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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삭개오 (누가복음 19장 1-10)

gkffpffndi 2011. 7. 16. 17:17

 

구원받은 삭개오 (누가복음 19장 1-10)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 最高(최고)의 도시인 여리고성으로 지나가시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40년 만에 밟았던 가나안의 첫 성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기생 라합이 구원받았습니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아름답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발삼(Balsam) 향나무 숲”, “종려 나무도시”로 알려진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당시 길르앗 지방으로부터 들어오는 향유를 세계에 내다 팔고, 사해에서 나는 유향과 역청 소금을 거래하여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지방특산물에 과도한 관세를 붙여서 로마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정부에 앞잡이 노릇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자신의 동족으로부터는 환영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상대하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혼자였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삭개오는 부유했지만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그가 여리고 성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쳐다보시면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기쁨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 날,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시간 삭개오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인생의 구원문제를 해결 받게 되었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의 만남이 있습니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만남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헬렌켈러는 생후 2년도 되지 않아 급성 열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상실하면서 말까지 못하게 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은 일곱 살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가르친 설리번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의 노력으로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이들의 복지를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또한 여성과 인종차별을 당하는 흑인,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같은 약자(弱者)들을 위한 대변인으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연설을 했다. 그녀가 스물세 살 때 쓴 [나의 생애]는 뉴욕공립도서관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책 100권’에 포함되었으며, 쉰세 살에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여성 최초로 하버드 대학 명예 학위를 받았고, 미국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으며, 생전에 전미 여성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헬렌케러는 그의 스승인 설리반 선생님을 잘 만나 위대한 인생을 산 것이다.

 

강영우 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백악관 정책차관보에 입성하고 현재는 유엔 세계 장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 축구다가 실명하여 소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부인인 숙명여대 영문과에 다니던 석은옥씨를 만나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한국인 최초로 시각장애인으로써 박사학위를 받았고 아들 강진영은 오바바 대통령의 입법관계 특별보좌관으로 장남은 안과의사로 키워습니다. 석은옥 씨는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서 1년에 3만 km 이상을 학교와 집을 오고 갔다는 것입니다. 석은옥 씨의 희생적 헌신과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날 강영우 박사와 그의 가정은 없었을 것입니다. 배우자를 잘 만난 것입니다.

 

또한 정트리오 정명훈 정명화 정경화를 세계적인 음악가정으로 키운 그의 어머니 이원숙씨가 얼마 전에 9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그의 남편과 함께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서 식당일을 하면서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적인 헌신으로 세계적인 지휘자로 정명훈씨가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 인 것입니다. 이 모두가 만남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만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인 것입니다. 이 땅에 위대한 모든 사람들은 젊은 날에 고통 속에서 환난 가운데서, 인생의 위기 속에서 주님을 만나 위대한 생을 살았습니다.

 

본문 삭개오도 그런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당시 로마정부에 아부해서 권력과 부를 누렸지만, 자신의 민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부를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여리고성을 지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는 인사를 하지만 그가 지나가면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그를 매국노라고, 반역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공허하고 외로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던 차에 죄인과 세리를 가까이 하시는 예수님이 자신이 머무는 여리고에 지나가신다는 소문이 며칠 전부터 짝 퍼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이 오늘인 것입니다. 본문 19장 1절에 예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시더라.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시는 길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벌써 소문이 다 퍼져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면 언제 오실지 기약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유고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자원은 기회라는 자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을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것은 삭개오에게 있어서 가장 유일한 기회입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우화는 앞머리는 무성하여 앞에서는 쉽게 움켜질 수 있어도 뒷머리는 한 오라기도 움켜쥘 수 없는 대머리로서 기회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합니다.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요, 보라 지금이 은혜의 날 이로다. 지금이 중요한 것 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순간이 중요한 것 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이 중요한 것 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조우하는 시간입니다.

 

삭개오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을 체면 때문에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핸디캡 때문에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 때문에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곧 바로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하나는 군중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키가 작다는 것 입니다. 이 두 가지로 인해 곤난에 빠졌지만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포기한 사람이었다면 로마정부아래서 식민지 백성으로 세관의 장으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일도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가치 있는 일 일수록 더욱 그런 것입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년 1월 30일 ~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재임 1933년 ~ 1945년)이다. 1921년, 캄포벨로의 여름 별장에서 찬물에 빠진 이후 소아마비 진단을 받고 걷지 못했지만, 절망하지 않고 뼈를 깎는 재활 치료와 노력을 하여 장애를 극복, 다시 정계로 돌아와 자신의 약점인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미국의 대공황과 세계 제 2차 대전을 잘 극복하고 대통령에 네 번이나 당선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애물은 다 있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도 반드시 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 앞에 놓인 장애로 인해, 예수님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군중과 자신의 작은 키를 일거에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뽕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뽕나무를 보니까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가장 적합한 자리였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가기만 하면 가장 좋은 위치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뽕나무 에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올라가려고 하니 망설여졌습니다. 이 지역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 명성으로 보아서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점잖치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 어린이 라면 모르겠지만 어른이 뽕나무에 오른다고 하니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겠나 하면서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 수많은 군중들이 더욱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기회를 잃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까짓 체면이 무슨 대순가? 생각하는 순간 삭개오의 마음은 순식간에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민중들은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들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환영하고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병든 몸을 치료 받기위해서, 가정의문제 자녀의 문제로 왔지만 삭개오는 그저 예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과 같이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사람을 사랑해주시는 주님을 한번 만이라고 보기 위해서 입니다. 삭개오는 다른 것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원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장애물을 극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기 전 까지는 망설여졌지만 올라서니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 삭개오처럼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신령한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면 주님께서 찾아와 만나주시고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날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니라"

