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4장 1-8 아름다운 인생, 하나님의 사람
BC 490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는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사신을 보내 페르시아에 항복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리스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므로 페르시아는 전함 6백척 보병10만 기병 1만명의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곧 그리스 해안으로 항진하여 그 본토 아티카주의 동쪽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다급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보름달 이전에는 출병할 수 없다는 기별을 듣고 풍전등화 같은 위기를 맞았지만 지략이 뛰어난 용장 ‘밀티아데스’ 지휘하에 불과 1만명의 기갑병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아테네 동북방 42 km 지점, 마라톤 평원에서 역사적인 마라톤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열배의 우세한 전력을 가진 페르시아군은 지략가인 ‘밀티아데스’의 교묘한 전술에 말려들어 대패하게 된다. 이 기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스파르타에 원정 사신으로 갔던 ‘필리피데스’가 다시 사신으로 임명되어 마라톤 평원에서 단순에 약 42Km 를 달려가 수많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우리 아테네 군이 승리했다.“고 이 한마디를 전하고 마침내 숨을 거두게 된다. 마라톤의 전래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오늘 본문은 마라톤의 경주처럼 위대한 노 사도는 인생의 마라톤 경주에서, 죽음가까이에서 지난날의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마치 희생제물위에 포도주를 다 부어 제사를 마친 것처럼 자신은 주님을 위해 관제와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인생을 살아 왔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후로는 자신에게 주님께서 승리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울은 천국의 영광과 환희를 바라보고 인생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인생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선한 싸움을 잘 싸우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정부와 야당의 싸움, 사업가와 노동자의 싸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싸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의 싸움, 독재자와의 싸움, 여권 신장을 위한 싸움, 소수민족의 독립을 위한 싸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싸움,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 국회와 검찰의 싸움, 요즈음 한진 중공업 사태로 인해 사용자와 노동자와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주먹을 붉끈 지고 정부나 기업에 대해서 도로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싸우는 투쟁꾼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그보다 휠씬 더 근원적인 대상에 대한 영적싸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이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세를 누리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싸움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영생을 누리기 위한 싸움입니다.
사도바울은 딤전 1장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 6장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그러면 이 선한 싸움은 어떤 싸움입니까? 첫째는 하늘에 있는 악에 대한 싸움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요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이 세상의 임금이 누구입니까? 마귀요 사탄입니다. 이 세상을 악을 조장하고 악을 뿌리는 자가 누구입니까? 보이지 않는 사탄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의 조종을 받습니다. 사탄의 의해서 이끌림을 받습니다. 사탄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방탕함에 내어 놓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편만해 있는 악과 싸워야 합니다.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에 참여해서도 안 됩니다. 우상숭배의 악,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 병영생활에서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구타를 하고 왕따 시키는 구조적인 악과 싸워야 합니다. 이 세상의 부정과 부패, 부조리와 악습과 싸워야 합니다.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이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요1서 2: 15,16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는 아름다운 세계요, 창조주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악한 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계에 대해서 장난을 쳤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창조주 목적과는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과는 정반대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뜻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시대 처럼 폭력이 난무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누르고, 음란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부도덕하고 타락한 세상 문화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부교수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인 박모 교수라는 사람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 여의 성기를 올려놓고 이것이 음란물인가요? 판정시비를 가렸는데 음란물은 아니라는 방송위원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지식인라는 사람이 그런 사진을 올려놓고 또 그런 사진에 대하여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이 시대의 타락과 부도덕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교수는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퇴출시켜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라고 말합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이며 예일 대학교 교수인 리챠드 리버는 그이 책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이 세상의 문화는 왜곡된 타락한 문화이므로 방향을 전환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5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 2.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 3. 문화위에 있는 그리스도 4.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 5. 변혁하는 그리스도 이다.
