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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공동체 (사도행전 2:42-47)

gkffpffndi 2011. 11. 5. 19:31

 

아름다운 공동체 (사도행전 2:42-47)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오순절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제자들이 오직 성령받기를 간구하고 기도했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마치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형상이 보여 각 사람위에 하나씩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임하여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각 나라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에 사도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루살렘 시내에 나가서 담대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 예수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말을 하면서 바로 너희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야 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씀합니다. 이 설교를 듣던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베드로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날에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이나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 부흥에 대하여 말하는 신학자들은 교회 부흥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역사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교회가 부흥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초대교회 부흥의 원동력인 성령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늘 본문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공동체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교제가 있는 공동체입니다.

 

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고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란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생활하면서 예수님의 삶과 인격을 닮은 주님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고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 가장 가까이서 주님의 말씀과 교훈을 배우고 같이 생활했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사도들이 생생하게 주님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기적을 베풀고 자신들에게 가르치신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같습니다. 사도에게는 이러한 영적인 권위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배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은 곧 주님의 가르침과 동일시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주님에 대한 행적을 기록한 책이 4 복음서입니다. 이 4복음서는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제자가 자신들이 가장 가까이서 본 주님의 행적을 소상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마가복음이 AD50-60 년 사이에 기록되었었고 이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은AD90-10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본들이 난무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씀의 진위여부를 밟아 신약성경의 정경확정은 AD 397년에 카르타고 회의에서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정경으로 확정된 신약성경 27권뿐입니다. 물론 천주교에서는 외경까지 정경에 포함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그리스도인들은 경전인 하나님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절대자 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대화를 많이 가져야 자녀와의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한 집에 살면서 대화가 안 되고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명박 정부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국민의 귀에 귀울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명박산성이라고 젊은이들이 비아냥거리는 것입니다. 도저히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신앙인들은 누구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말씀을 먹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니 그 영혼이 곤고하고 피곤합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영적 근육이 생기지 않아서 조그만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차안에서 기독교 방송이나 극동방송을 들어야 합니다. 찬양 테이프를 들으면서 영혼의 굶주림을 채워야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서적에 들려서 영혼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므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써 침체된 영혼이 새 힘을 얻고 새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교제라고 하는 뜻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 인데 영어로는 (Fellowship) 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유대감이나 동료애, 이해관계나 사상,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 들은 젊은이들만이 가지는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으로 트윗 을 함으로써 쉽게 소통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끼리 서울광장에 모여 정부를 비판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면서 동료의식을 갖는 것을 봅니다. 젊은이들만이 가는 공간이 있습니다. 40대는 40대가 가지는 연대의식이 있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배철수 씨가 진행하는 7080콘서트에 50대나 60대 중년층이 열광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즐기고 과거의 돌아올 수 없는 젊음에 대한 아쉬움을 발산하면서 동료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술이 없이는 교제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일반회사나 공무원이나 학교, 심지어 의사나 변호사 판사 등 고위직 할 것 없이 퇴근이나 회식자리에서 술이 없이는 교제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아무데서나 술을 판매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술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심지어는 학생들조차도 아무런 의식 없이 교사가 학생들에게 술 먹는 것을 조장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식당에서는 식사 하러 온 사람에게 의례히 술을 주문 받습니다. 젊은 처녀들이나 아줌마들 할 것 없이 식당에서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술잔을 남녀 동석해서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세상 사람들의 교제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교제를 해야 합니다. 신령한 교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인 말씀과 기도 뿐 아니라, 성도간의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면 쏜살 같이 교회 문을 나가기보다는 한 주간 동안 세상에서 지친영혼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료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46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는 길은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바쁜 일 있다고 해서 나 혼자쯤이야 하고 생각하면 공동체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임은 열심히 모이는 것 같습니다. 시간 늦었다고 하면서 재촉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임은 꼭 참석해야 하고, 주님의 일은 미루거나 바쁘면 빠져도 되는 것입니까? 내가 희생하고 양보할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대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 예전하고 다르게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소위 일류대학 나오고 화려한 스펙을 소유한 사람을 뽑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 지금은 인턴 과정을 거치게 하는데 인턴과정에서 보는 것은 이 사람이 우리 팀에 들어와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다른 직원들과 조화를 이루는지 협동심은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동료의식과 협동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그 회사에 유익이 되고 그 팀에 활성화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대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또한 초대교회는 “집에서 떡을 먹고 음식을 먹고” 우리는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음과 함께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집에서 떡을 떼었다고 하는 것은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즈음으로 말하면 구역예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같이 음식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세상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교제합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떡을 먹고, 음식을 나누는 식탁교제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식사를 정성껏 준비합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성도들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나누는 것을 볼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식사를 준비한 사람도 마음이 뿌듯해지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같이 식사하면서 이런 얘가 저런 얘기 하면서 가까워지고, 속에 있는 얘기도 나오고 그러면서 성도간의 유대감이 형성되고, 교회가 활발해지고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나눔이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은혜 받고 성령 받으니 그들의 삶의 방식이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소유의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얻은 부를 쌓아 두었습니다. 그 돈으로 이자 놀이해서 부를 증식했습니다. 요즈음 말로 재테크해서 재산을 늘린 것입니다. 부동산에 투자하고 증권에 투자하고, 펀드에 투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는 즐거움 속에 살아갑니다. 돈에 집착하다 보니까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도 인색하게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밥맛이 없고 돈이 없으면 인생의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웃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고 나니 돈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도들의 앞에 내 놓았습니다. 사도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온 재물들을 정리해서 교회 안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4절에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내어 놓으니 가난한 자가 없어졌습니다.

