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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곧 오십니다. (사40:1-11)

gkffpffndi 2011. 11. 26. 10:59

 

주님이 곧 오십니다. (사40:1-11)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왕국 10대 웃시야 왕의 통치 말엽인 기원전 740년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약 40년간 예언자로 활약했던 선지자로서 1-39장 까지는 제1이사야, 40-66장 까지는 제 2 이사야라고 부릅니다. 제1이사야는 타락한 유다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를 비롯하여 그 주변 나라로 즉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모압 ·다메섹, 구스, 에돔, ·아라비아 ·예루살렘(유다) ·두로 로 확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2이사야는 포로에서 해방되리라는 소망과 회복에 대한 약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는 메시지입니다.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야가 오시면 하나님은 바벨론을 심판하시며 이스라엘은 고난에서 벗어나며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며, 노역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70년 동안의 암울하고 우울했던 시대가 끝이 나고 이제는 내 나라 내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온 민족과 가족이 기뻐하고 즐거워 할 날이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박해와 고통과 고난에서 해방되고 자신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자유를 누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과 희망의 소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70년 만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날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날이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해방과 기쁨의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고통과 고난과 질곡과 형극의 날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회복되고 메시야가 시온에서 다스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장차 주님이 다스릴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예수님의 대강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력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사용한 달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 4 주전부터 시작됩니다. 기독교인들은 4주년부터 처음으로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던 신자처럼 가난과 절망, 고통과 질병 속에 있는 자들에게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서 이 땅에 빛으로 오셨음을 기념하는 절기로 강단에 촛불을 한주일이 지날 때마다 하나 씩 켜서 성탄절에는 4개의 촛불을 밝힙니다. 이 절기는 예수님의 재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8세기의 아말라리우스의 메츠의 글을 보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날’로 지켰음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대강절 첫 주를 맞이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고통 중에 있는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난 70년 동안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서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위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자 같고 호랑이 같은 잔인한 바벨론이 1차,2차, 3차에 걸쳐서 왕을 비롯하여 귀족과 수많은 백성들을 인정사정없이 끌고 가서 노역을 시키고 고통 속에서 살았던 날들이 1년, 2년이 아니라, 70년의 세월이 흘러 자신의 자손들이 자신의 민족의 정통성을 잃어버릴 만큼의 긴 세월이 흘렀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긍지와 정체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이전의 예루살렘의 영화를 꿈꿀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낙심하였으며 소망을 잃어 버렸습니다.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상황에서 담대하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사야 40장 1-2절에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노역의 때가 끝이 났다고 했습니다. 노역이라는 것은 전쟁에 패망한 백성들이 적지에 끌려가서 종살이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유다백성들의 노역은 단순히 바벨론에 패망당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패역하게 행한 죄악에 대한 대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 값을 치룰 필요가 없다. 죄 값으로 인하여 벌을 배나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이 충분한 죄 값을 지불한 만큼 고통은 끝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통이나 고난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의 대가임을 알아야 합니다. 유다 나라가 고통을 당한 이유는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고 해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습니까? 용서하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해도 거짓말 하지 않습니까? 정직하게 살아라. 그래도 정직하지 않게 삽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도 따먹음으로 우리에게 고통과 죽음이 온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70년 동안 종살이 한 것에도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죄 값을 충분히 치루고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었으므로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볼 날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곧 나타나신 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곧 오시면 고통과 환난과 슬픔의 날은 가고 기쁨과 환희와 희망과 영광의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날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과 아픔과 상처를 싸매시고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벌이 아니라 상급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질병이 아니라 치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난이 아니라 부유함을 주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고통의 세월이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해방과 자유, 기쁨과 구원의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날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전방에서 군대 생활 할 때 가끔씩 사단장이 지날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날은 비상입니다. 제가 군 생활 할 때만 하더라도 도로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로가 울퉁불퉁해서 고르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사단장이 지나 갈 때 평안히 갈 수 있도록 나와서 병사들이 삽을 가지고 평탄 작업을 합니다. 돋아 나온 대는 깍아 내리고 움푹 들어 간대는 흙으로 메꾸어 놓습니다. 사단장이 가는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VIP 이기 때문입니다. 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백성들은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는 대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도로 작업을 잘 해야 합니다.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골짜기는 메우고 산이나 언덕은 깍아서 험한 곳도 평지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광야에도 길을 내고, 사막에도 길을 내고 구부러진 길을 곧게 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고속도로로 오신 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죠? 우리 마음의 굳은 길을 펴라는 것입니다. 삐딱하고, 부정적인 사막과 같은 마음, 왜곡된 마음을 펴서, 마음이 선하고 깨끗해서 주님이 오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대강절이 바로 그런 절기입니다. 즉, 주님이 오시도록 마음의 대로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길로 오셔서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상처와 아픔을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2. 인생이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 같음을 알리기 위해서

 

가수 최희준 씨는 이런 노래를 불렀지요?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라 했습니다.

