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1-9 네 종류의 마음
오늘 본문에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자 주님께서 농부가 씨를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네 종류의 마음’ 밭에 대하여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씨를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서 때는 요즈음처럼 농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는 따뜻한 봄철이 아닌 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봄은 씨를 뿌리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봄은 따뜻하고 화사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봄에는 산에 들에 목련 꽃 벚꽃 개나리 진달래등이 피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봄이 주는 상징성이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인생의 봄입니다. 그 이유는 봄에 씨를 뿌리듯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씨앗을 뿌리는 계절에 비유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씨 뿌리는 자는 예수님을,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밭은 인간의 마음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네 가지 종류의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네 가지 종류의 마음 밭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길가와 같은 마음
마태복음 13:3-4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여기서 씨를 뿌리는 자가 말씀의 씨앗을 사람들에게 뿌립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씨앗이 길 가에 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길가란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습니까? 사람들이 자주 다니게 되면 길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보면 산길도 생기고 논길도 생기고 과수원 길도 생깁니다. 그래서 길이 딱딱하게 됩니다. 반질반질하게 됩니다. 이런 곳에 씨앗이 떨어지면 발아가 되겠습니까?
영어 성경에 보니까? 길을 따라서 씨앗이 뿌려졌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땅속에 뿌리를 내릴 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19절에 나와 있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마음의 사람에 대하여 주님은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가 그 마음에 뿌리 운 것을 빼앗아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비유로 누가복음 8장 5절에 보면 ‘길가에 떨어지매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그러면서 12절에 해석하기를 마귀가 들은 말씀을 빼앗아 들어 구원 얻지 못하게 하려고 그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는 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 마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요? 구원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귀 막고 살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마음은 사탄이 지배하는 마음이 되기 때문에 황폐화 되는 것입니다. 그 심령이 사막화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해지는 것입니다.
작년에 대구 모 중학교 학생이 자신의 동료 친구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서 한 참 꿈을 피워야 할 중학생이 자살한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자살한 학생이 쓴 유서에 보면 요즈음 아이들의 폭력이 가히 조폭 수준입니다. 때리고 욕하고 물건 빼앗고 친구를 노예 부리듯이 개 끌고 다니 듯 하고 참고서도 빼앗고 공부도 못하게 하고 게임을 키우도록 협박을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친구를 사지에 몰아넣고도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문제는 요즈음 아이들이 죄의식이 없다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선 과 악’ ‘참과 거짓’ ‘빛과 어두움’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악한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악인지를 모르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반성이나 회개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불행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30장 9절에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오늘날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까? 그들의 마음이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란 굳어진 마음, 딱딱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내지는 기존의 가치관으로 굳어 있어서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판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겨울동안 딱딱해진 길을 봄이 오면 포크레인으로 뒤집어서 씨를 뿌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들듯이 이런 마음은 성령의 쟁기로 그의 심령 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어떤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눈물이 없습니다. 찬송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말씀 앞에 순종이 없습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10장 12절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 길가와 같은 마음이 없습니까? 주님께 굳은 마음을 바꾸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2. 돌밭과 같은 마음
마 13:5-6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농사를 짓다 보면 유난히 돌이 많은 밭이 있습니다. 그러면 농부가 돌밭에다 씨앗을 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돌을 골라서 농사짓기에 부드러운 땅을 만들기 위해서 돌을 골라다가 밭 주위에 쌓아 놓습니다. 그런데 돌밭인 경우에는 아무리 골라내어도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거의 마무리가 되면 씨앗을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경우는 겉은 흙으로 덮여 있지만 속에는 바위나 돌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얇은 흙 위에 씨앗을 뿌리면 한 동안은 뿌리가 바위가 있는 곳 까지는 내려갑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 돌이나 바위들이 있으면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해가 쨍쨍 내리쬐면 뿌리가 타서 말라 죽습니다. 이것을 21절에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누가복음 8장 13절에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즉 이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을 잘 받습니다. 기쁨으로 받습니다. 은혜도 받습니다.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 밭에 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돌들이 많이 있어서 뿌리를 깊이 내릴 수가 없습니다. 이 돌들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상처나 열등감, 혹은 미움이나 질투, 분노나 증오의 돌들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러한 돌들을 지적하거나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 분노하고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뿌리를 내릴 만하면 시험에 빠져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식물이나 할 것 없이 잘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뿌리가 깊이 내려야 합니다. 뿌리가 깊이 내리기 위해서는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미움의 돌, 열등감의 돌, 분노의 돌, 질투의 돌을 말씀의 방망이로 부서져야 합니다. 예배시간은 이 돌들을 제거하는 시간입니다.
예레미야 23장 29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식물이 뿌리를 깊이 내릴 때가 언제냐 하면 추울 때나, 심한 강풍이 불 때, 가뭄이 심할 때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언제입니까? 환난 속에서 고난 가운데서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동방의 의인인 욥도 상상할 수 없는 환난과 고난을 당했지만 오히려 고난 속에서 그의 신앙은 보석처럼 빛나지 않았습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 고백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3장 17-18 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을 지라고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환난이나 고난을 지나고 있습니까?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원망과 불평대신에 기도의 뿌리를 깊이 내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뿌리를 깊이 내리시기 바랍니다. 찬송의 뿌리를 깊이 내리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시기 바랍니다.
