적 주도세력은 기독교였다. 적은 신도 수를 가지고서도 전 민족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또 그 이후 상해 임시정부를 그리스도인들이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가졌던 조직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07년 교회가 조직되어 YMCA같은 청년운동, 신민회와 같은 민족각성운동 뿐만 아니라 1919년에는 323개의 학교를 갖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화학당의 유관순 같은 열사가 배출하게 된 것이다.

 

‘한국기독교수난사‘에서 김광수 교수는 ”일제치하에서 기독교의 예배의식이 민족정신을 함양하고 훈련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썼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공식예배석상에서나, 가정에서, 개인 기도에서나, 회합에서나 그 어떠한 자리에서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찬송가에서도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의 일꾼을 부르네, 곧 금일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가세 일하러가 삼천리강산 위해”라는 애국 찬송(찬송가 371장)이 있어 기독교인의 민족정신을 크게 일깨워줬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3·1 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 가루 서 말 전체를 부풀게 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받은 이유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왕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과 주 예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콜로세움에서 맹수들의 밥이 되기도 했으며 로마의 길거리에서 참수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시대에 10번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대 박해가 있었습니다. 로마제국 전역에 살고 있는 기독교들에 대한 핍박의 칙령이 303~304년 4차례에 걸쳐 내려졌다. 또 칙령이 내려진 지 한 달 동안 17,000여명이나 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면에서 역사가들은 ‘대핍박’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핍박받던 기독교가 불과 10년 후 AD 313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됨으로써 그동안의 기독교 박해가 멈추게 되었으며 자신도 기독교인임을 공표하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은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여서 로마의 귀족층들이 며느리를 볼 대 정절을 지켜온 기독교 처녀들에게서 선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후에 로마의 왕족이나 귀족 등 상류층에 진출하여 이교도 사회인 로마제국을 기독교로 바꾸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수 십 년 후 서기 388년에 41세가 된 테오도시우스가 처음으로 수도 로마를 방문하여, 원로원 회의장에 모인 의원들 앞에서 선택을 강요합니다.

 

“ 로마인의 종교로서 1천년이 넘도록 로마의 최고의 신으로 경배해온 유피테르를 섬길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섬길 것인지” 그 자리에서 유피테르대신 그리스도가 로마인이 믿었던 신의 자리에 그리스도가 앉기로 결정하여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는 길을 열었습니다.

 

다신교를 섬기던 로마 원로원이 기독교 앞에 무너진 것입니다. 로마인과 함께 걸어온 원로원은 1141년 만에 기독교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 대다수가 황제의 요구를 받아들여 로마의 전통적인 신을 버리고 기독교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 로마인은 세 번 세계를 지배했다, 처음에는 군단으로, 다음에는 법률로, 마지막에는 기독교로,,,,"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누룩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신문 방송 학계 문화계에 진출하여 죄악의 묵은 누룩을 제거하고 새 누룩으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기독교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2년 3월25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