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에서 /창25:27-34
오늘 살펴볼 본문은‘야곱과 에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삭이 60세에 낳은 쌍둥이 아들로서, 에서가 형이고 야곱이 동생입니다. 에서는 온몸에 털이 많고 피부색이 붉고 성격이 활달하였으며 들에 나가서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른바 야성적이고 호방적인 성격의 소유자 입니다. 반면에, 야곱은 매끈한 피부에 성격이 조용해서 집안에서 머물면서 집안일을 도와주기를 좋아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마마 보이쯤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지만 생김새나 성격이 매우 달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에서와 같은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활동적인 점에서 좋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고, 야곱과 같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도 나름대로 좋은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이 에서와 야곱에 관해서 언급할 때 에서는 정죄하고 야곱은 칭찬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롬 9: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 시간 저는 야곱과 에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야곱처럼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그 사람이 평소에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마음에 품은 생각에 따라서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돼지는 항상 먹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배가 부르면 누워서 잠을 잡니다. 이 세상에는 윤리,도덕도 망각하고 단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생활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배부른 돼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륜에 따라서 살고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등 정신적인 생활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에서와 같은 사람과 야곱과 같은 사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에서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세상일에 몰두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에서가 날마다 들에 나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냥에 몰두하였듯이, 자나 깨나 세상일에 분주하게 쏘다니는 사람이 여기에 속합니다.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즐길 일도 많아서 세상사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영적인 일에 관해서는 무관심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흩어져 이웃에게 전도하고, 기도하고, 햐계수련회를 해도 마음에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그 일이 자신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사냥하는 일에 지나치게 열중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뛰어 다녔던지 집에서 돌아올 때는 심히 곤비했습니다. 영혼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사냥에만 그토록 열심 낸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에서는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찾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한 것은 장자권을 소홀히 한 결과입니다. 이는 그가 당장 배고픔을 면하는 것을 영적인 축복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말해 줍니다. 그는 오로지 자기의 욕망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만약에 에서가 하나님의 복을 귀히 여겼다면 아무리 시장해서 죽을 지경이 되었어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이 무엇입니까? 가문을 대표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상속지분을 다른 형제보다 2배나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축복을 계승하는 권리를 말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가진 사람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그러니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그러나 에서는 장자의 명분의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달랐습니다. 그의 뇌리에는 자나 깨나 장자의 명분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몇분 차이로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텨 형의 발꿈치를 잡고 먼저 나올려고 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정해진 운명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장자가 아니어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상속받지 못하게 된 것을 두고두고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자의 명분을 차지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가 “배가 고파 죽겠으니 그 붉은 팥죽을 먹자”라고 했을 때, 이것저것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시간 우리는 과연 나는 에서와 야곱 중에서 어느 편에 더 가까운지 진단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을 이어받을 하나님의 자녀 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할 후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후사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내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니 최고의 가치입니다.
두 번째로, 에서는 육적인 사람, 현대인을 대표합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매우 피곤하고 배가 고팠습니다. 하루 종일 사냥감을 쫓아다녔으니 그럴 만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야곱이 에서가 그토록 좋아하는 팥죽을 쑤고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었습니다. 에돔은 붉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의 피부색이 붉을 뿐 아니라 팥죽을 유난히 좋아한 데서 비롯된 별명입니다.
야곱이 팥죽을 쑤는 것을 본 에서는 반가워하면서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내가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죽겠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까? “배고파 죽겠다” “배아파서 죽겠다” 심지어는 “너무 좋아서 죽겠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죽게 되었다고 한 것은 배가 몹시 고프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때 야곱은 그동안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말을 합니다.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말합니다. 이때 에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 하리요. 이 말의 뜻은 지금 나에게 있어서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먼 훗날의 미래에 있을 장자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먼 미래의 약속은 자신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그는 서슴없이 맹세하고 장자의 권한을 팔았습니다. 오늘날 이 에서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현실문제에 있어선 약삭 빠르고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에서에 있어서 문제는 그가 육신의 안목을 따르는 자라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도 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에 따라 일을 해치우고 마는 세속적이고,세상적인 사람입니다. 눈앞의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육적인 사람의 대표입니다.
에서가 창세기 26:34~35에서 이방인 헷 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취해 부모의 마음을 근심하게 한 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육신의 안목을 따르는 사람인가 영적인 안목을 따르는 사람인가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결혼 취직 등을 선택할 때의 기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육적인 사람의 결말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6,17)고 경고하십니다.
개와 돼지는 영적인 축복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오직 세상 것만을 열심히 추구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경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서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셋째, 반면 야곱은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의 가치, 하나님의 복인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겼습니다.(34절).
에서의 가장 큰 실수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겨 팥죽 한 그릇과 바꾼 것입니다. 당시 장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장이 되어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이며 다른 형제들보다 두 몫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습니다만(신21:15~17) 이보다 더 중요한 특권은 하나님이 그 가문에 주시는 영적인 축복의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서는 육신적인 장자의 특권을 무시한 것도 문제지만 영적인 장자의 특권을 무시한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의 육신적인 안목 때문입니다. 결국 이 팥죽 사건은 에서와 야곱 자신만 아니라 그 후손 모두의 미래를 크게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됩니다.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복을 계승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 보이지 않지만 장자권을 소중하게 여긴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기쁘게 여긴 이유입니다. 야곱이 하늘나라의 장자의 총회에 이름이 기록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과 축복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반면 에서가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복을 빼앗긴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복을 하찮게 여긴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장자권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장자권은 무엇일까요?[출 4:22]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히 12:23]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그것은 하늘나라의 상속권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가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늘나라는 이 장자권을 소중하게 여긴자가 가는 곳입니다.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현실적이고,가시적인 가치보다, 영적이고 신령한 하늘 나라의 가치, 즉, 믿음 ,사랑, 정의, 은혜, 용서, 기도, 전도, 성도의 교제 등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비록 이것들 때문에 자신이 불익을 당하고 멸시 받고, 비난과 조롱을 당해도 기꺼이 희생의 값을 지불하는 자입니다. 이런사람이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되며,장차 하늘나라의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그 뒤를 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없다고 했습니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 하나니 육신을 쫓는 자는 사망이요 영을 쫒는 자는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 특권을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거듭난자 이며, 위로부터 난 자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내 안에 소유 한자 입니다. 이 특권은 세상 그 어떤 권세나 특권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의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신 까닭은 후대에 사는 우리에게 신앙의 교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날도 에서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야곱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에서와 야곱, 둘 가운데서 어느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적이고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눈앞의 이익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의 소중함을 알고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기므로 장차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나라 장자의 모임에 참여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 모두 영적인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세상 무엇보다 이 영적인 특권을 소중히 여겨 하늘나라를 상속받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0년 8월 8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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