3. 가시 떨기 같은 마음
13장 7절에 가시 떨기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22절에 주님이 설명하시기를 가시 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가복음 4장 19절에는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교회생활을 하기는 하는데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로 온통 바쁜 사람입니다. 교회 와서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적인 걱정과 염려로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항상 교회 와서 앉아 있기는 해도 귓전에 머물다가 사라집니다. 물질문제 자녀문제 승진문제 온갖 세상적인 문제를 가득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뭐라 하십니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 까 무엇을 입을 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 사람은 재물로 인하여 말씀이 들어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돈 버는 것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합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서 헌금이야기 나오면 시험에 빠집니다. 제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헌금 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다 헌금할 돈 있으면 적금하나 더 붓고 보험하나 더 드는 것이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돈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성경은 딤전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럿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재물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영혼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일락을 즐겨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8장 14절에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 일락이 무엇입니까? 놀고 즐기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해서 스케줄이 꽉 차 있습니다. 노는 일정으로 말입니다. 철마다 놀러 다닙니다. 달마다 놀러 다닙니다. 아프지 않을 때만 빼고 건강할 때는 교회 나올 때보다 안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교회도 나오는 가 싶은가 하면 안 나옵니다. 이 사람은 친구가 많습니다. 술친구로 시작해서 도박친구, 노래방 친구 등 세상친구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도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성도여러분! 밭에 가시떨기가 있으면 씨가 성장하지 못 합니다. 가시떨기가 씨가 싹을 내지 못하도록 햇빛을 차단시키기 때문입니다. 자라지 못하게 가시가 막습니다. 내안에 이러한 가시떨기가 자리 잡고 있는 한 온전히 결실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 가시 떨기를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4 부드러운 마음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받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개간하는 일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돌과 같은 마음, 가시 떨기 같은 마음을 반드시 좋은 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호세아 10장 12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길가와 같은 마음을 먼저 성령의 쟁기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농부가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기계로 갈아엎어서 새 흙이 나오도록 하고 돌과 자갈을 골라내어 흙을 부드럽게 하여 그 위에 씨앗을 뿌리듯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서 회개함으로 우리의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의 사람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부드럽습니다. 메마른 가지는 딱딱합니다. 하지만 물이 오른 나뭇가지는 부드러워서 휘어지지만 잘 부러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은 얼굴도 표정도 몸도 다 굳어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살결이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 받은 사람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부드러운 마음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완전히 좋은 땅이 되어서 많은 결실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 째 는 말씀의 단비, 은혜의 단비가 내려야 합니다. 사막이라도 단비가 내리면 부드러운 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무리 최첨단의 기술영농을 가지고 있어도 하늘에서 단비가 제 때 내리지 않으면 특수 품종을 심은 듯 무엇 하겠습니까? 하늘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당한 때에 내려야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 나무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 가면 대조적인 국립공원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요세미티 국립공원입니다. 이곳은 화강암과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폭포로 유명한 이 공원은 약 1400종의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수 천 년 된 거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데스벨리 공원입니다. 번역하면 죽음의 골짜기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가장 건조하고 가장 더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선인장 외에는 다른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1년 평균 강우량이 40mm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높은 산맥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비구름이 넘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어느 해는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 대도 있답니다. 똑 같은 캘리포니아 지역 안에 있으면서도 비가 내리느냐 내리지 않으냐에 따라서 아름다운 땅이 되기도 하고 죽음의 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황량한 사막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의 단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6장 7절 이하에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흡수하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누가복음 8장 15절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인내”입니다. 씨 뿌리는 자는 인내를 가지고 뿌려야 합니다. 열매가 쉬 나타나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어차피 4/1만 좋은 땅입니다. 그렇다고 씨 뿌리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이 씨 뿌리는 계절에 여러분은 무슨 씨앗을 뿌리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전도의 씨앗을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뿌려야 거두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예수의 복음의 씨앗을 뿌립시다. 기도의 씨앗을 뿌립시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선행을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말고 뿌립시다. 쉬지 말고 뿌립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굳은 마음을 성령의 쟁기로 갈고, 우리 안에 돌들을 제거하여 뿌리를 깊이 내립시다. 가시떨기를 제거합시다.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비를 통해 부드러운 마음으로 씨앗을 뿌려 30배, 60, 100배의 결실을 맺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3월 11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룩의 교훈 마13:33, 고전 5:6 (0) | 2012.03.24 |
---|---|
겨자씨 교훈 ( 마태복음 13: 31-32) (0) | 2012.03.17 |
창세기49장 22-26절 샘 곁에 무성한 가지 (1) | 2012.03.03 |
왕의 초청 잔치 마22:1-14 (0) | 2012.02.25 |
생명을 살리는 물 /겔47:1-12 (0) | 2012.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