그리스도인도 이 세상의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문화를 떠나서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문화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란 호흡하는 공기. 마시는 물, 입고 다니는 옷처럼 인간생활의 필수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문화가 타락하고 오염되었으며, 부패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타락하고 부패된 세상 문화를 선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문화로 변혁시켜야 할 싸움터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3. 자신과의 싸움 입니다. 영적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성격들을 나날이 제거해야 합니다. 교만, 성급함, 자아 중심적 이기심, 신앙적인 게으름, 시기심, 불평불만 같은 것들입니다. 이 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경게 해야 할 것은 게으름입니다. 최근에 한국에 유명한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 ‘게으름’ 이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세상일에는 열심을 냅니다. 돈 버는 일, 계모임, 동창모임, 학부모모임, 동호인 모임으로부터 시작해서 자녀 양육에 이르기 까지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되면서 빠짐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배생활은 기본입니다.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 다른 것은 기대 할 수 없습니다. 구역예배를 포함하여 공적인 예배는 빠짐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2.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7절에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원래 유대인으로써 유대교를 신봉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대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쫒아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다메섹에 가서 그들을 잡아 오려고 가던 중에 하늘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주님의 음성 앞에 꼬꾸라져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일생을 홀연 단신으로 복음을 위하여 3차 전도여행에 걸쳐서 소아시아와 로마에 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개종하여 복음을 전할 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믿었던 유대교인들과 자신의 동족으로부터 엄청난 핍박과 박해가 항상 저를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심지어는 사도행전 23장 21절에 보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가 40여명이 그를 숨어서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을 죽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2000년전 만 그런게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사탄은 환난과 핍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 생활을 잘 해보려고 해 보십시오. 반드시 불신 가족들로부터 상당한 압력과 핍박이 따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그 정도의 압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난 3월 파키스탄 유일한 크리스찬 샤바즈 바티 장관이 과격분자에 의해서 피살된데 이어 지난 8월 1일 국민일보에 파키스탄 크리스챤인 라시드 (39)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사람은 파키스탄에서 자신의 친구인 크리스챤 대니스 씨가 무슬림 여인과 사귄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되었고 가족과 교회가 공격을 당하고 3일 후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라시드는 대니시의 죽음을 장례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고 2개월 후인 2009일 10월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고향에 돌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다녀와 항공사의 직원으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음에도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고국과 고향을 등지고 이국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종교를 바꾸면 죽여도 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이것을 가족들이 죽여도 죄가 되지 않고 명예살인으로 합법화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소수인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국가나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하층민으로 비참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집트에 가면 수 백 년 동안 기독교 콥틱 신자로써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상 대대로 쓰레기를 주워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수도시설도 없고 교육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무슬림의 박해가 심해지고, 서로 충돌하고 살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하면 그들은 편안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을 포기 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악취가 나고 더러운 환경에 살면서도 그들은 환하게 웃는 미소는 천사와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얼마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 하십니까? 믿음을 지키다가 살해 위협을 받아 본적이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다가 맞아 본적은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다가 불이익을 당한적은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다가 환난이나 핍박을 받은 적은 있습니까? 믿음 때문에 금전적인 손실을 본적은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믿음 때문에 39대씩 5번을 맞아 보았으며,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여러 위험과 환난과 핍박, 배고프고 춥고 굶주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어떤 분은 회사가 부도나고, 가정이 어려워 져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어도 그것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켜 회복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이유 없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 나오지 않는가를 물으면 십일조 하라는 목사님의 권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카타 대통령은 재임 시보다 은퇴 후 더 아름다운 삶을 살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망치를 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해비다트 운동을 하고 있어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분이 해군사관학교을 졸업할 때 일입니다. 카터는 핵잠수함에 근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면접할 때 릭오버 제독이 물었습니다. “해군사관 학교에서 몇등이나 했느냐?” 카타는 자신의 좋은 성적이라 생각하여 820명중에 59등 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잘했다는 칭찬을 기대했는데 뜻밖에 제독은 칭찬 대신에 “자네 최선을 다했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네” 하고 대답을 해놓고 지난 해군사관학교 시절을 돌아보니 그렇치를 못한 것 같아 수정하여 “항상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릭오버 제독은 한참 동안 카터를 바라보더니 면접을 끝맺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 그 후로 카터에게 “자네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라는 릭오버 제독의 이 한 마디가 평생 잊지 못할 말이 되었고 그 후 카터는 릭오버 제독의 이 질문을 되새기면서 자신의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카터는 그 후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였고 이런 최선을 다하는 그의 삶이 결국 그를 땅콩농장 주인에서 주지사를 거쳐 미국의 대통령이 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취할 수 있습니다.
