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초청 잔치 마22:1-1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2절에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오라고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여,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이번에는 모든 것을 다 준비하였습니다.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다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이에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심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이 말합니다. 혼인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초청한 사람들이 합당치 않으니 네거리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사람을 데려오라 하므로 종들이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들어와서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어찌하여 여기 들어왔느냐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임금은 사환들에게 말하여 손발을 꽁꽁 묶어 바깥 어두운데 내여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십니다. 이 천국의 잔치 비유에 나오는 임금은 하나님이시고 그 아들은 예수님이시며 첫 번 째 초청받은 사람은 유대인이며, 두 번 째 초청받은 사람은 이방인과 죄인들입니다. 초청은 받았지만 쫒겨난 사람들 이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불운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시간 “왕의 초청잔치” 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
본문에 나오는 왕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첫 번 째 초대받은 사람들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왕이 보낸 종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입니다. 왕이 베푼 혼인 잔치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혼인잔치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선민으로 택하여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구덩이에 빠뜨리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지만 유대인들은 영접 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함하여 십자가에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여기서 첫 번 째 종은 구약의 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 째 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두 번 째 초청에서 종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오소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왕의 초청을 끈내거절한 것입니다.
왕은 백성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기를 원했습니다만 이러한 왕의 호의는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얼마나 섭한 마음이 들겠습니까? 왕은 잔치를 준바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들여서 아들의 혼인을 위해서 큰 잔치를 준비했는데 두 번 씩이나 거절하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섭하였겠습니까? 누가복음 14장 18절에 다 한 목소리로 거절하였으니 한 마디로 집단적으로 거절 하였으니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왕의 초청 잔치를 거절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사람,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누가복음 14장 18절에서는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소작인이 지주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땅 한 평 없는 사람이 자신이 경작할 땅을 샀으니 그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땅에다 무엇을 심을 까 어떤 작물을 재배해야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까 생각할 일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자신의 땅이 생겼으므로 더 많이 밭에 가봐야 하고 돌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왕이 초청한 잔치에 빠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의 초청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초청 잔치에 아무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기회가 다시 안 올 수 도 있다고 생각하면 거절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보통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생명과 재산도 왕이 빼앗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왕의초청을 거절한 것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고 큰 실수 인 것입니다.
둘째사람, 이 사람은 자기사업으로 간다고 왕의 초청을 미룬 사람입니다. 눅 14장에서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가니 양해 해달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는 대단한 재산목록 1호입니다. 예전에 나온 독립영화 가운데 소를 주제로 해서 나온 영화가 ‘워낭소리’ 있습니다. 거기에서 보면 그 노인에게 있어서 소는 희망이요, 버팀목이요 재산입니다. 요즈음은 소 값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소 값이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 한 마리에 천 만 원 씩 하는 소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전라북도 어느 시골마을에 부흥회를 갔는데 그 마을은 전국에서 소를 많이 키우는데 십일조를 많이 낸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골교회인데도 대형버스도 있고 교인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소가 몇 백 마리씩 키운 다 면은 대단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업하느라 바빠서 왕의 초청 잔치에 참석치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 이 세 번 째 사람은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4장에는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왕의 초청 잔치에 참석할 수 없는 이유가 장가들었으니 자신은 갈 수 없다고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중대사입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생의 중대사도 왕의 초청 잔치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면 모두가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쁘다는 이유로 왕의 초청을 거절 합니다.하지만 이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의 인생의 중대한 일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일도 왕의 초청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초청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매주일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야 말로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하나님 아버지의 초청을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서입니다. 아직은 사업의 성공을 이루고 난 이후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 참석을 거부합니다. 또한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식이나 집안 행사나 개인적인 일로 주일 예배 참석을 미루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농부가 빌리그래함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만일 소가 주일날 구덩이에 빠지면 소를 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교회를 가시겠습니까? " 이 때 목사님의 대답은 명답이었습니다. "그거야 물론 소를 먼저 건져야 하지요. 그러나 만일 소가 주일날마다 빠지면 제발 팔아치우십시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과 사업을 하는 것,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입니까? 성경에서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주일은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내 사업을 핑계로 개인적인일로 예배에 참석치 못한 적은 없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의 초청과 우리의 현실적인 일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느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즉 삶의 무게중심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초청은 받았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입니다.
왕은 두 번 씩이나 초청을 하였지만 사람들이 일제히 거절 하자 이제 종들에게 말하기를 지금까지 초청한 사람은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다. 이제 그들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거리에 가서 아무나 데려와서 잔치 집에 손님이 가득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나갑니다. 길에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하자나 저는 자나 병든 자나 죄인이나 어린이나 노인이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잔치 집에 사람이 가득하였습니다. 잔치 집에는 사람이 북적거려야 잔치집 같습니다. 음식이 나오고 술과 과일이 맛있는 떡과 풍성한 잔치 상이 차려 있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어 갈 무렵 왕이 잔치자리에 찾아와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왕의 눈에 거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왕이 준 예복을 입지 않고 있었습니다.
옛날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왕의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냥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왕이 준비한 예복을 갈아입고 잔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헌데 어쩐 일인지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예복을 입었는데 딱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참여한 것입니다. 왕이 묻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 아무 말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왕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서 자신이 예복을 입지 않은 실수를 인정한 것입니다. 아마 이 사람은 왕이 준 예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자신의 옷이 더 나았다고 생각해서 좀 왕의 눈에 틔어 볼려고 하지 않았을 까 생각이 됩니다.
이 비유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두 번 째 초청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결과로 이방인에게 구원의 은총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 25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에 관한한 사도바울이 말한 바대로 외인이요 이방인 인 것입니다. 자격미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내 공로나 내 노력이나 공로나 수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주의 은총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왕의초청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치않습니까?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 지 아십니까?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적으로 삽니다. 하나님이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따라서 오늘날에도 살아갑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그렇게 살아가지를 못합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하고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말씀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가르킵니다.
