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물 /겔47:1-12
BC 605년 바벨론은 1차포로 시 다니엘과 귀족들을 끌고 갔으며 2차 BC 597년 여호야긴왕과 에스겔이 있었으며 3차 BC 586년에 나머지 유대인을 잡아갔으며 이때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제사장이었으며 포로생활 5년 째 되던 날 바벨론 그발 강가 사로 잡힌 자 중에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에스겔에게 보였습니다. 그 때가 여호야긴 왕이 잡혀온 지 오년 그 달 초닷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비참한 포로 생활 가운데서 좌절과 절망과 고통의 도가니 속에 살아가는 유다 백성들에게 메시야의 환상을 통해서 유다나라가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구원받을 것을 내다 본 이상인 것입니다. 에스겔이 성결에 이끌리어 성전 문 앞에 이르자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흐르더니 점점 물이 불어나서 큰 가을 이루어 건너지 못할 강을 이루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물이 동쪽으로 계속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죽은 바다가 살아나고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아지고 강 좌우에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물이 흐르는 곳마다 죽은 바다가 살아나는 역사, 죽은 고기가 살아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면 이 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 시간 이 물이 상징하는 두 가지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말씀의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강을 끼고 발달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인류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티그리스 유프라 테스강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중국의 황하문명이나 인도의 인더스강이나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이 그렇습니다. 성경에 창세기 2장 10절에 보면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강은 유브라데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문명은 강을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강은 생명입니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 문명이 들어서고 문화가 발달합니다. 도시가 형성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논과 밭을 일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강물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젖줄입니다. 즉 인간은 물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선진국이란 물을 잘 다스리는 치수(治水) 가 잘 된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물이 잘 다스릴지 모르면 나라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몇 해 전부터 예상치 못했던 집중호우가 서울시와 인근 도시에 쏟아져서 큰 낭패를 보지 않았습니까?
작년에는 우면산에 집중호우가 쏟아져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있지 않았습니까? 어디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 해 태국에도 수도 방콕을 중심으로 해서 공항이 페쇄 될 정도로 물이 유입되어 어려움 속에서 생활했던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이 미처 대비하지 못해서 겪은 어려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앞을 내다보고 4대강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마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지중호우로 인해 강수량이 많아져서 강물이 불어나 홍수의 피해가 예상이 되어 이를 미리 막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헌데 4대강 사업에 돈이 다 들어 가다보니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니 원성이 대단하고 국론이 분열되어 가지고 일을 열심히 하였는데 알아주지 않으니 참 고달픈 4년을 지내 신 것 같습니다. 속전속결로 하다 보니 부실 공사가 된 보가 있다는 기사가 나온 것도 보았습니다만, 4대강 사업이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공과는 후대가 판단 할 것입니다.
아무튼 물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이 생명수 물인 것입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짐승이나 가축 그리고 초목이나 풀도 물이 없이는 성장 할 수 없습니다. 물이 없이는 사람이나 동식물 한 포기 풀이나 나무가 꽃을 피울 수 없고 성장할 수 없고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지구가 한계상황에 다 다렀다고 생각한 과학자들은 우주 어떤 행성에 지구와 같이 인간이 살 수 행성이 있는 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성에 물이 있다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떠들썩하는 이유가 물이 있으면 생명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신 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원망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기를 나일 강을 치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호렙산에 있는 반석위에 서서 그 반석을 치라 그리하면 거기서 물이 나오리니 하였습니다. 반석을 치니 수백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을 축일 만큼 충분한 양의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가리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러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사람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물을 좀 달라고 말합니다. 이 때 사마리아 여인은 말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어서 13절에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필요한 영원한 생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요, 반석을 치니 생수가 나와서 많은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4장에서 이 물은 세상이 주는 물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영원한 생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생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습니까? 부와 명예나 권력의 나무에 올랐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져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은 물질만이 아닌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세상의 것으로 채워질 수 없습니다.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동안 그의 심령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장에 말씀으로 나와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고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로고스’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한다고 할 때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는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말씀’ 천국복음을 전파 하였습니다. 유대와 갈릴리 가버나움 나사렛을 돌아다니시면서 겨자씨 비유와 그물의 비유,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사건이나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사건이나 큰 잔치 비유나 잃은 소위 탕자의 비유 등이 모두 말씀을 통해서 전해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운동입니다. 초대교회 주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잘 정리하여 신약성경을 펴내고 오늘 날 교회에서 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의 소식을 접하고 2000년 전의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없었다면 교회도 없었을 것이고 성령의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말씀위에 세워진 종교인 것입니다. 