 

최근 우리시대의 화두는 경제문제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Occupy Wall street),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미국의 세계의 금융 중심지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는 고학력자인 청년 실업층이 주도 했습니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에 1천만 자리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청년 실업률과 물가상승, 가계부채로 어려움을 겪는데 비해서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금융기관은 공적자금을 부어서 다시 회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엄청난 보너스를 받으면서 호화롭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기로 지금 전 세계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워런버핏이나 빌게이트 같은 사람들은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서 가난한 이웃과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부자들은 그렇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나라당이 부자만을 위한 정당이라는 인식이 20-40대 사이에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대기업들에게는 감세 혜택을 주면서 일반 서민들의 일자리나 대학 등록금, 주택문제 들을 방치 한 채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았다고 하는 반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원은 무한합니다. 사실 지구촌에 있는 물질과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 쓰기만 하면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나한 나라와 부자나라 후진국과 선진국, 부자와 가나한자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능력의 차이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 부가 전체 인구의 5%-10%의 사람들이 전체 90%의 부를 소유하고 있고, 90%의 사람들이 그 반대의 물질과 자원을 사용하고 있다면 이것은 불합리 한 일이며 인간의 탐욕의 근거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도 한 해 소출이 많아서 곳간을 늘이고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쌓아두고 가난한 이웃을 생각지 않는 부자를 향해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네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책망하셨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한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7절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 하실 기준을 볼 때 마태복음 25장35-36“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도 나눔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중에 십일조가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십일조의 사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성전 수리비용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교회 보수비용일 것입니다. 두 번 째는 제사장 몫입니다. 제사장은 기업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땅이 있고 재산이 있습니다만, 제사장은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삯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 번 째 가난한자를 위해서 사용되어졌습니다. 십일조나 예물은 나눔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욕심을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행복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3. 사랑의 공동체 (Community)입니다.

 

초대교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의 공동체 였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이 없이 어떻게 자신의 재산을 내 놓을 수 있습니까?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귀한 물건을 다른 사람과 같이 공유한다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알아차리고 자신의 것을 내놓았습니다. 강제로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시내에 있는 기독교 서점에 들렸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낯선 글씨가 보였습니다. 버스 정류장 옆에서 중년층인 남녀가 6-7명이 모여 있고, 그곳에서 길에 세워진 광고 가판대에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생명나무를 아십니까? 아무래도 정통 기독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독교 서점에 들러 주인 권사님께 물었더니 이단 신천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단 들이 대담하게 자신들의 잘못된 종교적 확신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생각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자신의 종교인 유대교의 신념에 배치된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신천지가 자신들의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않고 기존 교회 예배 시간에 맞춰서 청주 시내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드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근에 부쩍 이나 신도수가 늘었는데 어느 한 교회는 신천지가 들어와서 교회성도가 밀물처럼 빠져 나가고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천지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성교회에 실망해서 간 교회 직분 자들입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사람가운데 신천지로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어떻게 이단에 빠질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교회만 오래 다녔지, 교리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에서는 초 신자가 오면 6개월 동안 교육을 시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허무맹랑한 감언이설에 빠져 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분 말씀이 기존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크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도 계층이 생겨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자연히 소외계층이 생기고 교회 안에서도 신분의 차별이 생기게 되어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은 안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교회 직분 자에 의하면 그 사람들은 형제처럼 지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교회에서는 초대교회의 사랑의 공동체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마다 분열이 일어나고 교단마다 싸움하고, 세상 사람이나 이단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미국에서는 목사에게도 성도들이 자신의 성 앞에다 brother 정 혹은 sister 이렇게 붙인다고 합니다. 상당히 친근하지 않습니까? 가깝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랑일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 목회자와 성도간의 소통을 위해서 벽을 허물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요한사도는 요한 1서 17-18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어느 날 여행 중에 있던 한 변호사가 그곳에서 하루를 머물게 됐습니다. 마침 그 날은 주일이어서 크리스천인 그는 낯선 이 도시에서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호텔을 나섰으나 어디에 교회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순경한테 물었습니다. "여행 중에 주일을 맞아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면 교회가 있습니까?" 순경은 이렇게 저렇게 가면 교회가 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변호사는 순경이 일러 주는 대로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순경을 또 만났습니다. 변호사는 그 순경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이 일러준 교회를 찾아가면서 보니까 도중에도 다른 교회가 많던데 하필이면 왜 맨 끝에 있는 그 교회를 소개하셨습니까?" 순경이 대답합니다.

 

"저는 참된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교통정리 하면서 그동안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더니 그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를 소개했습니다." 사랑이 많은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교회를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과 교통하고 성도의 교제가 풍성한 교회,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과 성도들과 함께 나눔이 있는 교회, 더 나아가 사랑이 풍성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2011년 11월 6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