 

우리 성결교회 부흥사이신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 성가 중에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인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상 고난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시편 90편 5-6에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고 했고 또 10절에서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임기를 마치고 땅콩 밭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남은 것은 선거비용으로 사용한 100만 달러 한화 10억 원이 넘는 빚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제는 다 늙어버린 자신의 육체였습니다. 카터가 어느 날 아침에 친구와 같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계산서를 받아보니 식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적게나왔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왜 식대가 이렇게 적게 나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면서 “대통령 양반, 계산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네, 이 식당에서는 아침에 오는 노인들에게는 커피 값을 받지 않고 공짜로 준다네”하고 가르쳐주더랍니다. 카터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 내가 벌써 이렇게 늙어서 노인 취급을 받는구나.” 그래서 그 후로 비록 육신은 늙었지만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찾아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 운동입니다. 카터는 84년도부터 매일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열심히 집을 짓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짧은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막가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인터넷 상의 익명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일이 도를 넘어 사회를 황폐하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 시장 선거에서 결정적으로 박원순 후보가 당선 되는데 일조한 것이 있는데 “나꼼수” 라고 하는 방송입니다. 거기에서 이대통령 내곡동사저 사건과 나경원 후보의 1억원 피부 샆 사건을 터트린 것이 결정타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꼼수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수백만이라고 합니다. 헌데 그 방송은 사회의 건설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남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그것도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성 보도를 사실인양 보도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인격적 모독을 재미로 삼는 방송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우리나라 대통령이신 이명박 대통령을 희화화 한 것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모욕하는 방송을 하는 것을 언론의 자유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입하는 이런 방송이 인기를 끈다고 하는 것이 우리사회가 정상이 아닌 것입니다. 지난 24일 한미 FTA 기습적으로 통과 했다고 해서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최루탄을 던지질 않나, 최루탄이 아니라, 폭탄이 있었으면 폭탄을 던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국회의원에 말속에는 국민의 대표가 아닌 개인적인 분노와 적대감이 묻어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FTA 촛불시위에서 나타났는데 참여한 고 3학생이 일국의 대통령에 대하여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대통령을 쥐로 표현해서 쥐약을 먹이자고 말을 하고 대통령을 교도서로 보내자고 하고 언어의 폭력이 도를 넘고, 방자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5장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11월 25일자 국민일보 신문에 우리나라 사람 100 명중 36명이 1년에 16만 7000원씩 기부하는 기부천사가 있습니다. 기부 형태는 현금 34.8%, 물품이 8.5%였습니다. 현금기부자의 31.2%는 주기적으로 기부하고 있습니다. 기부하는 이유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서(43.3%)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앞으로 기부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45.8% 유산을 내놓을 의향이 있는 사람은 37.3% 였습니다. 기부와 달리 자원봉사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더불어 사는 나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우리사회에 흐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시편 90편 5절에 "주께서는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전광석 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세월을 아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겼던 건강과 지식, 물질과 재능이 소용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과 꿈도 포기해야 할 날이 옵니다. 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봉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에서 영원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영생입니다. 잠시 사는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 수십만에서 수백만 원의 보험을 들면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왜 천국에 보험을 들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하였습니다.

 

3. 만왕의 왕으로, 그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40장 9절에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다 나라가 70년의 고통과 고난과 슬픔, 노역이 끝나고 자유와 해방과 기쁨의 날이 왔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힘써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왕이나 방백들이나 제사장들을 바라보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포로생활을 하던 유다백성들이 이제 저들이 고향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세워지고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하게 될 것임을 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를 찬양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맘은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이제 이 땅에 주인이 오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왕 이 되시고 영원한 목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동안 유다백성은 푸른 초장이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참 목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오시는 분은 자신의 양떼를 먹이시며 그의 팔로 품으시며 온순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자신의 양을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양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 분은 자신을 희생하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낙심과 좌절과 절망, 한숨과 고통 속에 사는 자들에게 새 희망과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그 분은 시기 질투, 미움과 분쟁, 갈등과 상처, 전쟁이 가득한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종국적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공의와 평화, 하나님의 사랑이 숨 쉬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하는 찬양 가사처럼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이 세상은 미움과 살인, 분쟁과 전쟁, 고통과 아픔, 슬픔과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10절에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이제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고난당하는 자가 아니라, 이 세상을 심판하실 주로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 때는 강한 자로 오십니다. 천군과 천사와 함께 오십니다. 이 땅에 악한 자들은 심판의 구덩이에 넣을 것입니다. 착한 사람,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그들이 이 땅에서 산 생애에 대해서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날들을 어떻게 살았는지 평가 하실 것입니다.

 

로마서14:10-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하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르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3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이 곧 오십니다. 여러분의 고통과 고난과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문제는 해결 됩니다. 그 어떤 문제라도 주님이 오시면 됩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덧없는 인생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짧은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선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움, 시기, 질투, 전쟁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사랑과 평화 공의가 춤추는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 날에 주님의 위로와 사랑, 상급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27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 주님과 같이 /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 내겐 주밖에 없네(*2)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 하네

 

고통 받는 자녀 품으시니 / 주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 내겐 주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