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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 (1) 눅 2:25-39

gkffpffndi 2011. 12. 3. 12:48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 (1) 눅 2:25-39

 

구약성경 가운데 면면히 흐르는 사상 가운데 하나가 메시야 사상이다. 특별히 이사야서에는 메시야가 다윗의 계통에서 나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는 베들레헴에 오실 것과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여러 시대,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지만, 예수님 오시기전 400년 동안을 신구약 중간사라 하는데 이 시기를 성서학자들은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그 시기에는 하나님의 계시인 예언이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기여서 사람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어두움 가운데서 생활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육신은 지치고, 절망 속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어디 의지할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삶을 사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 여선지자입니다. 400년 동안 계시의 말씀이 없다가 이제 두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린 것은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인내 하면서 메시야를 대망하여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대강절 두 째 주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어떻게 주님을 기다리렸는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두 사람을 통해서 교훈 받고 주의 오심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 '응답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모세의 법대로 정결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 왔습니다. 그 이유는 레위기 12:2절에 의하면 아이를 낳은 산모는 부정하기 때문에 7일이 지나면 제사장에게 가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양으로 드려야 하지만 예수님의 가정은 가난하였기 때문에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나이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보아서 나이 많은 노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시므온이 메시야를 오랜 동안 대망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다 되어가는 것을 감지한 시므온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보기를 소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오시면 고통 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장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처럼 평화의 시대가 오게 될 뿐 아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고통과 압제아래 있는 이스라엘을 자유케 하고 해방시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바로 백성들이 무지와 미신 쾌락과 우상에 빠지고 로마의 압제아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오늘의 암울한 시대야 말로 메시야가 오실 때라고 생각하고 그는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 시대야 말로 메시야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므온은 그냥 메시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25절에 “의롭고 경건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하였습니다.

 

첫째는 의로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죄악 가운데 살았습니다.도덕적으로부패하고타락했습니다.로마시대코메디아(Comoedia)의 어원은 ‘Komos’로 ‘술을 마시며 떠들어 댄다’라는 뜻으로 특히 디오니소스 축제 때는 술을 마시며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음란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구경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시므온은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 홍수 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시대 사람들을 가리켜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창세기 6장 11절에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이 말의 뜻은 사람들이 파괴적이 되고 폭력적이어서 약한 사람이나 힘없는 어린아이나 노인들은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노아는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칭찬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늘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은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다 준행하였다고 창세기 6장 22절, 7장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경건했다고 했습니다. 경건이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eusebeia)인데 이 말의 뜻은 항상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며,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드린다. 또한 사람들을 바르게 섬기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시므온은 하나님의 성전에 있으면서 예배생활에 힘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의 특징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창세기 8장 20절에 보면 노아가 홍수가 끝나고 난 이후에 방주에서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사를 드린 일 이었습니다. 경건한 사람의 모습은 그 어떤 인간의 중요한 예식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결코 미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예의바르며 겸손했으며 사려 깊은 삶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웃을 잘 섬기는 모습, 이것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그의미가 와 닿지 않아서 공동번역서에 보니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렸다” 라고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국가와 민족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야 이스라엘이 고통과 환난 무지와 미신과 세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간절하게 메시야 오심을 대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므온의 소원을 아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26절에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해마다 메시야 오심을 사모하면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갈 때 마침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시므온은 아기를 얼른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말하기를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이제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렸던 메시야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였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입니다. 평생에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요셉과 마리아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시므온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소원한대로 평생을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나고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루고 이 세상을 떠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2. 안나 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메시야를 기다린 두 번째 노인은 안나 라는 여인입니다. 36절에 안나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이었는데 결혼한 지 겨우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여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전에 보던 개역성경에는 "과부된 지 84년"이라고 번역해서 나이가 쾌 차이가 납니다.

 

안나라는 이름의 뜻은 '은혜' 또는 '은총'이라는 의미입니다. 안나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로 결혼 한지 7년 만에 남편을 사별하고, 84년을 홀로 살아온 여선지자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죽자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결혼 한지 7년 만에 홀로 되었으니 그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음을 우리는 미루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눈물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외로움과 슬픔이 바닷물처럼 밀려와 잠 못 이룬 날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저를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텅 빈 남편의 빈자리로 인해 힘겨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는 시므온처럼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서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37절에 보면 성전을 떠나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성전은 성전이 아니고 예배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 구약시대처럼 동물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성전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교회를 성전이라고 부른 다고해서 전혀 틀린 얘기만도 아닙니다. 교회를 성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기능면에서 같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만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계시지만 특별히 구별되어진 장소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안나 선지자처럼 항상 교회에 머물러 있지는 아니한다 할지라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교회에 머물러 있고 교회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그 신앙이 잘 자라고 경건함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노래방을 출입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노래방에도 찬송가가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