최근에 아프카니스탄 미군 기지에서 이슬람의 경전인 코람이 소각되자 수천명의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사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슬람 국가와 마찬가지로 유일신 이신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의 율법 사랑을 이방인인 오늘 우리가 감히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구원과는 먼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왕이 주는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왕의 초청을 받았지만 택함을 받지 못하면 잔치에 참여한 의미가 없습니다. 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이 종들을 시켜서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이 예복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의의 옷입니다.
욥29:14에는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했습니다. 시132:9에서도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했습니다. 즉 의의 옷입니다.
둘째는, 흰옷, 세마포입니다.
계시록 4장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시록 7장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셋째는 구원의 옷입니다.
이사야 61장 10절에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구원의 옷으로 입혀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 입입니다.
로마서 13장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3장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3, 두 부류의 사람에게 심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왕의 초청에 거절한 사람들은 유대인입니다. 이들은 7절 말씀에 왕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심판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대로 AD 70년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예루살렘이 역사적으로 멸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 째 초청받은 이방인들 역시 왕이 주는 의의옷 ,흰옷 세마포옷, 구원의 옷,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철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개인적인 일로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왕의 초청을 거절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분은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전체수학 입학과 수석졸업을 하고 삼성그룹을 입사하고 현재는 대학교수이자 대의 그룹회장이십니다. 이 분이 쓴 “주께 하듯 하라” 는 책을 보면 그 분의 삶에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습니다. 이 분은 채의숭 장로님이십니다. 이 분의 삶의 모토가 되는 말씀은 골로새서 3장 23절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분은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에게 배운 3가지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6남매를 키우면서 새벽기도 시작 30분 전에 교회에 나와 추운 겨울에도 찬물에 걸레를 빨아 강대상을 닦고 바닥을 닦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까지 이 일을 젊은 집사들에게 양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첫째, 주일을 성수하라. 가능하면 본 교회에서 주일을 지내야 한다. 그리고 예배드릴 때는 가능하면 맨 앞자리에 앉아라. 사업을 하다보면 사람들과 교제를 하고 운동을 할 기회가 많다고 합니다. 자신은 골프를 좋아하지만 절대로 주일에는 필드에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일날 운동 약속을 하게 되면 주일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주일은 골프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분은 말합니다. 예배보다 더한 기쁨이 없다고, 예배는 격식이 아니라 그것에 흠뻑젖어야 한다. 마음은 콩밭에 있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주일 날 예배 마치고 골프치는 것이 뭐가 죄가 되냐고 ...신앙도 좀 유통성이 있어야지, 그 분은 이 ‘융통성’ 이란 말을 제일 싫어한다고 합니다. 신앙은 ‘예’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라고 가르친다. 둘째, 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십일조를 하면 분명히 물질의 복을 받는다. 농사를 짓더라도 수확의 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십일조를 도둑질하면 쌓아둔 재물이 언젠가는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법이다. 셋째 목사님께 순종해라 특히 교인들을 잘 섬겨야 한다. 주의 종과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또 너의 달란트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성경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겼고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의 꿈은 사업을 일으켜서 100개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것의 일환으로 경기도 부천에다 공장을 차렸는데 1986년 장대비가 쏟아져 기계설비가 다 물에 잠기고 다 떠내려가는 아픔이 있었다. 두 번 째 시험은 수재의 아픔을 딛고 비약적으로 성장할 무렵 1991년 여름 천안에 부지를 마련하고 제 2의 도약을 꿈꾸고 있을 때 전국에 태풍이 불어 불안한 그 때 텔레비전 9시 뉴스를 통해서 공장이 불바다로 변한 것을 보게 되었으며 이 일로 하나님께 항변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100개를 지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새까맣게 잿더미로 변한 공장에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을 때 여호수아 1장 9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이 회복되었는데 1999년 또 한 번의 시련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다가왔다. 대우그룹의 부도였습니다. 대우가 결재해줄 돈이 수 백억원인데 부도를 맞은 것입니다. 그 해 추수감사절이 돌아와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을 때 이 분은 주택청약통장 10년전에 500만원을 적금해둔 통장인데 이 통장이면 아주 큰 평수의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마지막 재산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이 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업이 회복되어지고 해외에서 주문이 폭주한 것이다. 사르밧 과부의 심정으로 마지막 빵을 주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렸으니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분이 한 번은 양평의 한 해장국집에서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주인이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더니 “혹시 장로님 아니신가요?” 어떻게 아셨나요?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인상만 봐도 그 사람의 직업과 인품을 알 수 있어요.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가정입니다. 음식 값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말합니다. 예수쟁이 10년차 쯤 되면 삶을 통해서 예수 냄새가 나야 한다. 참기름집 주인은 아무리 씻어도 몸에서 참기름 냄새가 난다. 생선집 주인의 몸에서 항상 생선 냄새가 난다. 아무리 비누로 씻어도 비린내가 난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예수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쁘다는 이유로 왕의 초청을 거절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업 때문에 세상적인 일로 개인적인 일로 가정사로 주님의 초청을 미루지 말기를 바랍니다. 또한 청함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 예복을 준비하여 택한 받은 자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그 날에 왕의 초청잔치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2년 2월 26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13:1-9 네 종류의 마음 (0) | 2012.03.10 |
---|---|
창세기49장 22-26절 샘 곁에 무성한 가지 (1) | 2012.03.03 |
생명을 살리는 물 /겔47:1-12 (0) | 2012.02.18 |
출15:22-26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 (0) | 2012.02.11 |
실패에서 성공으로 눅 5:1-6 (0) | 201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