주일 날 마다 말씀이 강론되어지고 그 말씀이 사람들 심령 속에 흐르면 심령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강물이 흐르듯이 생수의 말씀도 세상에 흘러야 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서 세상으로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사회에 흐르면 사회가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국가에 흐르면 국가가 강성대국이 부유해지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말씀의 생수가 흐르는 곳마다 변화의 바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8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신앙부흥운동으로, Great Awakening이라고 하는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는데 ‘조나단 에드워즈’ 회중교회 목사와 감리교 목사인 화이트 휫필드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오직 말씀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죄인에 대한 '율법의 경고'와 하느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을 강조함으로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시작했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사람의 참값은 그 사람의 계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에 있으며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성경의 내용을 가르침으로써 그 당시 사회적 통념인 전통적 개념에 도전하여 노예제도의 폐지나 대공황과 뉴딜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부흥운동으로 인하여 1636년에 하버드 대학교가, 1693년에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 1701년에 예일 대학교, 1746년에 프린스턴 대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교의나 제도에 변혁을 가져 왔을 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해져 갔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의 생수가 흘러가는 곳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수의 말씀이 사마리아 여인의 심령 속에 흘러가니 그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삶의 목적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수의 말씀이 가정에 흐르게 하십시오. 가정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생수의 말씀이 이 썪어진 사회에 흐르게 하십시오. 이 썩은 사회, 오염된 사회가 정화되고 깨끗한 사회, 정의가 춤추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생수의 말씀이 국가의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십시오. 나라가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 갖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그야 말로 강성대국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요한복음 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의 말씀이 흐르는 곳에는 심령이 살고 가정이 살고 사회가 사록 국가가 부강해지는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2. 성령의 생수이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이물은 성령의 생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말씀이 말씀이 되고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통해서 유다나라가 회복되어지고 장차 메시야의 나라가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3절 말씀에 천사가 에스겔의 손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나온 물이 점점 더 창일 하더니 1천척을 지나 그 물을 건너니 물이 발목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고 물을 건너니 물이 무릎에 차오르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고 강을 건너니 이제는 허리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니 자신이 건너지 못할 큰 강을 이루게 되었을 뿐 아니라 헤엄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서 신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일천척이 지나자 물이 발목에 잠기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신앙의 첫 단계로서 내가 중심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교회생활 하다가 마음이 안 맞으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저 발목만을 담기듯이 겨우 겨우 교회에다 적을 두고 가끔씩 왔다 갔다 하는 식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금전적인 부담이나 별 유익이 없을 것 같으면 동호회 탈퇴 하듯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신자가 아닐 까 합니다.
둘째는, 일천척이 지나자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무릎은 기도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증표가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신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기도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습니까? 기도시간이 많든 적든 삶 가운데서 정기적인 기도시간이 있다면 무릎신자라고 얘기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즈음 타 종교인들이 삼천 배니 만 배니 하는 말들을 듣습니다. 그들의 기도형식이죠? 그런데 삼천 배만 해도 아침부터 시작해도 저녁 늦게나 되어야 끝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시간은 어느 정도입니까?
셋째단계는 일천척이 지나자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물이 허리에 차오르면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세수 대야에 물을 담아서 발을 씻길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므로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이 이제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자신이 아닌 교회 다른 지체를 생각하는 때 까지 이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몸으로도 봉사하고 물질로도 봉사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지난주에 지방회 어느 교회에 부흥회 참석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회 강사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교회에서 1만 2000면 총동원 주일을 하는데 각자 자신의 책임과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직분에 따라서 전도숫자가 정해졌습니다. 그래야 1만 2000명을 채울 수 있지 않습니까? 목사님이 한 교회 집사님에게 할당 된 인원을 정해주자 자신은 도저히 바빠서 전도를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러면 새신자 들에게 줄 선물을 사라고 하였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1만 2000명에게 줄 선물이니까 자신이 2000만원을 내겠다고 하더랍니다. 허리에 까지 물이 차 오른 사람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다시 물을 일천 척 측량하니 물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에 완전히 잠겨진 상태를 말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몸을 물에 의지해야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완전히 성령께 의탁한 상태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각 사람위에 임하고 난 이후에 비겁한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도할 때 하루에 삼천 명씩 오천 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의 성령의 역사가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하여 소아시아와 터키 서유럽과 영국을 거쳐 미국을 돌아 오늘날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 세계에서 두 번 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된 것이 모두가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8-39에 보면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는 그의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킨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생수가 흘러 들어가면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물이 적시는 곳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납니까? 죽은 바다가 살아납니다. 이것은 각종 죄악으로 오염된 이 세상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각종 산업이 발달됩니다. 농업을 비롯해서 어업 광업 수산업 등이 발달합니다. 셋째는 강 좌우에 각종 먹 거리가 풍부해서 삶이 풍부해집니다. 넷째는 각종 희귀 약초가 자라나서 의학이 발달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곳에는 물질의 풍요와 함께 번성의 축복,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11절에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은혜의 말씀이 전달되고 성령의 생수가 부어져도 그 심령이 회개치 않고 소금기로 찌든 것처럼 강팍하고 완악한 심령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9절에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왜 이리 악하여 졌습니까? 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습니까? 사람들이 악한 사상과 정신과 영혼에 오염된 물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로 바꾸기 위해서 성전 문지방에서 나오는 말씀의 생수, 생령의 생수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이 세상에 흘러야합니다. 먼저는 내 심령이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이 민족과 국가 그리고 온 세계가 사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2월 19일 청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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