 

지난해 한국 남자 10명 중 4명(37.9%)이 성매매를 했다."(2010 성매수 실태조사 보고서) 그런데 그 일탈의 시작이 노래방인 것입니다. 안마시술소, 룸싸롱 유흥업소 개인별로 1년 동안 성매매로 지출한 비용은 평균 31만3천원이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그 개인별 지출을 모두 합하면 1조2907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미국 15~18%, 네덜란드 16% 오스트레일리아(16%) 수치가 우리의 절반을 밑돈다. 영국과 뉴질랜드는 7%에 불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와 비교가 가능한 곳은 짐바브웨 정도로 53%다. 성인 남자 3명중 1명이 성매수 했다는 것입니다.

 

도둑놈 소굴에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은 도둑질이요, 생각나는 것은 남의 물건 훔치는 것입니다. 매일 나이트클럽에 가서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이 춤바람이요, 생각나는 것이 춤입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음란 사이트와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이 나쁜 짓이요, 생각나는 것이 게임과 음란한 사진들입니다.

 

그러나 성전중심으로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이 예수님이요, 생각나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성전중심으로 살면 그 사람의 영과 혼과 육체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집니다. 그의 영혼이 맑고 깨끗해집니다. 은혜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성도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짓눌려 있을 때라도, 육신적인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우리의 앞길이 암담하고 캄캄해 보여도 노래방이나 술집 찾지 말고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찾아야 합니다. 이 안나 선지자가 혼자 된지 84년이 되었음에도 그가 신실한 믿음과 경건한 삶을 유지 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 식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식욕을 끊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면서 까지 기도할 만한 제목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가운데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온유, 충성, 절제가 있습니다, 첫 번 째 은사는 사랑이고 마지막 은사는 절제입니다. 절제의 은사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다 사용할 수 있어도 다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힘이 있어도 다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부와 지식이나 능력이나 재능이나 기술 언어를 가지고 자신을 과시하는데 다 사용할 수 있으나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감추고 낮추는 겸손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이러한 절제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자신들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하여 너도 나도 불만을 표출하면 어떻게 국가 공동체나 사회나 교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최근 한미 FTA 발효를 앞두고 일부 판사들이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집단 표출이 있었는데 이러한 행위는 국가 공권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안나 선지자가 기도한 내용이 중요합니다. 시므온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 것처럼 안나 선지자도 38절에 보면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내용으로 보아 안나 선지자는 많은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유대나라와 예루살렘 즉 하나님 나라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나”를 벗어나서 “우리” 라는 공동체를 위한 기도여야 합니다. 저가 어렸을 적 다닌 교회는 저녁마다 교회 집사님 권사님들이 모여서 교회 성전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방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교회에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교회에 기도하시는 분이 많이 계시면 교회가 부흥하고 목사는 힘을 얻습니다.

 

이렇듯 금식하고 절제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유대나라의 회복과 예루살렘을 위해서 기도한 안나는 메시야 이신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안나는 마침내 탄생하신 메시야를 품에 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골방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일어나서 나아가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선포하고 증거 하였습니다.

 

주님은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축복은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약속도, 은사도, 기적도, 성령도 금식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3.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므온과 안나가 메시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령충만 했다는 것입니다. 25절에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절에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 하는 자에게 주의 구원을 보여 주십니다.

 

유명한 여배우 비비안 리 주연의 옛 영화 "애수"는 기다림에 실패한 한 여인의 불행한 운명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전쟁터에 가 있는 애인을 기다리던 중 전사자의 명단에서 애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생활고에 못 이겨 군인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인이 되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꿈에도 못 잊던 그 애인을 발견했습니다. 그 전사자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므로 떳떳하게 애인을 만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워터루 다리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소망을 잃어, 자신을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동일하지 않습니까?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면서도, 교회는 다니면서도, 세속적인 쾌락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우리가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면 나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부 터툴리안은 "신앙이란 불을 켜놓고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안나 와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성령 충만함으로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직 의롭고 경건하며, 절제의 삶을 살고 성령 충만한 안나 와 시므온 이 두 사람만이 아기 예수를 만났고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주의 구원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다시 오실 주님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타락하고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안나와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며, 이 민족의 구원과 주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며, 절제하면서 성령 충만한 가운데 주님을 기다리므로 주의 영광을 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1년 12월4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주일설교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찬송가 85장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