3.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행 20:24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race)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무슨 사명입니까? 본문 1-2절에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범사에 오래 참음으로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사명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경책 하라. 입니다. 이 말의 뜻은 바로 잡아주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바른길로 안내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구부러지고 휘어진 것을 곧 바로 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경책하며, 잘못하면 꾸짖으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권하라는 말은 (encourage) 위로하고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 잘 감당하도록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스승을 많이 두고 진리를 쫒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복음전파자의 사명이 더욱 큰 것입니다.
요즈음 TV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입니까? 오락프로그램이나 시티 콤입니다. 그저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웃기고 즐기는 프로그램들입니다. 한마디로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들을 즐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되다보니 목사님들의 설교도 코메디 비슷하게 해야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진리를 쫒지 않고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아무런 생명도 주지 못하는 허탄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명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쫒은 스승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진리이신 예수님만을 섬기지 않고 온갖 잡다한 사상과 철학과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하여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5절에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장 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마지막 유언의 말씀, 지상명령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자신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되었습니까?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에 또 자기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여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사명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로서의 사명, 남편과 아내의 사명, 학생의 사명, 경찰관의 사명, 의사의 사명, 성도로서의 사명, 안내자와 기도순서의 사명, 성가대와 교사의 사명, 집사, 권사 장로 목사로서 사명,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아름답습니다.
지난 8월 2일 한국교회의 큰 별 이 떨어졌습니다.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이십니다. 한국교회의 큰 족적을 남기시고 65세의 짧은 생애를 마치시고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이 분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6,25 전쟁시 월남하여 연예인 교회를 설립하시고 구봉서 코메디언을 비롯하여 수많은 연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이 영표, 불신자인 박찬호가 슬럼프가 빠졌을 때 찾아 가시어 위로하여 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온누리 교회를 창립하시고 7만 5000명의 대교회로 성장시켰습니다. 이 분은 후배 목사들에게는 쉬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쉬지 않고 일하셨다고 합니다. 7번의 간암 수술과 일주일에 3번의 투석 중에도 설교를 하셨고 지난 7월 31일 생애 마지막 설교를 마치시고 이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분으로 인해 우리나라 대표적 지식인인 이어령씨가 일본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명박 대통령은 조문하시면서 방명록에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목사님은 남들이 100년 동안 할 일을 60평생에 이루셨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사도바울처럼 관제와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놓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 남은 자들에게 귀한 교훈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번에 2011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된 이성혜는 조부가 목사님이시고 아버지가 의사이신 독실한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김정미는 일찍부터 성혜가 아름다움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았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기도중에 미스코리아 출전을 권했다는 것입니다. 서울 예선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김씨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예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른바 스펙 쌓기가 아니라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하기 위하여 출전했다고 합니다. 서울 진에 당선 됐을 때 방송국 PD가 불러 종교적 발언을 하지 말도록 강요했지만 딸은 “모든 영광을 저를 이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 뿐 아니라 합숙기간동안 큐티 책을 놓지 않았고, 24박 25일동안 문자 메시지를 어머니께 보내 기도를 부탁할 정도이다. 성혜씨는 앞으로 패션업계 CEO가 되는 것이 꿈이고 돈을 많이 벌어 굶주린 이웃에게 베풀고 가난한 곳에 복음과 희망 전하는 미의 전도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금의 절반은 아버지가 멘토링 하는 대학원생의 입학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말라리아 퇴치 비용으로 아프리카에 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인생은 한번 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죽음은 누구에게든지 공평하게 다가옵니다. 가난하자나 부자나 배운 자나 무식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옵니다. 산자와 죽음 자를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서 사도바울처럼 하용조 목사님처럼 남은 생애,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선한 싸움 잘 싸우고 믿음을 잘 지켜 이 땅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8월 7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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