 

삭개오처럼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이 장애물을 뛰어넘어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삭개오는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 자존심이나 체면은 땅에 묻어두고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예수님의 일행이 뽕나무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의 발걸음이 뽕나무 아래에서 멈추었습니다.

 

뽕나무위에 걸쳐 앉아있는 삭개오에게 약간의 긴장이 흐를 때 주님의 시선이 뽕나무 위 삭개오 에게 머물렀습니다. 주님의 시선이 아침 햇살처럼 긴장해 있던 온몸을 따뜻하게 감돌고 사랑스런 눈길로 응시할 때 삭개오는 주님의 사랑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삭개오의 마음을 읽으시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언제 주님을 뵌 적이 없는데 삭개오의 이름을 아신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신 것은 그의 마음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집이 어떤 집입니까? 세리의 집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의 집에 가는 것은 그 당시에 큰 사건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논란거리가 됩니다. 세리의 집은 그냥 아무나 가는 집이 아닙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거지도 세리가 준 돈은 안 받는다’ 그만큼 세리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집단 이지메를 당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피하고 멸시하는 삭개오의 집에 가는 것은 엄청난 충격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삭개오는 지난날의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민족적인 따돌림, 차가운 시선, 마음에 상처가 한 순간에 치료되었습니다. 고통이 사라진 것입니다. 자존감이 높아졌습니다.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시는 구나. 그래서 뽕나무에서 즉시 내려와 즐겁게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제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제자들을 여리고성의 특산품과 맛있는 과일과 음식으로 잘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그 분을 나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려고 하면,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려고 하면 비웃습니다. 뭐 그렇게 예수를 요란스럽게 믿느냐고, 종교란 취미삼아서 믿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 가끔식 빠질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비웃고 수군거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의식한 채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 바깥에 두고 생활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읽습니다. 교회에 가끔씩 출석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서 영어강사로 유명한 메가 스터디의 모 강사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영어실력이 향상된 비밀을 말한다고 하면서 영어성경을 읽으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덧 붙여서 말하기를 자신에게는 교회는 나가라고 하지 말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알았던 대학교 교수도 말하기를 자기는 대학교때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예수님을 싸구려 옷처럼 취급하고 가끔씩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마음속 중심에 모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의 종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주의 종이 심방을 왔는데도 본척만척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보면 내가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됩니다. 왜 가롯 유다가 주님을 배반했습니까? 주님의 뜻과 사상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삭개오는 6절에 보면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드리고 매사에 주님을 인정하며,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기쁘고 즐겁게 모실 때, 여러분의 인생은 축복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는 한 순간에 해결됩니다. 모든 역경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주인으로 모셔 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하셨습니다.

 

4. 지난날의 삶을 회개하고 결단했습니다.

 

이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그리고 그분을 모셔드린 후 자신의 삶의 가치관에 일대 대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삭개오가 어떤 사람입니까? 일생을 자신의 동족들에게 멸시를 당하면서도 오로지 물질만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지나치리 만큼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하면서 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을 감수한 채 많은 부를 축척했습니다. 삭개오에게 있어서 돈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이요 가치관이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자신이 살아있는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돈은 많았지만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공허했으며 텅 비어 있었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그의 고백을 들어 보겠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우리는 그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쌓아놓은 부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재산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물질이 전부였습니다. 물질이 최고였습니다. 물질을 위해서, 물질을 모으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물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학문과 가문과 지식과 명예를 내세웠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고백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 비하면 세상의 어떤 것도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평생을 자신의 모든 것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이게 구원받은 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를 위해 산 것이라"

 

진정한 회개란 단순한 지적인 동의나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의지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전환 하는 것입니다. 마치 집나간 탕자 자신의 삶을 청산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삶의 변화를 가져 옵니다.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삶의 태도가 바꾸어집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변화에 대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10절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날 이 세상에는 삭개오처럼 세상 헛된 것에 취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많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잃어버린 채 말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삭개오의 진정한 회개와 결단이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동분서주 하십니까?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삭개오처럼 주님을 얻기 위해서 여러분이 손에 웅켜 쥐고 있는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머뭇머뭇 거리십니까? 주님이 이 시간 이 곳에 지나가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을 이 시간 마음속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단 하십시오. 주님이 내 삶의 전부라고 ... 그리고 이 땅에 잃어버린 자를 찾아 나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7월 17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